社名에서 使命을 읽다

여행서 테마파크까지 “세계 표준이 되자”

258호 (2018년 10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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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서른이 안 된 젊은이가 신주쿠에 책상 두 대, 전화기 한 대로 여행 사무실을 차렸다. 6개월 동안 손님이라고는 단 한 사람. 그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가 여행에서 돌아온 후 다시 미팅을 잡을 수 있었다. 그를 만난 자리에서 들은 자료로 최신 정보를 업데이트했고 그 결과를 다른 고객에게 나눠주는 자료에 반영했다. 그가 만든 자료는 항상 최신이었으며 이런 사실이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 여행사가 오늘날 일본 여행 업계 2위로 성장한 HIS다.

HIS를 창업한 사와다 히데오(澤田秀雄) 회장은 1951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여행을 좋아했던 그는 고등학생 때 아르바이트로 자금을 모아 독일로 유학을 갔다. 독일이 한창 성장할 때였고 유럽 곳곳으로 여행하기에 좋다는 이유였다. 이곳에 출장 온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여행 가이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약간의 돈을 모았다. 이 돈을 마침 오일쇼크로 주가가 하락한 폴크스바겐에 투자해 1000만 원이라는 목돈을 만들었다. 그는 이 돈으로 본인처럼 여행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저가로 여행하는 기회를 얻도록 하겠다는 꿈을 갖고 사업을 시작했다. 글로벌 시장에는 저가 항공권이 있었지만 일본에는 아직 그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1990년 ‘인터내셔널 투어즈’였던 회사 이름을 HIS로 변경했다. ‘가장 뛰어난 세계 표준이 되자(Highest International Standards)’는 의지를 반영했다. 다른 의견도 있다. HIS가 Hide International Service의 약자라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HIS의 한자 표기가 ‘秀国際’(秀의 일본 발음이 히데, 國際는 인터내셔널을 의미)라는 점을 증거로 든다. 스와치(Swatch)가 이런 경우다.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스와치는 세컨드카, 세컨드 하우스처럼 세컨드 워치의 약자였다. 그러다 스와치가 성공을 거두면서 S가 세컨드의 약자가 아니라 스위스의 머리글자일 것이라는 주장이 돈다.

사업이 불같이 일어나면서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 파소나의 남부 야스유키 회장과 더불어 벤처 삼총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1950년대생 젊은이들이 맨손으로 출발해 벤처 시대를 이끈다는 데서 비롯된 명칭이다.

공격적으로 경영했고 급속히 성장했다. 조직 구성원의 숫자도 급증했다. 인원수가 300명을 넘기면서 첫 번째 고비를 맞이했다. 회장이 누군지 모르는 직원이 등장했고 측근만 챙긴다는 소문도 돌았다. 상대적으로 소외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직원은 회사를 떠났다.

이때 해결책은 비전을 세우고 이를 공유하는 것이다. 사와다 회장은 해외 개척, 상장, 조직 구축이라는 3개의 목표를 세웠다. 홍콩을 필두로 전 세계 200여 개국에 지점을 세웠다. 그리고 각 지점장이 지점을 개인 회사처럼 운영하게 했다. 당시 여행업체 중에는 상장한 회사가 없었다. 사와다 회장은 상장하겠다는 미션을 부여해 전 조직원이 ‘여행업계에서 가장 뛰어난 표준이 되겠다’는 비전을 공유하도록 했다. 조직 구축을 위해 사와다 회장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더 이상 현역 4번 타자가 아니라 감독으로서 기능을 수행하기로 했다.

1996년에는 일본 저가 항공사의 원조인 스카이마크를 설립한다. 이 모델은 독일 유학 시절 미국 사우스웨스트항공을 보고 감탄한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원래는 스스로 이 사업에 뛰어들 생각이 없었다. 한국의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에 해당하는 JAL, ANA에 저가 항공사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기존 시장에서 과점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항공업체들이 신사업에 뛰어들 이유가 없었다. 결국 사와다 회장 스스로 회사를 설립했다.

초창기에는 고생이 심했다. 비행기 몇 대로, 몇 개의 구간만 운영했는데 그렇게 구간을 설정하고 나면 기존 항공사들이 해당 구간에 대해 저가 운임을 책정하곤 했다. 마치 반도체 업계에서 후발주자가 신제품을 개발하면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들이 바로 그 모델의 판가를 떨어뜨리는 것과 유사한 이치였다. 사와다 회장은 깨달았다. 여행업은 소프트업이지만 항공업은 하드업이라는 사실을. 여행업은 책상과 전화만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항공업은 최소 비행기 10대를 바로 띄울 수 있거나 혹은 10대를 운영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자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초창기 어려움을 여행업에서의 수익으로 버텨낸 그는 결국 저가 항공사의 대표 주자로 자리 잡는 데 성공한다.

2010년에는 하우스텐보스 재건사업에 뛰어들었다. 네덜란드어로 ‘숲속의 집’이라는 뜻을 지닌 이 테마파크는 1992년 개발 당시 투자금액만 2000억 엔이 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2003년 한 번 파산했고 이를 노무라증권계 펀드가 인수해 재건에 나섰지만 적자가 계속됐다. 사와다 회장은 처음엔 인수할 의도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사람이 세 번 부탁하면 그 부탁을 들어주고 마는 성향을 지녔다. 사실 이런 성격은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도 그 점을 알고 테마파크가 위치한 사세보 시장의 전화를 계속 피했다. 하지만 무턱대고 찾아와 회사 앞에서 기다리는 시장의 간절한 눈길을 더 이상 피할 수 없어 주판알을 튕겨 보았다. 채무만 면제된다면 가능성은 있어 보였다. 채권단과 협의해 채무의 80%를 면제받았다. 사세보시로부터 고정자산세도 10년간 내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 정도라면 기본은 된다. 하지만 이익을 내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경비의 20%를 줄여보기로 했다. 적자가 18년 이상 지속된 회사에 추가로 절약할 만한 경비가 있을까? 고민 끝에 사와다 회장은 업무 속도를 20% 올리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침체된 분위기라고 봤다. 개원 18년 만에 사와다 회장이 10번째 사장이었다. 보너스를 받은 적도 없고, 월급이 오른 적도 없는 조직이었다. 흑자를 낸다면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약속하고 인수 6개월 만에 흑자전환 및 보너스 지급을 해냈다. 조직 내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종업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사와다 회장은 테마파크를 뛰어넘어 새로운 도시 건설을 꿈꾼다. 하우스텐보스의 면적은 46만 평, 모나코와 비슷한 크기다. 모나코가 고급 관광도시라면 하우스텐보스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로봇이 체크인, 체크아웃하는 헨나호텔(Henna Hotel)을 하우스텐보스에 제일 먼저 설립한 것도 화제성을 유발하기 위해서다.

여행, 항공, 테마파크, 호텔, 일상 탈출, 스트레스 해소, 새로운 활력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것을 사와다 회장의 지론이다. 그것도 가장 높은 수준으로 말이다. 앞으로 어떻게 사업 영역을 확장해 나갈지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기업인이다.


필자소개 신현암 팩토리8 대표 nexio@factory8.org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성균관대에서 박사(경영학) 학위를 받았다. 제일제당에서 SKG 드림웍스 프로젝트를 담당했고, CJ엔터테인먼트에서 근무했으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및 사회공헌연구실장을 지냈다. 저서로 『브랜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공저)』 『잉잉? 윈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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