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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은 3대 주주, 비즈모델은 구글? 사상 최대 알리바바 IPO의 이면

정주용 | 163호 (2014년 10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전략

 

이베이와 아마존을 합친 규모보다 더 큰 인터넷 상거래 사이트 알리바바. 지난 9 19일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알리바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대부분 알리바바가 12억 명이 넘는 인구를 기반으로 한 중국시장에서좋은 타이밍에 서비스를 론칭해 성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알리바바의 성공은 그리 단순하게 분석할 수 없다. 아마존보다는 이베이, 이베이보다는 구글에 가까운 비즈니스모델, 그리고 마윈보다 더 많은 지분을 가진 손정의 회장의 투자.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결과다. 알리바바를 보며, 중국시장만 부러워하거나 마윈의 위대한 능력만 바라보는 것은 동전의 앞면만을 보는 것이다. 그 이면의 스토리를 알아야 알리바바가 보인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는?

이제는 대부분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아마존이나 이베이가 아니다. 정답은 중국의 알리바바. 알리바바의 전자상거래 거래규모는 이미 2012년 아마존과 이베이를 모두 합친 규모보다 커졌다. 이후에도 성장은 지속됐고, 이제는 수익성도 향상돼 글로벌 1위는 더욱 확고해졌다.

 

중국 온라인쇼핑시장은 지난 6년 동안 10배 이상 급성장했다. <그림 1> 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알리바바의 총 거래대금은 매분기마다 급성장 중이다. 최근 1년 반 사이에만 2배 이상 증가했다. 동기간 실구매자수도 1 3000만 명에서 2 3000만 명으로 1억 명이 증가했다. 알리바바는 이러한 중국 전자상거래시장 초고속 성장의 독보적 주인공이고 모든 이득을 거의 독점해왔다. 이게 끝이 아니다. 향후 3년간 중국 온라인쇼핑시장은 또다시 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13억 인구에 인터넷유저는 6 2000만 명, 모바일유저는 5억 명, 온라인쇼핑유저는 3억 명이 넘는다. 알리바바의 스케일은 이러한억소리나는 중국시장의 규모에 뿌리를 박고 있다.

 

알리바바의 초고속 성장의 신화가 중국이니 가능했고 미래 성장은 제한적이라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알리바바의 공격적 확장 전략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공격적이고 충격적이다.

 

알리바바는 최근 금융재테크상품위어바오 100조 원 판매 돌파를 기념했다.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통해서 금융상품을 판매하면서 실질적인 금융업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옥션이나 11번가를 통해서 펀드를 판매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국의 관대한 규제환경은 알리바바 성장의 든든한 배경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알리바바는 매년 수조 원의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인터넷 모바일 업계에서 종적으로 횡적으로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올해 초에는 중국판 유튜브인 유쿠투도우 지분 18.5%를 인수하면서 엔터테인먼트로 확장하기도 했다. 이제 전자상거래 영역에는 성이 차지 않는 알리바바. 중국을 넘어서 세계로, 전자상거래를 넘어 금융을 포함한 오프라인 세상으로 무섭게 확장하고 있다.

 

 

알리바바 비즈니스모델의 특성

알리바바의 성공 신화에 대한 스토리는 많은 언론 보도를 통해 끝없이 나온 바 있으나, 그 비즈니스모델 자체에 대한 언급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

 

