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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LG전자 ‘그램’ 노트북

가벼운 혁신이 전부가 아니었네 고객 가치 받든 ‘그램’의 묵직함

권기환,이미영 | 228호 (2017년 7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철수냐, 잔류냐’ 뒷말만 무성했던 LG전자 PC사업. 2010년부터 노트북 PC를 포함한 PC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위기에 빠졌지만 2014년 내놓은 ‘그램’ 시리즈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매해 혁신을 거듭하는 ‘그램 시리즈’는 경쟁사들보다 더 가볍고, 더 오래 휴대할 수 있는 노트북의 대명사로 거듭났다. 핵심 성공요인은 다음과 같다.

1. 시장의 속성, 잠재성 등을 파악해 ‘레드오션’인 노트북 시장에서 휴대성을 강화한 초경량 노트북으로 새로운 기회를 포착했다.
2. 전사적 협업, 조직의 민첩한 대응으로 신제품 출시 주기를 단축해 제품 개발의 선순환을 이뤄냈다.
3. 1년마다 업그레이드된 제품을 출시하면서 경쟁사들과의 차별화를 공고히 했다.

“980g으로 무게를 줄이라고?”

2012년 말, LG전자 PC 개발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신제품 콘셉트가 980g짜리 노트북이라니. 연일 부진한 사업 때문에 가뜩이나 자신감이 떨어져 있던 개발자들은 980g은 불가능한 얘기라고 손사래를 쳤다. 일각에선 “노트북 성능이 아니라 무게에 집중하는 게 맞는 방향이냐”며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PC사업 수뇌부의 의지는 확고했다. 어려워진 노트북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무게를 줄이는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직원들도 일단 이 목표에 도전하기로 했다. 사업부가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선 마당에 못 해 볼 일은 없었다.

개발팀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회로, 배터리, 디스플레이, 키보드 등 부품별로 팀을 나눠 감량 목표를 정했다. 머리를 쥐어 짜내야 했다. 한 달 동안 가족 얼굴 한 번 못 보는 일도 다반사였다. 하지만 “내가 감량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옆 팀에서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구에 몰입했다. 그러는 사이 노트북의 무게는 점점 줄어들었다. 외관 재질은 플라스틱에서 마그네슘으로 바뀌었고, 베젤 폭을 최대한 좁히는 등 각고의 노력이 이어졌다.

2014년 1월. 드디어 ‘LG전자 울트라PC 그램’ 13인치 노트북이 출시됐다.

“이게 될까?”

출시하고서도 반신반의했다. 무게 ‘다이어트’에 올인해 휴대성을 높였지만 소니의 ‘바이오’, 애플의 ‘맥북’ 등이 장악하고 있던 시장을 되찾아올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LG전자 그램의 확장 속도는 예상보다 빨랐다. 커피숍, 학교 등지에서 흰색 노트북이 눈에 띄게 늘었다. 13인치, 980g짜리 그램 노트북은 여성들의 가방에도 부담 없이 들어갔다. 학생들은 노트북을 넣은 가방을 메고도 가뿐하게 교실로 달려갈 수 있었다.

최근 4년간 그램 시리즈는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매출 증가율이 매해 두 자릿수를 기록하며 젊은 층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매각설로 사업 존폐의 위기를 겪었던 LG전자 노트북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되찾은 비결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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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시장은 끝났다?”

2011년 말 글로벌 IT기업인 HP가 PC 사업을 매각하거나 분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비슷한 시기, 상대적으로 실적이 나쁘지 않았던 삼성전자도 PC사업부를 축소해 모바일 사업부에 편입시켰다. 스마트폰 사용이 보편화되고 태블릿PC가 등장한 마당에 노트북, 데스크톱 등을 포함한 PC 시장의 전망이 어둡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2010년 이후 삼성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리면서 PC시장을 등한시한 측면도 있다.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모바일 디바이스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델, HP, 레노버, 에이서, 애플 등 글로벌 PC 제조사들이 이미 선점한 시장에서 고군분투하기보다 모바일 디바이스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실제 삼성이 2012년 내놓은 아티브 시리즈는 태블릿에 비중을 뒀다. 아티브 스마트PC, 스마트PC 프로는 11인치 화면에 본체와 키보드를 탈부착할 수 있는 컨버터블 노트북 형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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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시장의 경쟁도 격화되고 있었다. 중국·대만을 거점으로 한 글로벌 노트북 회사들은 저가 경쟁을 본격화하면서 가성비가 높은 제품을 쏟아냈다. 프리미엄 노트북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애플이 2000년대 후반 메탈 소재의 슬림한 노트북을 출시한 데 이어 소니도 경쟁력을 인정받은 바이오 제품을 출시하는 등 치열한 경쟁이 이어졌다.



