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화와 문화

모든 현지화는 거대한 ‘번역작업’ 타깃 국가에 알맞은 시장문법을 찾아라

178호 (2015년 6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경영전략

 

 거시역사적 관점에서세계화현지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지난 300년간 연구돼 온 주제이자 경제·문화전략의 하나였다. 21세기 들어서면서 국경이 무너지자 기존의국경중심의 분석으로는 전략을 짜기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등장한 방법이묘사언어학적 분석에 바탕을 둔 현지화 전략이다. ‘현지화 전략을 짜는 지금 시대의 기업인들은 단지 외국어를 잘 구사하고 잘 쓰는 것 이상의 실력을 가진 이들과 함께해야 한다. 영문법, 서구언어구조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타깃 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고 패턴과 행태를 분석하고 전략을 짜야 한다는 얘기다.

 

 

1. 들어가며

Globalization이 필연적으로 만들어내는 Localization

바야흐로 진짜 글로벌 시대다. 중국 관광객 수요에 의존하는 서울 북촌의 소형 수공예 가게를 운영하는 소상공인도글로벌정신이 필요하다. 물론 16, 17세기 대항해 시대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배들이 태평양에 진출하기 시작한 이후로 세계 경제는 지구촌을 하나로 묶는 거대한 글로벌 시스템이 됐다. 역사학자인 프랜시스 테일러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의 인도네시아 원주민들도 가장 큰 고객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의 요구에 맞춰 자신들의 주 식량원인 사고야자 대신 그 땅에 유럽 소비자들이 수입을 원하는 커피를 심는 등 국제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 상품을 생산해 왔다고 한다. 18세기의 영국 동인도 회사가 중국의 광저우 만에 도착한 이후로 중국 내륙의 징더젠 불가마에서 생산된 도자기 역시 유럽 고객 취향에 맞춰 르네상스식 원근법과 유럽 클래식 예술의 특징인 대칭성을 장식 그림에 사용했다.

 

세계화 혹은 지구촌화(globalization)소비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그들의 취향과 기호에 맞는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낸다. 따라서소비자를 중심으로 한 제품과 서비스의 생산은 그 자체로현지화이면서 동시에세계화. 수많은 의미를 갖고 있는 ‘glocalization’, 이른바세방화의 한 양태다.

 

 

일단 globalization localization의 조어인 glocalization부터 확실히 이해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Globalization(세계화)은 교통, 통신 매체가 점점 발달해 국가 간의 소통이 활발해지면서 세계의 모든 나라들의 문화가 유사해지는 것을 말한다. 1990년대까지 많은 지성인들은 globalization이 완성되면 전 세계인이 같은 문화를 향유하고, 같은 경제 시스템(영미식 자본주의)과 정치 시스템(의회 민주주의), 생활방식(서구식 핵가족)을 공유할 것이라 전망했다. 그리고 전 세계가 함께 새로운범인류문화권을 형성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토마스 프리드먼은 이것을평평한 세계(Flat World)’라 불렀다.

 

그런데 globalization이 진행되고 나니 모든 나라의 문화가 똑같아지지 않았다. 전 세계 사람들이 글로벌 트렌드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원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일부는 거부하고 다른 것은 재 해석해서 그 지역만의 새로운, 특이한 소비 문화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서 한국에 힙합과 팝이 들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의 콘택스트를 통해 재해석해 K-Pop을 만들어 낸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globalization의 영향에 저항하고 적응하며 새롭게 만들어진 문화나 상품을 localization이라고 한다. 이 글에서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localization, 현지화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또 다른 역사 속 스토리를 하나 살펴보자.

 

일본의 가키에몬 도자기는 localization 성공의 초기 사례다. 일본의 도공 사카이다 가키에몬은 아시아 전통 도자기에 유럽인들이 선호하던 에나멜 디자인을 입혀 17세기부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에 납품하고, 작센왕국의 왕 오거스트(August der Stark)와 영국의 매리2세의 왕가에도 수출했다. 1800년대 유럽 기업들은 가키에몬의 도자기를 더욱더 세분화해서 유럽 로컬 시장에 적합한 도자기 브랜드를 만들어 냈다. 예컨대유럽 취향이라는 아주 보편적 취향에 맞춘 가키에몬과 경쟁하기 위해 생긴 유럽 브랜드 두파키에(Du Paquier)는 가키에몬의 기본 디자인에 독일과 오스트리아라는 특정 국가의 식생활 습성에 맞춘 상품을 출시했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인들의 기호에 맞춘 상클로드(Saint-Cloud)가 가키에몬의 경쟁자로 떠올랐다. 결국 이 두 브랜드가 일본의 가키에몬을 제치고 유럽 도자기 시장을 석권하게 됐다. 비결은 두 브랜드 모두 덜 보편적이고 더 세부적인 현지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위 두 회사는로컬유럽이라는 큰 범위가 아니라국가별로 더 세분화시켜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2. localization 전략의 진화

