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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병상에 누워 있거나 묘지에 묻혀 있더라도 싱가포르에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껴지면 나는 벌떡 일어날 것이다.”
- 1988년 8월9일 싱가포르 건국기념일 연설
싱가포르의 국부(國父) 리콴유가 싱가포르를 건국한 지 정확히 50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싱가포르 국민들의 마음에 영원히 남아 있다. 17년 전 건국기념일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그는 지금 저승에서도 싱가포르가 잘돼가고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뭔가 잘못된다고 생각하면 저승을 뚫고 이승으로 돌아올 태세를 갖추고 있을 것이다.
싱가포르 사람들에게 리콴유는 무서우면서 존경하는 지도자였다. 아들 리셴룽 총리와 크게 대비된다. 리셴룽은 큰 눈에 서글서글한 인상이다. 얘기하는 것도 부드럽다. 그러나 리콴유는 눈도 작고 날카롭게 얘기한다. 젊었을 때 연설하는 장면들을 보면 가슴을 섬뜩하게 하는 것들도 있다. 자신은 여론조사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고 강한 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 중에서 선택하라면 나는 마키아벨리가 옳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나는 의미가 없어진다.”
리콴유의 카리스마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해내고, 말레이시아 연방에 합류하고, 연방에서 쫓겨난 뒤 아무 것도 없던 조그만 섬나라를 미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선진국으로 키워낸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불굴의 의지,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 유연한 정치행보, ‘깨끗한 정부’와 기업가정신의 결합 등은 리콴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래서 지금 싱가포르의 경쟁력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사진: 로이터 뉴스
“호랑이의 등을 타고”
싱가포르국립대의 전신인 라플즈대를 우등으로 졸업한 리콴유는 2차 세계대전으로 학업이 중단된 뒤 전후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대 법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리콴유는 영국에서 취직할 수 있었지만 싱가포르를 독립시키겠다는 꿈을 안고 1949년에 돌아와 노동조합 변호사로 정치 활동을 시작한다.
당시는 영국이 싱가포르를 독립시켜 주지 않고 영국인이 이끄는 괴뢰 정당을 만들어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실행하고 있을 때였다. 독립운동을 가장 강력하게 벌이던 세력은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영국인이 이끄는 정당인 노동전선(Labor Front)은 부정부패로 싱가포르인들의 공분(公憤)을 사고 있었다. 리콴유는 ‘민중행동당(People’s Action Party)’이라는 중도좌파 정당을 만들어 일단 공산주의자들과 연합전선을 폈다.
리콴유는 독립을 쟁취하는 데 성공하고 소수파라는 약점을 극복하며 1959년 싱가포르 초대 수상에 취임한다. 조 여(Joe Yeoh)가 싱가포르 건국 과정에 대해 쓴 책에는 <호랑이 길들이기(To Tame a Tiger)>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리콴유가 호랑이의 등을 타고 영국인과 싸우는 그림이 표지로 들어가 있다. 여기에서 호랑이는 공산주의자들이다. 리콴유는 독립을 얻어내자마자 냉전상황을 이용해서 영국과 미국의 힘을 빌려 공산주의자들을 숙청했다. 재판도 거치지 않고 연금시켰다. 중공으로 가겠다는 사람들은 중공으로 보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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