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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ve Minds

분노의 화신 잡스, 그 에너지를 혁신에 썼다

이병주 | 153호 (2014년 5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전략, 혁신

 모두가행복감’ ‘긍정적 사고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시대다. 그러나 진정한 혁신은분노에서 나온다. ‘혁신의 아이콘인 잡스는 항상 분노했다. 일일이 명령어를 입력해야 하는 불편한 개인용 컴퓨터에 분노했고, 음질 좋은 mp3 파일을 쉽게 기기에 넣어 편하게 음악을 골라 들을 수 없던 mp3 플레이어에 화를 냈다. 이 모든 분노는 더 편하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혁신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분노는 문제를 발견하게 만들고, 높은 목표와 끈기를 지니도록 만들며, ‘차별화해 나가는 길이 될 수 있다.

 

편집자주

창조와 혁신이 화두인 시대입니다. 예술가, 문학가, 학자, 엔지니어, 운동선수 등 창작가들의 노하우는 기업 경영자에게 보석 같은 지혜를 제공합니다. 이병주 생생경영연구소장이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창조의 노하우를 소개합니다.

 

“늦기 전에 그 아이가 제게 찾아와서 커피라도 한 잔 하면 얼마나 좋을까, 늘 이런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너무 늦기 전에 말이죠.”

 

2011년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그의 생부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널리 알려졌듯이 잡스는 친부모에게서 버려졌다. 카지노 업계에서 성공한 잡스의 생부는 지난 날을 후회하며 언론을 통해 잡스에게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아들이 죽기 전에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평생 가슴에 지니고 있던 응어리를 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잡스는 죽는 날까지 그의 생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의 정자은행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라고 말하곤 했던 생각을 죽을 때까지 바꾸지 않았다.

 

잡스는 죽을 때까지 생부를 용서하지 않았다. 잡스가 공인한 전기인 <스티브 잡스>를 보면 이런 생각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책에 그의 생부 이야기는 거의 없다. 이 책의 저자인 월터 아이작슨은 잡스와 인생을 함께한 사람들을 대부분 만났다. 짧은 인연을 맺은 사람들도 직접 만나 그들과의 일화를 자세히 소개했다. 그런데도 그의 생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것은 잡스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리상담가들은 입양아들이 어릴 때는 자신을 버린 친부모를 원망하지만 성인이 되면 뿌리 찾아 나서게 된다고 말한다. 또 성공한 사람일수록 아량이 생겨서 친부모를 용서하고 과거에 대해 깔끔하게 정리하는 법이다. 그러나 잡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가로 성공했음에도 죽을 때까지 생부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는 평생 분노를 간직하고 살았다.

 

잡스의 혁신, 그 원천은 분노

아이러니하게도 매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불만스러워한 이런 태도, 생부를 용서하지 않는 바로 그런 자세가 그를 혁신하도록 만들었다. 분노가 애플에서 잡스가 만들어낸 혁신의 원천이었다.

 

잡스는 애플를 만들어 퍼스널컴퓨터(PC) 시장을 개척했고 다양한 신기술이 들어간 매킨토시를 개발해 PC의 미래를 보여줬다. 이처럼 그가 시대를 앞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현실에 분노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시중에 나와 있던 PC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컴퓨터 업계의 라이선싱 관행을 비난했다. 초기 PC는 기업용 컴퓨터의 운영 시스템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문자에 의한 명령어로 구동됐다. 명령어를 배워 PC를 활용해야 하는 운영체제의 불편함은 당시 사용자들에게 문제되지 않았다. PC가 처음 보급돼 복잡한 계산과 업무 처리를 쉽고 편리하게 할 수 있게 된 것 자체에 열광했기 때문이다. PC 업계에서도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에 주력했다. 하지만 잡스는 달랐다. 명령어를 일일이 입력해야 하는 PC가 사용하기 불편하다고 항상 짜증을 냈다. 그래서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장착한 매킨토시를 개발했다. IBM이 제시한 표준에 따라 여러 회사에서 만든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호환해 다양한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든 PC 업계의 관행을 비판했다. 잡스는 이것저것 넣어 만들어서 느리고 에러가 잘 나는 컴퓨터를쓰레기라고 욕했다. 그래서 애플은 자체 제작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만을 장착한 컴퓨터를 출시했다.

