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Business insight from biology

토마토 맛보다 유전자 기술에 초점 ‘플레이버 세이버’는 실패를 안고 출발했다

이일하 | 172호 (2015년 3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플레이버 세이버(Flavr Savr)는 유전공학이 농업에 적용된 첫 농산물 토마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장에서 실패했다. 플레이버 세이버를 개발한 칼젠(Calgene)은 당시 어떤 경쟁사보다 앞서 세계최초 GMO(유전공학농산물)를 개발하겠다는 욕심에 사로잡혀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했다. , 기존 토마토보다 더 맛있고 당도가 좋은 품종을 선택해 개량할 생각을 하지 않고 유전공학적 기술을 적용하기 가장 쉬운 품종을 골랐다. 첨단기술로 장착된 신상품이라도 기존 제품에 비해 업그레이드된 요소가 없다면 결국 사장될 수밖에 없다.

 

 

 

 

 

편집자주

흔히 기업을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합니다. 이는 곧 생명에 대한 깊은 이해가 경영에 대한 통찰로 이어질 수 있음을 뜻합니다. 30여 년 동안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천착해 온 이일하 교수가 생명의 원리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생물학과 관련된 여러 질문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기업 경영에 유익한 지혜도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1994년 미국에서 출시된 유전자 재조합 토마토플레이버 세이버(Flavr Savr)’는 세계 최초로 판매가 허용된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유전자변형생물체) 농산물이다. 출시 초기, 일반 토마토보다 무려 2배 가까운 가격에 판매됐지만 물량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최첨단 유전공학의 산물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며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플레이버 세이버는 현재 구경조차 할 수 없다. 출시된 지 3년째인 1997년 생산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한때나마 대박 상품이었던 플레이버 세이버가 판매 개시 채 3년도 못 돼 생산이 중단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을 한번 들여다보자.

 

플레이버 세이버 개발 배경

 

토마토는 작물 특성상 매우 쉽게 상한다. 다들 슈퍼에서 토마토를 사다놓고 깜빡 잊고 그냥 놔뒀다가 금세 물러 터져 낭패를 본 경험이 한두 번 쯤 있을 것이다. 이렇게 쉽게 물러터지는 토마토후숙(後熟)’ 문제는 소비자에게도 문제지만 토마토 유통업자들에겐 더 큰 골칫거리다. 많은 유통업자들이 채 익지도 않은 초록색 토마토를 농장에서 수확해 각 판매지로 수송한 후 슈퍼마켓에 내놓기 직전에 에틸렌(기체성 식물 호르몬) 처리로 강제 후숙을 시키는 것도 토마토가 빨리 익어 상하는 문제를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단단한 상태에서 토마토를 실어 나르기 때문에 유통 관리가 쉽다. 반면 강제 숙성의 폐해로 인해 농장에서 자연스럽게 익은 토마토에 비하면 맛과 풍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생명공학 연구개발 회사인 칼젠(Calgene)은 바로 이 토마토 후숙 문제를 해결해대박을 터뜨리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1980년 미국 캘리포니아 데이비스의 한 창고에서 창업했다. 기본적으로 토마토 후숙은 세포벽을 분해하는 효소가 작용해 진행된다. 이는 곧 세포벽을 무너뜨리는 효소의 기능을 억제한다면 후숙 진행을 늦출 수 있다는 뜻이다. 칼젠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고 세포벽 분해 효소의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해무르지 않는 토마토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쉽게 물러터지지 않는 만큼 토마토 본연의 맛과 향미도 오래 지속할 수 있다는 뜻에서향미(savor)를 더한다(flavor)’는 뜻을 지닌 영어플레이버 세이버(flavor savor)’를 변형해 그에 걸맞은 이름(Flvr Savr)도 지었다.

 

칼젠은 1991년 말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플레이버 세이버의 판매 승인을 얻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다. 무엇보다안전한 먹거리로서 인정받는 것이 관건이었다. 칼젠은 유전공학적으로 개량된 토마토의 성분이 일반 토마토의 성분과 비교해서 다른 점이 있는지, 특히 원래 토마토에는 없는카나마이신항생제의 내성 효소 단백질로 인해 어떤 해로운 대사물질이 생기지 않는지 FDA에 철저히 검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1 다행히 FDA의 성분 분석 결과, 일반 농산물과 비교해 볼 때실제적으로 동등(substantially equivalent)’하다는 판정을 받았고, 결국 1994년 식품 허가를 받았다.2 세계 최초의 상업적 GMO 농산물인 플레이버 세이버가 탄생한 배경이다.3

 

칼젠은 FDA 승인을 취득한 후 시장 조사를 하고 판매 전략을 세워 1994년 캘리포니아와 미국 중서부 지역의 슈퍼마켓에 플레이버 세이버를 내다 팔기 시작했다. 고급품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일반 토마토에 비해 생산 단가가 적게 드는데도 불구하고 2배 정도 높은 가격에 판매했다고 한다. 특히 일반 토마토와는 달리 대용량 위주로 판매하는 전략을 세웠다. 잘 물러터지지 않는 만큼 대용량으로 팔아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플레이버 세이버는 출시 후 3년도 채 안 된 1997년 생산이 중단된다.

 

플레이버 세이버의 예고된 몰락

 

플레이버 세이버 생산이 중단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맛이 없어서였다. 예상과 달리 플레이버 세이버는 이름만 멋있고 실제 맛은 없는 토마토였다. 더욱이 유통업자들에겐 별로 득 될 게 없는 토마토였다. ‘물러터지지 않는 토마토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후숙에 걸리는 시간이 여느 토마토와 다름없이 진행되는 통에 유통 관리상 이점이 전혀 없었다. 결국, 맛도 없고 후숙 진행도 더뎌지질 않아 소비자와 유통업자 누구에게도 매력적이지 못한 농산물이 돼 버렸다. 최첨단 유전공학 기술의 결정체라고 그렇게 떠들어 댔는데,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가입하면 무료

인기기사

질문, 답변, 연관 아티클 확인까지 한번에! 경제·경영 관련 질문은 AskBiz에게 물어보세요.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