LG전자의 고민은 깊어졌다. 2012년, 2013년 출시된 울트라북 시리즈가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고 어렵게 국내 시장 2위를 지켜냈지만 경쟁사들과의 점유율 격차는 점점 벌어졌다. LG전자 PC사업부는 끊임없는 매각설에 시달렸다. 그렇다고 국내에서도 이미 주도권을 잃은 태블릿PC 시장에 승부를 걸기도 어려웠다.

노트북 시장에 대한 우울한 전망도 이어졌다. IT 업계에선 이미 2010년 이후 노트북 사양은 더 이상 개선할 수 없을 정도로 정점에 달했다는 판단이 지배적이었다. 데스크톱과 비슷한 성능과 저장장치를 갖췄기 때문에 성능만으로 차별화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LG전자는 ‘노트북 시장은 망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생산성 측면에서 노트북을 대체할 수 있는 디바이스가 앞으로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태블릿PC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고, 동영상을 찾아보고, 문서를 읽을 수는 있다. 하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작업을 하기엔 불편하다. 학생들은 집과 학교, 도서관을 오가며 과제를 작성해야 하고, 직장인들은 사무실뿐 아니라 어디서든 서류 작업을 해야 한다. 태블릿PC가 등장하고 대형 디스플레이가 장착된 스마트폰, 심지어 이들과 연동되는 휴대용 키보드까지 나왔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노트북으로 공부하고, 일한다.

김석호 LG전자 PC개발실 수석연구원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는 콘텐츠를 소비할 수는 있지만 생산하기가 어렵다. 노트북은 지금까지도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디바이스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기기들이 노트북을 대체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고 말했다.

판단은 적중했다. 5년 후인 2017년에도 태블릿PC는 노트북을 대체하지 못했다. 오히려 태블릿PC의 한계가 명확해졌다. 스마트폰은 노트북과 전혀 다른 용도로 쓰이며 다른 시장으로 갈라져 나갔다. 아직까지 어떤 개인용 스마트 기기도 노트북을 대체하지는 못했다. 태블릿PC 위주의 전략을 폈던 삼성 역시 2015년 PC독립사업팀을 만들어 LG전자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발상의 전환: ‘PC 중심’ 사고를 버려라

‘어떤 제품을 만들 것인가.’

노트북 시장을 적극 공략하기로 결정한 LG전자는 이 문제에 집중했다.

당시 노트북 시장의 최신 트렌드는 ‘초슬림 노트북’이었다. 인텔이 2011년 처음 제시한 초슬림 노트북 ‘울트라북’의 기준은 13.3인치 화면 기준 두께 18㎜ 이하에 배터리 수명이 5시간 이상이다. 2013년 6월 발표한 울트라북 기준은 13.3인치 이하 화면 20㎜, 14인치 이상 화면 23㎜다. 배터리 수명은 HD 비디오 재생 6시간, 윈도 유휴 상태서 9시간을 버텨야 했다. 터치스크린을 갖춰야 하며 음성인식도 가능해야 했다. ‘초슬림’을 지향하는 대부분의 기존 제품들이 이 기준을 목표로 삼았다. 경쟁업체들은 이 기준에 맞춰 노트북을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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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북은 이처럼 ‘얇기’와 ‘사용 시간’ 등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였지만 ‘무게’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LG전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힌트를 얻었다. 당시 대부분 노트북 업체들은 인텔이 제시한 ‘얇고 오래가는’ 울트라북의 조건에 집착했다. ‘더 가벼운 노트북’을 상상하지 않았다. 가격 경쟁에서 승리한 글로벌 노트북 업체들은 이미 확보한 시장을 유지하는 데 주력했다. 사양이 평준화된 상황에서 대부분 기업들은 얇기와 가격 등 기존 경쟁 구도에만 집착한 것이다. 하지만 시장 확대가 절실했던 LG전자의 입장은 달랐다. 기존 노트북 사용자를 LG전자로 끌어들일 수 있는 요인을 찾아야 했다. 무게는 빈곤 속에 찾아낸 혁신의 단서였다.

LG전자 조사 결과 상당수 소비자들은 울트라북이 여전히 무겁다고 답했다. 그들이 원하는 제품은 얇은 노트북이 아니라 가벼운 노트북이었다. LG전자는 현존하는 가장 가벼운 노트북으로 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로 했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차별화가 어렵다면 하드웨어로 차별화하면 된다는 발상의 전환을 한 것이다. 기존 시장의 질서에 맞춰 상품을 만들고 가격 경쟁을 하기보다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가 되기로 했다. 인텔의 기준은 잊었다. 터치스크린과 같이 사용자들에게 큰 쓸모가 없는 기능을 억지로 넣는 대신 무게를 더 가볍게 하는 데 전부를 걸었다.

