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제주 중소기업 리더스 포럼에서 중소기업들은 “원자재 가격 상승과 환율 상승으로 인해 중소기업들이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있다. 정부의 환율시장 개입으로 고환율을 유지한 것은 수출을 하는 대기업에는 유리하겠지만, 원자재를 들여와야 하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생존의 위기에 처하도록 만든다”고 주장했다. 시장주의 시장을 숭배하는 이명박 정부에서 인위적 환율시장 개입이 초래한 결과다.’(동아일보, 2008.7.14 보도).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원칙에 반대할 국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 기사를 보면 최근 원자재 및 유가 상승 등 대외 경제 여건이 악화되면서 환율 개입을 통한 정부의 경제 살리기 노력이 대기업만을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기업친화정책이 대기업만을 위한 게 아니라고 하겠지만, 많은 중소기업은 여전히 ‘친기업정책=시장주의=대기업 친화정책’이라는 공식을 믿고 있다.
대기업이 더욱 성장 발전하면서 국내 투자를 늘리면 경제 살리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경제에서 대기업의 성격과 역할은 1970∼1990년대 산업화 시기와 비교할 때 많이 변했다. 산업화 시기에 대기업들은 ‘사업보국’을 내세우는 국내기업이었지만, 오늘날의 몇몇 대기업은 인류사회 공헌을 경영이념으로 내세우면서 전 지구적 관점에서 투자처를 선정하는 초국적 글로벌 기업으로 진화했다.
이런 대기업의 성격 변화는 ‘고용 없는 성장 현상’이나 ‘수출과 내수 격차 심화현상’과도 관계가 있다. 이제 대기업이 수출을 많이 해도 내수를 진작시키는 효과가 이전보다 크게 작아졌다. 이는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정보·전자기술과 같은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수출 대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하청 또는 협력업체의 상당수를 외국 중소업체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제 살리기를 위한 기업친화정책은 대기업을 위한 정책뿐 아니라 중소기업 친화정책과 대기업-중소기업 간 상생 협력적 거래관계 형성을 촉진하는 정책을 포함해야 한다. 대기업 친화정책은 정부가 이미 잘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논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대신 필자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경제 살리기에 기여할 만한 몇 가지 방향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세계 1등 중소기업 10만개를 양성하자
모 대기업 총수가 공정거래위원장에게 “우리나라 대기업에 대해 신경 쓰기보다 세계 1등 부품 중소기업을 만드는 데 관심을 가져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상당수 중소기업들이 세계적인 중소기업과 경쟁하기에 아직 부족한 수준임을 시사한다.
수출 증대가 내수 진작으로 연결되려면 대기업에 최고 부품을 공급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중소기업을 많이 양성해야 한다. ‘몇 만 개 일자리 창출’보다 ‘세계 1등 제품 보유 중소기업 10만 개사 양성‘(10만 개는 상징적인 수치다)이 경제 살리기의 목표로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일자리 몇 개 만들기를 목표로 하면 창업 활성화와 기업 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낸다는 기본 취지를 잊은 채 다급하게 채용을 강제로 할당하는 식의 목표 전도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최근 일자리 창출 목표 달성을 위해 중소기업에 1인 추가 고용에 대한 세제 지원책을 폈는데, 이는 기업에 또 다른 부담을 주는 인위적인 행정 규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이 일본과의 교역에서 많은 적자를 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일본 중소기업으로부터 많은 부품을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모방전략만으로 세계적 선두기업들을 추월할 수 없다는 것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세계의 중소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실력을 키울 수 있을까. 중소기업의 생존과 성장 발전 과정에서 핵심 영역인 기술력-영업력-관리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은 물론 단기적으로는 수입대체 전략형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한국 중소기업들에 기술 이전 협력 사업을 하는 외국 기업에 정부가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 우리 현실에 맞는 중소기업 육성 방안이다. 동시에 중장기적으로는 첨단 신기술 개발과 상업화에 도전하는 벤처기업들이 활발하게 탄생·성장할 수 있는 벤처생태계를 조성해야 하며,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세계적인 중소기업들과 기술적·경영관리적 측면에서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이춘우
- (현) 서울시립대 교수
- 한국중소기업학회 상임이사 및 이사
- 중소기업연구 편집위원
- 대통령 직속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중소기업 정책평가위원
- (사) 벤처기업협회 자문교수
- 서울시립대 공무원교육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