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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분쟁 대응 전략

기술+법리+경제성, 다 따져봐라 때론 협상이 최고의 이익이다

김정중 | 125호 (2013년 3월 Issue 2)

 

 

A라는 특허권자가 자사의 특허를 B가 침해했다며 항의 문건을 보내왔다. 특허 분쟁에 맞닥뜨린 B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당장 변호사를 고용해 팀을 꾸려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할까? 물론 소송을 해야 한다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하지만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일단 상황 파악이다. 기술적 이슈뿐 아니라 법률적 이슈들까지 면밀히 따져 과연 A가 주장하는 것처럼 문제가 되는 사안인지 여부를 빨리 판단해야 한다. ,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소송까지 갔을 때 법원이 최종적으로 내릴 판결에 대해 예상하는 것이다. 물론 향후 분쟁의 양상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이슈가 달라지기 때문에 현재 상태에서 승산을 정확하게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소송을 진행하게 될 경우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안고 상황에 대처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감을 잡기 위해 반드시 사전 승산 분석이 필요하다. 이와 동시에 비즈니스 영향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 특허 분쟁이 발생하면 당장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을 받을지를 여러 시나리오를 적용해 예측해볼 필요가 있다. 경제성 분석도 따라야 한다. 설령 소송에서 이길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소송을 치르면서 소요될 비용 등을 고려해 전략을 짜야 한다. 협상 테이블에 앉는 건 승산 분석과 비즈니스 영향 분석, 경제성 분석을 모두 마친 후다.

 

사전 분석

1. 승산 분석

특허협상은 일반 비즈니스 협상과 달리 기술을 다룬다. 따라서 특허분쟁 발생 시 승산을 분석할 때에도 기술 측면에서 면밀한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기술 측면의 분석이란 쉽게 말해 특허 청구항(claim)을 분석하는 것이다. 우선, ① 특허 청구범위를 명확하게 해석하고 청구 범위의 한정적 요소 및 인용 문헌과의 관계를 분석해 권리 범위를 파악해야 하며, ② 위 권리 범위를 바탕으로 자사 제품에 대해 특허침해 여부를 분석하고, ③ 해당 특허의 무효성을 검토함으로써 특허분쟁에서 승산을 예측해야 한다.

 

특히 특허 침해 여부를 판단할 때는구성요소 완비의 법칙(all elements rule)’에 따라 사실 여부를 따져본다. , 특허기술이 A+B+C라는 구성요소로 이뤄져 있을 때 특허침해가 성립되려면 A, B, C 세 가지 구성요소가모두포함돼 있어야 하므로 이 점을 집중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구성요소를 해석할 때 국가별로 어떤 원칙을 따르고 있는지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함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문언적 침해(literal infringement) 원칙에 따라 구성요소를 곧이곧대로 해석해 A A'는 서로 다른 것이라 보는지, 혹은 균등론(doctrine of equivalents)적 침해 원칙에 따라 A A'를 비슷한 것으로 판단하는지 등에 대해 각국의 판례가 어떠한지를 분석해 소송에서의 승산을 예측해야 한다.

 

기술 이슈 못지 않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법률 이슈다. 특허분쟁 발생 시 기업의 특허 부서에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기술 이슈만 신경 쓰고 법률 관련 이슈는 소홀히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특허 분쟁이 일어났을 때 의외의 월척은 법률 이슈 분석을 통해 낚을 수 있다. 너무 기본적인 사항이라 미처 신경 쓰지 않았던 곳에서 특허권자가 의외로 실수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특허 연차료 미납 등이 대표적인 예다. 특허권자가 특허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특허를 등록한 나라에 일정 금액을 연차료로 납부해야 한다. 이는 특허 관리의 기본 중의 기본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하지만 관리하는 특허 수가 많고 전 세계 여러 나라에 특허를 등록했을 경우 간혹 연차료 납부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마치 일반인들이 깜빡 잊고 공과금이나 범칙금을 내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과 비슷하다. 황당한 것은 자신이 연차료를 미납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다른 기업이 자신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점이다.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까 싶지만 현실에선 종종 발생한다. 특허분쟁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기술 이슈만 파고들 게 아니라 법률 이슈 역시 기초 조사부터 철저히 수행해야 한다. 이런 조사를 통해 허점이 많이 발견되는 경우라면 분쟁 발생 시 승률이 높아지는 것은 자명하다.

