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레알 한국시장 진출 성공 요인 분석
Article at a Glance – 전략,마케팅
로레알이 한국 헤어시장에 처음 진출했을 때 선보인 헤어숍 중심의 영업은 헤어디자이너들에게도, 소비자에게도 낯선 방식이었다. 로레알은 헤어디자이너들을 위한 전문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개별 헤어숍이 안고 있는 문제 해결에 동참하면서 디자이너들의 마음을 얻었다. 한국 소비자만의 니즈를 파악해 특화 제품 및 서비스를 선보이고 새로운 방식을 프리미엄 서비스로 인식하도록 만들어 소비자들의 마음도 얻었다. 관계 중심의 영업 및 고객 지향적 마케팅의 성공 사례로 볼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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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허예슬(이화여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세계 최대 뷰티(beauty)기업 로레알의 헤어케어 브랜드인 로레알프로페셔널파리와 케라스타즈가 한국에 진출한 것은 1997년이다. 당시 헤어케어 시장에는 1970년대 이미 한국에 진출해 있던 독일계 기업 웰라가 강자로 군림하고 있었고 태평양과 소망화장품, 일진코스메틱 등 국내 일부 기업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세계 시장에서는 다양한 브랜드를 통해 높은 시장점유율을 확보했지만 한국 시장에서 로레알은 후발주자였다. 웰라가 지배하는 시장에 또 다른 글로벌 브랜드가 제대로 세를 불려갈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로레알은 진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 헤어케어 시장에서 웰라와 점유율 1위를 다투는 브랜드로 자리 잡으며 단기 급성장을 기록했다. 이후 거의 매년 두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며 매출을 늘린 결과, 수년째 국내 프로페셔널 마켓 시장점유율 1위를 놓지 않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로레알이 국내에 선보인 헤어숍 중심의 영업 방식은 국내 기존 브랜드들은 물론 한국 시장 진출을 시도하는 다른 브랜드들이 가장 먼저 고민하는 전략이 될 정도로 국내 헤어시장 업계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방대하고 체계적으로 짜인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로레알 제품과 서비스에 익숙해진 헤어디자이너들은 자연스럽게 소비자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샴푸나 린스를 헤어숍에서, 헤어디자이너의 추천을 받아 구입하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던 소비자들은 로레알 제품을 프리미엄 서비스로 인식하고 지갑을 열었다. 이제는 한국 소비자 10명 중 3명이 헤어 관련 제품들을 헤어숍에서 구입한다. DBR이 로레알의 한국시장 진출 전략을 집중 분석했다.
사는 이에게도, 파는 이에게도 낯선 방식이지만…
로레알프로페셔널파리와 케라스타즈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시장 공략 루트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기존 브랜드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던 전통적인 방식의 리테일 판매다. 대형마트나 슈퍼마켓 등에 입점해서 다른 헤어케어 제품들과 나란히 진열했다가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판매하는 방식(mass market)이다. 하지만 로레알의 핵심 역량은 다른 곳에 있었다. 프랑스에 본사를 둔 로레알은 유럽 지역에서 먼저 시장점유율을 높여왔는데 이때 활용했던 전략이 점판(hair-shop market)이다. 전국에 점조직처럼 퍼져 있는 헤어숍(hair-shop)에 제품을 들이고 헤어디자이너들을 통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보다 헤어디자이너와 고객 사이의 관계가 밀접한 유럽의 경우 이 방식을 통한 매출이 헤어숍 전체 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디자이너가 직접 제품을 권유하기 때문에 전문성과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고 마트에서처럼 대체 가능한 다수 제품과 경쟁하지 않기 때문에 구매 연결 정도 및 관계지속성이 높다. 이런 방식을 통해 유럽 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해 온 로레알은 해외 다른 지역에 진출할 때마다 비슷한 방식을 적용해 왔고 이제 막 진입한 한국 시장에 대해서도 같은 전략을 구사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한국 헤어숍들은 크게 삼등분돼 있었다. 우선 일부 유명 디자이너들의 이름을 내걸고 전국적으로 프랜차이즈를 확장해가던 톱클래스 헤어숍이다. 1970∼1980년대 이미 서울 주요 지역에 지점을 갖추고 있던 이가자, 박철 등이 대표적이다. 두 번째는 규모도 크고 디자이너 숫자도 많지만 지점망을 구축한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미들클래스 헤어숍이다. 이들은 골목 상권과 단골 고객들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다른 헤어숍들과의 차별점이나 자체적인 브랜드를 갖지 못했다. 세 번째는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헤어숍이다. 운영 및 매출 규모가 작고 주로 1인 운영체제를 가진 곳들이다. 로레알이 한국 시장에 진출했던 1990년대 말에는 미들클래스 헤어숍들이 프랜차이즈에 편입되거나 새로운 브랜드 구축에 나서면서 시장 양극화가 점차 심해지던 상황이었다. 이 가운데 로레알은 톱클래스 헤어숍을 타깃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을 제품 판매처 및 협업의 대상으로 포섭한다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이들이 가진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영업이 수월할 것으로 판단했다. 또한 톱클래스로 발돋움하기 위해 자체 네트워크를 구축하거나 기존 프랜차이즈 안으로 들어가기 원하는 미들클래스 헤어숍들을 잠재 고객으로 삼을 수 있으므로 향후 시장 확대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걸림돌이 있었다. 로레알이 내세운 비즈니스 모델이 한국 헤어시장에 시도되지 않은 낯선 형태라는 점이다. ‘머리카락을 손질하러 간 헤어숍에서 샴푸나 린스 등 헤어 관련 제품을 산다?’ 한국 소비자는 대형마트나 할인점이 아닌 헤어숍에서 디자이너의 조언을 받아 헤어 제품을 구입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머리카락을 자르겠다고 온 고객에게 헤어 제품을 판매한다?’ 헤어 디자인이나 서비스 가격에만 신경 쓰던 디자이너들이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디자이너들은 마치 영업사원처럼 제품을 팔아야 한다는 것에 압박감이나 거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같은 심각한 걸림돌을 해결하기 위해 로레알은 체계적인 대책을 세우고 단계적 접근을 시도했다.
