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A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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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고객, 직원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이것은 필자가 학부 시절 한 경영학과 교수님께 받은 질문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저마다의 의견을 개진했으나 교수님의 대답은 의외로 세 가지가 모두 동일하게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도 그 의견에 동의하리라 믿는다. 하지만 필자는 올해 아마존에서 MBA 프로덕트 매니저(product manager)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그 3가지가 반드시 ‘동일하게’ 중요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배움을 얻었다. 아마존은 ‘고객 강박증(Customer Obsession)’이 부동의 제1 원칙으로 정의돼 있는 철저한 고객 중심 기업이다.
아마존은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 비견되는 굴지의 테크 기업으로서 e커머스, e북,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에서 모두 전 세계1등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에는 본격적으로 진출해 있지 않아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사실 미국에서도 아마존은 애플이나 구글에 비해 자사 PR에 투자를 적게 하기 때문에 ‘숨겨진 제국(hidden empire)’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포춘 500 중 56위에 당당히 랭크돼 있어 규모 면에서는 이미 코카콜라(59위)나 구글(73위)을 앞지르고 있으며 최근 아마존의 매출액 성장률을 보면 2∼3년 안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아마존의 이러한 고속 성장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아마존이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있는 고객 제일주의가 그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아마존에서 인턴을 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개인적으로 전략 컨설턴트로 근무할 때부터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 전반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클라우드가 아닌 e커머스사업인 Amazon.com이나 e북 사업인 킨들(Kindle) 쪽에도 많은 인턴들이 지원하지만 제대로 된 IaaS(Infrastructure-as-a-Service) 클라우드 사업은 아마존이 아니면 접할 수 없기에 필자에게는 소중한 기회였다.
둘째는 온라인 서점에서 시작한 아마존이 어떻게 종합 e커머스, 디지털 콘텐츠,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연타석 홈런을 치면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그들만의 DNA를 배우고 싶었다. 필자는 그 DNA가 바로 고객 중심 경영이라고 생각한다.
고객의 수익 > 아마존의 수익
그 깨달음은 인턴십 첫날부터 시작됐다. 필자는 매니저와 어떤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하던 중 “이런 기능을 추가하면 아마존의 수익성은 떨어지지 않나”
라고 질문을 했다. 그때 매니저는 전혀 주저하지 않고 “고객이 원한다면 수익성은 포기해도 된다”라고 대답했다. 이러한 발칙한 발상이 아마존에서는 상식이다. 아마존에서는 ‘고객에서부터 시작하라. 나머지는 그 다음이다(Start with the customer and work backwards)’라는 고객 중심 경영 원칙에 대해서 끊임없이 교육받는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우리가 익히 접해 왔던 고객 만족 경영 사례들과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이 원칙이 아마존 내부에서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체계적으로 실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심에는 아마존의 독특한 성장 모델이 있다. 이는 수익 중심으로 표현되는 전통적 경영 모델과는 매우 차별적이다. 요약하면, 낮은 가격과 제품 구색이 고객 경험에 있어 가장 중요하며, 이를 통해 얻은 고객 트래픽은 규모의 경제에 의한 성장을 실현시켜서 더 낮은 가격을 담보할 수 있는 효율적 비용 구조를 만든다. 동시에 더 많은 판매자를 유인해 제품 구색을 확장시키는 선순환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 성장 모델은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현 CEO인 제프 베조스(Jeff Bezos)에 의해서 창업 초기에 고안됐고 지금까지도 별다른 수정 없이 지켜지고 있다.
아마존은 낮은 가격을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아마존은 수익은 제로로 만들더라도 더 많은 수의 고객에게 더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데 역점을 두기 때문에 5% 이하의 낮은 영업이익률을 수년째 유지하고 있다. 놀랍게도 투자자들도 그 배경을 이해하고 있기에 주가는 큰 부침이 없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이런 아마존의 저가 정책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E커머스 사업에서는 2일 배송을 모든 프라임 회원(Amazon Prime)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며 킨들 단말기의 판매가는 제조 원가와 동일하거나 그보다 낮게 책정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아마존의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인 EC2는 매년 수차례씩 가격을 낮추거나 서비스 용량을 늘려주면서 고객 경험을 극대화하고 있다.
내부 기획서의 독자도 고객
어느 정도 프로젝트에 대한 사전 조사를 끝내고 나자 매니저는 최종 결과물을 어떻게 정리할지에 대한 코멘트를 줬다. 그 매니저는 “파워포인트를 만들 필요 없이 PR과 FAQ를 작성하면 된다”였다. 아마존에서는 프로덕트 매니저가 신제품 아이디어를 검토할 때 PR/FAQ라는 독특한 프로세스를 거치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 PR이란 press release의 약자로 신제품이 출시된다면 어떤 식으로 언론에 발표가 될지를 상상해보며 기사를 먼저 직접 작성해보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한때 ‘기사에 실리기 좋은 제품이 시장에서도 잘 팔린다’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존에서 말하는 PR은 이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기사를 작성해본다는 것은 해당 제품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 독자들이 어려움 없이 그 제품의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한다는 뜻이다. 만약 제품이 주는 가치를 이해하는 데 난해한 공학적 지식이 요구된다던가, 제품의 매력이 불분명해 기사를 작성하기가 어려워지는 경우 그 아이디어는 잘못된 것이라고 아마존은 판단한다.
