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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상상력

21세기는 꿈꾸는 자의 것, 인문학적 상상력이 경영의 핵이다

신동엽 | 8호 (2008년 5월 Issue 1)
기존 경쟁우위를 방어하고 유지하는 것이 핵심 관심사이던 20세기 산업사회와 달리, 과거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상품과 사업분야, 그리고 비즈니스 모델을 신속하고 끊임없이 창출해야 하는 창조와 혁신 경쟁의 시대인 21세기 글로벌 초경쟁환경(Hyper-competition)에서 경영자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은 인문학적 상상력이다. 기존 경쟁우위를 방어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분석과 계산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경제적 사고에 의존하면 된다. 하지만 새로운 경쟁우위를 신속하고 끊임없이 창출하기 위해서는 창조와 혁신이 필요하고 이는 꿈과 상상력이라는 인문학적 사고를 갖춰야 가능하다. 

합리성에 집착하는 ‘합리적 바보’
경영이론의 전설적 거장인 스탠퍼드대학의 마치(J.G. March) 교수는 주어진 목표를 효율적으로 추구하고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완벽하게 실행하는 데 필요한 사고방식과 새로운 목표를 찾아내고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창조와 혁신의 사고방식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즉 전통적 사고방식이 냉철한 분석과 계산을 중심으로 하는 차가운 이성(reason)의 영역이라면, 새로운 사고방식은 전통적 사고의 관점에서는 일견 전근대적이고 바보스러워 보일 수 있는 꿈과 상상력, 장난스러움, 직관 등의 요소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많은 경영자가 21세기에 필요한 창조와 혁신활동도 꿈과 상상력처럼 낯설고 엉뚱한 사고방식보다는 이미 익숙한 분석과 계산에 의존하고 있다. 이처럼 합리성이라는 명목하에 분석과 계산에 기반한 전통적 사고를 새로운 분야에도 맹목적으로 적용하는 사람들을 하버드대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센(A. Sen) 교수는 ‘합리적 바보(rational fool)’라고 불렀다.
 
마치 교수는 21세기가 요구하는 창조와 혁신에는 전통적 사고방식에서 볼 때 엉뚱하고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꿈과 상상력, 직관과 같은 새로운 사고방식들이 오히려 훌륭한 역량이 될 수 있으며, 이런 새로운 사고방식을 ‘바보스러움의 기술(technology of foolishness)’이라고 불렀다. 마치 교수가 제시하는 ‘바보스러움의 기술’은 꿈과 상상력, 직관, 개방적 탐구, 지적 유희 등 인문학적 사고로 가득차 있다. 따라서 인문학적 상상력은 바로 창조와 혁신이 가치창출의 핵심 관건인 21세기 글로벌 초경쟁환경에서 모든 경영자가 갖춰야 할 필수 역량이다. 따라서 21세기 글로벌 공동체의 리더를 육성해야 하는 경영교육에서도 당연히 인문학적 역량이 강조돼야 한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연세대 경영대학의 핵심 교육목표 중 하나가 인문학적 역량을 가진 경영자 육성이다. 개인적으로도 필자는 강의에서 실제 인문학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학부와 MBA과정에서 필자가 강의하는 조직행동 과목은 매학기 강의평가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그러나 그 비결은 필자의 강의력과는 전혀 상관없다. 바로 문학, 예술, 역사, 철학 등 인문학의 힘을 적극적으로 빌려 쓰는 데 있다.
 
