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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도 진화한다

제이 W. 로쉬(Jay W. Lorsch),로버트 C. 클락(Robert C. Clark) | 8호 (2008년 5월 Issue 1)
제이 W. 로쉬, 로버트 C. 클락

오늘날의 기업 지배구조는 이사회 내부에서만 논의되는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대중의 지대한 관심을 모으는 공개적 사안으로 변모하고 있다. 하지만 대중은 사외 이사에게 더 많을 활약을 기대한다. 각 기업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규제를 준수하는지를 파악하고, 경영진의 부정행위를 미연에 방지하며, 주주 가치를 극대화할 뿐 아니라 단기적인 실적 개선까지 이끌어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사들은 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전보다 더 진지하게, 더 열심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지배구조 개혁을 통해 경영진을 감시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도 얻었다. 그 결과, 지난 10년 동안 기업 이사회는 크게 발전했다.
 
하지만 엔론 사태 이후 기업 환경에서 이사회는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났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사들이 기업의 장기적 성공에 집중하는 리더 구실을 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주요 공기업들은 국가 경제 번영의 동력이다. 공기업 이사회는 국가 자산인 이 기업이 성장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역사학자인 알프레드 D. 챈들러 주니어가 지적한 대로 역사에서 한때 재계를 주름잡던 기업들이 몰락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최고 경영자(CEO)나 이사들이 자신의 기업이 당면한 장기적 위협을 예측하지 못하거나, 이에 대처하지 못할 때 기업은 쇠락의 길을 걷는다.
 
이사회는 사베인-옥슬리 법과 같은 새로운 보고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초과 근무를 할수밖에 없다. 따라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때, 이사회 구성원들의 지식 활용보다 위원회의 업무 처리를 더 중시하게 된다. 경영진과 공조하거나 이들의 올바른 의사결정을 돕기보다, 규정을 이행하고 경영진의 실수를 따지는 감시자 노릇에만 집중한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이사회는 경영진들과 생산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사회가 분기 실적에 집착하는 경향도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사회가 단기적 성과에만 집중한다면 파급 효과는 엄청나게 크다.(로버트 H. 헤이즈, 윌리엄 J. 애버내티의 ‘경기 하강에 대처하는 우리의 방식’, HBR 1980년 7∼8월호 참조) 2007년 3월 세계 최대 기업인 단체인 미국상공회의소가 기업들에게 분기 실적 목표치를 내놓지 말라고 권고했을 정도다. 실적 목표를 설정할 경우에 이사진과 경영진이 장기적 성장보다는 단기 실적 달성에 치중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0년간 기업 경영진의 총급여는 증가했지만, 평균 임기는 줄어들었다. 여러 분기 동안 기업 실적이 둔화할 때 이사회가 보이는 반사적인 반응은 대부분 다음과 같다. 곧바로 CEO를 교체하고 후임을 물색하는 것이다.
 
이사들은 내부 통제와 미래의 전략 수립이라는 임무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 이사회는 자신들과 경영진이 미래 지향적이고 전략적인 사고를 하며, 성공적인 승계를 계획할 수 있어야 한다.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은 분명 경영진의 몫이지만, 이사회는 장기적 관점에서 고위 경영자들의 제안을 검토하는 임무를 맡아야 한다. 상황이 좋을 때는 최고 경영진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게 격려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이에 창의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자극하는 것이다.
 
사외이사들이 사업의 성패와 관련한 세부사항을 일일이 파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장기 추세와 이에 관련한 추세들이 사업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예의 주시해야 한다. 사외이사들은 이사회를 통해 리더로서의 임무를 다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 방법에 대한 몇 가지 지침을 살펴보자. 우선 이사들이 일하는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이들이 안건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한지 진단해보자. 재무, 전략, 인재개발 등과 같은 핵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논의를 주도할 때 어떤 양상이 나타나는지도 알아보자.
 
이사들이 내부 통제에 지나치게 간섭할수록 기업의 장기적 계획에 집중하지 못한다. 이는 주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근시안적 사고
지난해 한 기업의 이사회는 업계 최고 전문가 5명을 이사로 임명하며 전략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위원회의 임무는 경영진과 함께 향후 업계 전망과 기업 입지를 면밀히 검토하고 이사회에 장기 전략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경영진은 이 제안을 적극 수용했다. 6개월 동안 전략위원회는 정보를 취합하고 기업 고위 경영진과 회의를 자주 개최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는 나온 것은 불과 2년 안에 비용을 억제하고 매출을 신장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에는 회사 전략의 대대적인 변화나 장기적 관점의 제안이 전혀 없지만 이사회는 신경쓰지 않았다.
 