 

 

‘분노의 아이콘고 스티브 잡스

 

화를 잘 내고 툭하면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는 잡스에게 괴팍한 경영자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녔다. 남과 화합하지 못하는 이런 성격으로 인해 결국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도 쫓겨났다. 그러나 잡스가 애플에 복귀해 만든 혁신적인 제품도 그의 분노에서 나온 것이다. 아이팟을 만들게 된 경위는 이랬다. 2001년 주력 PC인 맥의 판매가 줄어들자 애플은 디지털 허브 전략을 발표했다. 맥을 다양한 디지털 기기의 허브로 활용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전략의 일환으로 음악 재생 프로그램인 아이튠스를 선보였다. 당시 여러 디지털 기기 중에서도 특히 MP3 플레이어의 컴퓨터 활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음반을 직접 듣지 않고 인터넷에서 음악 파일을 구하거나 CD에서 음악을 추출해서 MP3 플레이어로 들었다. 음악 소비에서 컴퓨터 활용이 중요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맥을 디지털기기를 사용하는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은 적절한 시도였다. 이때 잡스는 맥에 연결해서 사용할 MP3 플레이어를 여러 개 구해서 테스트했다.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마음에 드는 기기가 하나도 없었다. 결국 MP3 플레이어를 직접 개발하기로 결심했다.

 

아이폰 개발도 비슷한 스토리다. 2000년대 중반 디지털 기기들이 휴대폰 하나에 통합되는 디지털 컨버전스 현상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다. 연일 아이팟 판매가 늘어났지만 매출은 곧 꺾일 게 뻔했다. 그래서 애플은 모토로라와 합작해 아이팟 기능이 들어간 휴대폰 록커(Rokr)를 출시했다. 록커는 볼품없는 디자인에 성능도 좋지 않았다. 모토로라와 애플, 통신회사인 싱귤러의 서비스를 조합하다 보니 실망스러운 제품이 나왔다. 잡스는 또 한번 분노했다. 그리고 시장에 나와 있는 휴대폰들에 대해 불평을 쏟아냈다. 전화기들이 너무 복잡하고 형편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휴대폰을 직접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즉 기존 제품에 대한 잡스의 불만과 분노가 새로운 제품을 내놓게 만들었고 기존 비즈니스 환경에 대한 그의 반항심이 새로운 사업모델을 구축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분노는 혁신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분노는 부정적 감정이지만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분노는 특정한 상황에서 리더십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잡스처럼 화를 잘 내고 쉽게 분노하는 경영자의 특성은 부하직원들의 성과를 높이는 리더십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분노의 긍정적 측면

사람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그게(화를 내는 일) 필요하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분노는 인류의 존속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쪽이 화를 냈을 때 상대방이 잘못된 행동을 수정하면서 사회 관계가 원활하게 유지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혁명, 식민지의 독립, 인권 운동 등은 모두 억압받던 사람들의 분노로부터 불씨가 시작됐다.

 

