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오디션 프로그램 전성시대다. 지상파 방송 3사와 케이블채널이 방영 중이거나 올해 방영 예정인 일반인 대상 오디션 프로가 9개나 된다고 한다. 일반인 ‘벼락스타’의 탄생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벼락공부의 휘발성이 크듯이 벼락스타의 롱런 가능성도 높지 않다. 반짝 달아올랐다가 식는 ‘냄비스타’에 그치곤 한다. 대형 신문사 문화부장이 한 시간을 기다려 인터뷰를 해야 했다는 한 오디션 스타의 인기는 ‘온 에어’의 불이 꺼지자 스타덤에 오를 때의 속도만큼 빨리 식어버렸다.
이 변화의 진정한 승자는 방송사나 제작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방송사의 수익은 출연하는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스타의 파워(Star power)와는 양의 상관관계, 외부 자원공급자인 이들 스타의 교섭력(bargaining power)과는 음의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한다. 방송사의 수익을 극대화하려면 시청률 파워가 강하면서 교섭력이 약한 외부 자원공급자를 찾아야 한다. 특히 요즘처럼 매체의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는 스타의 교섭력이 극대화된다. 결국 천정부지로 치솟은 몸값을 주고 나면 방송사는 남는 게 별로 없다. 경쟁사에 동시간대 시청자를 뺏기지 않았다는 작은 위안에 만족해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 고객 관점에서 이런 대형스타가 주는 만족은 제한적이다.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불필요한 과잉 서비스가 존재할 수 있다. 여러 채널에 동시에 얼굴을 들이대는 ‘그 밥에 그 나물’ 스타들에 질려 채널을 돌려버린 ‘비고객(non-customer)’도 적지 않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설명한, 시장의 판도를 무너뜨리는 ‘파괴적 혁신(destructive innovation)’의 토양이 형성된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바로 이 틈을 노렸다. 대형 스타 대신 출중한 끼와 재능을 지녔으면서도 교섭력이 전무한 일반인을 외부 자원공급자로 끌어들였다. 이들의 낮은 인지도는 인생 스토리와 공개경쟁이라는 방식을 통한 극적 요소와 재미로 극복했다. 시청자 투표 방식을 도입해 고객인 시청자가 제작과정에 참여(co-production)하고, 프로그램의 가치를 공동창출(co-creation)하게 했다. 이런 식으로 낮은 수준의 고객 수요(low-end demand)를 충족시키고, 기존 서비스가 놓친 비고객을 확보하며 시장에 진입했다. 그리고 시청률을 끌어올렸다. 60대 이상 중장년층까지 ‘위탄’ 출연자를 위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날리는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혁신은 기업 수익모델까지 바꾼다. 영국과 미국의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비는 기존 드라마나 쇼 프로그램의 절반 정도로 알려져 있다. 수입은 막대하다. 미국 폭스네트워크의 경우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 시리즈의 시즌1, 2로만 2억 달러의 광고수입을 올렸다. 한 통에 정보이용료로 100원씩 받는 문자메시지 수입도 짭짤하다. 이 수입을 불우이웃돕기에 쓰는 ‘위탄’의 경우 1회 방송에 170만 건의 문자메시지가 온 적도 있다. 음원 판매 수입, 각종 캐릭터 및 사업권 판매 등과 관련한 부수입도 적지 않다. 방송 포맷이 해외로 수출됐던 영국의 공개오디션 프로그램인 ‘팝 아이돌(pop idol)’은 한때 수입의 절반을 문자메시지로 벌어들였다고 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혁신이 더 놀라운 이유는 끊임없이 진화하며 기존 시장을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한참 뜨고 있는 스타보다 교섭력은 낮지만 재능은 이미 검증된 기존 가수들이 공개경쟁을 하는 ‘나는 가수다’가 대표적 사례다. 이들이 경연을 위해 펼치는 최고급 공연에 시청자들은 열광하고 있다. 소비자의 낮은 수준의 수요를 만족시키던 일반인 대상 오디션 프로그램이 높은 수준의 고객수요(high-end demand)까지 만족시키는 진화된 포맷으로 발전하며 기존 시장의 지배자를 위협하고 있다. 이는 심야시간대로 밀렸던 가창력 가수들이 주말 황금시대로 돌아오게 하는 계기가 됐다.
단, 혁신에는 함정이 있다. 공개 오디션 형식이라고 해서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신입 아나운서를 선발하는 한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저공비행을 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혁신이 고객이 아닌 공급자 관점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재능이 뛰어난 아나운서를 뽑는 일이 방송사 내부에서는 중요할지 몰라도 시청자에겐 아니다. 이득이 없는 일을 위해 기존 행동을 바꿀 고객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혁신이 이렇게 실패했다. 존 고빌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경고한 ‘혁신의 저주(curse of innovation)’가 어른거리는 대목이다.
박 용 기자 parky@donga.com
박용
- 동아일보 기자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부설 국가보안기술연구소(NSRI) 연구원
-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정책연구팀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