미국 할리우드 배우 멜 깁슨이 제작한 영화아포칼립토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보자. 16세기의 중남미 원주민 한 사람이 중남미 최대의 문명 도시였던 아즈텍으로 끌려 갔다가 겨우 탈출해서 고향인 밀림 쪽으로 도망친다. 아즈텍의 노예 사냥꾼들이 그를 뒤쫓는다. 그런데 바다 쪽에 도착하자 기이하게 생긴 배가 나타난다. 도망자와 추격자 모두 너무 놀라서 발걸음을 멈춘다. 배의 돛에는 십자가가 그려져 있으며 그 앞에 천주교 신부가 서 있고 스페인 병사들이 노를 저어 육지 쪽으로 다가오면서 영화가 끝난다. 앞으로 글로벌 경제 시스템에 편입될 남미에서는 원주민이든, 아즈텍 같은 문명화된 도시에 사는 사람이든 새로운 글로벌 시장에 편입될 것이라는 강한 암시였다.

 

 

상품 자체를 현지화한 것이 아니라

먼저 종교를 전파해서

현지를 스페인, 포르투갈 소비 취향으로

바꾸는 것이 당시의 시장 진출 전략이었다.

 

 

 

이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스페인 무역선 돛에 그려진 십자가다. 국제화가 시작되던 16∼18세기의 globalist이자 localization specialist들은 바로 천주교의 신부들이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천주교가 오랫동안 국교였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예수회 신부들을 남미와 태평양에 대거 파견해 포교 활동을 통해 라틴어와 남유럽식 윤리관, 건축 양식, 생활 습관 등을 전파했다. 상품 자체를 현지화한 것이 아니라 먼저 종교를 전파해서 현지를 스페인, 포르투갈 소비 취향으로 바꾸는 것이 당시의 시장 진출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종교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현지의 문화도 배우게 된다. 예컨대 멕시코인들을 천주교인으로 개종시킬 임무를 맡았던 베르다르도 디 사가훈 신부는 남미로 건너온 뒤 아즈텍 문명의 역사와 종교를 연구했다. 그리고 아시아인들의 천주교 개종 임무를 맡았던 이탈리아 신부 마테오 리치는 오랫동안 중국과 한국에서 사대부·선비의 상징인 의복과 갓을 쓰고 설교를 해 파급력을 높히고 공자와 맹자 책을 라틴어로 번역해 로마에서 출간하는 등 localization 데이터 구축에 열을 올렸다. 수출국과 수입국의 문화를 통일시켜 놓고 나서 시장을 개척하려는 당시의 문화전략은문명화 미션(la mission civilisatrice)’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문화 말살정책으로 이어졌다가 1853∼1854년 중국의 아편전쟁, 1857년 인도의 루크나우 반란처럼 계속되는 저항운동, 즉 자기의 문화를 지키려는 나라의 저항 속에서 종말을 고했다.

 

19세기에 들어오면서 glocalization의 주요 행위자들과 기업들은인종학자들을 여러 나라로 파견하고 그 나라의민족성을 연구하는 데 열을 올렸다. 이때 세계 경제를 움직이던 나라들은 앞다퉈 아직 문명화가 덜 된 나라들의 역사 기록물과 문화재 등을 수집하고 분석해 향후 고객이 될 국가들의민족성향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것이다. 20세기에는문화인류학이 그 자리를 대신해 국가 간의 가치관과 지향점 차이를 찾아내 소비자들의 구미에 맞춰 상품을 디자인하고 생산하는 방법으로 글로벌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이처럼 지난 300년 동안 세계의 앞서가는 기업들과 주요 행위자들은 localization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이 같은 현지화의 양상은 크게 달라졌다. 20세기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국경은 자기의 생활 범위와 문화 경험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요소였다. 그래서 모든 현지화는 거시적 차원에서 무역업자, 외교관, 거대 대기업 중심이라는 국경을 넘을 자격을 지닌 전문 중간자들을 통해 이뤄졌다. 지금은 어떤가? 전 세계의 페이스북 친구 관계를 나타내는 지도를 보면 거의 세계 지도와 일치한다. 인터넷으로 가볍게 국경을 초월해서 수요자와 공급자가 직접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 기업의 일거수일투족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실시간으로 직접 공개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각자 자라온 언어와 문화 배경에 따라 같은 메시지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 그래서 한 기업이 세상에 내보내는 상품이나 마케팅 방법들이 다른 언어권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해석되는지를 연구하는 새로운 학문인 묘사언어학(Descriptive Linguistics)이 인종학, 인류학을 대체하고 새로운 localization 연구의 기반 학문으로 떠오르고 있다.