심리학 분야에서는 분노의 긍정적 측면을 다루는 연구가 많이 발표돼 왔다. 분노는 협상력을 높인다는 연구가 여러 개 발표됐다. 쉽게 말하면 협상에서 화난 상대에게 더 많은 양보를 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분노로부터 지레 협상 가능한 수준을 낮게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략적으로 분노를 활용하면 큰 이득을 볼 수 있다. 전략적으로 감정을 조절해서 상황에 맞게 분노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감성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다.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연구도 있다. 분노가 감성 지능과 상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분석했다. 연구자들이 실험 참가자들의 감성 지능을 측정하고, 그들이 평소 화를 잘 내는 사람인지, 잘 웃고 행복해 하는 사람인지 분류했다. 놀랍게도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의 감성 지능이 훨씬 높게 나타났다. 친절하고 행복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눈치 없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분노를 활용해 협상력을 높이는, 감성 지능이 높은 사람들은 평소에도 곧잘 화를 내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분노의 순기능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가 여럿 발표됐다. 분노는 낙관주의를 가져온다. 걱정이나 공포의 감정은 장차 일어날 부정적인 사건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게 만든다. 반면 분노는 흥분과 비슷해서 미래의 피해와 관련한 정보보다 보상과 관련한 시그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한다. 분노의 감정이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이 9·11 사태 이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특정 감정 상태가 미래에 대한 시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9·11 사태에 대해 분노한 시민들이 두려움을 느낀 사람들에 비해 미래의 테러 위협에 대해 중립적으로 예측했다. 공포와 두려움을 느낀 시민들은 미래 위험을 더 크게 예측했으며, 그 결과 테러 방지 대책 등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다른 연구에서도 분노의 감정은 리스크 선호 행동을, 공포의 감정은 리스크 회피 행동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심지어 분노는 상대방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력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학자들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상회담에 앞서 이스라엘 국민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이들을 팔레스타인에 대한 증오나 적개심을 가진 그룹과 아닌 그룹으로 나눴다. 실험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경험한 사람들이 정상회담에서 건설적인 성과가 나기를 더 원했다. 이성적인 사람들에게 분노는 자극제가 돼 적대적인 상대에 대해서도 이해력을 높여준 것이다. 이처럼 분노는 긍정적인 관점을 조성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분노가 실용성을 증대시킨다는 연구가 있다. 심리 실험에서 분노를 경험한 참가자들은 보상이 있을 때 더 적극적으로 변했고, 보상이 없는 경우에는 오히려 소극적으로 행동했다. 분노가 현실적인 이익 추구를 촉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현실적인 이익이 없는 상황에서는 분노가 도움이 되지 않고 해롭다는 점이다. 즉 분노는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양날의 칼이다.

 

분노는 특정한 상황에서 리더십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잡스처럼 화를 잘 내고 쉽게 분노하는 경영자의 특성은 부하직원들의 성과를 높이는 리더십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 조건이 있다. 부하직원이 눈치 빠른 사람이어야 한다. 눈치 없는 직원들에게는 응원이나 칭찬이 더 효과적이다.

 

끝으로 분노가 창의성을 높여준다는 연구도 흥미로운 게 많다. 한 연구에서 분노는 적극적인 감정이므로 두뇌를 활성화시켜 생각을 활발하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또 다른 연구는 분노가 목표를 높여 인지적인 노력을 가능하게 해서 창의적인 성과를 낸다고 설명한다. 이 글의 주제가 분노와 혁신이므로 분노와 창의성에 관한 연구를 보다 깊이 살펴본다. 분노가 창조와 혁신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몇 가지 있다. (그림 1)

 

그림 1 분노가 혁신을 일으키는 메커니즘

 