알리바바 비즈니스모델의 특성은 아마존보다는 이베이에 가깝다. 아니, 오히려 구글에 가깝다. 알리바바는 상품을 검색하는 엔진을 핵심 자산으로, 검색광고 수익을 주요한 수익원으로 삼고 있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아마존이 공급처에서 제품을 직접 구매해서 소비자에게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판매하는인터넷판 월마트라면, 이베이는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단순 중개자(Middle Man) 역할을 하면서 수수료를 받는 모델을 갖고 있다. ‘중개라는 측면에서 알리바바는 이베이와 닮아 있다. 전자상거래 도매상인 알리바바닷컴, C2C 플랫폼인 타오바오닷컴 모두 동일한중개비즈니스모델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타오바오닷컴에서는 8억 가지가 넘는 제품이 700만이 넘는 판매자를 통해서 중국 전역에 판매된다. 하지만 이베이와의 결정적 차이점은 알리바바의 중개수수료가 무료라는 점이다. 알리바바는 중개수수료 대신 광고수익에 의지한다. 어떻게 돈을 버는가라는 핵심적인 부분에서 알리바바는 구글과 매우 닮아 있다. 알리바바는 소비자가 제품을 검색하면 화면 상단에 노출시켜주고 광고료를 받는 방식으로 광고수익을 올린다. 쉽게 표현하면, ‘네이버 프리미엄 링크와 동일한 비즈니스모델이다.

 

 

예외적으로 알리바바그룹에서 유일하게 수수료를 받는 서비스는 B2C 플랫폼인 Tmall이다. 유명브랜드 제품을 판매하는 탓에 거래의 안정성을 꾀하기 위해 판매자들에게 일정액의 보증금과 수수료를 받는다. 이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알리바바그룹의 비즈니스모델은 기본적으로무료로 편리하고 자유롭게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데 있다. 미국이나 한국의 전자상거래 소비자들은 일단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제품을 검색하고 비교하지만, 중국인은 일단 알리바바에서 물건을 검색한다. 그리고 제품 판매자들은 알리바바에 광고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수익을 낼 만큼의 판매량을 올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소비자들은 알리바바를 거의 유일한 플랫폼으로 의존하고, 판매자들은 이 플랫폼에서 스타가 되기 위해 광고료를 기꺼이 지불한다. ‘무료라는 편리함 속에 알리바바는경쟁심을 부추겨 돈을 버는 방법을 깨달은 것이다. 결국무료경쟁심이라는 두 단어에 알리바바의 핵심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이런 비즈니스모델은 재무제표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알리바바와 아마존의 매출액을 비교하면 알리바바는 현저히 적은 수준이다. 알리바바는 제품을 직접 판매하지 않기 때문. 아마존은 직접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제품 거래대금이 그대로 매출에 잡히지만, 알리바바의 거래대금은 재무제표에 전혀 인식되지 않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광고수익만 매출로 인식된다. 참고로, 거래대금만 놓고 보면 2012년 말 기준으로 알리바바는 1620억 달러(한화 약 170조 원)로 아마존과 이베이의 거래대금을 합한 금액보다 크다.

 

알리바바의 비즈니스모델은 재무적으로도 엄청난 안정성을 제공해준다. 리스크를 직접 지지 않는 중개업의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 아마존은 제품판매 과정에서 많은 리스크를 직접 부담한다. 하지만, 알리바바는 단순 중개, 그것도 대부분 수수료 한 푼 받지 않고 중개하기 때문에 사업적 리스크가 현저히 낮다. 그리고 매출액이 대부분 광고수익이기 때문에 순이익률이 40% 이상이다. 게다가 거래 횟수와 거래 제품의 가짓수가 늘어나고 사이트 트래픽이 증가하면 추가적인 투자 없이도 더 높은 매출, 이익을 향유할 수 있다. 알리바바와 대조적으로 아마존의 순이익은 최근 분기에 지속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매출 성장률은 분기대비 60% 성장, 순이익은 2배 이상 성장을 기록 중에 있다. 이런 엄청난 성장성의 근원에는 알리바바의자산이 가벼운(Asset Light) 비즈니스모델의 특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알고 있다시피 알리바바는 지난 9 19일 미국 나스닥 거래소에 상장했다. 상장 첫날 주가가 38% 급상승하며 미국 나스닥 증권거래소에 화려하게 데뷔한 알리바바는 공모 자금조달 금액 26조 원으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IPO로 기록됐다. 상장 후 시가총액은 240조 원으로 삼성과 전자상거래 원조인 아마존을 모두 제치고 전 세계 IT기업 중 4위로 등극했다(1∼3위는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240조 원은 삼성전자와 현대차 시가총액을 합친 금액보다 크며, 역시나 아마존과 이베이를 합친 금액보다도 큰 어마어마한 규모다.