 

3. 언어와 localization

2007년 프랑스의 유명 가전 리테일 업체인 Darty에서 한 신혼부부가 세탁기를 사려고 제품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매장 내에서 LG Direct Drive 기술 시범 전시를 본 그들은 LG 세탁기의 성능에 반해 구매를 고려하며 오래 서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구매결정권자인 부인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버튼이 왜 이렇게 많아?” 그리고는 다른 회사 세탁기를 보러 자리를 떠났다. 이 코멘트에 흥미가 생긴 필자는 그 상품 앞에 약 두 시간 정도 서서 프랑스 소비자들의 태도를 관찰했다. 18명의 고객이 LG 세탁기 앞에 발길을 멈추고 구매 의욕을 보였지만 대부분 그냥 떠났고 그 중 8명은 버튼이 많다라는 말을 남기고 아쉬운 표정으로 다른 회사 제품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당시 인기를 끌던 Indesit Moon 세탁기는 달랐다. 디자이너 조르제토 구이자로가 디자인한 이 세탁기는 2007년 파리에서 Grand Prix de l’Innovation을 수상했다. 이후 적극적인 마케팅이 펼쳐졌고, 이 상품뿐만 아니라 새로운 디자인의 자사 상품들이 연달아 상을 수상하면서 2007년 상반기 Indesit사는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6.7%, EBIT 38.6% 신장했다

 

 

Indesit Moon 세탁기의 특징은 제품 가운데에 달린 Start/Stop 스위치와 이를 둘러싸고 있는 5개 스위치로 모든 컨트롤러를 압축했다는 점이다. 멀리서 볼 때 단 하나의 큰 원형 스위치만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단순화했다. 이것은 2000년대 UI/UX 디자인의 트렌드이기도 했다. iPhone iPad에 스위치가 하나밖에 없는 것이나 신형 BMW의 컨트롤러를 조그셔틀 하나로 통일한 점과 유사하다. 하지만 필자가 30대 한국 전문직 남성/여성 20명을 인터뷰한 결과 10명 이상이 iPhone이 갤럭시에 비해 불편한 점으로돌아가기 버튼이 없다로 꼽았다. 물론 이런 인터뷰는 캐주얼한 상황(non-controlled environment)에서 적은 샘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니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데이터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지표(indicator)로는 볼 수 있다.

 

 

 

묘사언어학에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그 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편리한 UI/UX는 그 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문법구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림 1>은 서양인들은 인도-유럽 언어의 문법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언어의 특징은 주인공 단어와 그 단어를 수식하는 많은보조단어들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언어로 생각해 온 서구 사람들은 당연히 하나의 큰 아이디어에서 출발(Start 버튼)해서 세부적인 것으로 들어가는 순서로 생각한다.

 

그에 비해 한국어는 단어 뒤에 조사를 붙이고 단어별로 색채를 입혀서 완성된 스펙트럼을 통해 문장을 이해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토대로 생각을 해보면 한국의 소비자들이 서양식 언어구조인독립적인 주 아이디어에서 세부적인 서브 아이디어로 발전하는 조그셔틀이나 UI에 대해 왜 그렇게 많은 혼란을 느끼는지 쉽게 이해될 것이다.

 

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의구조주의는 문법구조가 사람들이 사회 구조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는 이론이다. 실제로 유럽 사회는 왕 밑에 영주, 영주 밑에 기사, 기사 밑에 농민이 피라미드형으로 배치되고 주 구조 혹은 상부구조(Superstructure)와 주변구조(Substructure)들이 지역별로 세분화돼 있다. 그에 비해 한국 왕실은 왕 한 명이 각각 다른 역할과 색깔(당파)을 지닌 신하들을 배합해조정을 이룬다.