필자는 실제 기업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하버드 경영대학 스타일의 전통적 수업방식에 추가로, 문학 작품이나 예술작품을 적극 활용해 수업시간에 배운 조직경영에 대한 이론적 지식을 실제에 응용해보라고 권장한다. 심지어 경영학 수업인지 문화예술 분야 수업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문학작품과 예술작품을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영화로도 제작된 쥐스킨트의 ‘향수’라는 소설은 다양한 인물의 복잡하고 다양한 행동동기에 대해 어떤 경영사례보다 풍부하고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며, 특히 주인공인 그루누이라는 천재적 향수제작자는 21세기 글로벌 초경쟁 환경에서 그 중요성이 급증하고 있는 천재적이고 창조적인 인재의 내면세계와 행동동기를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 예술 분야에서 미켈란젤로나 다빈치, 모차르트, 베토벤, 피카소 등의 창조와 혁신은 어디에서 왔으며, 그 가치창출의 구체적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하는 것도 단골 토론 주제다. 이런 인물들은 어떤 혁신적인 기업들의 사례보다 창조와 혁신의 본질에 대해 훨씬 더 깊은 지식을 제공해준다. 즉 문학과 예술은 과거에 발생하거나 존재하지 않아서 실제 사례를 찾거나 경험해보는 것이 불가능한 현상들에 대해 미리 간접적으로 경험해볼 수 있는 소중한 상상력과 직관을 제공해준다.
 
한국영화가 할리우드에 맞서는 비결
역사를 이해하는 것도 경영에서 매우 중요하다. 거시 조직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긴 역사적 변동 과정에 대한 이해 없이 현재 상태에만 초점을 맞춘 근시안적 지식으로는 조직과 경영 현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불가능하다. 또 실무 조직경영에서도 거시적인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쟁우위의 확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새로운 조직경영 제도나 기법, 개념을 이해할 때는 반드시 그것이 역사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해석해봐야 한다. 역사는 경영자를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도도한 흐름 속에서 모든 경영의 의사결정과 행동의 의미를 거시적이고 장기적으로 고찰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인문학 분야다.
필자는 수업에서 수시로 학생들이 자신만의 독자적 세계관과 철학에 기반한 독립적이고 창조적 사고를 하고 이를 치밀한 논리로 정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게 하는데, 이는 21세기 글로벌 초경쟁환경의 경영자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이다. 학생들뿐 아니라 주요 기업 경영자 중에서도 자신만의 독자적 경영관과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많은데, 이런 경영자는 흔히 다른 기업들의 베스트 프랙티스를 벤치마킹하는 데 급급한다. 그러나 베스트 프랙티스 벤치마킹과 같은 모방전략은 20세기에는 통했지만 창조적 퍼스트무버(first mover)가 수익의 대부분을 독점하는 ‘승자독식(the winner takes it all)’이 게임의 룰이 된 21세기 글로벌 초경쟁환경에서는 절대 통할 수 없는 낡은 관행이다. 따라서 철학은 경영자들이 자신만의 독자적 세계관을 통해 경영현상을 이해하고 창조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독립적인 사고인(independent thinker)’으로 발전하는 데 필수적 기반이 되는 학문이다.
 
문학과 예술, 철학, 역사 등에서 배울 수 있는 인문학적 상상력은 창조와 혁신의 시대인 21세기 글로벌 초경쟁환경에서 그 중요성이 날로 급증하고 있다. 미래 사회에서 인문학적 상상력이 경제적 가치창출의 핵심 기반이 될 것이라는 점은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예에서 명확히 알 수 있다. 영화계 인사들은 한결같이 전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영화산업이 몰락한 시대에 우리나라 영화가 거의 유일하게 할리우드의 거대 자본과 경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할리우드에서도 거금을 주고 판권을 사갈 정도로 우수한 대본 집필력에 있다고 말한다. 우수한 대본은 분석이나 계산과 같은 경제적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문학과 예술이라는 인문학적 상상력에서 나온다.
 
그러나 인문학적 상상력이 영화나 음악과 같은 문화산업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창조와 혁신이 규모나 범위를 제치고 가치창출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등장한 21세기 글로벌 초경쟁환경의 모든 산업과 사회 부문에 공통적으로 필요한 역량이다. 즉 21세기는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무한한 꿈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으며 근시적 관점에 사로잡히지 않고 거시적 역사의 흐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통찰력을 가지고 있고 자신만의 독창적 세계관과 철학을 토대로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경영자, 즉 인문학적 상상력을 가진 경영자가 필요한 시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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