Designer
1) 판매자를 전문가로 키워라
헤어숍에서의 제품 판매가 매끄럽게 이뤄지려면 우선 디자이너들을 포섭해야 했다. 일차 타깃으로 삼았던 대형 프랜차이즈로의 입점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점주 입장에서는 제품 판매를 통해 추가로 마진을 남길 수 있으므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로레알이란 글로벌 브랜드가 주는 이점 때문에 점주들은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문제는 입점 이후였다. 매장에 제품이 깔리더라도 제품과 소비자를 중개하는 헤어디자이너들이 적극 나서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디자이너들은 스스로를 판매자로 인식하지 않았다. 헤어디자이너로서 명성을 얻고 단골 고객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그들의 최우선 목표였다. 이들에게 특정 브랜드 제품을 팔라고 강제하면 이런 목표 달성이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이들은 제품 판매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단골 고객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연스럽게 제품을 권하는 유럽 사람들과 달리 한국 사람들은 제품 판매에 나서는 것을 쑥스러워하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하는 것을 꺼리는 성향이 강했다. 괜히 단골 고객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떠나가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로레알은 대규모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으로 이런 상황에 대응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먼저 디자이너들이 스스로 로레알 제품에 익숙해지고 진심으로 좋다고 느끼게 하기 위함이다. 디자이너들이 로레알 제품에 친숙해지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써보게 하는 것이 제일이다. 그렇다고 매장 몇 곳을 골라 무료로 제품을 뿌린다면 디자이너들이 실제 사용하는지 체크할 방법이 없고 자칫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손상이 갈 수 있었다. 교육 과정에서 실제로 로레알 제품을 사용해보면서 디자이너 스스로 로레알 제품에 익숙해지고 진심으로 좋은 제품이라고 느끼는 것, 그래서 단골 고객에게도 권하고 싶은 제품으로 인식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이런 과정이 원활하게 진행된다면 헤어디자이너들은 로레알 제품을 고객에게 권해 좋은 효과를 냄으로써 오히려 단골 고객을 확보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로레알과 헤어디자이너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두 번째 목적은 교육을 통해 디자이너가 로레알 제품의 전문가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헤어 관련 제품들은 특성상 소비자의 두피 상태나 사용법에 따라 효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제품도 적지 않다. 디자이너들이 해당 제품을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고객에게 직접 시술하고 사용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디자이너에서 소비자로 넘어가는 제품의 전달 경로가 매끄럽지 않고, 디자이너가 아무리 로레알 제품을 선호하고 판매하려고 노력하더라도 소비자의 구매로 연결되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
로레알은 한국 시장에 특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결정하고 한국 디자이너들이 주로 어떤 교육에 목말라하는지 파악했다. 주요 헤어숍을 중심으로 방대한 조사를 실시, 디자이너들이 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분석했다. 분석 결과, 헤어숍이 위치한 지역이나 규모에 따라 프로그램 수요가 달랐다. 톱클래스 헤어숍에서는 다음 시즌 유행 컬러나 헤어스타일, 해외 시장 동향 등을 알고 싶어 했다. 일부 선진 디자이너들은 디자이너로서의 영감을 자극하는 예술 분야 교육을 원하기도 했다. 중소형 헤어숍에서는 고급 기술이나 최신 트렌드, 업계에서 많이 사용하는 제품 등에 관심이 많았다. 로레알은 파악한 니즈들에 부합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짰다. 그리고 각 프로그램과 로레알의 주요 제품들을 결합했다. 예컨대 요즘 뜨는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앞에서 시연해보이고 교육생들이 따라 하도록 하면서 새로 나온 로레알 제품을 사용하게 하는 식이다. 수업에 참여하며 로레알 제품에 익숙해진 교육생들은 각자 매장에 돌아가서도 해당 스타일을 시술할 때 로레알 제품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사용법을 미리 교육받는 과정 없이 제품이나 사용설명서로만 접하는 타사 제품에 비해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다. 직접 사용해본 개인적인 경험은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제품의 특징이나 장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 설명은 전혀 모르는 제품을 대상으로 할 때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전문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직접 사용을 시도하기 전인 소비자에게 제품에 대한 신뢰도 및 구매 욕구를 높여주는 요인이다.
실제로 로레알에서 마련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제품을 사용해 본 디자이너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신제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듣고 직접 연습해 볼 수 있다는 점이 디자이너들을 사로잡았다. 최신 트렌드나 해외에서 유행하는 컬러 등을 체계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다는 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로레알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해 시즌마다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는 프로그램은 금방 자리가 찰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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