 

또 이것은 미학, 즉 선호하는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친다. 동양화는 평면을 여백과 색체로 나누고 색의 농과 담, 나무, , 과일, 사람 등을 평면에 퍼뜨려 스펙트럼과 조화를 만든다. 그에 비해 서양 미술은 원과 근의 관계를 중심으로 주제와 장식,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눈다. 요리도 서양 요리는 고기, 생선 등 주제가 되는 요리를 향료가 받쳐주는 방식이고, 한국 요리는 마늘, 양파, , , 그리고 주재료를 한꺼번에 배합해 다양한 스펙트럼을 느끼는 방식으로 돼 있다.

 

이제 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영국인 S 씨는 3년 전에 한국으로 이주, 이태원과 신촌 지역에 영국 음식점을 개장했다. 전통 영국 음식과 맥주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벌였다. 한국 음식 파워블로그와 잡지에 음식점이 대대적으로 소개됐지만 초반의 기대에 비해 반응은 미미했다. 특히 고정 고객을 유치하지 못했다. 필자와의 대화에서 S 씨는한국 거주 외국인들 중에는 고정 고객이 많지만 한국 고객들은 음식점을 한 번 방문해 사진만 찍고 간다라며 저변 확대의 어려움에 대해 여러 번 말했다. 당시 이태원 일대 Fish & Chips 가스트로 펍’(요리와 맥주를 파는 집) 붐이 일었지만 S 씨는 localization에 실패했고 2015 5월부로 한국 매장을 정리했다. 나중에 전체적인 평가를 살펴보니 외국인 고객들은 이 음식점의 요리에 높은 점수를 준 것에 반해 한국 고객들은 서비스, 분위기 등에 높은 점수를 줬고, 요리에 대해서는 낮은 점수를 줬다. S 씨는 이에 대해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바로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맛의 문법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한국 고객들이음식이 비리다라는 것은 향채와 원재료의 밸런스가 원재료 쪽으로 무너져 있는 상태를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마늘향이 너무 튄다처럼 한 재료가 음식 전체를 지배하는 것도 지양하는 편이다. 이렇게 맛과 멋에도 문법이 있고, 이런 문법이 맞지 않는 경우 사람들은이해할 수 없다라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요즘 한국 음식 세계화 움직임에 맞춰 필자가 직접 한국 거주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여러 한국 음식을 테스트한 결과, 서구인들에게 가장 부정적 반응을 얻어낸 것은 잡채와 냉면이다. 이 음식을 먹은 서유럽과 미주인들의 반응은 주로무슨 맛인지 모르겠다였다. , 음식의 주제를 찾아낼 수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해 구조와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구조주의 이론으로 돌아오면 정확한 UI/UX를 뽑아내는 것은 향후 묘사언어학의 과제지만 localization이 필요한 시대의 기업 경영진이라면 상품을 내보낼 나라의 언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뛰어넘어 그 나라 사람들의 어학과 문법구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영미 시장에 진출하려면 단지 영어를 잘 구사하고 듣고 쓰는 것 이상의 실력을 가진 이들이 함께해야 한다. 영문법과 어휘에 대한 깊은 조예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그 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고 구조를 함께 분석하고 전략을 짜야 한다는 얘기다.

 

4. 언어그룹을 통한 STP 전략

사람들은 언어로 소통을 한다. 생물학자 마크 파겔에 의하면 언어는 인간만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이다. 언어는 성대를 통해서 공기를 떨리도록 해 상대편 머리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일종의 텔레파시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들이 적대적 관계에 놓여 있으면 상대편이 내 머릿속에 들어 오지 못하도록 언어가 저절로 서로 통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예컨대 아주 적은 자원으로 살아남아야 했던 태평양 섬들의 경우 1마일에 한번씩 언어가 바뀌는 곳도 있다. 이것은 한 부족이 가진 사냥터와 사냥 방법, 낚시터와 낚시 방법 등을 옆 부족이 훔쳐가 자신들이 확보한 자원을 선점하지 못하도록 하는 진화적 전략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른 가치관/사고방식/삶의 지향점/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을 가장 분명하게 차단시켜 주는 것은 언어다.