분노는 문제를 발견하게 만든다

첫째, 분노는 문제 발견을 쉽게 만든다. 어떤 사안에 대한 불만과 불합리성을 자각하지 않으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왜 이것밖에 못해라고 분노해야 뭐가 문제인지 느낄 수 있다. 더 나아가 분노는 두뇌를 활성화시켜 일정한 틀에서 벗어나 다른 것을 보게 만든다고 한다. 물론 어떤 대상에 대한 복수심이나 적개심 같은 극단적인 증오의 감정은 그 대상에만 집착하게 만든다. 하지만 적당하게 화를 내는 것은 머리를 자극한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심리학자들(Matthijs Baas, Carsten De Dreu, Bernard Nijstad, 2011)이 이와 관련한 실험을 실시했다. 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분노했던 경험, 슬프게 만들었던 일화, 평범한 어린 시절 이야기에 대해 에세이를 쓰게 했다. 에세이를 쓰면서 참가자들은 그룹별로 분노, 슬픔, 중립적인 감정을 갖게 됐다. 그런 후 그들에게 정해진 시간 동안 환경보호와 관련한 아이디어를 생각해서 종이에 쓰게 했다.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이 도출한 아이디어를 환경 분야의 전문가에게 의뢰해 분야를 범주화했다. 50가지 분야에서 300개가 넘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결과를 비교해보니 분노의 감정 상태에 있던 참가자들이 아이디어를 더 많이 냈고, 틀에서 벗어난 사고를 했으며, 더 독창적이었다. 우선 분노 상태의 참가자들이 낸 아이디어의 개수가 더 많았다. 이들이 틀에서 벗어난 유연한 사고를 했다는 사실은 범주를 넘어서는 아이디어를 도출했다는 말이다. 슬픔의 감정에서 아이디어를 도출한 참가자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낸 후 그것과 관련된 후속 아이디어를 체계적으로 만들어냈는 데 반해 분노 그룹은 범주를 넘나들며 아예 다른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또 저자들은 전체 아이디어 중 1% 미만의 소수 견해를 독창적이라고 봤는데 분노 감정의 참가자들이 이런 아이디어를 더 많이 냈다. 즉 분노가 고정관념이나 상식에서 벗어나 다른 것을 보게 만든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연구자들은 분노가 창의성을 확대시키는 효과를 이해하려면 수동적 감정인 슬픔이나 걱정과 비교하면 된다고 말한다. 슬픔은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들어 불확실성을 불러일으킨다. 불확실성으로 인해 주변 환경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하게 되고 분석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게 된다. 자연스레 체계적으로 사고하게 되고 영역 밖의 정보에 눈을 돌리지 않게 된다. 반면 적극적인 감정인 분노는 사람의 기분을 활성화시켜 환경에 대한 확실성을 느끼게 만든다. 확실성으로 인해 주변 환경에 대한 분석과 정보 처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 결국 사고의 체계성은 떨어지나 유연성이 증가해 영역을 넘나들며 관심을 갖게 된다. 시각이 넓어져 다른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원래 잡스는 맥의 판매 증대에 관심이 있었지, MP3 플레이어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음악파일 관리 프로그램인 아이튠스를 맥에 장착해서 판매하면 나머지는 소비자 소관이라고 생각했다. 잡스는 소비자가 아이튠스를 활용해서 디지털 음악을 편리하게 소비하는지 직접 경험해봤다. 그런데 시중에 나와 있는 제품들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쓰고 싶은 게 하나도 없어. 정말 모두 후졌어.” 그는 분노했다. MP3 플레이어의 문제점이 금방 눈에 들어왔다. 메모리가 부족해서 담을 수 있는 노래가 기껏해야 20곡을 넘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복잡한 사용법이었다. 버튼을 몇 번씩 눌러야 원하는 노래를 겨우 찾아서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불편함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지만 화가 난 잡스는 문제점을 쉽게 발견했다. 그리고 MP3 플레이어를 개발하기로 결심했다.

 

지적 욕구 수준이 높은 사람들의 경우, 분노가 아이디어를 더 많이 내게 만들었고, 유연한 아이디어를 도출하게 했으며, 더 독창적인 생각을 하게 했다.

 

분노는 높은 목표와 끈기를 지니게 한다

둘째, 분노는 높은 목표를 갖게 만든다. 문제점을 발견하면 자연스레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고민하게 된다. “왜 이것밖에 못해라는 불만은나라면 더 잘할 텐데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즉 어떤 사안에서 남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를 발견했다면 당연히 그 사안에 대한 목표 수준이 더 높고 구체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목표가 높고 구체적일수록 동기부여가 잘돼 더 노력하게 되고 실천으로 이어진다는 게 조직심리학의 정설이다.

 

역시 네덜란드의 심리학자들(Gerben Van Kleef, Christina Anastasopoulou, Bernard Nijstad, 2010)이 이 주제를 연구했다. 연구자들은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우선 그들의 지적 욕구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측정했다. 참가자들에게 감자를 사용해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생각나는 대로 종이에 쓰게 했다. 그런 후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그들이 내놓은 아이디어에 대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평가받게 했다. 한 그룹은 모욕이나 비난조의 평가서를 받게 했고, 다른 그룹은 중립적인 평가서를 받았다. 즉 한 그룹은 자존심에 상처를 줘서 화를 내게 만들었다. 그런 후에 본격적인 테스트를 실시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벽돌을 활용해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적으라고 했다. 모두 700개가 넘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31가지 범주로 분류됐다. 결과를 살펴보니 지적 욕구 수준에 따라 분노가 창의성에 주는 영향이 정반대로 나타났다. 지적 욕구 수준이 높은 사람들의 경우, 분노가 아이디어를 더 많이 내게 만들었고, 유연한 아이디어를 도출하게 했으며, 더 독창적인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러나 지적 욕구 수준이 낮은 참가자들의 경우, 오히려 분노의 감정이 아이디어를 내는 데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양적 생산성, 유연성, 독창성 모두 줄어들었다. 특정한 조건, 즉 지적 욕구가 높은 사람에 한해서 분노가 창의성을 높여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작업 결과에 대해 모욕이나 인신공격을 받으면 누구나 화가 나고 분노하게 된다. 그러나 지적 욕구가 높은 사람들은 자존심에 자극을 받아 목표 수준을 높이고 지적 노력을 늘려 문제에 더 몰입하게 된다. 이런 몰입은 창의적인 성과로 나타난다. 반면 지적 욕구가 낮은 사람들은 감정에 상처를 받아 의욕이 약해지고 문제를 풀려고 하는 노력이 줄어들어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창의성을 높이는 경로는 두 가지다. 사고의 유연성(flexibility)을 높여 새로운 것을 보거나, 끈기(persistence)를 통해 새로운 생각을 도출해내고야 마는 방식이 그것이다. 유연성 향상은 문제 발견하게 하고, 끈기는 문제를 해결하게 만들어 창의적인 성과를 얻는다. 여기서 분노의 역할은 후자에 해당된다. 즉 지적 욕구가 높은 근성 있는 사람들에게는 분노가 높은 목표를 만들고 끈기를 키워 창의적인 성과를 얻게 하는 것이다.

