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SR4.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감각디자인 사례

한방의 후각에서 도자기 느낌 촉각까지
‘한국적 아름다움’으로 세계를 사로 잡다

배미정 | 256호 (2018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글로벌 화장품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은 한국적 가치를 감각디자인으로 표현하는 데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대표 브랜드 설화수는 한방 제품의 고유한 성능을 촉각과 후각을 활용해 감각적으로 전달할 뿐 아니라 ‘조화와 균형’ ‘동양적 아름다움’이라는 추상적인 브랜드 개성과 철학을 감각적 체험 공간으로 실체화했다. 대량 생산 시스템 속에서 희소한 예술 작품의 가치를 보존하려는 노력도 주목할 만하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남정희(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국내 최대 화장품 기업이자 글로벌 뷰티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은 국내에 디자인이란 개념이 생소하던 1960년대부터 브랜드 디자인을 도입, 1994년 태평양디자인연구센터를 설립해 2010년부터 독립된 디자인센터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대표적인 디자인 친화적 기업이다. 현재 아모레퍼시픽은 30개가 넘는 개성이 강한 브랜드들을 운영하고 있다. 각 브랜드가 추구하는 개성이나 철학은 추상적이기 마련인데 그것을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디자인으로 표현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취향도 반영해야 한다. 무엇보다 디자인 자체로 아름답고 품격 있는 브랜드로 소비자들에게 각인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설화수’는 ‘내면과 외면의 아름다움’, ‘조화와 균형’을 강조하는 아모레퍼시픽의 대표적인 브랜드 중 하나다. 1966년 인삼을 제일 먼저 화장품 원료로 쓰기 시작한 이래로 한방 화장품 기술을 발전시켜온 동시에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해온 회사의 헤리티지를 오롯이 담고 있다. 유구한 전통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전통의 무게를 감당하면서 언뜻 굉장히 추상적이고 모호해 보이는 가치를 현대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은 디자이너 입장에서 굉장히 어려운 과제였다.

허정원 아모레퍼시픽 디자인센터장은 “설화수는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면서 디자인하는 브랜드”라며 “설화수가 추구하는 브랜드다움을 고객이 디자인을 통해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설화수는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소비자들에게 ‘품격’ 있는 럭셔리 브랜드로 인식되는 데 성공했다. 설화수 브랜드 매출은 아모레퍼시픽 전체 매출의 20%로 30여 개 브랜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고객들로부터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미국과 유럽 시장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으며 2018년 현재 국내 화장품 브랜드 중 유일하게 프랑스 파리 라파예트백화점에 입점했다.

아모레퍼시픽 전 브랜드 디자인을 총괄하는 허정원 디자인센터장과 설화수 브랜드 디자인을 총괄하는 이은정 팀장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설화수 감각디자인의 특징과 강점을 분석했다.

67-1

용기의 촉각에 주목
설화수는 1997년 에센셜 라인을 최초로 출시한 이후 크게 2004년 2009년 두 차례에 걸쳐 용기의 시각디자인을 업그레이드했다. 제품 기능이 개선될 때마다 기본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색감과 브랜드명 디자인, 낙관의 위치 등을 수정했다. 전체적인 색감이 옅어지고, 낙관의 위치가 용기 숄더에서 전면으로 이동했으며, 브랜드명의 ‘수(秀)’자의 크기가 작아졌다.

그런데 2015년 제4세대 윤조 에센스가 출시되면서 디자인 부문에 새로운 변화가 더해졌다. 기존 초자 용기에 도자기 질감을 구현하는 후가공을 적용한 것이다. 일반 유리가 차갑다면 도자기는 따뜻한 느낌을 준다. 이은정 팀장은 “자연의 지혜와 한방 재료를 활용하는 브랜드 특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도자기 느낌을 살리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며 “설화수가 모티브로 삼는 조선백자 달항아리를 시각적으로뿐 아니라 촉각적으로 전달하고자 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도자기를 직접 사용하는 방안도 논의됐지만 용기가 쉽게 변형될 수 있고 생산성에서 문제가 있다는 단점이 지적됐다. 대신 기존 초자 용기의 장점을 살리면서 도자기 질감의 코팅을 입혀 촉각적으로 도자기 같은 느낌을 주기로 했다. 소비자는 용기를 잡았을 때 일반 화장품 용기의 매끈한 느낌과 다른, 부들부들한 촉감을 느낄 수 있다. 도자기 같은 부들부들한 촉감은 중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인상을 주는 효과가 있다.