 

여기에서 한발 더 들어가보자. 힙합 음악을 예로 들어보겠다. 우리는 흔히 셰익스피어의 소설들이나 멜빌의모비딕같은 문학은 다채로운 문장을 구사하는문학의 범주에 넣고 힙합은 신나고 재미있기는 하지만 단어의 다양성이나 문장 구조, 운율 면에서 수준이 낮고 유치한 것으로 여기며대중문화범주에 넣는다. 하지만 데이터 과학자 멧 대니엘스에 의하면 셰익스피어 소설에서 첫 35000개의 단어를 뽑아 조사해 보면 겹치는 단어들을 빼고 5170개의 어휘가 사용됐지만, 힙합스타 케이니가 작곡한 첫 35000단어의 가사를 조사해 보면 5212개의 어휘가 사용됐다. 심지어 어휘가 어렵기로 유명한 헤르만 멜빌의모비딕에 사용한 6022개의 어휘도 랩 스타 GZA 6426개에 비해 적다. 이 말은 힙합이 셰익스피어의 소설들이나 멜빌의 소설모비딕보다 언어적 수준이 낮은 것이 아니라 서양 고전과 다른 단어세트를 이용함으로써 백인 주류 문화와 차별화되는 흑인 문화적 언어를 탄생시키는예술적 선택을 했을 뿐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다시 말해, 힙합 스타들은 백인들의 전통 인문학이나 사전에는 포함되지 않는 단어와 문법들을 선택함으로써 자신들의 독창적인 정체성을 만들어나갔다는 것이다. 어떤 언어건 대개 수십만 개 정도의 어휘를 가지고 있지만 한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는 약 1만 개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사용하는단어 세트의 빅데이터를 통하면 그 사람에게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을 예측할 수 있다. 예컨대 사람이 SNS 등을 통해서 생산하는 문장의 단어가 힙합 단어 세트와 유사하다면 그 사람은 힙합적인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힙합족의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을 구매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를 통해서 segmentation하는 방법에 꼭 단어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상대편의 말을 듣고 다시 자기가 말을 하면서 서로 말할 기회를 주고받는 것을 turn-taking이라고 한다. 같은 사고방식을 가졌거나 비슷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는 비슷한 turn-taking 패턴을 가지고 있다. 루프트한자(Lufthansa)비행기 조종사들의 경우 두 조종사가 대화를 할 때 상대편 조종사가 말을 끝낸 후 0.4초 정도 기다렸다가 자기가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두 조종사가 0.4초 이하의 대기 시간을 두고 서로 자기 할 말을 했을 때는 비행 계획이 수정되고 있는 등 정상적인 비행상황이 아닌 경우였다. 이런 패턴 역시 비슷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특성으로 한 segment를 골라내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5. Multi-Modality(다중 양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언어로 생각을 주고받는다. 말로 하는 언어도 있지만 비주얼 언어도 그 중 하나에 불과하다. 비주얼 언어에 대해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관광객들에게 주요한 UI 중 하나는 지하철 역내 설치된 인근 지역 지도다. 상대적 공간 관념을 가지고 사는 동아시아에서는 대체로 지도 앞에서 보고 있는 방향을 위쪽에 배치한 지도가 그려져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지금 남쪽을 보고 있다면 지도가 거꾸로 붙어 있는 셈이다. (그림 3) 절대적 공간 관념을 가지고 사는 서구의 지하철에는 항상 북쪽이 위에 있다. (그림 4) 아주 사소한 것 같지만 익숙하지 않은 유저에게 이런 차이는 굉장히 많은 불편을 느끼게 한다. 만약 이런 일들이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 건축 디자인 등에 적용됐다면 사용자가 자사 상품을 거부하고 경쟁사 상품을 선택하게 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비언어적 상황에도 문법이 있다는 점이 조금씩 발견되고 있음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이번엔 공간 언어를 보자. 미국 신문에서 아파트 광고를 보면 Cathedral Ceiling, Voluminous, 10”, 12” Ceiling 같이 평면적이 아닌 집의 부피를 광고하는 경우가 많다. 서구의 건축 언어에서 높이라는 축은 권력을 상징하는 기호학적 의미가 있다. 또 서구 언어권에서는 어두운 색깔, 특히 흑갈색과 짙은 회색, 검정색이 권력 기호다. 이런 권력 기호들이 상호작용해 하나의 공간을 만들면 사람들은 이것을 ‘Power Space’로 머릿속에서 소화한다. 하지만 이런 기호들 중 하나가 잘못 구성되는 경우 (튀는 밝은 색깔이 잘못된 곳에 있다거나) 사람들은 ‘Broken English’를 들을 때처럼 심한 거부반응을 나타낸다. 주로 이런 경우에 사용되는 용어는싼티 난다(It feels cheap)’라는 반응이다.

 

 

서비스 업종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음식점들은 아시아 고객들에게 식당이 지저분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데 대체로 접시나 테이블 위는 깨끗하지만 벽이나 바닥이 지저분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대로 서구 고객들은 아시아 음식점이 지저분하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수저통에 수저가 여러 개 들어 있거나 물기가 마르지 않은 컵이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동양 언어(특히 한국어)의 어순을 보면 시간, 위치, 배경 등 환경이 먼저 나온다.