 

법률 이슈 분석을 통해 상대방을 압박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방법으로 특허소진(patent exhaustion) 논리를 증명해 내는 대안도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A B라는 부품업체와 자사의 특허기술(: LED) 실시권을 허락하는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고 치자. B는 라이선싱 계약을 토대로 부품(: 디스플레이)을 만들어 C라는 업체에 공급했고, C는 이를 사용해 완제품(: TV)을 만들어 시장에 판매했다. 이 때 A CA의 특허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특허소진 논리에 따른다면 C A의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았다. A의 특허권은 B에 라이선스되면서 그 권리가 다 소진됐기 때문이다. , B A로부터 실시권을 합법적으로 얻어 자유롭게 부품을 만들 수 있게 됐고, 그런 B로부터 부품을 얻어 쓴 C A에 추가 로열티를 낼 필요가 없다는 게 특허소진 논리다. 따라서 A C에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을 때, 만약 C가 이러한 사실 관계를 입증해 낼 수 있다면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문제는 라이선스 계약이 기업 간 극도의 비밀 유지 사항이기 때문에 이를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하지만 과거의 언론 보도나 여러 가지 정황상 A B 간에 라이선스 계약이 있을 것이라 추정된다면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근거 자료를 확보하는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여야 한다.

 

2. 비즈니스 영향 분석

승산 분석 외에 분쟁으로 인해 벌어질 자사 비즈니스에 대한 영향 또한 분석해야 한다. 특허권자가 특허 침해를 문제 삼을 경우 협상 단계에서 당장은 비즈니스에 큰 영향이 없으리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소송 단계로 발전하기 이전부터 자사(침해자) 제품을 구입하는 구매자(buyer)가 특허분쟁이 해결될 때까지 구매를 중단해 타격을 입는 사례가 많다. 또 특허권자가 가처분 신청, 국제무역위원회(ITC) 제소, 세관 조치(border detention) 등의 긴급 구제 수단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통관이 금지되면 비즈니스에 큰 타격을 입는다.

 

완제품 업체에 부품을 공급하는 업체가 특허침해 소송에 휘말리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이 때문에 부품업체는 종종 완제품 업체에 특허 침해 발생 시 소송 관련 제반 비용 일체를 부담하겠다는 등의 약속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각 사 비즈니스 상황에 따라 여러 변수들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들을 잘 분석해 비즈니스에 끼칠 파급 효과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비즈니스에 압박을 느끼면 특허분쟁을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3. 경제성 분석

마지막으로 경제성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분쟁에 소요되는 비용과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고 특허권자가 요구하는 특허료가 자사의 제품 원가 및 사업 손익에 미치는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A라는 특허권자가 B가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주장을 펼친다고 치자. 하지만 B는 자사 기술이 A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확신하며, 심지어 A의 특허권을 무효화할 근거 자료까지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소송으로 치닫는다 해도 소송에서 99.9% 이길 자신이 있다. 그렇더라도 B는 무작정 소송에 들어가선 안 된다. 만약 소송에 들어갈 비용이 최소 200만 달러인데 A 100만 달러의 로열티만 주면 문제삼지 않겠다고 나선다면 승소할 확률이 높더라도 합의를 택하는 게 낫다. 비즈니스에서 어줍잖은 자존심이나 오기를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설령 분명히 내가 이길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분쟁에 소요되는 총비용을 분석해야 한다.

 

전략에 따라 분쟁에 대응하고 있더라도 경제성 측면을 고려해 소송 중에라도 합의할 여지를 남겨두는 게 현명하다. 특히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고도 비교적 적은 대가를 요구하는 특허 괴물과의 싸움에서라면 소송에서 이길 승산이 크다 하더라도 일정 수준에서 합의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승산이 높다고 무조건 법정으로 사건을 가져가는 것은 기업 경영 측면에서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분쟁 대응 전략

승산 분석, 비즈니스 영향 분석, 경제성 분석이 끝난 후 실제 협상장에서 침해자(특허 관련 소송 성립 시 피고)는 비침해 전략, 무효 전략, 회피설계 등 크게 세 가지 전략 중 적절한 전략을 택해 상황에 대처해 나가야 한다.