허정원 센터장은 “가볍고 내구성이 좋은 플라스틱 용기는 실용적인 가치가 높은 반면 초자 용기는 본연의 무게감이 주는 고급스러운 느낌이 있다. 설화수와 같은 럭셔리 브랜드에서는 고급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는 소재들에 대한 연구, 소재 자체가 가진 고급스러움을 넘어 다양한 감각을 통해 브랜드의 격을 전달할 수 있는 디자인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고급스럽다’라는 느낌은 일종의 의식적, 무의식적인 연상 작용이다. 윤조에센스를 손안에 잡을 때 느껴지는 실제 도자기의 질감은 촉감을 통해 우리의 전통, 예술, 장인의 손길을 연상시킨다. 그것이 설화수가 전달하고자 하는 브랜드 격의 한 표현 방식이다”고 설명했다.

포장에 향기를 입히다
사람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감각이 후각이다. 똑같은 제품도 향이 첨가됐을 때 제품에 관한 정보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설화수는 포장에 향을 입힘으로써 구매자와 선물을 받는 사람에까지 설화수의 가치를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설화수의 대표 향은 ‘윤조지향’과 ‘매화지향’인데 두 향은 매화, 소나무, 동백, 대나무 등 절제된 자연에서 삶의 이치를 깨달았던 선조들의 지혜를 영감으로 만들었다. 윤조지향은 새벽 숲의 청량함과 나무의 따뜻함을 남기는 기품의 향, 매화지향은 눈 속에서 피어나 새 봄의 희망을 터뜨리는 백매화의 생명력과 고귀함을 닮은 은은한 향을 지향한다.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FS)에서는 고객이 윤조지향과 매화지향 중 한 가지 향을 선택하면 그 향을 뿌린 카드를 선물에 동봉해준다. 고객뿐 아니라 받는 사람도 선물을 열었을 때 특유의 향을 느끼면서 설화수만의 브랜드 가치를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 같은 후각적 요소는 포장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배가하는 효과도 발휘한다. 설화수는 선물 포장에도 한국적인 가치를 디자인했다. 설화수 대표 컬러인 짙은 호박색 포장에 한복 옷고름을 본떠 만든 리본 장식을 달아준다. 리본 하나에서도 한국적인 미를 재해석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설화수 FS에서는 유료 포장 서비스도 제공하는데 오방색의 보자기를 주재료로 사용한다. 실크 보자기의 부드러운 촉감과 특유의 향은 상대방의 행복을 기원하는 추상적이고 은유적인 느낌을 구체적인 감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고객은 설화수만의 정성이 담긴 선물 포장디자인을 통해 설화수가 재해석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감각적 체험 공간
매장 공간은 소비자가 브랜드 가치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한국 화장품에 익숙하지 않은 글로벌 고객들에게 설화수 매장은 브랜드 가치를 알리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설화수는 중국, 싱가포르, 홍콩,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대만, 베트남, 미국, 캐나다, 프랑스까지 전 세계 12개 국가와 지역에 동일한 디자인을 적용하고 있다. 고객들은 제품을 사용하기 이전에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남다른 브랜드 특성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2017년 9월, 설화수는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갤러리 라파예트(Galeries Lafayette)’ 백화점에 한국 브랜드로서는 유일하게 단독 매장을 개설하며 유럽 시장 진출의 포문을 열었다. 설화수 갤러리 라파예트점은 국내 일반 매장과 다르게 제품 판매가 아닌 플래그십 스토어(FS) 같은 형태로 브랜드 가치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유럽 고객들 사이에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점을 감안해 브랜드의 다양한 경험을 즐길 수 있도록 감각 체험의 공간으로 구성했다.