 

 

 

 

재일교포 3세 손정의의 창조와 도전의 인생역정

손정의가 일본 국적취득 시 등록된 정식이름은 손 마사요시다. 일본에는이라는 성이 없어서 부인에게으로 성을 바꾸게 하고, 자신의 한국 성인을 지켜낸 의지의 한국계 일본인이다. 한국에 사는 한국인보다도 한국인으로서 자신을 지키고자 했던 손정의는 이제 세계 모바일/IT업계의 큰 별이 됐다. 그래서 손정의의 삶을 다시 조명해보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더욱 의미 있는 일이다.

고등학교 시절 손정의는 학교선생님이 꿈이었다. 하지만 한국인 3세로 공무원의 꿈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정의의 롤모델은 파나소닉 창업자이자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로 바뀌었다. 손정의의 창업본능은 고등학생 때부터 발동됐는데, 최고의 학교를 설립하겠다고 교장선생님에게 Job offer를 던졌던 맹랑한 학생이었다. 동경대 입학이 보장된 일본 명문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떠난 그는 미국 고등학교에 편입하자마자 바로 월반을 신청했다. 그리고 3주 만에 대입자격시험을 신청했다. 미국 대입자격시험이 모두 영어로 되어 있는 것에 일본어가 모국어인 자신에게 공정치 못하다며 항의해서 영어사전을 참고하고 시간제한을 받지 않는 조건을 얻어냈다. 몇 시간이면 끝낼 시험을 며칠 만에 마치고 결국 홀리 네임스 대학에 입학했다.

이때부터 손정의는 야스모토 마사요시라는 이름을 버리고 손정의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대학시절 매일 1가지의 발명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습관을 가졌던 그는, 수백 개 단어 카드 중 3가지를 조합해서 하나의 아이디어와 제품으로 만드는 훈련을 병행했다. 그중 하나가 음성신서사이저+사전+액정화면이었다. 이 세 단어를 조합해서 만든 것은 전자번역기. 이 아이디어는 훗날 샤프사에 매각돼 전자사전의 시초가 되었다.

일본에서 한물간 스페이스인베이더 10대를 헐값에 사서 미국으로 항공우편으로 보내서 미국 음식점에 설치하고 음식점 주인과 5:5로 수익을 나누는 방식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자본을 최소화하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사업수완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에 사용된 자본은 50만 엔+운송료가 전부. 미국에서 스페이스인베이더는 인기를 끌었고, 1년 만에 350대를 미국으로 도입해서 순이익만 당시에 1억 엔을 넘겼다. 50만 엔으로 1억 엔을 만든 손정의는 타고난 사업가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 1억 엔이면 요즘으로는 모바일게임으로 수백억을 벌어들인 것과 같은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게임기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목표대로 일본으로 돌아와 사업을 재구상했다. 1년 반 동안 매일 사업구상에만 몰두해서 사업계획서를 수천 장 만들었다. 사업 아이템 선정 기준은 향후 50년간 꾸준한 성장이 가능한 사업인가? 핵심가치가 성장해서도 변치 않는가? 큰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는가? 10년 안에 일본에서 최고가 될 수 있는가? 이러한 기준들에 부합하는 사업 아이템을 위해 1년 반 동안 매일을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 결과 소프트웨어 유통 사업을 자신의 인생을 걸 아이템으로 결정했다. 그래서 설립한 회사가 오늘의 소프트뱅크다. 손정의는 이미 1981년에 컴퓨터 하드웨어는 껍데기에 불과하고 소프트웨어가 핵심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간파했다.