 

1.비침해 전략

특허를 분석할 때 초심자들이 하는 흔한 실수가 특허명세서만 분석하는 것이다. 특허를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명세서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명세서 분석만으로는 그 특허의 권리범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특허를 분석할 때 꼭 점검해야 할 사항은 출원포대(file wrapper). 출원포대란 어떤 기술이 특허 출원돼 최종적으로 특허 등록되기까지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이력서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갑순이가 개발한 기술 X。에 대해 갑돌이가 자사의 특허등록 기술인 X''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고 치자. 특허 명세서에 기록된 청구항 분석 결과 기술적으로도 X。가 X''에서 파생됐다는 갑돌이의 주장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처럼 해석된다고 가정하자. 침해자 입장인 갑순이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만약 갑순이가 갑돌이가 등록한 특허인 X''의 특허명세서뿐 아니라 출원포대까지 면밀하게 검토한다면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구할 수도 있다.

 

갑돌이는 원래 X라는 기술을 개발한 후 특허청에 출원을 했다. 특허 심사관이 X가 과연 특허로 등록될 만한 요건을 모두 갖췄는지를 조목조목 따져 보니 이전에 X'라는 선행기술(prior art)보다 진보된 것이 없는 것 같아 X를 특허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갑돌이는 심사관의 의견을 고려해 X''라는 수정 기술을 개발해 다시 한번 특허 출원을 냈다. 심사관이 이번에 다시 한번 검토해보니 선행기술이었던 X' 대비 진보성이 인정돼 X''를 특허로 인정해줬다. 결국 등록된 특허는 X가 아닌 X''가 된 셈이다. 이렇게 ‘X로 특허출원선행기술 X'로 인해 기각→X''로 수정 출원해 특허 등록에 이르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게 기록해놓은 자료가 출원포대다. 만약 등록된 특허의 결과인 특허명세서만 본다면 X''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를 알 수 없다. 하지만 특허출원포대를 참고하면 X X', X''의 관계를 한눈에 알 수 있다.

 

만약 갑순이가 갑돌이의 특허 출원포대를 분석해 X'(갑돌이가 맨 처음 특허 출원을 했을 때 등록기각 사유가 됐던 선행기술)의 존재를 알게 됐고 X。와 X'의 기술적 거리(그림1에서 ②) X。와 X'' 간 거리(그림1에서 ③)보다 가깝다는 것을 증명해 낼 수 있다면 문제는 쉽게 풀린다. 갑돌이 스스로 X。와 X''(그림 1에서 ③)는 서로 거리가 먼 기술이라는 점을 이미 자인했다는 반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갑돌이 스스로 출원 과정에서 X' X''(그림1에서 ①)가 다르다는 점을 들어 특허를 등록시켜 놓고 이제 와서 X'와 유사한 지위를 가진 X。가 자신의 특허기술인 X''와 비슷하다며 문제 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논리를 펼 수 있다. 특허 출원 과정에서 자신이 했던 말과 논리를 스스로 뒤집어 금반언(禁反言)의 원칙을 어긴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술적 이슈와 법리적 이슈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특허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문제는 출원포대가 특허청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자료인데도 불구하고 특허 청구항 분석 시 최종 등록된 특허 명세서만 분석하고 협상에 임하는 사람들이 의의로 많다는 점이다. 특허 출원포대를 분석해 특허 출원부터 등록까지의 이력과 심사과정에서 인용됐던 자료들을 일일이 분석하는 작업은 실무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략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편 출원포대를 정밀 검토하는 과정에서 비침해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다. 경우에 따라 X'의 구성으로 설계해 제품을 만들면 출원포대 금반언 원칙에 의거, 침해를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 선행기술 X'는 특허로 등록되지 않은 기술이어야 한다.