매장은 정면에 달항아리와 매화를 전시해 설화수가 추구하는 동양적 미와 한국 공예의 섬세함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또 브랜드 탄생의 근간이 되는 한방, 인삼, 자음단 같은 원료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약방의 모습을 재현해 진정성을 더했다. 한국 FS에서만 제공되는 보자기 선물 포장을 라파예트 매장에서도 진행해 한국적 감성을 프랑스 고객에게도 오감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매장 내에는 별도 체험존을 마련해 대표 상품인 윤조에센스와 자음생크림을 직접 뷰티 리추얼에 따라 체험하도록 안내하면서 고객이 한방의 낯선 텍스처를 온전히 느껴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설화수의 라파예트점 오픈은 한국적인 감각이나 아름다움이 서양 세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은정 팀장은 “최근 프랑스 화장품 시장에 자연주의 컨셉이 인기를 끌면서 설화수도 자연주의 철학을 지지하는 브랜드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며 “특히 프랑스 고객들이 인삼처럼 독특한 향에 거부감을 느낄까 우려했는데 자연의 효능으로 받아들이면서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DBR mini box I: 예술가와 컬래버레이션… 전통 가치 보전

설화수는 매년 한국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예술가들과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리미티드 상품을 만들어 출시한다. 대량 생산 속에서도 예술적 가치 또한 포기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허정원 센터장은 “한국 전통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은 설화수의 존재 이유와 맞닿아 있고, 예술가들과의 협업 과정으로 탄생한 제품들은 설화수가 추구하는 홀리스틱 뷰티(Holistic Beauty)를 고객들에게 보다 풍성한 감성과 다양한 감각으로 전달하게 된다”며 “제품에 예술적 가치를 담아낼 수 있어야 소유경제에서 공유경제로 넘어가는 시대에 ‘소유’의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지난 5월에는 가정의 달 선물 시즌을 맞이해 ‘무릉도원 리미티드 에디션’을 출시했다. 전통 미화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서하나 현대 민화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한 폭의 민화를 용기에 디자인한 스페셜 에디션이다. 11년째 이어지는 ‘설화문화전’이 한국 문화를 알리는 사회공헌 활동이라면 전통 예술가와의 컬래버레이션은 실제 상품에 예술성을 더해 브랜드의 미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전통적 예술품 디자인을 상품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차용하기도 한다. 향 제품군에서 향유는 통일신라시대 사기와 조선시대 분청사기, 밤은 조선시대 파우더와 연적을 모티브로 현대적 감각으로 디자인했다. 이은정 팀장은 “한국 전통 향에 어울리는 전통적인 시각디자인을 입혀 소비자들이 선조들이 느꼈던 자연의 기운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이끄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2017년에 출시된 설화수 실란 메이크업 리미티드 에디션 디자인은 과거 궁중에서 왕비, 빈, 공주가 대소의식 때 착용해 온 향주머니 ‘진주낭’을 모티브로 삼았다. 진주낭은 비단 위에 금실로 꽃무늬를 수놓고 그 위에 진주로 잎과 꽃술을 붙인 주머니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실란 메이크업 콤팩트는 금색 테두리와 홍색 바탕에 금색의 오얏꽃문을 형상화한 후 잎과 술 부분에 여러 개의 진주를 붙여 완성했다. 이은정 팀장은 “매년 나오는 리미티드 에디션은 브랜드 충성 고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상품”이라며 “수익과 무관하게 충성 고객들에게 설화수만이 제공할 수 있는 브랜드 가치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품 경험의 품격을 높이다
설화수의 ‘뷰티 리추얼(Ritual)’은 제품의 효능을 극대화하면서 사용하는 손 미용법이다. 소비자가 신체적으로 제품이 주는 감각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특별한 노하우를 제시한다. 예컨대 대표 제품인 윤조에센스의 경우 제품을 손에 덜기 전에 양손을 비벼 따스한 온기를 만든다. 그리고 제품을 손바닥에 고루 펴 바른다. 얼굴에 바르기 전에 향을 맡으며 호흡을 고른다. 그다음에 볼을 시작으로 이마, 눈가 순으로 양손으로 천천히 꾹꾹 눌러 흡수를 시켜준다. 소비자는 이 같은 리추얼을 따르면서 화장품의 자연 원료를 오감으로 음미하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은정 팀장은 “오감을 자극하는 텍스처와 향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외면뿐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도록 개발한 설화수만의 홀리스틱 뷰티 노하우”라고 설명했다. 한국 화장품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이 이색적이면서도 굉장히 특별한 감각적 경험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설화수 뷰티 리추얼을 기반으로 한 스파 프로그램은 일반 스파와 달리 미용이라기보다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의식을 지향한다. 예컨대 향 트리트먼트인 ‘설화정’은 조선시대 왕실에서 진행됐던 건포마찰을 응용했다. 한국 전통의 향취를 마른 천에 묻혀 케어함으로써 촉각과 후각을 동시에 일깨워 향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제품을 바를 때도 피부 자생력에 좋은 옥, 정화 기능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백자, 피부에 젊은 에너지를 부여하는 호박 같은 자연 소재의 어플리케이터를 활용해 트리트먼트 효과를 높인다.