 

다행히 잡스는 근성 있는 사람이었다. 2001 10 1000곡을 저장할 수 있는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을 출시했지만 판매가 신통치 않았다. 맥과 아이팟이 있어도 음악 소비가 쉬워진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나도는 음악파일은 음질이 좋지 않았고 양질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여전히 CD를 사서 컴퓨터에서 음원을 추출해야 하는 번거로운 작업을 거쳐야 했다. 잡스의 목표는 MP3 플레이어를 파는 게 아니었다. 소비자들이 쉽고 편리하게 음악을 소비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튠스 스토어를 만들어 소비자들이 디지털 음악을 손쉽게 다운로드 받아 즐기게 하기로 결심했다. 문제는 일일이 음반회사와 음원 공급 계약을 맺어야 하는 것이었다. 잡스는 1년 반 동안 음반업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드디어 2003 4월 아이튠스 스토어가 출범했고 아이팟 판매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아이팟의 성공은 화려한 콘셉트나 영리한 아이디어만의 승리가 아니다. 아이팟의 성공에는 아이튠스 스토어가 핵심인데 이를 론칭하기 위해 잡스는 1년 반이라는 긴 기간을 음반회사 대표들을 만나러 다녔다. 모두 부정적이었지만 잡스는 매일 찾아갔고 그들의 사무실 소파에 드러누웠다. 높은 목표와 이를 실행하는 끈기가 아이팟을 성공시켰고 아이폰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분노는 차별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셋째, 분노는 차별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왜 이것밖에 못해라는 불만은나라면 더 잘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나라면 다르게 할 텐데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더 잘하기 어려울 때 다르게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즉 분노는 높은 목표를 갖게 만들지만 차별화로도 이어진다. 잡스의 일화로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잡스와 관련한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는 그가 컴퓨터 기술을 몰랐다는 것이다. “잡스는 고객에 대한 놀라운 직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컴퓨터 기술은 별로 아는 게 없었지요.” 빌 게이츠는 라이벌이었던 잡스가 기술에 무지하다고 종종 얕잡아보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IT 전문가들은 잡스가 기술을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위대한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평한다. 엔지니어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갇혀 기존과 비슷한 제품을 내놓을 수밖에 없지만 잡스는 제로베이스에서 제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잡스가 컴퓨터 기술을 배우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자랐다. 옆집에는 HP의 엔지니어가 살았다. 잡스는 옆집 차고에서 전자제품을 조립하며 놀았다. 학창시절 수학과 공학을 좋아했고 고등학교 때는 컴퓨터 동호회 활동에 열심이었다. 대학을 중퇴한 이후에도 컴퓨터 전문가들이 지식을 교류하는 클럽에 나갔다. 그런 그가 컴퓨터 천재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나면서 컴퓨터 기술에서 멀어진 것 같다. 분노에 사로잡혀 살았던 잡스는 지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었다. 지는 걸 아주 싫어해서 이길 수 없는 곳에서는 손을 뗐다. 워즈니악은 어려서부터 미국 과학경시대회를 휩쓴 천재였고 컴퓨터 마니아였다. 잡스는 컴퓨터 기술로는 워즈니악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봤을 것이다. 회로 설계나 프로그래밍을 아무리 잘해봤자 2등밖에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컴퓨터 기술에 관심을 끊고 디자인에 몰두했다.

