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Studies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 연구소 인턴연구원 오창성(한국외대 영문과 4학년)씨가 참여했습니다.
기업과 사회가 함께 이익을 얻는 ‘공유가치 창출(CSV)’은 더 이상 낯설거나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이미 국내외에서 손꼽히는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 해결에 뛰어들고 있다. 동시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고 있다. CSV는 당위적이거나 도덕적인 목표가 아니라 달라진 환경에 좀 더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기업의 생존 및 번영 전략이다. 12월6일 ‘동아비즈니스포럼2011’에서 발표된 생생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글로벌 기업 사례
이날 행사에서 글로벌 기업 가운데 CSV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알려져 있는 GE와 네슬레의 사례가 발표됐다. 공성도 GE에너지코리아 사장, 그랜트 필립스 한국네슬레 상무의 발표 내용을 요약한다.
GE 2005년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이 ‘환경은 돈이다(Green is green)’는 슬로건을 내걸고 친환경 사업 부문을 크게 확장하겠다는 뜻을 밝혔을 때 당시 GE 전체 임원 200명 가운데 195명이 반대했다. 그들은 이 아이디어를 진정한 비즈니스 전략으로 보기 어렵고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환경보호를 내세워 상품을 만들어도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기 어렵고 엄청난 비용만 날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많은 우려와 반대를 딛고 GE는 2005년 5월 전격적으로 에코매지네이션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에코매지네이션(Ecomagination)’은 생태를 뜻하는 에콜로지(Ecology)의 Eco와 GE의 슬로건인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힘(Imagination at Work)’의 상상(Imagination)을 합해 만든 단어다. 기후 변화와 자원 고갈 등 지구촌이 당면한 환경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한편 이를 적극적인 사업 기회로 삼겠다는 취지가 담긴 말이다.
GE는 에코매지네이션을 통해 2005∼2009년 5년간 750억 달러의 매출을 거둬들였다. 에코매지네이션은 이제 수익원의 하나에서 벗어나 GE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환경은 돈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산산히 부서지게 만든 GE의 성공에는 네 가지 중요한 요인이 뒷받침됐다.
첫째, GE는 에코매지네이션을 단순한 구호가 아닌 비즈니스 전략의 하나로 봤다.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인 전략을 짰으며 철저한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 GE는 에코매지네이션을 새로운 성장 전략으로 공표하면서 하위 항목으로 청정기술 투자 확대, 환경사업 매출 증대, 온실가스 배출 감축, 에너지 효율 향상, 진척상황의 투명한 공개 등을 내걸었다. 그리고 이에 맞춰 에코매지네이션에 속하는 제품군을 점차 넓혔다. 2005년 출범 당시 17개였던 에코매지네이션 제품은 올 들어 100개를 넘어섰다. 또한 계량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환경적 가치를 수치로 환산해 분명한 목표를 세웠다. GE는 2015년까지 에너지 집중도를 2004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절대온실가스 배출량을 25%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두 번째로 에코매지네이션은 철저히 기술 기반 솔루션을 목표로 했다. 소비자가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와 불만을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솔루션을 제공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뒀다. 생태 보호를 앞세워 착한 기업 이미지로만 고객에게 어필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유용한 제품이 될 수 있도록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단순히 환경 친화적인 기술이 아니라 자사의 이전작은 물론 타사보다 더 나은 제품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기술력이 충분히 우위에 있지 않고 소비자가 제품에 신뢰를 갖지 못하면 환경보호라는 구호가 무색해질 뿐만 아니라 아무리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활동이라도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소비자 신뢰를 높이기 위해 제품에 대한 환경 인증 프로세스를 신설하기도 했다. 공성도 GE에너지코리아 사장은 “GE는 전 세계 5곳에 R&D센터를 두고 있다”며 “환경적 이슈에 대응하면서도 실제 돈을 벌 수 있는 제품을 만들자는 취지가 R&D센터 모두에 공유됐다”고 말했다.