이러한 업무 방식은 다른 테크 기업들과 대조를 이룬다. 애플은 고 스티브 잡스(Steve Jobs) 및 조너선 아이브(Jonathan Ive)의 강력한 톱다운 리더십(top-down leadership)을 통해 신제품 개발이 추진됐던 반면 구글은 문서화 자체를 지양하고 엔지니어가 단시간에 개발한 베타 제품을 기반으로 상품성을 검증하는 편이다. 즉, 애플은 리더가, 구글은 엔지니어가, 아마존은 고객이 중심인 회사라 말할 수 있다.
FAQ(frequently asked questions·자주 묻는 질문) 작성의 경우도 PR과 유사한 배경에서 제안된 프로세스다. 아마존은 고객이 이 제품을 사용한다면 무엇을 궁금해 할지,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답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를 프로덕트 매니저가 우선 고민을 해야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따라서 FAQ를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품 사용에 대한 궁금증이 전부 해결되지 않는다면 고객의 다양한 니즈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불완전한 아이디어라는 피드백을 받음과 동시에 개발 착수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
검소함은 고객을 위한 미덕
대략 한 달 정도 걸려 아마존에 적응을 하고 나자 아마존 특유의 검소한 기업 문화에도 고객중심주의가 자리잡고 있음을 조금씩 발견할 수 있었다. 앞서 설명했듯이 아마존은 기업 자체가 효율적인 비용 구조를 확보해야만 고객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저가 전략을 추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무실 곳곳에서도 검소함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른 테크 기업들이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사무실 인테리어 및 집기들에 신경을 쓰는 반면 아마존은 꼭 필요한 곳에만 비용을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아낄 수 있는 부분에서는 철저하게 비용을 절감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아마존의 트레이드 마크인 도어 데스크(door desk)다.
인턴이었던 필자뿐 아니라 아마존의 모든 직원들은 지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문짝으로 만들어진 책상을 사용한다. 이는 제프 베조스가 창업 당시 사무실을 마련할 때 새 책상을 구입하는 대신 기존에 쓰지 않던 문짝을 뜯어다가 간이 책상을 만들었던 데서 유래됐다. 제프 베조스는 “이 도어 데스크야 말로 검소함의 상징이며 아마존은 고객에게 중요한 곳에만 돈을 쓴다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라고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올해 기준으로 임직원 수가 7만여 명에 달하는 초대형 기업이 된 지금은 도어 데스크를 따로 만들고 유지하는 데 더 큰 비용이 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도어 데스크는 아마존의 기업 문화를 설명하는 중요한 코드다.
하루는 사무실 내에 비치 돼 있는 각종 자동판매기들을 보다가 내부에 전등이 모두 꺼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론 이 판매기들은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나중에 한 동료에게 물어 보니 “내부 등이 꺼져 있더라도 직원들이 이용하는 데에는 실질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에 배선을 모두 끊고 전기 사용을 줄이고 있다”는 답을 얻었다. 아직 아마존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인턴인 내게 이러한 비용 절감은 다소 비정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비용 절감 아이디어들이 아마존의 직원에 의해 자발적으로 제안됐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부터는 이것은 정책을 넘어선 하나의 문화라고 결론지었다. 아마존의 직원들은 아마존의 성공이 고객 중심 경영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창업 때부터의 그 검소함을 유지하길 원하며 그 검소함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맺으며…
아마존에는 주주를 위한 대량의 이익 배당도 없으며 직원을 위한 고급스러운 책상도 없다. 고객이 중심이다. 그러면서도 고객, 주주, 직원들 간의 밸런스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불필요한 비용은 최대한 절약하면서도 임직원들에게는 파격적인 급여를 지급하고 있으며 주주와 직원들의 이해를 일치시키기 위해 주식 인센티브(stock incentive plan)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우리는 “고객은 왕이다”라고 외치는 기업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고객 중심 경영을 위한 철학, 시스템, 문화를 갖고 있으면서도 주주 및 직원과의 조화까지 고민하는 기업은 과연 얼마나 될까?
UC버클리 하스 스쿨은1898년에 설립된, 미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경영 대학으로 full-time MBA 과정을 포함해 총 6개의 학위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Top 7 MBA 스쿨 중 가장 적은 240명만을 매년 소수 정예로 선발하고 있으며 졸업생의 대부분인 70%가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테크 기업, 컨설팅, 금융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안성호 UC Berkeley Haas School of Business Class of 2013 luke_ahn@mba.berkeley.edu
필자는 서울대에서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했고 현재 UC 버클리 MBA 과정 2학년에 재학 중이다. MBA에 오기 전에는 올리버와이먼(Oliver Wyman)에서 테크 기업들을 대상으로 경영 전략 컨설팅을 약 4년간 수행했다. 2012년에는 Amazon 미국 본사의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부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인턴을 마쳤다. 이 외에도 국내외 3곳의 테크 스타트업에서 3년간 마케팅, 운영, 웹디자인 등의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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