 

1등을 못할 바에 차라리 다른 길을 가는 잡스의 기질은 애플의 전략에서도 나타난다. IBM이 기술과 자본으로 PC 업계를 장악했을 때 애플은 IBM이 주도하는 방식을 버리고 독자적인 표준으로 제품을 만들었다. IBM을 따라 갔다면 아무리 잘해도 2등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는 게 싫어서 일부러 어려운 차별화의 길을 택했다. 잡스가 생존했을 때 애플은 이런 전략으로 성장을 이어갔다. 즉 애플은 치열한 경쟁보다 차별화로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주력 제품이 성숙기에 접어들면 후발업체와 피 튀기며 싸우지 않고 새로운 혁신을 통해 성장을 이어갔다. 아이맥이 판매 정체에 부딪혔을 때 아이팟으로 돌파했고, 아이팟 매출이 구부러지자 아이폰으로 성장을 지속시켰으며, 아이폰의 성장률이 낮아질 조짐을 보이자 아이패드를 출시해 또 도약했다.

 

좋은 분노를 조성하라!

“혁신의 유일한 원천은 짜증내고 화내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변화를 싫어한다. 화내는 사람은 익숙한 것에 길들여지지 않고 분노한다. 이때의 분노가 변화를 향한 에너지가 된다. 당신의 회사가 하는 일에 짜증내고 불평하는 사람들을 무시하지 말라. 그들이 당신의 회사를 개혁하고 혁신할 유일한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저명한 경영전문가 톰 피터스가 경영자들에게 하는 조언이다. 물론 불평분자와 혁신가는 다르다. 변화와 혁신을 위해서는 불만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행동을 일으키는 동력은 의지(willingness)와 능력(ability)이다. 둘 중 어느 하나만 빠져도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는다. 혁신가는 분노로부터 문제를 인식해 변화에 대한 의지를 갖는다. 또 분노로부터 높은 목표를 세워 끈기 있게 실천하고 이 과정에서 혁신에 대한 능력이 생긴다. 이런 좋은 분노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첫째, 반대자가 자유롭게 말하게 해야 한다. 수세기 동안 가톨릭교회는 사후에 성인으로 추대할 사람을 결정하는 시성 절차에서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 제도를 활용했다.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하는 사람을 증성관(promotor fidei)이라 불렀는데 신앙을 촉구하는 자라는 뜻이다. 그의 역할은 시성을 제안하는 측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198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400년 동안 이어지던 증성관 제도를 폐지했다. 그 후 시성은 20세기 전반에 비해 20배나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기업에서도 반대자가 입을 다물면 그릇된 의사결정이 일어날 가능성이 대폭 높아지고 혁신의 씨앗을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획일적인 조직은 의도적인 반대자 제도를 만드는 것도 도움될 것이다. 회의에서 한두 사람을 지정해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시키는 것이다.

 

둘째, 스트레스 요법은 신중하게 활용해야 한다. 많은 경영자들이 높은 목표를 주고 직원을 자극하면 성과가 난다고 생각한다. 앞의 연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스트레스로 자존심을 자극하는 것은 근성 있는 사람에게만 통한다. 다행인 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에게나 근성이 있다는 점이다. 근성이 적은 사람은 스트레스와 칭찬을 번갈아 가며 근성을 길러줘야 한다. 즉 근성을 기른 후 자극해야 혁신으로 이어진다.

 

잡스는 투병 중에도 매사에 투덜대고 짜증내는 기질을 버리지 못했다. 한번은 전문의가 그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우려 했는데 잡스는 그걸 벗겨냈다.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 쓰기 싫다고 투덜거렸다.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마스크를 여러 개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의 아내가 다독여 겨우 마스크를 씌웠다. 잡스는 죽기 전까지 분노를 버리지 못한 게 틀림없다. 그는 죽을 때까지 혁신가였다.

 

이병주 생생경영연구소장 capomaru@gmail.com

이병주 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LG경제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창의성, 변화관리, 리더십 등을 연구했다. 저서로 <애플 콤플렉스> <> <3불 전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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