내부 통제만 중시하고 안건 처리 미루기
새로운 규제들이 쏟아지면서 이사회 업무가 늘어났지만, 업무 처리 시간은 그대로다. 통상 대기업에서조차 이사회는 1년에 평균 대여섯 번 회의를 개최하며, 회의 기간도 기껏해야 하루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이사회가 처리해야 할 안건은 내부통제, 회계, 법무, 주주 관련 사안 등과 같은 기업지배구조 관련 문제로 넘쳐난다. 모두 이사회 차원에서 다뤄야 하는 중요 사안들이다. 그러나 리더십이나 전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2002년 사베인-옥슬리 법이 시행된 이후 감사위원회의 의무 회의 시간은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전체 이사회가 회계 및 재무 보고 관련 사안에 들이는 시간도 증가했다. 업무량이 늘어났지만 회의 빈도와 시간, 위원회 수, 이사회 내부, 이사회와 경영진 간 의사소통 방식 등은 변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사들은 시간에 쫓기면서 업무를 처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행태는 5파운드짜리 가방에 10파운드의 내용물을 쑤셔넣는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이사들은 주어진 기한 내에 위원회 업무를 끝내지 못한다. 모든 내용을 검토하지 못한 채 중간에 회의를 마치거나 화상회의 일정을 잡아 남은 안건을 처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장기적 문제에 관한 안건은 당연히 찬밥 신세다. 안건을 천천히 재고하거나, 성과 향상을 위한 프로세스 변경 방법을 고민할 시간도 없다. 이사들은 당장 닥친 사안을 처리하기에도 벅차다.
 
달라진 이사회와 경영진의 관계
이사들은 대부분의 기업 정보를 경영진에게서 얻는다. 따라서 경영진만큼 조직의 세부 사항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이사들이 보기에 경영진은 이사회의 지침을 따라 이사회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기업을 경영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 이사회가 내부 통제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경향에 따라 이사들은 고위 경영진의 결정을 꼼꼼하게 따지고, 매사를 깐깐하게 지적하며, 기획안과 보고서를 면밀히 살피면서 경영진이 부정행위를 저지르지 않는지를 확인하는 미세 경영인(micro manager)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사들이 내부 통제에 지나치게 간섭할수록 장기적 계획에 집중하기는 어렵다. 이는 주주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가시적 실적 달성에 관한 압박
이사들이 분기 실적에 집착할 경우 기업의 장기적 계획 수립은 힘들어진다. 일부 경영자는 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단기적 목표와 실적이라고 말한다. 장기 성과는 단기성과들이 모여서 이뤄진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이사회와 경영진이 분기 실적이나 신속한 제품 출시에 집착한 나머지 이머징 마켓의 신규 경쟁자 출현, 새로운 기술 개발 등과 같이 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추세를 인지하지 못하는 예가 꽤 많다.
 
기업이 전 세계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이사회와 최고 경영진이 5∼10년 후 기업의 입지에 대한 목표를 명확히 설정해 놓아야 한다. 이사의 대부분은 전략적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 회의에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할애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전술이다. “지난 분기에 기업 상황이 어땠는가?” “다음 분기에 더 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등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전술 논의는 대부분 재무 문제에 치우쳐 있다. 각자 배경이 다른 이사들이 공통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반면 기술, 마케팅 같은 전략적 역량은 큰 관심을 받지 못한다. 궁극적 목표 달성 기간이 90일마다 돌아온다고 가정하자. 이사회나 고위 경영진 모두 조직의 명확하고 장기적인 목표를 설정할 시간도, 이유도 가질 수가 없다.
 
물론 오늘날 공기업들의 덩치가 커지고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이사들이 사업과 산업의 다양한 면을 모두 아우르는 것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자동차 제조업체의 사외이사가 새로운 엔진 기술에 관해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기업의 연금 및 건강보험 의무를 이해하거나, 기업의 세계 브랜드 전략, 예를 들어 인도로 진출해야 하는지, 진출한다면 아웃소싱과 합작법인 설립 중 어떤 것이 나은지를 논의할 수 있는 능력은 갖춰야 한다.
 
