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 교수의 경영 거장 탐구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꾼 CEO
얼마 전 타계한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당대 최고의 CEO라는 평가를 받았다. 필자는 단순히 당대 최고의 CEO라는 수식어로는 부족하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왔다. 잡스가 헨리 포드와 더불어 19세기 후반 본격적으로 시작된 현대 기업사 100여 년을 통틀어 단연 최고의 CEO 두 사람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이 이끈 기업은 인류 전체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은 놀라운 업적을 성취했다.
많은 수익을 창출하며 기업을 크게 성장시킨 CEO는 많다. 그러나 인류의 삶과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CEO는 얼마나 될까? 포드와 잡스 두 사람은 그런 기적적인 일을 해냈다고 자타가 인정한다. 잡스는 포드가 이룬 경영의 유산을 딛고 이 세상을 포드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경지로 이끌었다.
포드와 잡스 이전과 이후의 세상
포드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전 세계 모든 산업은 급증하는 수요를 대느라 허덕거렸다. 공급 역량이 턱없이 부족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성장에 어려움을 겪었다. 포드는 1908년 하이랜드파크(Highland Park)공장에서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활용한 포디즘 생산방식을 개발해 불과 몇 년 사이에 인류의 생산성을 수십 배로 증대시켰다. 이로써 대량 생산-대량 소비로 대표되는 현대 산업사회의 문이 활짝 열렸다. 포드가 개발한 혁신적 기업경영 방식은 인류를 상품과 물자의 부족으로부터 해방시켰다. 포드의 대량 생산 혁신을 기점으로 인류의 삶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물질적 풍요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로부터 약 70년 후인 1976년 스무 살 남짓의 스티브 잡스는 친구 스티브 워즈니악(S. Wozniak)과 함께 허름한 차고에서 역사상 가장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기업인 애플을 설립한다. 잡스는 최초의 대량 생산 PC인 ‘Apple I’과 ‘Apple Ⅱ’를 잇달아 내놓았다. 큰 방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한 크기와 비싼 가격 때문에 개인은 물론 웬만한 중소기업도 가질 엄두를 내지 못했던 대형 메인프레임 컴퓨터 시대의 조종이 울린 것이다. 잡스는 PC시대를 열어 정보화 사회의 서막을 알렸다.
“여덟 살짜리 어린이도 쉽게 사용할 수 있고, 누구나 부담이 없이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싸며, 어디나 쉽게 들고 다닐 수 있을 만큼 크기가 작은 컴퓨터를 만들어 모든 사람들에게 공급함으로써 인류를 특정 공간이나 시간, 조직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해방시켜서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를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가치 창출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든다.”
당시 잡스가 가진 비전이다. 이 일관된 비전이 최근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로 이어졌고 이들 제품의 대부분이 성공했다. 즉 잡스 이전의 세상과 잡스 이후의 세상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다. 이것이 잡스를 혁명가, 이단아, 비저너리(visionary) 등으로 부르는 이유다. 포드와 잡스는 기업을 크게 성장시킨 일반적인 일류 CEO들과는 근본적으로 격이 다르다.
잡스, 21세기형 창조경영 패러다임을 제시하다
소비자의 입장을 떠나 경영 전문가의 관점에서 볼 때 스티브 잡스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포드가 개척한 20세기 산업사회형 경영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완전히 새로운 21세기형 창조경영 패러다임이다. 포드는 20세기 초 포디즘 혁신을 통해 100년 가까이 전 세계 기업들의 경영방식을 주도할 산업사회형 경영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포드식 경영 패러다임의 핵심 원칙은 규모의 경제에 기반한 효율성 경쟁, 치밀한 계획과 통제를 통한 오퍼레이션 관리, 시스템 경쟁 등이었다. 그 후 20세기 100년간 등장한 수많은 세계적 초우량 기업들의 경영방식은 대부분이 본질적으로는 포디즘을 수정하거나 변형한 수준이었다.
잡스가 1997년에 잠시 떠났던 애플에 복귀한 후 21세기에 선보인 경영방식은 기존 시장에서의 경쟁우위 유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경쟁우위를 지속적으로, 남보다 먼저, 그것도 가장 처음으로 만들어내는 데 초점을 맞춘 모델이었다. 이전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어떤 기업의 경영방식과도 근본적으로 다른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잡스가 개척한 새로운 경영방식은 모든 경계가 사라지고, 극도로 불안정하고 급변하며,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인 21세기 초경쟁 환경이 요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잡스와 애플이 선도하고 구글, 페이스북, 픽사, IDEO, 시스코, 아마존 등 21세기형 리딩 기업들이 앞다퉈 개발하고 있는 21세기형 경영 패러다임은 창조경영 혹은 상시 창조적 혁신 경영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필자는 그 핵심을 ‘상시 창조적 혁신 레이스(constant creative innovation race)’에 초점을 맞춘 독특한, 지속적 경쟁우위 추구 방식이라고 본다.
잡스가 창시한 21세기형 창조경영 패러다임의 진가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지속적 경쟁우위(sustainable competitive advantage)의 관점을 먼저 알아야 한다. 현대 전략경영의 관점에서 볼 때 기업이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경쟁우위(competitive advantage)가 아니다. 일시적으로 경쟁우위를 가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른 기업들이 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하면 되는데, 그것은 경쟁우위가 차이에서 오기 때문이다. 즉 다른 기업들과 뭔가 다른 점이 있고 그것이 성과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때 경쟁우위가 발생한다. 따라서 다른 기업들을 그대로 모방해서는 절대 경쟁우위를 가질 수 없다. 경쟁자보다 우월한 성과를 창출하고자 하는 기업은 전략이나 조직, 역량 등 경영의 모든 차원에서 항상 차별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경쟁우위를 차지하더라도 다른 기업들이 금방 따라잡아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실제로 수많은 기업들이 남들이 하지 않는 시도를 해서 ‘반짝 경쟁우위’를 보이다가 금방 수그러들고 만다. 이들이 보였던 그 경쟁우위가 일시적이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 테헤란로를 가득 메우며 기세등등했던 수많은 벤처기업 가운데 현재 살아남은 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불과 10여 년 만에 이들이 가졌던 경쟁우위가 사라져버렸다.
따라서 기업들은 경쟁자들이 쉽게 따라잡아서 단기간에 사라져버릴 단순한 경쟁우위보다는 남들이 따라오려고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지속적 경쟁우위(sustainable competitive advantage)’를 추구한다. 전략경영의 자원기반관점(resource-based view)에서는 지속가능한 경쟁우위의 원천이 되려면 그 전략적 자원이나 역량이 모방 불가능해야(inimitable) 한다고 강조한다. 즉, 경쟁자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자원이나 역량이 경쟁우위의 원천이어야 그 우위가 장기적으로 지속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가 21세기에 접어들며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에서 선보인 지속적 경쟁우위 추구 전략은 이와 전혀 다르다. 잡스와 애플은 경쟁자들의 모방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을 막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대신 잡스는 새로운 상품이나 사업, 시장, 가치 등을 끊임없이 창조해 새로운 경쟁우위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전략으로 대응했다. 한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기업은 누군가에게 덜미를 잡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초원의 풀을 찾아 유목민이 끊임없이 이동하듯 새로운 지평을 열며 옮겨 다니는 기업은 쉽게 따라잡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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