조홍철 LG전자 마케팅부 과장은 “시장 조사를 해보면 여전히 노트북이 무겁다는 의견이 간접적으로 표출됐다”며 “소비자들이 가벼운 노트북을 선호한다는 당연한 사실에 초점을 두고 가장 가벼운 노트북을 만드는 것이 혁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때마침 LG전자의 조직개편이 이뤄진 것도 변화의 계기가 됐다. PC사업부가 2011년 IT사업부로 바뀌면서 HE(홈엔터테인먼트)사업본부로 편입된 것. 가전제품인 TV를 다루는 부서와 함께 묶이면서 발상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었다. 기존 LG전자 PC사업부는 전통적으로 PC 전문가를 수장에 앉혔다. 그러나 HE본부로 옮기면서 비전문 PC 인력과의 교류가 활발해졌다. 조직원들이 성능이 더 좋은 컴퓨터가 아닌 소비자들이 더 쓰기 편한 노트북을 만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킬로그램 시대에서 그램 시대로 가야 한다’는 목표가 구체화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하나의 타깃이 정해졌다. 980g이었다.

LG전자는 980g 자체가 혁신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그램의 최대치인 990g보다도 10g 더 혁신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이동한 LG전자 마케팅부 차장은 “990이란 숫자는 99%를 뜻한다”며 “우리는 1에 가까운 무게보다 더 가벼운 것을 제시하겠다는 포부를 980g에 담았다”고 말했다.



‘무게 다이어트’, 1g도 허투루 쓰지 말라

물론 ‘980g’을 현실화하는 것은 완전히 또 다른 문제였다. 1㎏의 벽을 깨는 것은 어느 한 부품의 무게를 확 줄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수백 가지 부품의 무게를 단 1g씩이라도 줄여야 목표 무게인 980g에 도달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부분부터 숨어 있는 부분까지, 가벼움을 향한 처절한 사투가 시작됐다.

1. 물리적으로 줄일 수 있는 것부터 줄여라

“회로 부분 목표 감량 ○○g, 배터리 XXg, 노트북 외관 △△g.”

저장장치, CPU 등 오로지 컴퓨터 성능만을 두고 싸워왔던 개발자들에게 떨어진 개발 과제다. 각자 맡은 부분을 조금씩 감량해 최종 목표 그램을 달성해야 했다. ‘티끌 모아 태산’ 전략이 실행됐다.

컴퓨터 배터리, 팬, 회로, 디스플레이 등 노트북의 부품들이 하나하나 분해돼 기구, 회로, 소프트웨어, 파워팀별 연구대상으로 주어졌다. 팀 구성원 모두에게 가장 먼저 지급된 도구는 ‘전자저울’이었다. 개발팀은 이 저울로 일일이 부품 무게를 재면서 최우선 목표를 상기했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필요 없는 무게를 감량하는 작업이 1차적으로 이뤄졌다. LG전자 그램의 내부를 뜯어보면 경쟁사들의 노트북의 부품 배치보다 복잡한 모양이 전개된다. 다양한 칩, 회로, 배터리가 가지런히 박스 형태로 배치된 일반 노트북과 비교된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회로 기판이다. 보통 회로 기판은 반듯한 네모 판으로 들어간다. 회로 기판 위에는 다양한 부품들과 선들이 서로 연결됐다. 이를 연결하는 작업을 ‘아트워크’라고 하는데 연결 패턴에 따라 회로 기판에 배열된 부품들의 형태가 결정된다.

그램의 회로 기판은 기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회로 기판에 들어가는 부품과 연결선들을 최대한 한쪽으로 몰아 연결해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쪽으로 몰아 생긴 회로기판의 여백에는 구멍이 뚫렸다. 회로기판에서 확보한 여백마다 뚫은 구멍으로 인해 무게가 줄어들었다.

가벼움을 위해 경쟁제품인 태블릿PC의 강점도 빌려왔다. 노트북 부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볍고 전력도 적게 쓰는 태블릿PC의 회로와 부품을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본체 안에 부품을 넣었다 뺐다 하며 성능을 테스트하는 작업이 한 달 반 동안이나 이뤄졌다. 0.1g도 아까웠던 개발팀은 컴퓨터에 붙일 로고 스티커까지 레이저로 각인했다.