이사들은 회사 내 인재 개발 및 경영진 승계 문제에 대해서도 합리적으로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이사가 이 기본 능력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DBR TIP] 강력한 이사회의 특징
 
주주 활동의 주 목적은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데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이사회의 기능 제고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2005년 미국 경제주간지 포춘이 200대 기업 이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ISS 거버넌스 서비스(구 인스티튜셔널 셰어홀더 서비스)나 그 밖의 신용평가기관이 이사회의 실적 평가를 위해 사용하는 기준들이 이사회의 효율성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석 및 선임 이사 임명, 새로운 주식교환 규정 준수 등 신용평가기관들이 선호하는 이른바 효율적 기업지배구조 지표 52개에 대한 생각을 물어본 결과, 이사들은 이 요소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보다 이사회 구성, 구성원 자질, 프로세스 등과 관련한 기준이 더욱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사들이 가장 가치를 두는 세 가지 요소는 특정 배경, 지식, 이사들의 능력이었다. 이사들이 해당 기업의 사업을 이끄는 핵심 동인과 실적을 내기 적합한 구조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지, 이사들의 경험과 배경이 기업의 사업에 적절한지 등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사들은 그 밖에 특정 활동이나 프로세스도 중요하다고 답했다. 예를 들어 이사회는 현실적인 안건을 다뤄야 하며, 회의에서 충분한 시간 동안 이를 논의해야 한다. 경영진에게 설명을 들은 후에도 논의하고 의사를 결정할 시간이 충분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사회 회의에 앞서 이사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전달하고 이사들이 미리 안건을 검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이사들은 가시적이고 외형적인 특징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를테면 이사회 규모, 사외이사의 다른 기업 이사회 참여 제한, 이사회 의장과 최고경영자의 겸임 금지, 이사의 퇴임 연령 규정, 이사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 의무화가 그런 예다. 신용평가기관들은 이 지표에 큰 가치를 두고 있지만, 설문에 참여한 이사들은 이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장기적 관점
기업의 장기적 운명을 이끄는 리더로서 이사회는 우선 이사회와 경영진이 수행해야 할 상호보완적 임무를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이사회와 경영진은 각자가 맡은 시간과 지식을 통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현실적으로 인지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이사회는 장기적 안목을 지녀야 한다. 이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경영진이 장기 계획을 마련하고 제안하면 이사회는 이에 대한 의견을 내놓아야 한다. 이사회 내부 혹은 경영진과 그 실효성에 대해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조직 내부를 꼼꼼히 통제하는 것은 이사회의 법적 의무이므로 이사들은 전략적 사안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따질 수 있다. 하지만 사업의 세부사항까지 신속하게 살펴보는 데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광범위한 지식과 깊이 있는 통찰을 통해 재무, 전략, 마케팅, 기술 등 주요 사업 부문을 살펴야 한다. 포괄적 시야를 보유해야 전체적 추세와 발생할 수도 있는 위협을 빨리 파악할 수 있다.
 
이사들은 지식과 정보로 무장하고 경영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들어줘야 한다. 이들이 기업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자극해야 한다. 이사들은 계획과 기획안을 승인하고, 최고 경영진을 교체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질 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보고를 받는다. 기업 경영면에서 빠뜨릴 수 없는 존재라는 얘기다. 따라서 이사회는 고위 경영진이 기업의 미래와 관련한 중요 사안을 논의하고, 이 문제들이 최우선 순위임을 주지시켜야 한다.
 
경영진이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이끌 뿐 아니라, 이사회 자신이 리더의 임무를 직접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미국에서는 최고경영자(CEO)가 CEO와 이사회 의장직을 동시에 맡는 것에 대한 논란이 많다. 두 직책을 분리함으로써 이사회의 독립적 리더십이 강화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2005년 미국 경제주간지 포춘이 200대 기업 이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사회의 효율성은 형식적인 구조보다 이사들 자체의 능력과 의사소통 방식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강력한 이사회의 특징’ 참조)
 
