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결정 다시보기
Article at a Glance
2000년 P&G는 가정용 미백상품 ‘크레스트 화이트스트립스(Crest Whitestrips)’라는 상품을 내놓고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하지만 곧 경쟁자 콜게이트도 ‘심플리 화이트’를 내놓고 맞불을 놓았다. 콜게이트 제품의 실질적인 효능은 크레스트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P&G는 해당 제품의 허위광고를 문제 삼기보단 다른 전략을 선택했다. 가격을 낮추고 상품의 라인업을 확대하되 콜게이트와 공생(共生)해 시장의 파이를 키우려 한 것이다. P&G는 단순히 콜게이트와의 경쟁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치아미백 시장의 존립에 초점을 맞췄다 |
편집자주
지금은 분명해 보이는 것도 시간을 되돌려 고민하던 때로 돌아가면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시간 차이’가 주는 묘미입니다. 흥미로운 기업 사례들을 선정해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의사결정을 되짚어봤습니다. 전략적 선택의 순간에 놓였던 기업들의 과거 결정과 현재의 결과를 대비해 시간 차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시행착오와 배울 점을 분석했습니다. 연재하는 사례들이 전략적 의사결정 연습을 위한 충실한 해설서 역할을 하기를 바랍니다. 이 원고는 저서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미래의창, 2014)>의 내용을 바탕으로 최근 현황이 덧붙여져 작성됐습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하지만 누구나 처음이 될 수는 없다. 최초라는 타이틀은 모두에게 허락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에 도전하거나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구현했을 때 ‘오리진(origin)’이라 불릴 자격을 얻는다. 오리진은 최초라는 타이틀 덕분에 선망의 대상이 되며 개척의 대가로 선발자의 이익(first mover advantage)을 누린다. 폼도 나고 혜택도 있지만 오리진은 단 한 자리뿐이다. 대부분은 그를 모방해 ‘미투(me-too)’ 제품 또는 서비스를 출시하는 카피캣(copycat)이 될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 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유사한 서비스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긴다. 같은 분야의 서비스라고 해도 차별적 경쟁력을 갖고 시장을 키워 나가면 문제가 없을 텐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선의의 경쟁을 하기보다 비방을 일삼고 법정 싸움을 하며 경쟁사의 발목을 잡으려 한다. 대표적 사례가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과 ‘요기요’의 분쟁이다. 2014년 배달의민족은 자사 이용료가 경쟁사의 절반이고, 월간 주문 수나 거래액이 1위라고 광고했다. 이에 대해 요기요는 허위 과장 광고라며 배달의민족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허위 과장 광고에 대한 신고로 요기요는 일시적으로 자사의 억울함을 달래거나 배달의민족을 깎아내릴 수는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창 성장하고 있는 배달 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양산시킨다는 부작용을 고려한다면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렇다고 경쟁사의 허위 과장 광고를 넋 놓고 바라만 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는 없을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치아 미백 시장에서 벌어진 P&G(Procter & Gamble)와 콜게이트(Colgate)의 경쟁을 들여다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P&G가 포문을 연 치아 미백 시장에 콜게이트가 진입했고, 콜게이트가 허위 광고를 하며 시장점유율을 뺏어갔다. 허위 광고 사실을 신고해 콜게이트를 공격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P&G는 고차원적으로 고민하며 콜게이트와 경쟁에 나섰다.
약점을 대하는 자세
2000년 8월 뉴 밀레니엄을 맞아 P&G에서는 크레스트 화이트스트립스(Crest Whitestrips)라는 획기적인 상품을 내놓았다. 집에서 사용하는 치아 미백 상품으로 치아에 젤을 바르고 그 위에 스트립을 30분 정도 붙여두면 기존 치약보다 약 10배 이상의 화이트닝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가격도 40달러(약 4만4000원)로 100달러(11만 원) 수준인 치과 진료보다 저렴했다. 크레스트 화이트스트립스는 출시 직후 소비자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고 2001년 3억1000만 달러(3400억 원), 2002년 4억6000만 달러(51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치아 미백 시장점유율 80%를 차지했다.
하지만 경쟁사가 돈이 되는 시장을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크레스트 화이트스트립스 출시 2년 후 오랄케어 부문의 경쟁사 콜게이트가 치약처럼 치아에 바르기만 하면 되고 가격도 15달러(1만7000원)인 ‘심플리 화이트(Simply White)’를 출시하면서 상황이 급속도로 바뀐다. 편리함과 낮은 가격을 내세운 심플리 화이트에 기존 시장의 절반 이상을 뺏겨 두 달 만에 점유율이 37%로 하락한 것이다.
반격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P&G는 심플리 화이트의 효능 검증에 나섰다. 그 결과 P&G 자사 제품이 콜게이트 제품에 비해 성능 면에서 5배 정도 우수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심플리 화이트는 미백 물질이 몇 분 안에 침으로 거의 씻겨 나가 치아에 직접 접촉되는 시간이 짧았던 것이다. 문제는 제품 효능에 차이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콜게이트가 양사 제품의 효능이 같다고 광고를 하고 소비자들 역시 효능 차이를 감지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효능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장 광고 또는 허위 광고를 하며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장점유율을 빼앗겼던 P&G에 만회할 기회가 온 셈. P&G는 이 기회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NAD(National Advertising Division, 허위/과장 광고를 규제하는 광고국)에 콜게이트를 허위 광고로 신고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까.
이에는 이, 경쟁의 기초
2002년 11월 P&G는 크레스트 화이트스트립스의 가격을 15달러(1만7000원)로 인하했다. 또한 비교 광고를 통해 콜게이트의 심플리 화이트를 풍자하며 직접적으로 공격했다. 이에는 이. 피하거나, 도망가거나 남을 이용하지 않고 맞불 작전을 통해 반격의 물꼬를 텄다.
P&G의 가격 인하는 전형적인 스키밍(skimming·초기 고가격) 전략의 일환이다. 스키밍 전략이란 제품이 혁신적이고 제품의 편익이 현저히 높은 경우 가격에 민감하지 않은 소비자층(Innovator)을 대상으로 초기에 고가에 판매해 투자비용을 회수하는 전략이다. 이후 일반 소비자층을 겨냥해 점차 가격을 인하하며 시장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크레스트 화이트스트립스는 이미 2년간 80%가 넘는 시장점유율로 초기 비용을 회수했기 때문에 손해를 보지 않는 범위라면 얼마든지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상황이었다. 2년간 단 한 차례도 가격을 낮추지 않았던 크레스트 화이트스트립스는 본격적인 경쟁 상황이 벌어지자 비로소 가격 인하라는 카드를 꺼내들며 콜게이트를 압박했다.
또한 비교 광고를 통해 차별점을 부각시켰다. 콜게이트가 광고를 통해 크레스트와 같은 종류의 제품을 더 저렴하게 판다는 것을 강조했다면 크레스트는 비교 광고를 통해 콜게이트와는 다른 제품임을 소비자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초기 시장 형성 단계에서는 경쟁자가 하나 더 진입함에 따라 시장점유율이 한순간에 뒤바뀌는 등 시장 상황이 유동적이므로 비교 광고를 통한 직접적인 공격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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