다이어트의 두 번째 과제는 노트북 덩치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기술적인 요소가 더 많이 들어갔다. 노트북에서 가장 쓸모없는 공간으로 꼽히는 화면 주변 ‘베젤’ 폭을 최대한 얇게 만드는 작업이 진행됐다. 베젤폭을 줄일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디스플레이의 안정성이다. 디스플레이를 얇은 베젤로 잘 지탱을 해줘야 뒤틀림 현상이나 디스플레이 파손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트북 외장에는 가격이 비싸 좀처럼 사용되지 않던 마그네슘 소재를 적용했다. 당시 널리 쓰이던 알루미늄과 비교하면 무게가 3분의 2 수준 정도로 가벼웠다. 마그네슘 소재 연구는 그램의 크기와 함께 진화했다. 해마다 마그네슘에 새로운 물질을 넣어 더 가벼운 외관 소재를 개발했다. 카본 마그네슘, 희토류 마그네슘 등 새로운 소재로 더 얇고 가벼운 노트북을 만들 수 있었다. 그 줄어든 무게만큼 노트북 화면과 키보드의 크기를 늘렸다. 그램13에 그치지 않고 매해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던 이유다.



2. 밸류 업&다운 전략

2016년 선보인 그램15에는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새로운 부분이 눈에 띄었다. 모니터 상단 베젤에 위치한 웹캠이 사라진 것. 자세히 살펴봤더니 웹캠은 노트북 모니터와 키보드를 이어주는 힌지 중앙에 위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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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얼굴이 제대로 나올까?”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보통 얼굴을 보여주고 영상통화를 하는 용도로 쓰이는 게 웹켐이다. 그램15에 장착된 웹캠은 노트북의 상식으론 상상하기 힘든 곳에 놓여 있었다. 처음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당연히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기존 웹캠의 위치가 이미 ‘표준화’된 것과 다름이 없는 상황에서 위치를 바꾸는 것 자체가 소비자의 사용감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웹캠의 위치를 아래로 바꾸면 베젤 폭이 줄어들어 노트북 크기가 작아진다. 개발자들 사이의 논란은 제품 개발 마지막 단계까지도 이어졌다. 격론 끝에 LG전자는 웹캠의 위치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스마트폰의 영상통화 기능이 크게 발달하면서 컴퓨터의 웹캠 사용 빈도가 적다는 점을 들었다. 즉 15인치 컴퓨터의 무게를 대폭 낮춰 달성할 수 있는 소비자의 효용이 웹캠의 위치를 바꿔 느끼는 소비자의 불편함보다 더 크다고 본 셈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어려운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가치를 조정한 것이다.

그렇다고 무게를 줄이기 위해 소비자들에게 가장 큰 편의를 주는 요소들까지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소비자들에게 꼭 필요한 편의사양은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대표적인 게 USB 포트의 개수다. 울트라북에는 1∼2개만 있던 USB 포트가 그램에는 일반 노트북과 동일하게 3개를 장착했다. 울트라북 유저들이 가장 불편해하던 요소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3. 비용을 낮춰라

그램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LG전자는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신소재 및 디스플레이, 새로 개발된 배터리 등이 사용되면서 비용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애초부터 프리미엄 노트북을 지향해 어느 정도의 가격 상승은 예상했지만 비용 자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늘어났다.

LG전자가 선택한 방법은 크게 3가지다. 개발 과정에서 비용이 늘어날 경우 해당 팀이 그 비용을 상쇄할 수 있는 방법도 함께 모색하도록 했다. 사실상 무게 감량에 비용 절감의 과제도 포함됐던 것이다. 비용 문제를 함께 고려하자 실현 불가능한 기술 개발을 최대한 자제할 수 있었다. 제품 개발 주기가 빨랐던 LG전자에겐 비용을 함께 고려한 것은 오히려 제품 순환주기를 줄이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부품 공급업체들을 이원화해 부품 원가도 절감했다. 이전에는 특정 부품을 한 회사에서 납품받았다면 그 거래처를 2개 이상으로 늘렸다. 독점 체제에서 경쟁 체제로 바뀌면서 원가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그램 내부 부품을 ‘표준화’한 것도 도움이 됐다. 그램 시리즈는 개발된 시점이 각기 다르고 일부 부품은 무게를 가볍게 하면서 교체됐다. 하지만 컴퓨터 본체 내부 부품 대부분을 그램 시리즈에 공통적으로 적용했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발생하는 추가 비용을 줄였다.