설화수 FS는 최근 ‘설화단장’이라는 한복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설화수 화장품을 체험한 고객이 조선시대 궁중 예복, 사대부 여성의 옷, 미인도 속 화려한 한복 같은 의상을 선택해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설화수 고객들의 심미적, 쾌락적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다.

70-1

DBR minibox II: 독립적 조직으로 디자이너 힘 실어줘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드 디자인은 디자인센터에 대한 투자와 독립성이 확대되는 과정속에서 발전했다. 디자인센터는 2017년부터 사장실 직속 조직으로 브랜딩 채널과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디자인센터는 한때 각 브랜드 부문 산하의 디자인팀으로 소속돼 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특정 사업부나 브랜드 부문 소속이 아닌 디자인팀끼리 모여 있는 독립적인 디자인센터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물론 디자이너들이 각 브랜드 부문의 디자인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똑같다. 하지만 조직적으로 독립성을 갖추면서 디자인 고유의 관점에서 ‘다른’ 목소리를 낼 여지가 커졌다. 과거에는 브랜드 디비전의 상사가 소속 디자이너를 평가했다면 현재는 디자이너가 디자이너를 평가한다. 허정원 센터장은 “디자이너들이 주체적으로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적인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용산 신본사 13층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디자인센터는 디자이너들의 전용 공간으로 다른 부서 사무실 풍경과 사뭇 다르다. 업무 공간, 회의실뿐 아니라 전시 공간과 크리에이티브 공간이 마련돼 있다. 크리에이티브 공간은 아모레퍼시픽 디자이너들의 창의적인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구체화해 볼 수 있는 Make Zone, 다양한 영역의 디자인 서적이 구비된 디자인 라이브러리, 디자인 산출물을 사전에 시뮬레이션해 볼 수 있는 제품, 인테리어, VMD 목업룸 등으로 구성돼 있다.

디자인센터는 ‘인사이트 데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디자이너들의 창의성을 지원한다. 매월 하루 반나절 동안 디자이너들이 사무실을 벗어나 전시나 핫플레이스를 방문해 인사이트를 얻는 프로그램이다. 또 매년 일군의 디자이너들이 글로벌 디자인 전시 및 행사를 방문한 후 센터 전체가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자리를 갖기도 한다.