법적으로 이사회는 개별보다는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집단이다. 하지만 효율적인 이사회에서는 직함과 상관없이 사안에 따라 리더로서의 역할을 기꺼이 수행하려는 이사가 많다. 위원회 의장이든, 일반 이사든 아무라도 먼저 시작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전략위원회의 경우, 위원회 소속이 아닌 이사 한 사람이 위원회의 제안에 장기적 관점을 보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년이 아니라, 향후 10년을 바라보는 회사의 계획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 전략위원회에서 제안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던 이사들은 처음에 이 지적을 무시했다. 하지만 그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이사회는 장기적 전략 계획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이사 개개인은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필요하다면 쓴 소리도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일이 쉽지 않다. 이사회의 기본 절차를 위협하고 갈등이 발생할 경우 안건 논의, 의사결정에 필요한 시간 등 이사회의 소중한 자원을 낭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확고한 리더로서의 이사회
장기적 관점의 중요성을 인지했다면 이사들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있다. 내부 통제 기준을 준수하는 데 만전을 기하는 것은 물론, 장기적 전략을 검토할 시간도 가질 수 있다. 이제 이사회가 리더로서의 역할을 더욱 적극적으로 수행할 때 어떤 양상이 나타나는지를 살펴보자.
 
장기(long term)에 대한 정의 우선 이사회와 고위 경영진은 장기의 개념을 얼마로 설정할지에 관한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많은 경우 이사회는 기업 인수나 분할 등 개별 거래에 대한 논의가 바로 기업의 장기적 전략과 재무 문제를 검토하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장기’라는 개념의 정의는 이사회와 경영진이 향후 몇 년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자신들의 능력을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업계의 특성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기술이나 제품 혁신이 빈번히 일어나거나 진입 장벽이 낮은 인터넷 기반 사업의 경우에 장기 예측이 매우 어렵다. 반대로 혁신이 빈번하거나 급격하지 않고, 수요가 인구 증가율에 따라 변하는 소비재, 가정용 제품 산업에서는 미래를 예측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재무 문제에 대한 주도권 확보 기한이 정해지면 이사회와 경영진은 장기 재무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매출액, 순이익 증가율, 자본이익률(ROA), 투자수익률(ROI), 현금흐름, 부채비율, 배당 및 자사주 매입 정책 등에 대한 분명한 예상치를 내놓는 것이다. 이 목표치들은 기업의 전략 방향을 결정하는 지침이다. 아울러 이사회가 기업의 자산을 어떻게 분배할지에 관한 단서도 제공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대부분의 경우에 경영진이 재무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마련한다. 하지만 이사회는 이 과정에 경영진이 올바른 방향으로 자본 구조를 구축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사회가 분기 실적보다 회사 재무 구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사들은 기업의 골칫거리인 자본비용이나 부채비율을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지와 같은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전략 논의에 대한 주도권 확보 분명한 재무 목표를 설정한 후 이사회와 경영진은 목표 달성 방법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특히 이사들은 한 걸음 물러나 경영진의 미래 전망이 자신들의 광범위한 견해와 조화를 이루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를 위해 이사회가 어느 정도 숙고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필립스 이사회와 경영진은 매년 2∼3일 정도 숙고하는 시간을 갖고 향후 몇 년간 기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만 집중 논의한다. 경영진과 이사회가 의견을 나누는 것은 물론, 이사들만을 위한 시간도 마련해 이들이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해결 방안을 도출하게 한다.
 
2006년 필립스가 반도체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한 결정도 바로 이 숙고 과정에 나온 것이다. 당시 필립스는 경쟁력을 잃고 있는 반도체 사업을 중단하고, 의료 기술 부문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은 단순히 미래를 전망하는 시간이 아니다. 이사회가 회의를 개최할 때는 반드시 ‘전략 시간’이 필요하다. 매우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아무도 이 시간을 방해할 수 없다. 경영진의 제안과 이사회의 논의는 단기적 영향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 초점을 맞춘다. 양측은 업계 동향, 입지, 브랜드, 인재, 근로자 계약, 제조 및 운영비 등의 문제에 관한 기업의 경쟁 우위와 기회를 체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미 합의된 전략적 계획들은 정기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데 경영진을 얽어매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업의 우선순위 설정이나 사업 방향 변경이 필요할 때 이사들과 고위 경영진이 이를 시의적절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사회는 회의 때마다 재검토를 위한 시간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한 소프트웨어 업체의 이사회의 사례는 모범적 교본이다. 이 회사는 경쟁사의 혁신적인 신상품을 활용하기 위해 경쟁사를 인수했다. 그로부터 수개월 후에 이 신제품은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사회는 경영진에게 이 신규 사업 부문의 매출액 및 순이익 목표치를 높이게 했다.
 