4. 무게는 더 이상 고객의 가치가 아니다

고객 만족도에도 한계효용의 법칙이 작용하는 사례가 많다. 무조건 성능이 개선된다고 고객가치가 선형적으로 증가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자동차 최고 속도가 50㎞에서 100㎞로 높아졌을 때 고객만족도는 크게 올라간다. 하지만 250㎞에서 300㎞로 높아졌다고 해서 운전자의 만족도가 같은 비율로 높아지지는 않는다.

노트북 무게도 마찬가지다. 980g보다 더 가볍게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투자되지만 소비자의 만족도가 생각보다 크게 높아지지 않을 수 있다. 그램15 성공 이후 LG전자는 노트북 무게만으로 고객가치를 크게 높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LG전자는 신제품을 위한 새로운 혁신 포인트를 고민했다. 마케팅부와 개발팀, 상품기획팀 등 유관 부서 인력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여 신제품 콘셉트를 잡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들은 노트북 본체가 아닌 노트북을 구성하는 보조 액세서리인 어댑터에 주목했다. 소비자들이 노트북뿐만 아니라 어댑터의 무게에도 부담을 느낀다는 점에 착안했다. 만약 어댑터 없이 하루 종일 쓸 수 있다면? 노트북 가방 안의 부피와 무게를 동시에 줄일 수 있고 귀해진 커피숍 콘센트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일도 없어진다. 이 정도면 소비자의 효용을 좀 더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오래가는 배터리는 크기가 더 크기 마련이다. 같은 크기를 유지하면서 더 오래가는 배터리가 필요했다. LG화학과 손을 잡고 개발한 탄소나노튜브 배터리가 15인치 ‘그램 올데이’에 들어갔다. 그램 올데이의 배터리 사용시간은 24시간으로 기존 그램 시리즈보다 11시간 넘게 늘어났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든 새로운 혁신

LG전자는 제품 개발 과정에서 새로운 인력을 보강하거나 외부 기술을 사오는 데 투자하지 않았다. 대신 기존 조직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여의도 본사, 평택 연구소, 평택 생산기술연구원 등 각지에 흩어진 PC사업부 조직이 한데 모였다. 그램 개발 초기 과정 내내 LG전자의 PC 담당자들이 모두 한 사무실에서 생활했다. 마케팅, 구매, 개발, 상품기획, 생산기술팀이 모인 태스크포스(TF)가 만들어진 것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이니 980g 노트북을 실현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다양하게 쏟아졌다. 서로의 영역에서만 고민하던 디자인팀, 개발팀 등이 한데 모여 의견을 나누면서 모두가 노트북이라는 디바이스를 더 유기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끊임없는 소통 속에 무게를 혁신적으로 줄일 해법이 나왔다.

LG전자 핵심 계열사가 총출동한 전사적 협업 체제도 한몫했다. 디스플레이, 외관 재질, 배터리 등 모든 부분에 계열사의 손길이 닿았다. 얇은 베젤에도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는 디스플레이는 LG디스플레이가 책임지고 공급했다. 탄소나노튜브 배터리는 배터리에 강한 LG화학의 손을 거쳤다. LG생산기술원은 항공기에 쓰이는 신소재를 그램에 적용했다. 계열사 간 수평적 협업이 그램 개발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킨 셈이다. 김석호 수석연구원은 “LG 계열사 간 기술교류회가 정기적으로 이뤄지는데 이때 서로의 고충을 공유하고 신제품 개발에 대한 이해도도 높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PC사업부가 새로운 상황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도 큰 도움이 됐다. 2007년 PC사업부가 큰 위기를 겪은 이후 사업본부를 전전했던 뼈아픈 과거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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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까지 디지털미디어사업본부 소속이었던 PC사업부는 2008년부터 2년간 스마트폰이 주력인 모바일커뮤니케이션사업본부로 옮겨갔다. 이도 잠시, 2010년에는 구본준 대표 직속기관인 독립 사업부로 편입됐다. 1년 후인 2011년 HE사업본부로 들어가 모니터사업부와 함께 IT사업부로 통합됐다.

10년이 흐른 지금, PC사업부 직원들은 여러 본부를 두루 거치면서 신속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길렀다. 다양한 조직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민첩 DNA’를 길렀다는 얘기다. LG전자 관계자는 “그램을 처음 개발할 당시 직원들이 자신감을 많이 잃은 상태였지만 다양한 변화에 적응하고 그것을 성공시키면서 큰 자신감을 얻었다”며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서 어려운 과제를 해낼 수 있는 역량이 함께 생겨났다”고 말했다.