소프트뱅크 설립일에 24살의 어린 사장은 직원 2명을 앞에 두고 소프트뱅크의 미래 비전에 대한 일장연설을 했다. 매일 30분이 넘게 비전에 대해 열정적인 연설을 하는 20대 사장을 바라보는 직원들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직원 2명은 일주일 뒤에 회사를 떠났다. 그러나 24살 사장이 바라본 미래는 아주 뚜렷했다. 그는 컴퓨터로 시작된 하드웨어 시대는 소프트웨어 시대로, 그리고 서비스 시대로 중심축이 이동할 것을 예상했다. 모두가 컴퓨터에 열광하던 PC 초창기 시대에 하드웨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미친발상. 그리고 정보화 사회에서 소프트웨어는 결국 서비스 산업으로 확장될 것이라는 24살 사업가의 미래 예언은 누가 들어도 신뢰가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미친 예언은 오늘날 현실이 됐다. 손정의의 소프트뱅크는 M&A 전문기업이다. 스스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보다는 수백 개의 일본 소프트웨어 개발사를 인수해서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전략이다. 공격적인 투자와 동시에 직원들과의 공유에도 아낌이 없다. 일본에서 최초로 임직원 스톡옵션 제도를 도입한 기업이 소프트뱅크다. 손정의의 승승장구는 2000년 인터넷버블이 붕괴하면서 절망적인 위기에 빠졌다. 20조 엔이던 시가총액은 2800억 엔으로, 거의 100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당시 손정의는 주주들을 상대로 6시간이 넘는 설명을 통해서 성난 주주들의 신뢰를 다시 만들어나갔다.

결국 이후에 일본에서 초고속인터넷망 사업을 일으키고, 최근 실적기준으로 소프트뱅크는 일본 1위의 이동통신사가 됐다. 최근에는 미국의 Sprint사를 인수하면서 미국 3위의 이동통신사가 됐다. 그리고 세계 1위 모바일게임사인 핀란드 수퍼셀의 지분 51%를 인수하면서 세계 1위의 모바일게임사를 거느리게 됐다. 10여 년 전에 투자한 중국의 알리바바는 세계 1위의 전자상거래 업체가 되었고, 소프트뱅크는 1대주주다. 전자상거래와 모바일게임 모두 세계 최고기업을 품은 것이다.

여기에 로봇이 더해졌다. 프랑스 로봇업체 알데바란의 최대주주가 돼 로봇업계의 큰손으로 등극했다. 손정의가 손잡고 다니는 감정적 로봇 페퍼도 바로 이 알데바란 작품이다.

로봇과 모바일게임, 전자상거래.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손정의가 사는 미래에서는 이 모든 사업이 경계 없이 교류하고 상호작용을 통해 가치를 창조한다.

이제 알리바바 상장으로 수십조 원의 유동성 있는 자산이 손정의 회장 수중에 생겼다. 이 엄청난 자금력은 다시 손정의가 미래선점 아이템을 발굴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손정의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도 아니고, 일본에서는 비주류 중의 비주류인 한국인 3세였다. 절대 절망하지 않고 실수는 하지만 실패를 모르는 그의 정신은 한국인으로서 꼭 배워야 할 덕목이다. 또한 미래에 대한 굳건한 비전과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실행력, 이 모든 것은 모바일/IT 산업뿐만 아니라 모든 경영자에게 귀감이 된다.

 

 

 

알리바바 성공의 뒷이야기들

1) 알리바바 상장은 첫 번째가 아니다?