세 번째로 GE는 구성원들의 합의와 공감을 이끌어내는 일에 소홀하지 않았다. 물론 최고 경영자의 추진력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데 강력한 동인이 됐다.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환경’이라는 메가트렌드(Megatrend)를 미리 읽고 친환경 사업 확장이라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초기에는 임원뿐만 아니라 GE 사내 직원들의 반대가 심했다. 환경보호라는 구호는 수익을 이끌어내기에 지나치게 식상하고 추상적이라는 반응이 우세했다. 이멜트 회장은 비용이나 원가 개념이 아닌 활동의 가치를 우선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주력했다. 제품군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이 수립되면서 시장성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싹트기 시작했고 직원들 사이에서 가치가 공유되면서 인식 변화가 촉발됐다. 실제로 제품이 생산되고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하면서 전사적인 공감대가 한층 강해졌다. 직원들의 참여가 적극적으로 바뀌면서 에코매지네이션에 힘이 붙었다. 공 사장은 “도전과제가 심각해서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방식과 인식 패턴을 바꿀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며 “지속가능한 활동이 되려면 가치적인 측면을 공유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네 번째로 GE는 모든 과정을 대중에게 공개해 광범위한 지지를 확보했다. 에코매지네이션 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GE는 제품 생산 및 판매와 관련된 모든 과정을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공표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관련 웹사이트(www.ecomagination.com)에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GE의 활동을 확인하고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열린 공간을 만들었다. 이는 에코매지네이션의 취지를 알리고 소비자들에게 인식시키며 GE 활동을 지지하도록 만드는 데 기여했다. 소비자에게 긍정적 이미지를 형성해 매출 증대를 이끌어내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됐다.
네슬레 네슬레는 인스턴트 커피의 원조다. 때는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커피의 주요 생산지인 브라질에서 커피콩이 지나치게 많이 생산되면서 가격이 폭락했다. 신음하는 농가를 두고 볼 수 없었던 브라질 정부는 식음료업체 네슬레를 방문해 남아도는 커피콩을 이용해 가공식품으로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네슬레는 지금과 거의 유사한 분무건조 기법을 발명했다. 이를 통해 분말 형식으로 보관할 수 있는 인스턴트 커피를 만들었다. 이는 브라질의 수많은 농가를 살렸을 뿐 아니라 네슬레가 인스턴트 커피라는 새로운 제품군의 시장을 여는 계기가 됐다. 네슬레는 현재 전 세계 커피 시장의 10% 이상을 점유하며 세계 제1의 식품회사로 성장했다. CSV의 전형적인 사례다.
네슬레가 전사적으로 공유하는 정신적인 가치로도 CSV는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네슬레가 추구하는 정신적 가치는 총 세 가지다. 우선 준법이다. 윤리 강령과 정해진 규칙, 도덕규범 등을 준수하는 일이다. 두 번째는 지속가능성이다. 현 세대의 필요에 의해 행하는 모든 활동은 후손들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가치다. 세 번째가 바로 CSV다. 기업은 스스로에게 이로운 일을 하면서 동시에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 이 세 가지가 네슬레 핵심 역량의 토대를 이룬다. 그랜트 필립스 네슬레코리아 상무는 “세계 각국 지사들이 본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러한 가치들이 제대로 공유될 수 있겠냐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며 “하지만 오래 전부터 축적된 CSV 경험이 전 임직원의 DNA에 박혀 있기 때문에 거리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CSV를 추진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네슬레는 크게 세 가지를 중심축으로 갖고 있다. 첫 번째는 영양 사업이다. 판매하는 제품에 영양이 부족하면 당연히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좋은 영양소를 가급적 많이 공급하기 위해 지속적인 연구 개발에 힘쓰고 이를 새 제품을 만들거나 기존 제품을 업그레이드할 때 활용한다. 네슬레는 그동안 전 세계에 공급하는 6500여 개 제품의 성분을 개선했다. 또 시장별로 필요에 맞게 제품 라인을 다르게 구축했다. 아프리카 지역으로 보내는 제품에는 그곳에서 섭취하기 어려운 특정 영양소를 강화했다. 스리랑카나 한국 등 전 세계 50여 개 나라에 보내는 제품에는 지역별로 다른 영양소를 추가했다.
두 번째는 물 사업이다. 물 없는 식품 회사는 생각할 수 없다. 작물 재배도, 제품 생산도 모두 물을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네슬레의 가치사슬을 관리하는 데 물은 필수 요소다. 네슬레는 어떻게 하면 한정된 물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지를 고민했다. 끊임없는 연구 끝에 제품 생산에 필요한 물 소비량을 평균 3.49㎥에서 3.29㎥로 줄였다.
세 번째는 농촌 개발이다. 특히 이 분야에서 네슬레는 전 세계 농가를 대상으로 대규모 CSV를 실천하고 있다. 앞서 예로 든 커피가 대표적이다. 네슬레는 커피 농가가 보다 경제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재배 방법을 교육하고 각종 시설과 기기를 지원한다. 그리고 해당 농장에서 커피를 구매한다. 농가는 원두의 품질과 수확량을 개선하고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할 수 있어 좋다. 네슬레는 믿을 수 있는 방식으로 생산된 품질 좋은 원두를 제공받을 수 있어 이익이다. 뿐만 아니라 해당 국가 소비자에게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 시장을 확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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