제품이 시장에 출시된 이후에도 일사불란하면서도 유연한 움직임을 이어갔다. 고객의 반응을 신속하게 감지하고 해결했다. LG전자 그램 첫 출시 직후 디스플레이에 세로줄이 생긴다는 불만 사항이 접수됐다. 설상가상으로 인터넷 블로그를 중심으로 인터넷 통신에 장애가 있다는 소비자 평가가 삽시간에 퍼졌다. LG전자 마케팅부는 이런 평가글이 올라온 즉시 감지했다. 이들은 지체하지 않고 개발실장과 마케팅 팀장에게 보고했고, 개발실은 곧바로 원인 분석에 들어갔다. 2015년 1월11일, 그램이 출시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며칠 뒤 개발실은 이 원인이 인텔 양산 드라이브 업데이트 문제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인텔과 곧바로 협의한 후 1월24일 신제품 기자 발표회를 사흘 앞두고 문제를 해결했다.

이동한 차장은 “처음에는 마케팅부 직원이 개발실장에게 직접 보고하고 연락하는 것에 대해 어색하다는 생각을 한 사람도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문제 해결 기간이 크게 단축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제는 모두가 신속 대응 원칙을 지켜가고 있다”고 말했다. 조홍철 과장은 “일요일 매장에서 노트북 정품 인증이 안 된다는 보고를 받고 즉시 담당 팀장과 개발실장에게 보고했다”며 “문제가 발생한 지 1시간 만에 모든 문제를 정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객의 불만을 혁신의 ‘힌트’로 활용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올데이 그램 개발 전 LG전자 내부에서도 배터리 사용시간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첫 번째는 지금과 같이 배터리를 업그레이드해 절대 사용시간을 늘리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휴대폰 충전기를 통해 사용시간을 늘리는 것이었다. 개발 효율성과 소비자의 효용성을 저울질하면서 가장 최적화된 결론을 물색했다. 해법은 고객에게서 찾았다. 무게가 조금 더 늘더라도 배터리 사용시간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소비자 니즈를 토대로 배터리 업그레이드를 추진했다.



혁신 이후에도 멈추지 않는다

그램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혁신이었다. 그러나 LG전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매해 새로운 제품을 출시해 경쟁사들을 따돌렸다.

보통 신제품 개발은 시장을 분석하고, 제품을 기획하고, 디자인을 거쳐 개발 및 생산에 들어간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몇 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램은 달랐다. 신제품에 들어가야 할 새로운 기능이나 콘셉트를 단시간에 정하고 곧바로 개발에 들어갔다. 김석호 수석 연구원은 “신제품이 출시되면 2달 안에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펴본 후 곧바로 각 팀들과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며 “이때 다음 해에 내놓을 신제품의 방향성이 대부분 결정된다”고 말했다.



혁신의 기간이 짧다고 해서 혁신의 결과까지 ‘단명’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짧은 기간 동안 되풀이한 혁신과정을 통해 혁신의 완성도가 올라갈 수 있다. 그램의 혁신 과정이 그렇다. 2014년 개발된 그램13의 노하우는 그램14에, 그램14에 적용된 노하우와 시행착오는 고스란히 그램15에 적용됐다. 그러면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사용감을 높이고 가벼운 무게 때문에 지적받았던 내구성도 계속 높여나갔다. 가볍지만 튼튼하고, 얇지만 성능이 떨어지지 않는 노트북을 만드는 과정이 4년간 반복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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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에 대한 소비자들의 니즈가 확인되자 경쟁사들도 가벼운 노트북을 출시했다. 하지만 경쟁사 제품은 노트북 무게에만 집중해 성능이나 견고함 측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게 LG 측의 분석이다. 휴대폰 충전기로 노트북 배터리 충전이 가능한 경쟁사 제품도 출시됐으나 24시간 사용 가능한 배터리를 장착해 충전기 자체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게 만든 LG의 그램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더 높다는 판단이다.

그램의 인기로 인해 노트북의 무게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치가 크게 높아졌다. 실제 한 외국 유명 브랜드의 노트북 신제품이 출시됐는데 제품의 무게가 2㎏이 넘는 것으로 나타나자 시장에서는 ‘혁신이 부족하다’는 불평이 나왔을 정도다.

이동한 차장은 “우리가 그램을 개발할 때 어떤 제품이나 회사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며 “전혀 새로운 차원의 제품을 내놓는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시장에서 넘어올 수 없는 선 긋기를 실현했다고 자부한다”고 평가했다.



성공 요인 및 과제

1. 핵심 고객가치 재탐색

LG전자 그램은 전형적인 성숙기 제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객이 기대하는 본질적인 가치 요소에 명운을 걸었던 제품이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알려진 제품의 성숙기 시장 대응 방식을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것이다. LG전자 그램은 적당히 가벼운 것이 아니라 완전히 가벼운 노트북 PC로 거듭나 무게로 짓눌린 고객의 삶을 가볍게 변화시켰다.