나스닥 상장 이전에 알리바바는 홍콩거래소에서 상장폐지를 경험했다. 알리바바의 상장이 첫 번째가 아니라는 얘기다. 2012년까지만 해도 알리바바는 홍콩거래소 상장기업이었다. 알리바바는 당시에도 전자상거래 B2B분야에서는 세계 최대의 기업이었다. 그런데 2012 6 20일 돌연 홍콩거래소에서 자진 상장폐지했다. 당시 홍콩거래소에 상장돼 있던 알리바바는 지금의 알리바바그룹이 아니라 B2B사업만 영위하는 알리바바닷컴뿐이었다. 지금과 같이 종합적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아우르는 회사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장한 알리바바닷컴보다 타오바오의 기업가치가 급격히 더 커졌다. 게다가 워낙 빠르게 사세가 팽창하고 있어서 성장과 동시에 지배구조 정리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사업 또한 B2B 중심에서 C2C, B2C로 넘어가던 전환기였다. 2012년 당시 중국 전자상거래 성장의 엔진은 알리바바닷컴의 도매가 아니라 타오바오를 중심으로 한 소매로 전환했다.

 

2003년 설립된 C2C플랫폼 타오바오(Taobao.com)는 무료 전략으로 2년 만에 중국 C2C시장 60%를 점령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후 세계 최대 B2B 플랫폼인 알리바바닷컴의 막강한 판매자 Pool을 기반으로 폭발적 네트워크 효과가 나타났다. 여기에 세계 최대의 콜센터를 구축해서 소비자 불만에 신속히 대응했고, 왕왕이라는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서 전자상거래의 의사소통 플랫폼도 완비했다. 타오바오는 판매자 신용평가 시스템을 도입해서 소비자들이 판매자들의 신용도를 평가하고 참조할 수 있도록 했다. 13억 중국인은 중국인을 못 믿는데, 전자상거래에서도 온갖 종류의 사기와 가짜 상품이 판을 친다. 그래서 타오바오의 신용평가 시스템은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조치였다. 지금은 옥션을 비롯해서 대부분 전자상거래 서비스에서 이런 평가 시스템을 제공하지만 당시 중국 전자상거래 환경에서는 획기적인 시도였다.

 

2012년 상장폐지 이후 알리바바그룹의 주요한 성장동력은 B2B를 영위하던 알리바바닷컴이 아니고 C2C의 타오바오와 B2C Tmall이었다. 결국 상장폐지는 이러한 신성장동력 사업을 하나의 상장주체로 묶으려는 새로운 작업의 일환이었으리라 추측해볼 수 있다.

 

또 한 가지, 알리바바가 상장폐지를 결정한 2012년은 알리바바가 야후와 알리페이로 분쟁을 겪은 해다. 2012년 알리페이는 알리바바닷컴 홍콩상장사에서 따로 떨어져 나와 마윈과 그의 중국 동료들이 100% 소유한 중국 역내회사로 변신했다는 사실이 사전협의 없이 주주들에게 통보되었다. 사실은 이미 2011년에 알리페이의 지배구조는 변화한 것. 여기에 야후는 깜짝 놀라고 마윈과 한바탕 분쟁을 치렀다. 알리바바에게 2012년은 이렇듯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 해였다.

 

알리바바는 상장폐지 직후 지배구조 재편을 단행하고 바로 홍콩상장 여부를 홍콩거래소에 문의했으니 애초부터 알리바바가 미국거래소에 상장하려 했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다. 알리바바는 지배구조 조정을 위해 잠시 홍콩거래소에서 상장폐지했다가 그룹을 하나로 묶어서 다시 상장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홍콩거래소에서 마윈 회장의 경영권을 사수하기 위한 방안을 수용하지 않아서 차선책으로 미국거래소를 선택했다.

 

