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n Case Study
Article at a Glance -전략
사양산업으로 치부되는 섬유를 주력 사업으로 삼고 있는 일본 섬유회사 도레이가 지난해 역대 최고 실적을 내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도레이는 다른 기업들도 철수하는 ‘저무는 시장’에서 글로벌화, 새로운 소재 개발 등으로 ‘잔존자 이익’을 향유하고 있다. 특히 유니클로와의 협업은 상상치 못한 시너지 효과를 내며 ‘오픈 이노베이션’의 베스트 프랙티스로 남게 됐다. 도레이의 또 다른 ‘승리 방정식’은 탄소섬유의 개발 과정에서 읽을 수 있다. ‘돈 잡아먹는 벌레’라는 사내 비난 속에서도 50년 이상 개발을 지속하면서 경쟁사가 넘보기 어려울 정도의 원천기술을 축적했다. 그동안 규모의 경제, 자본의 논리로 달려온 우리 기업들에 도레이의 승리 방정식은 상당한 시사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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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섬유회사는 도레이
최근 일본에서는 섬유회사 도레이(TORAY)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 업체는 사양산업인 섬유를 주력사업으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14년도 역대 최고의 매출과 이익을 거뒀다. 뿐만 아니다. 2014년 11월에는 미국 보잉사와도 1조 엔 규모의 항공기용 탄소섬유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 소재개발 능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또 도레이 회장인 사카키바라 사다유키(榊原定征) 씨는 현재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게이단렌(經團連) 회장을 맡고 있다. 일본의 주력산업인 자동차·전기·철강 출신이 아니라 섬유산업 출신이 이 단체의 회장을 맡게 된 것은 사상 초유의 사건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정작 도레이가 세간의 주목받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사양산업인 섬유 회사가 어떻게 세계 초일류기업이 됐는가 하는 점이다. 또 어떻게 꿈의 소재라 불리는 탄소섬유의 선도 기업이 됐는지도 관심사다. 도레이의 탄소섬유는 50여 년 동안 묵묵히 개발에 매진한 결정체라 할 만하다. 이것이 많은 기업들이 도레이의 연구개발 시스템에 주목하는 배경이다. 뿐만 아니다. 타 업종기업인 유니클로와의 협업으로 섬유회사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한 것도 높게 평가할 만하다. 이는 경영학 교과서에 실릴 만한 성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레이는 최근 한국 진출에도 적극적이다. 탄소섬유를 한국에서 생산하기로 한 것이다. 첨단기술이 한국으로 유출될 것이라는 일본 국내의 부정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내린 과감한 결단이다.
게다가 미래의 먹거리인 분리막 사업 확대를 위해 웅진케미컬도 인수했다. 도레이의 글로벌 전략은 다른 일본 기업과는 좀 다르다. 과연 도레이는 사양산업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승승장구하는 것일까?
도레이는 이익기준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종합 섬유회사다. 도레이는 항공기용 탄소섬유 등 첨단 소재를 만드는 회사라는 인식이 퍼져 있으나 주력은 여전히 섬유 분야다.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섬유 비중이 41.1%나 된다. 아직도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아크릴 등 대부분의 섬유소재를 생산하고 있다. 도레이와 비견할 만한 섬유 제조업체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의 듀퐁, 독일의 BASF 등은 이미 합섬사업을 매각한 지 오래다. 한국, 인도, 중국 등지 섬유업체들도 생산능력으로는 도레이를 능가하기 어렵다.
사실 도레이는 생산능력만 놓고 보면 세계 10위권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익은 단연 톱이다. 아사히카세이, 도요보, 테이진 등 일본 섬유회사의 이익을 다 합쳐도 도레이의 절반 이하다. 도레이는 2014년 3월, 매출 1조8377억 엔, 영업이익 1052억 엔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 실적을 거뒀다. 무엇이 사양산업인 섬유를 주력사업으로 삼고 있는 도레이의 실적을 견인했을까. 도레이의 승리 방정식이 무엇인지 이 회사의 발전사에서 힌트를 찾고자 한다.
나이론 특허침해 사건이 전화위복
도레이의 시초는 1926년, 인류 최초의 합성섬유인 레이온을 영국으로부터 수입하던 미쓰이물산이 국내 생산을 위해 세운 회사 ‘동양레이온’이다. 독일의 오스카 코헨사로부터 기술 원조를 받아 1927년 8월부터 시가현에 위치한 공장에서 레이온 실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전쟁 전에 미쓰이(三井) 재벌이 세운 회사이니 회사명에 ‘미쓰이’가 들어가는 것이 관례지만 사업이 잘될지 자신할 수 없어 이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1931년 마지막 외국인 기술자가 귀국한 후 도레이는 독자 기술로 생산성과 품질을 향상시켜 나갔다. 2차 세계대전 등을 배경으로 한 군(軍) 특수로 사업은 순조롭게 성장했다. 그리고 2차 대전 패전 후인 1946년에는 미쓰이물산과 총대리점 계약을 종료하고 독립적으로 사업을 전개한다.
첫 번째 시련은 1951년에 찾아왔다. 나일론 때문이었다. 나일론(나일론 66)은 미국 듀퐁사가 1935년에 발명해 1938년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 1940년경 미국에서 나일론 스타킹이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 도레이도 1942년에 독자적인 기술로 나일론(나일론 6) 개발에 성공했다. 아미란(Amilan)이란 제품명으로 일본에 특허 출원했고 1951년에는 독자 생산에 들어갔다. 그러나 듀퐁사는 도레이를 특허권 침해로 제소했다. 도레이는 독자 기술로 생산한 것이기 때문에 특허 침해는 아니라고 주장했고 조사를 벌인 후 듀퐁사도 이를 인정했다. 하지만 대량 생산에는 시간이 걸렸고 듀퐁사가 일본 이외 지역에서 특허를 선점하고 있었던 터라 수출을 하기도 어려웠다. 또한 스타킹 제작용으로 쓸 극세사 생산 기계조차 듀퐁사 허락 없이 도입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도레이는 특허료를 지불해서라도 나일론 사업을 확대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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