로마 제국처럼 새로운 전략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인 전략 수립 혹은 재수립은 수 차례의 이사회 회의를 통해 이뤄진다. 하지만 이처럼 기나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이사가 참여했는지는 의문이다. 아마 그다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인재 개발에 대한 주도권 확보 이사들은 차기 고위 경영진을 선임할 때 자신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에 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물론 이사회가 차기 최고 경영진 선임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고 있더라도 그 앞에 다뤄야 할 의제가 산적해 있다면 인재 개발 및 최고 경영진 승계 문제를 가장 뒷전으로 밀어두기도 한다.
 
여러 해 전 한 중소기업 이사회는 당시 최고경영자(CEO)의 임기 만료를 3년 앞두고 후임자 물색을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안건을 처리하기로 한 시점에 이 회사는 다른 기업의 인수를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었기에 이 안건은 이사회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후 18개월 동안 이사회 회의 때마다 이 안건이 올라왔지만 매번 더욱 중요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결국 CEO의 임기가 불과 1년여 남은 시점에서야 이사회는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때 CEO가 내부 인사를 후임으로 선임할 것을 요구하면서 심각한 문제가 불거졌다. 하지만 외부 인사 영입을 원한 사외이사들은 두 차례 긴급 회의를 개최한 후 기존 방침을 고수하기로 결정했다.
 
CEO는 이에 반대하면서 자신이 추천하는 인사를 후임으로 선임할 것을 고집했다. CEO와 이사회는 서로 후임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사회는 외부 인사를 영입했지만, 퇴임하는 CEO와의 관계가 나빠질 대로 나빠졌으며 이 사태로 인해 나머지 최고 경영진에게도 악영향을 끼쳤다.
 
이 사례에서 보듯 사외이사들은 신임 CEO 선임에 면밀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기업은 CEO 퇴임 연령에 관한 분명한 방침을 갖고 있다. 하지만 경영 승계 과정에는 일정한 원칙이 없다. CEO들은 아무나 자신의 후임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려 한다. 내부 인사들은 경영을 승계할 준비가 충분히 돼 있지 않으며, 외부에서는 적절한 인재를 찾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사들은 현 CEO와 처음부터 CEO의 퇴임 시기, 이사회의 후임자 선임 방법 및 시기에 대해 분명히 합의해야 한다. 특히 CEO와 돈독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사회 내부에 CEO의 퇴임 후 계획, 후임자 지원 방법 등에 대해 CEO와 솔직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이사들이 존재해야 한다. 이사들 가운데 이미 퇴임을 경험한 사람이 있다면 그 경험을 CEO와 공유할 수도 있다.
 
이사들은 회사에서 누가 유능한 인재인지를 자세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경영진의 장단점과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수단과 기회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사들은 기업 내 인재들을 만나고 파악하는 데 시간을 더 할애해야 한다.
 
제너럴 일렉트릭(GE) 이사회가 실시하고 있는 정기적 현장 방문이 좋은 예다. GE 이사들은 관리자들을 현장에서 직접 만나 이들이 어떻게 근무하는지를 살펴본다. 크로톤빌에 위치한 GE 연수원에서 개발 프로그램을 교육받고 있는 사원을 만나고, 그중 가장 유능한 인재를 선발해 이사회 회의에서 발표를 맡게 한다.
 
이사회는 CEO와 인사 담당 임원과 함께 책임지고 기업의 최고 경영진에 대한 연례 심층 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CEO가 이들 임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들에 대한 개발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이들 개개인에 대한 후임자 후보는 누구인가 등이 주 내용이다. 이사회는 전략과 재무 문제에 쏟는 시간만큼 인재에 대해서도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이사회가 내부 통제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그렇게 해야만 기업의 부정행위에 따른 주주 가치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옳지 못하다. 이사회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이사회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면 기업은 쇠락하고 주주 가치는 훨씬 더 크게 훼손된다.
 
물론 이사들이 장기적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변화를 선택하든 내부 통제에 소홀할 수는 없다. 이는 법이 규정한 이사회의 의무이며, 주주와 대중이 기대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부 통제에만 지나치게 치중할 경우 이사회는 방향성을 상실한다. 다음 분기 실적이 아닌 향후 10년의 기업 성장과 번영이라는 더 큰 의무를 저버릴지도 모른다.
번역 홍정민 drew97@naver.com
 
제이 W. 로쉬는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의 인간관계학 교수, 로버트 C. 클락은 하버드 로스쿨의 석좌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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