여기서 주목할 조연은 흥미롭게도 사모펀드다. 홍콩거래소에서 상장폐지를 도왔던 사모펀드들은 만 2년 조금 넘는 기간에 몇 배의 수익을 기록했다(최소 4배 이상이라는 후문이다). Boyu Capital, Citic Capital, CDB Capital 모두 중국계 사모펀드다. 상장폐지를 하려면 유통되는 주식들을 모두 사들여야 하는데 당시 알리바바의 재무적 부담을 이들 사모펀드들이 도와준 것이다. 일명 De-listing & Re-listing의 투자전략을 이들 사모펀드들은 취한 것이고 최근 그 투자의 결과가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알리바바가 상장폐지돼 있던 2년이라는 기간은 알리바바에게는 커다란 도약을 위해 잔뜩 움츠리고 힘을 비축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실제로 이 기간 동안 약 5조 원 넘는 규모의 100여 개 기업에 대한 투자를 전 방위적으로 수행했다. 이런 공격적 투자를 신속하고도 과감히 할 수 있었던 것도 비상장사로서 이점(공시의무 없음)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알리바바는 2012년 많은 고민과 결정을 과감하게 내렸다. 알리페이, 상장폐지, 지배구조 변화. 하지만, 이런 일련의 과감한 결정들을 통해서 오늘날의 거대한 알리바바 제국이 건설된 것이다. 2년이라는 시간은 알리바바에게는 길다면 아주 긴 기간이었던 것이다.

 

 

2) 중국 최고의 부호 마윈의 뒷주머니, 알리페이

 

오늘날 마윈 회장은 개인자산 29조 원을 보유해 중국 최고의 부호로 기록되고 있다. 마윈 회장의 알리바바 지분율은 7.3%이고, 알리바바의 시가총액이 240조 원쯤 되니까 17조 원쯤 된다. 이것으로 끝이라면 마윈은 중국 최고의 부호가 아니다. 다른 주머니에 10조 원 넘게 숨어 있다. 3년 전 야후와 분쟁을 일으켰던 문제의 기업, 바로 알리페이다.

 

알리페이는 중국판 페이팔로 중국 인터넷모바일 결제 서비스의 최강자다. 서비스의 편리함과 안정성은 알리페이의 핵심 경쟁력이다. 특히 최근 알리바바가 금융업으로 확장 중인 상황에서는 알리페이의 존재가 더 중요해졌다. 이 회사에 대한 마윈 회장의 절대적 지분율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48.5%(알리바바의 7.3%와 대비된다).

 

알리페이의 예상 시가총액은 25조 원 이상으로 추산되니 마윈 회장 개인적으로 12조 원 이상의 부가 알리페이에서 창출된다. 추후 상장 예정이니 상장 이후 주가추이에 따라 마윈 회장 개인 입장에서는 알리페이가 더 큰 자산이 될 수도 있다.

 

나스닥에 상장된 알리바바 주식 투자의 한 가지 함정이 이것이다. 마윈 회장은 알리바바보다 알리페이가 더 많은 수익을 거두고 빨리 성장하는 게 개인적으로 이득이다. 마윈 회장이꼼수를 써서 합법적 틀 안에서 부를 알리페이로 이전시키면(관계사 간 거래) 주주로서 딱히 손쓸 방법이 없다.

 

과거 야후와 알리페이를 놓고 엄청난 국가 간 분쟁을 야기시킨 전적이 있는 마윈 회장. 그가 이제 알리페이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 궁금해진다. 또 알리바바의 마윈은 이제 알리바바를 성공적으로 상장시켰으니 알리페이를 어떻게 자본시장에 데뷔시킬지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최대주주는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

2대주주는 미국의 야후이고,

창업자 마윈 회장은 3대주주에 불과하다.

3대주주라도 지분가치는 삼성전자의

이건희 회장보다 크다.

 

알리바바 성공의 주역들

 

1) 손정의

알리바바 상장으로 가장 큰 경제적 이익을 누리는 주인공은 중국인 창업가 마윈이 아니다. 최대주주는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 2대주주는 미국의 야후이고, 창업자 마윈 회장은 3대주주에 불과하다.

 

3대주주라도 지분가치는 삼성전자의 이건희 회장보다 크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14년 전 알리바바에 약 200억 원을 투자해서 상장된 알리바바의 지분 35%를 보유하고 있다. 14년 전의 200억 원은 지금 70조 원이 넘는 가치로 3500배 폭등했다. 여전히 손 회장은 알리바바의 지분을 팔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재일교포 3세 손정의의 창조와 도전의 인생역정참고.)