 

오늘 어디가?”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집이 어디야?”

 

학원 끝나면 뭐 먹을 거야?”

 

영어의 어순을 보면 배경이 뒤로 가고 주제가 앞으로 간다.

 

Where are you going today?”

 

Which is the most delicious restaurant in Seoul?”

 

What are we having after tutoring session ends?”

 

언어의 영향으로 한국 사람들은 음식점을 보면 위치(동네), 실내 환경을 먼저 보고 위생 상태를 판단하지만 서구 사람들은 음식이 담긴 그릇이나 수저, 컵 같은 돌출된 것의 상태를 보고 위생과 서비스를 판단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흔히 localization을 생각할 때우리나라 말로 된 인터페이스를 현지어로 번역하는 작업정도로 생각하지만 진정한 localization은 여기에서 한발 더 들어간다. 상품을 타깃 국가에 알맞은 공간 언어, 서비스 언어, 인터페이스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이라는 얘기다. 즉 모든 localization 전략은거대한 번역 작업이다. 그래서 모든 기업인은 문화통역사가 돼야 한다.

 

6. 결론

언어는 사람의 관계를 연결시키기도 하지만 끊기도 한다. 유럽에서 발발한 1차와 2차 대전의 끔찍함을 기억하는 유럽인들은 다시는 그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럽 대륙의 모든 국가이자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었다. 이렇게 결성된 EU 27개국 정상들은 23개의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한다. EU에서는 번역비로만 수조 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렇게 언어는 글로벌로 진출하려는 조직에 가장 큰 장애물이다. 물론 첨단기술이 주 업종인 기업에 이러한 언어장벽(Language Barrier)은 유리하게도, 때론 불리하게도 작용한다. 일단 국내적으로는 유리한 점이 많다. 앞서 설명한 언어와 문법구조의 차이, 그리고 그 차이에서 온 UX/UI의 차이는 구글로부터 국내 업체인 네이버와 다음이 검색 시장을 지켜내도록 했고 YouStream(동영상과 방송을 보는 사이트)보다 아프리카(한국형 동영상/방송 사이트)가 한국 시장에서 선전할 수 있는 주된 이유가 됐다. 한국어의 언어 구조는 매우 독특하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게는 최신가요 100선을 한 플레이 리스트로 묶어주는 멜론이 장르, 예술가로 음악을 자동 분류하는 iTunes보다 쓰기 편하고, 한 단어를 중심으로 검색을 유기적으로 이어가는 구글보다 내가 찾고 싶은 정보의 항목을 고를 수 있는 네이버가 더 편할 것이다. 자동차 K9에는 조그셔틀과 함께 다른 여러 버튼이 같이 달려 있어야 마음이 놓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 기업이 해외로 나갈 때는 이러한 언어 장벽과 다른 언어가 만들어 낸 사고 구조의 차이가 문제가 된다. 상품의 본래 가치보다 저평가받게 할 수 있는 주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 진출을 원하는 기업이라면언어 장벽’, 그리고 언어장벽을 구성하는사고의 구조 방정식부터 풀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해외 진출에 성공하고 글로벌 시장의 승자가 되려면 광고 문구나 서류를 번역하는 것 이상의 고민을 해야 한다. 해외 지사의 기업 구조, 상품의 미학과 UI의 편의, 윤리성과 행동도 모두 제대로변환해서 진출하는 전략을 짜지 않으면 제품과 서비스의 가치가 상실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상품이나 서비스의 강점, 자신의 기업이 쏟아부은 노력과 소비자에 대한 진심이 그들의 시장에서 통할 것이다.

 

 

조승연 문화전략가 scho@gurupartners.kr

필자는 고교 시절 미국전국라틴어경시대회에서 우수상(Magna Cum Laude)을 받았으며 미국 고등학생 문예지에 시와 단편소설을 싣기도 했다.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NYU Stern School)을 졸업한 뒤 프랑스 최고 미술사 학교인 에콜 드 루브르에서 2년간 수학했다. 영국계 컨설팅회사 UnfrZenMind에서 외부 상임이사를 지냈으며 한국무역협회 등에서 주관한 국제 마케팅 리서치에 참여했다. <피리 부는 마케터> <이야기 인문학> <비즈니스 인문학>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94호 The Centennial Strategy 2020년 4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