 

 

2. 무효 전략

만약 특허권자의 주장대로 침해 소지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비침해 주장이 아니라무효주장을 중심으로 전략을 정비해야 한다. 무효 전략은 특허권자의 특허가 애초에 특허가 될 수 없다는 무효 논리를 펼침으로써 특허권자(원고)를 압박하는 전략이다. 특허등록 당시에는 몰랐다가 나중에 그 특허보다 일찍 나온 선행기술이 발견될 경우 그 특허는 무효가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특허침해 소송은 일반 법원에서 이뤄지지만 무효심판 청구는 특허심판원의 심결 사항이다. 동일 특허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과 무효심판 청구가 동시에 이뤄지면 법원에선 통상 특허심판원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손해배상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특허심판원에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의) 피고가 (원고의 특허권에 대한) 무효 판결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향후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

 

선행기술 입증을 위해서는 해당 기술과 관련된 특허를 모조리 찾아보는 건 기본이고 논문 검색은 물론 유사 기술이 적용된 제품 매뉴얼 등 자료 검색의 폭을 최대한 넓혀야 한다. 실제로 이미 한참 전에 단종된 TV의 사용설명서 책자를 증거 자료로 제시해 특허 무효를 이끌어 낸 사례도 있다. 노래방 기기에서 간단한 번호만 눌러 다음 곡을 예약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한 업체 A가 자사 기술을 침해했다며 B를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B A의 알고리즘 특허 개발 시기보다 먼저 출시된 TV 제품의 사용설명서를 반박 자료로 찾아내 아예 A의 특허를 무효화시켰다. TV 가이드에는 이전엔 방영 날짜와 방영 채널 번호, 프로그램 시작 시간 및 종료시간을 일일이 입력해야만 예약 녹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을 단순화된 번호 하나만 입력해 예약하는 기능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코딩 방식을 통한 예약 녹화라는 기능상 유사성이 인정돼 A의 특허 자체가 무효화된 케이스다. 더블데크 기능을 탑재한 VCR 판매업체들이 관련 특허를 갖고 있던 특허권자로부터 집단 소송을 당했을 때에도 이보다 한참 먼저 단종된 오디오 제품의 매뉴얼을 법원에 제시해 특허 무효를 이끌어낸 사례도 있다. 오디오 테이프 두 개를 넣어 편집하는 전문 방송용 제품이었는데 두 개의 제품 간 복사하고 더빙하는 기능상 유사성이 인정돼 소송에서 이길 수 있었다.

 

이처럼 면밀하고 방대한 문헌 조사를 통해 무효 소송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솔직히 선행기술을 입증하는 작업은 ‘3D 작업이라고 불릴 정도로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원하는 자료를 찾아낸다는 보장도 없다. 따라서 무효 전략을 추진하면서는 이와 동시에 무효 판결을 이끌어낼 수 없을 경우에 대비해 로열티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특허 협상을 준비해야 한다. 이 경우 산업계 평균 정도의 로열티율을 반영해 자사 사업계획에 미지급금으로 설정, 원가에 미리 반영하는 등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물론 산업계 평균 정도의 로열티율은 협상의 최종 목표와는 다르며 협상에서는 이 금액을 마지노선으로 하고 특허료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3. 회피 설계 전략

마지막으로 고려해야 할 전략은 회피설계다. 회피설계란 특허 침해가 인정될 경우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문제가 될 만한 소지가 있는 부분들을 우회해 구성요소 설계를 변경하는 것이다. 회피 전략은 비침해/무효 전략 모두를 사용할 수 없게 됐을 때 마지막으로 고려해야 할 전략이다. 이미 완성된 기술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제품 디자인에 대한 인증이나 품질검사, 성능검사 등을 처음부터 다 다시 해야 하는 탓이다. 그러나 특허권자의 의도가 침해자의 시장 진입을 원천봉쇄하고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고액의 특허료를 요구한다거나 특허 실시권을 절대 허용하려 하지 않으려는 게 명백하다면 협상과 회피설계를 병행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특허권자의 강경한 의지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설마 지루하게 소송을 계속 끌어가겠어?” “대충 어느 정도 선에서 합의를 해 주겠지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회피설계를 차일피일 미루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회피 설계 시에는 우선 침해 주장 특허를 회피했는지에 대해 원점에서부터 다시금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특히 균등론적 침해의 소지는 없는지, 또 다른 특허의 침해 소지가 없는지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또한 회피 기술이 사업적으로 유용한지도 검토해야 한다. 특히 1) 동 개발 기술을 적용할 경우 제조에 따른 비용 증가 요인은 없는지 2) 기술적으로 진보되거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기술인지 3) 품질의 확보에 문제가 없는지 4) 개발 기간의 지연(품질 신뢰성 시험 기간 포함)에 따른 사업적 영향은 없는지 등을 분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회피설계를 하더라도 스스로 특허 침해를 인정해 디자인을 바꾼 게 아니라 새로운 모델 출시로 보여지도록 조치해야 한다. 특허권자와 협상을 할 때에도 이러한 입장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소송 시 고려 사항