서로 다른 브랜드에 속한 디자이너들도 같은 공간에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시너지를 내고 있다. 브랜드 간 디자이너들의 인사이동도 자유로워졌다. 허정원 센터장은 “디자이너들끼리 적절한 시점에 브랜드를 바꾸는 인사가 종종 이뤄진다”며 “개별 브랜드다움에만 갇히지 않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서로 다른 브랜드에 이식시키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디자이너들의 업무 자율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책임도 분명히 따른다. 디자인센터의 궁극적인 목표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디자인팀은 브랜드팀과 구조적으로 KPI 중 재무성과(브랜드 매출, 영업이익)를 서로 공유함으로써 공통의 비즈니스 목표를 지향한다. 브랜드별 디자인팀장은 브랜드 부문의 위클리 미팅 때 배석해 타 부서와 업무 진행 현황을 공유하고 있다. 디자인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는 프로젝트 전 과정에 걸쳐 긴밀히 소통하면서 디자인 의사결정을 진행한다.

일관된 브랜드 경험을 위한 노력

설화수는 럭셔리 뷰티 브랜드로서 변치 않는(timelessness) 아름다움의 가치를 동양적인, 특히 한국적인 가치에서 찾는다. 브랜드명뿐 아니라 기본 형태나 문양, 색깔, 향, 촉감 등 모든 디자인에 한국적 미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브랜드 안의 수십 개 제품디자인을 관통하는 통일된 의미를 한국적 전통에서 찾는다.

예컨대 설화수 용기디자인은 달항아리를 기본 모티브로, 매화문 꽃살 문양을 고유의 패턴으로 삼으면서 곡선과 직선이 어우러진 균형 잡힌 디자인을 추구한다. 색채는 음양오행 이론에서 풀어낸 ‘황, 청, 백, 적, 흑’의 순수하고 섞임이 없는 다섯 가지 색을 기본으로 삼는다. 향 또한 매화, 소나무, 동백, 대나무 등 한국을 상징하는 자연의 향을 추구한다. 이 모든 감각을 관통하는 일관된 철학이 ‘외면과 내면의 아름다움’ ‘조화와 균형’ ‘동양적 아름다움’이다.

브랜드 철학인 한국적 전통을 이해하기 위해 디자이너들도 미술사학자 못지않게 동양 예술을 공부하면서 그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어떻게 해석할지 고민하고 있다. 설화수 브랜드 디자이너들은 아이디어나 모티브를 얻기 위해 아모레퍼시픽 박물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 등을 방문해 소장품을 확인하고 관련 장인들을 만나 조언을 듣는다.

서로 다른 감각적 자극들은 하나의 일관적인 의미로 통일될 때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정확히 전달될 수 있다. 소비자는 제품, 매장, 서비스 공간에서 수없이 많은 감각 자극에 노출된다. 그중 하나의 감각 자극이 브랜드가 목표로 하는 감각 경험을 성공적으로 불러오더라도 다른 감각 자극들이 소비자의 마음속에 상반된 심리적 경험을 불러일으킨다면 감각디자인은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예컨대 시각적으로는 ‘여성적’인데 후각적으로는 ‘남성적’인 느낌을 준다면 소비자 입장에서 제품이나 브랜드 특성에 대해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또 제품 특성과 제품 매장이 제공하는 감각자극, 예컨대 매장 음악이나 실내 향이 맞지 않는 경우에도 감각 경험 디자인의 효과는 반감된다.

허정원 센터장은 “트렌드와 경쟁 환경의 변화에 따라 때로는 화려하게, 때로는 심플하게 디자인 변경에 대한 요구가 있을 수 있지만 브랜드가 지속적으로 추구해 온 가치를 담아내면서 시대에 맞는 고유의 디자인을 창출해 내가는 것이 디자인의 사명”이라며 “시대 변화를 담아내기 위해 개별 디자인을 새롭게 바꾸기 위해 노력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도가 오랫동안 지켜왔던 가치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브랜드 관점에서 끊임없이 자문한다”고 말했다. 

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