 

알리바바의 경영은 물론 마윈이 주도했다. 손정의 회장의 전략은 중국시장을 중국인을 앞세워 점령하게 하는 것이었다. 자신은 투자자로서 뒷짐 지고 실적 확인하고, 미국 주주 야후와 마윈이 분쟁에 휘말리면 말리고 중재하는 일만 했다.

 

 

손정의의 중국기업 활용법에서 우리는 중국에서 중국인보다 더 잘되려면 중국인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역설적인 명제를 도출할 수 있다. 서두르지 말고 좀 불안해도 기다리는 게대박비결이다. 알리바바 상장에서 마윈과 중국 전자상거래의 위력만 보고 있으면 안 된다. 손정의의 중국 공략법에 한국기업 중국진출의 길이 있다.

 

중국에서경영권을 중시하는 한국기업이 많다. 하지만 한국인이 직접 경영을 주도하는 순간 중국의 규제와 로컬 경쟁자, 애국주의에 너무 쉽게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전략적 투자자도 재무적 투자자의 옷을 입어야 안전하다. 조심스럽게 본심을 숨기고 중국인 사업가를 앞장세워야 한다. 손정의는 마윈의 멘토를 자처한다. 자신과 비전을 공유하는 사업동반자로 그를 축복하고 무한 신뢰를 보낸다.

 

2)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회장은 자신의 항저우 아파트에서 사업을 시작해 15년 만에 지극히 평범한 영어교사에서 개인자산 약 29조 원을 보유한 중국 최고의 부호로 등극했다. 그는 이제 시진핑이 말하는 차이나드림(쭝궈멍, 国梦)의 상징으로, 수많은 중국 청년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그럼 마윈은 얼마나 평범한 사람이었을까? 마윈 회장은 삼수해서 항저우사범대에 입학할 정도로 공부에 소질이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가 졸업한 초··고등학교 모두 일류와는 거리가 있었다. 집안도 내세울 것이 없었다. 알리바바 창업 직전까지도 그는 영어교사, 번역회사 사장을 하던 그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딱 하나! 외모는 아주 비범하다. 깡마른 체구에 광대뼈가 튀어나온 얼굴은 한번 보면 잘 잊히지 않는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과 대조적으로 바이두의 리옌홍 회장은 얼굴도 홍콩 배우처럼 잘생기고 명문 학부, 게다가 미국 유학에 구글 창업자들과 경쟁할 정도의 글로벌 기술력도 보유한 천재급 인재다.

 

평범한 마윈이 15년 만에 중국 최고의 부호가 됐다. 과거 중국 전통의 부호는 부동산 땅 부자, 음료회사 회장, 가전제품판매사 회장 등 전통산업에서 나왔다. 이제는 그 순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알리바바의 마윈, 텐센트의 마화텅이 선두를 지킨다.

 

마윈은 개천에서 아직은 용이 날 수 있는 쭝궈멍의 상징이다. 시진핑이 강조하는 쭝궈멍에 가장 잘 부합한다. 외국 기업과 경쟁에서 다 이기고 이제는 미국 본토에 상장하면서 업계에서 세계최대 기업이 된 셈이니, 교과서에 실릴 만한 비현실적 성공 드라마다.

 

마윈도 자신에 대해서 아주 현실적 평가를 내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성공했다면, 중국 청년의 80%는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중국 최대의 부호,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의 창업자 마윈은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만들어냈다.

 

정주용 SK E&S 해외투자검토 담당

필자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중국 CKGSB에서 MBA를 취득했다. SV인베스트먼트 투자팀장, IBK투자증권 글로벌 IB Desk의 헤드로 일했다. 상하이에 있는 Xinhua Capital에서 시니어 매니저로 재직하기도 했다. 현재는 SK E&S에서 중국 및 미국 지역 투자검토 업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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