일반적으로 전통 제품의 경우 시장이 성숙기로 접어들면 기업들은 적정 수준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제품으로서 갖춰야 할 특성과 생존에 필요한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는 데 주력한다. 고객들도 해당 제품의 핵심적인 특징과 기업의 경쟁적 활동에 관해 자세히 알게 되고 그것을 기대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 산업 규범(industry norms)이 받아들여지고 널리 공유된다.1 산업 규범의 진화 경로 역시 기존 경쟁 기업들 사이에서는 유사한 양상을 보이게 된다. 예를 들어, Tn세대 노트북 PC는 120만 원대의 가격에 I社의 α타입 CPU 칩과 S社의 β타입 메모리를 기본 사양으로 하며, 이어지는 Tn+1세대 노트북 PC는 130만 원대 가격에 A社의 χ타입 CPU 칩과 K社의 λ타입 메모리를 기본 사양으로 한다는 것이다.

산업 규범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 해당 산업 내에서 기업들 간의 경쟁은 시장점유율 확보와 이를 통한 비용 절감을 위한 치열한 소모전 양상을 보인다. 경쟁 기업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출시시기를 앞뒤로 움직이거나 구매 고객에게 주는 사은품을 추가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경쟁이 심화하면 가격 인하폭을 일시적으로 좀 더 크게 하고, 특정 경로에 집중해 1+1 행사를 진행하거나, 홈쇼핑 채널을 공략하거나 하는 행위를 반복한다.

하지만 해당 제품에 대해 고객이 기대하는 본질적인 가치 요소가 무엇인지와 관련해서는 대부분의 경쟁 기업들이 그다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2 지극히 안정화된 시장에서 무리하게 완전히 새로운 콘셉트의 제품을 출시해봤자 별 볼 일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가장 중요한 고객 가치 요소를 등한시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15인치 노트북 PC의 적당한 무게라고 알려진 1.5㎏ 내외를 달성했으니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할 뿐 상당한 비용의 증가 없이 15인치 노트북 PC의 무게를 최소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집중하지 않게 된다. 노트북 PC가 들어간 무거운 백팩을 메고 지하철에서 홀로 싸우고 있는 고객의 삶은 잊혀 버린 것이다.



2. 고객 자산화

그램은 후발주자로서 좀 더 빈틈없는 제품을 선보여 구매 고객을 만족시키는 데 집중하던 과거와는 달리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불평 관리를 통해 고객을 자산화시킴으로써 혁신과 성장의 원천으로 삼았다.

일반적으로 고객은 시장 기반 자산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로 알려져 있다.3 기업들은 거래에 초점을 맞춘 고객 기반 분석을 통해 고객의 미래 구매 가능성이나 이탈 가능성을 예측한다. 최근 들어서는 고객 만족이나 서비스 품질 등 비거래 요소들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기도 하다.

그램은 복합적인 고객 조사에 더해 기업-고객 관계의 핵심적인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고객 불평(customer complaints), 즉 고객의 불만 제기에 전략적으로 대응했다.4 무엇보다도, 그램은 신제품 출시 직후 제기됐던 전문성 높은 고객들의 불평에 인텔과의 협력을 통해 즉각적으로 해결책을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그램은 PC사업부의 여러 조직에 더해 LG디스플레이와 LG화학을 아우르는 계열사 간 협력을 통해 전사적으로 관심과 노력을 집중시킴으로써 고객 불평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램은 고객이 가장 중시하는 정보를 고객의 입을 통해 바로 들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고 덕후 성향을 보이는 고객군을 결집시킬 수 있었다. 나아가 그램은 노트북 PC 산업의 미래 변화 흐름에 더욱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그램은 고객 불평에 효과적으로 대응함으로써 기업-고객 간 관계를 더욱 굳건하게 회복시켰을 뿐만 아니라 시장 선도자로서의 위상을 축적할 수 있었다.

기업은 예상되는 불만족 요소의 원천적인 제거를 중시한다. 하지만 시장 변화 속도의 증가,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확산, 경쟁 제품의 조기 출시, 고객 욕구의 급작스러운 변화, 그리고 조직 내부의 부족한 자원 투입 등으로 불평 없는 제품을 선보이는 데 더욱 큰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이 점에서 고객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그램의 집요한 고객 불평 관리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3. 자원 조직화

사업부에 배분된 자금과 인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던 기존 방식과는 달리 자원과 역량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직화해 그램은 신제품 개발 및 연계 출시와 고객 불평 해소를 유기적이고 신속하게 추진해 나갈 수 있었다.

