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 교수의 경영 거장 탐구
19세기 후반 현대적 산업 조직이 등장한 이후 경영학계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논란이 있다. 스태프(staff) 조직과 라인(line) 조직의 역할 분담 문제다. 교과서적 구분에 따르면 라인(line) 조직은 해당 조직의 핵심 과업 수행과 관련된 의사결정 및 실행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과 권한을 가진다. 스태프(staff) 조직은 전문 지식, 기술, 역량 등을 기반으로 라인 조직에 전문적 조언을 제공한다.
실제 조직 경영에서 라인과 스태프 간 관계는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산업, 조직, 시대에 따라 두 부문의 역할과 관계는 매우 다양하게 변화한다. 일각에서는 스태프 조직이 기업의 실질적인 가치 창출에 기여하지 못하면서 라인 조직의 성과에 무임승차하거나 사사건건 발목을 잡을 때가 많다고 주장한다. 소위 ‘스태프 무용론’이다. 하지만 그리 단순하게 생각할 사안이 아니다.
다각화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지닌 한국 재벌들은 전통적으로 스태프 조직이 신사업 진출, 기존 사업 평가, 양자의 시너지 창출 추진 등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전략 기획, 인사, 관리, 감사, 평가, 진단, 위험 관리, 대외관계 관리, 연구소, 헤드쿼터 등의 스태프 인력이 증가했다. 스태프 조직이 비대화, 관료화됨에 따라 문제가 발생했다. 비대해진 스태프 조직이 급변하는 21세기 경영 환경에 신속하게 적응하려는 현장 라인 조직의 발목을 잡는 경향이 있다는 판단에 따라 최근에는 스태프 조직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최근 헤드쿼터 스태프 인력을 10분의 1 정도로 대폭 줄인 게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스태프 조직의 역할과 영역은 무엇일까? 스태프 조직의 탄생과 역사적 변동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통해 답을 얻을 수 있다.
테일러리즘과 스태프 조직의 탄생
스태프는 원래 군대 조직의 참모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군대에서 스태프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18세기 후반이다. 당시 이탈리아 주둔 프랑스 군대에 루이 알렉산드르 베르티에(Louis Alexandre Berthier) 장군이 부임한 게 시초라는 설이 유력하다. 베르티에 장군은 군사 첩보, 정보 수집, 병참 및 작전 계획 수립 등의 업무를 총괄 전담하는 참모장(Chief of Staffs)으로 임명됐다.
이전까지는 일선 지휘관이 이런 지원 업무를 부하나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수행했다. 이들 대부분은 그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 없었다. 베르티에 장군의 참모 시스템은 나폴레옹 군대의 지휘 본부 조직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다. 나폴레옹 군대의 막강한 전투력의 기반이나 다름없었다. 그러자 프러시아 등 유럽의 군사 강국들도 앞다퉈 참모 조직을 채택했다. 이후 세계 군대 조직의 보편적 단위로 제도화됐다.
기업에서 스태프 조직을 도입한 시기는 20세기 초다. 산업 사회 탄생의 아버지로 불리는 F. W. 테일러는 현대 기업에서 스태프의 역할을 대부분 규정했다. 테일러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기간 동안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후미진 산골에 위치한 한 철강 공장에서 세계 역사를 바꿀 일련의 실험을 했다.
19세기 중반 2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한군데 모여 일하는 거대 산업 조직들이 우후죽순 탄생했다. 하지만 그에 관한 경영 시스템과 노하우는 전혀 정립되지 않았다. 각 기업들은 경영자 개개인의 임의적 판단에 의해 주먹구구(rule of thumb)로 운영되고 있었다. 엄청난 투자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은 극도로 낮았다. 이에 당시 기업가들은 노동자들에게 긴 시간의 과도한 노동을 요구했다. 그 결과 19세기 후반부터 심각한 노동착취 및 깊어가는 노사 갈등이 나타났다.
철강 공장의 고급 엔지니어였던 테일러는 개별 노동자나 공장마다 같은 일을 하는 방식이나 도구가 천차만별이며, 생산성의 편차도 매우 크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테일러는 같은 공정, 도구, 기계설비를 이용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반복적으로 시도한 뒤, 그 결과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최고의 생산성 향상 방안을 찾았다.
10여 년간에 걸친 이 실험이 바로 세계 산업 역사를 바꾼 ‘시간과 동작 연구(Time and Motion Study)’다. 이전까지는 상상도 못하던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며 혁신적인 시도였다. 테일러는 이 연구를 통해 각 과업마다 최적의 수행 방식, 도구, 공정이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The One Best Way’라 불렀다. 바로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의 시초다.
테일러는 개별 노동자나 공장이 주먹구구식으로 선택한 과업 수행 방식을 임의로 사용할 게 아니라 과학적으로 발견된 ‘The One Best Way’를 획일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라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성과급 제도를 통해 생산성 향상의 과실을 경영자와 노동자가 공유하면 노사 공동 번영(Co-Prosperity)이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제시한 방식을 ‘과학적 경영(Scientific Management)’이라고 불렀다. 테일러는 자신의 방법이 경영을 주먹구구의 영역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옮겨놓을 거라고 장담했다.
결과는 테일러의 호언장담 이상이었다. 20세기 초 테일러의 과학적 경영 방식을 채택한 공장 중에는 단 하루 만에 열 배 이상의 생산성 증가를 경험한 사례도 있었다. 그의 방식은 엄청난 성과를 거두며 급속히 확산됐다. 현대적 기업 경영 체제와 학문으로서의 경영학이 테일러를 계기로 탄생한 셈이다. 그의 과학적 경영은 테일러리즘으로 불린다. 이는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제품 생산을 택한 자동차 왕 헨리 포드(H. Ford)의 포디즘과 함께 20세기 현대 산업 사회를 탄생시킨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테일러의 과학적 경영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경영진의 업무가 그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테일러 이전의 경영진은 단순히 근로자들에게 업무를 배당하고 그 수행 과정만 감독했다. 하지만 이제 경영진의 업무는 시간과 동작 연구의 수행, 이를 통한 베스트 프랙티스의 발견과 실행, 이를 위해 필요한 과학적 교육 훈련, 적절한 적성을 가진 인력의 과학적 선발 등으로 급격히 확대됐다. 이런 새로운 업무들은 고도의 계량적 지식과 시스템 디자인 역량 등이 필요했다. 일선 관리 감독만 하던 기존 경영진이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수준의 과제였다.
따라서 테일러는 경영진을 일상 업무의 관리 감독을 담당하는 ‘일선 관리자(first-line supervisors)’와 시간과 동작 연구와 같은 고도의 전문적 업무만 전담하는 ‘기능적 감독자(functional foremen)’의 두 유형으로 분리했다. 기능적 감독자가 현대 기업의 스태프 조직의 시초라 할 수 있다. 테일러의 과학적 경영에서 새로 탄생한 기능적 감독자는 라인 관리자와 달리 일상적 과업 수행의 권한과 책임은 지지 않는다. 대신 베스트 프랙티스의 지속적인 발견과 개선, 공정 라인 설계 및 변화, 생산 계획 수립, 직원 교육 훈련 및 선발 시스템 설계 등 라인 관리자들의 한계를 보완하고 전문적 조언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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