소송을 위한 소송을 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도구로 소송을 택한 것뿐이다. 따라서 절차이자 과정일 뿐인 소송에 모든 자원을 집중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간혹 소송을 접할 때감히 우리한테 소송을 걸어? 더 볼 것도 없어. 끝까지 가!”라며 단편적으로 대응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협상은 이성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지 감정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결코 아니다.

 

흔히 소송과 관련해 피고만 불리하고 원고는 불리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물론 소송은 피고에게 큰 부담이다. 그러나 어느 한 쟁점에서만 이기더라도 특허 침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피고와 달리 원고(특허권자)는 소송에서 제기된 모든 쟁점들에서 다 이겨야만 한다. 그만큼 원고 입장에서도 부담을 안고 시작한다. 게다가 원고가 소송에서 패하면 아예 특허권을 상실할 수도 있어 기존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업체들에까지도 외면당할 수 있는 리스크가 있다. 상호 간 리스크를 감안해 전략적으로 접근한다면 소송이 진행 중이라도 얼마든지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

 

특히 특허권자의 특허를 침해한 게 확실하다는 판단이 섰을 때 최대한 유리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반드시 점검해야 할 사항은 특허권자와 침해자 각각의 수출국 사업 현황 및 특허 등록국 현황이다. 예를 들어 특허권자 A가 미국과 유럽, 동남아 등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데 특허는 전체 비즈니스의 80%를 차지하는 미국 시장에서만 가지고 있다고 치자. 반면 B는 주 사업 무대가 중국과 아프리카인데 미국에도 일부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다. 매출액 기준으로 중국과 아프리카에서 거둬들이는 매출액이 전체의 95%를 차지하고 미국에서 거두는 매출액은 5%에 불과하다고 가정하자. 특허분쟁은 속지주의 원칙에 따르므로 A B에 대해 미국에서 등록된 자사 특허에 대한 권리만을 주장할 수 있다. 침해자 B는 미국에서 A의 특허를 침해한 게 확실해 소송에서 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이때 B가 취해야 할 전략은 A가 소송을 통해 거둬들일 실익이 크지 않다는 점을 들어 적정한 수준에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다. 보통 손해배상액은 매출액에 일정 로열티율을 곱해 책정하는데 B가 미국에서 하는 비즈니스 자체가 워낙 작기 때문에 A로선 크게 얻을 게 없을 수 있다. 자칫 하다가는 소송에 들어가는 비용이 승소 시 기대되는 손해배상액보다도 클 수 있다. 배보다 배꼽이 클 것이라고 생각되는 소송을 A가 왜 진행하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특허 실무에서는 이런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특히 특허 기술을 직접 사업화하는 게 아니라 무수히 많은 특허를 매입해 이를 관리하고 거래함으로써 수익을 내는 특허 괴물들의 경우 제품 분석이나 침해 여부에 대한 증거도 없이 무조건 소송부터 거는 사례가 간혹 있다.

 

합의를 이끌어낼 때에는 꼭 돈으로만 보상해 줄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사가 가지고 있는 특허기술 중 그다지 효용이 높지 않지만 상대편에게는 효용가치가 높은 특허기술을 좋은 조건에 라이선스를 주거나 아예 양도하는 등의 대안도 가능하다. 협상 여하에 따라 하도급 계약처럼 비즈니스 계약을 맺어 보상해 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실질적인 합의금(지불해야 할 로열티)은 원래 특허권자가 요구했던 것보다 훨씬 낮은 선에서 합의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보상과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허 포트폴리오는 물론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특허 포트폴리오와 비즈니스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평소 분석을 통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김정중 한국라이센싱협회장 jejkim@naver.com

필자는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법학석사(LLM), KAIST에서 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변리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한국산업재산권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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