특허, 브랜드, 유통망 등 기업이 보유한 전략적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자원준거이론 (resource-based theory)에서는 원천적으로 내재 가치가 높고, 대체하기 어려우며, 경쟁 기업이 모방하기 쉽지 않은 자원과 역량을 달성해 기업이 높은 수준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러한 전통적인 주장과 달리 최근 들어서는 자원 조직화(resource orchestration)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자원 조직화란 획득, 축적, 폐기를 통한 자원 구조화(structuring), 개선, 확장, 개척을 통한 자원 결합화(bundling), 그리고 동원, 조정, 적용을 통한 자원 효력화(leveraging)를 포함하는 개념이다.5 자원 조직화 논의에 따르면 기업이 지속 가능한 경쟁우위를 창출하기 위해서 자원의 단순 보유를 넘어 효과적인 자원 관리를 통해 가치 창출을 극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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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보유 자원과 역량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그램은 완전히 가벼운 노트북 PC를 통해 고객에게 보다 나은 삶을 제공하겠다는 승리 열망을 달성하기 위해 부서 내 구성원들의 노력을 집중시켰다. 또한 여타 부서의 관심과 지원을 결합시켜 소재 경량화를 꾸준히 추진했고, 다른 계열사의 기술을 효과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초경량 노트북을 통해 고객을 위한 가치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시장을 새롭게 창조하기 위해서는 배분된 자원과 역량의 효율적 활용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연결과 협력을 바탕으로 자원과 역량을 새롭게 조직화할 수 있어야 한다.6 그램은 고객의 속마음을 올바르게 읽어낼 수 있도록, 여러 부서의 사람과 기술이 다각도로 결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들이 합치성 높게 전개될 수 있도록, 그리고 기존 시장을 근원적으로 변혁시킬 수 있도록 자원 조직화를 달성했다.

저성장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 제품 수준 향상에 따른 노트북 교체시기 연장, 연구개발 투자 지속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그램의 자원 조직화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기한다.

4. LG 그램의 다음 전략은?

그램은 국내 시장을 중심으로 성공을 거뒀다. 베스트샵, 대형 할인마트 등 국내에 잘 짜인 유통망, 신속한 AS 등을 바탕으로 시장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PC사업을 국내만으로 한정한다면 향후 성장을 보장하기 어렵다. 제품의 혁신이 시장 확대, 그리고 가격 경쟁력으로 이어지면서 선순환을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램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내 시장에서 제품의 성공이 반드시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LG전자 노트북은 여전히 글로벌 경쟁사들과의 가격경쟁력에서 밀리고 있고, 제품에 대한 신뢰도나 영향력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제품 혁신을 통한 차별화도 중요하지만 이 시장을 어떻게 유지하고 확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영 기자 mylee03@donga.com 권기환 상명대 경영대학원 교수 kkh1212@gmail.com

권기환 상명대학교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서울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창의성학회 부회장, 한국창업학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고 기업 변신, 비즈니스 혁신, 벤처 창업 등이 주요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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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진출? 유통망 뚫는 것이 과제

LG전자의 노트북 사업은 국내 시장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HP, 델, 레노버 등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기업들이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그램이 한국 소비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이들의 입맛에 딱 맞는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이유다.

그램의 경우 세계 초경량 노트북, 가장 오래 쓸 수 있는 노트북으로 인정받으며 다양한 혁신상을 휩쓸었다. 울트라슬림 노트북 시장에서 어느 정도 승산이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IDC 조사에 따르면 경량노트북 시장이 2011년 2% 수준에서 2016년 31% 수준까지 증가했다. 2020년 경량노트북 비중은 53%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LG전자를 비롯한 한국 PC사업의 해외 진출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 가격 경쟁력은 물론 제품 유통망, 제품 서비스 관리 등의 측면에서 고려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조홍철 과장도 “해외 진출은 필요한 작업이지만 매우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제품 가격이다. 한 글로벌 회사가 연간 판매하는 노트북은 약 5500만 대다. 국내에서 전체 PC시장이 450만 대선으로 그 규모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국내 노트북 제조사가 가격으로 경쟁력을 가지기는 어렵다.

제품 자체의 경쟁력으로 수요를 확보했더라도 해외 진출을 선뜻 결정하긴 어렵다. 유통망을 뚫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권상준 IDC 수석연구원은 “국내의 경우 오픈마켓을 활용한 판매가 잘 이뤄지지만 미국만 해도 오프라인 유통망인 베스트바이에 진입을 해야 소비자와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유통망에 들어가도 판매 직원 고용, AS 해결 등 확보해야 하는 직원과 비용이 만만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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