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Z Consulting
편집자주
트리즈(TRIZ)는 창조적 문제 해결 이론(Theory of Inventive Problem Solving)을 뜻하는 러시아어 ‘Teoriya Resheniya Izobretatelskikh Zadatch’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입니다. 모든 발명 과정에는 공통되는 법칙과 패턴이 있다는 믿음 하에, A분야 문제에 대한 해법을 B분야에서의 문제 해결책을 참조해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TRIZ입니다. 쉽게 말해 ‘재발명을 통한 문제 해결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년간 TRIZ 컨설팅 외길을 걸어 온 송미정 박사가 TRIZ를 활용해 현장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실전 솔루션을 제시합니다.
조지 이스트먼이 이스트먼 코닥을 설립(1888년)해 사진의 대중화 시대를 열기 전, 사진 촬영은 너무 복잡해 전문 사진가들이나 극소수의 열성적 아마추어들 외에는 엄두조차 내기 힘들었다. 당시 사진기로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는 감광성 물질을 직접 유리판 위에 부어 한장 한장 음화(negative)를 준비하고 인화지도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결국 카메라 조작부터 현상, 인화에 이르는 전 과정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해야 했기 때문에 당시 사진은 전문가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다. 이스트먼은 이 같은 상황에서 롤 필름(1884년)과 코닥 카메라(1888년)를 개발, 아마추어들도 손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이스트먼은 당시 무겁고 깨지기 쉬운 유리 건판을 대체할 대안을 고심하는 과정에서 롤 필름을 개발했다. 그는 감광 필름과 홀더를 이용한 롤 필름 시스템을 구상했다. 과거에는 사진을 찍기 위해 건판(dry plate)이든 습판(wet plate)이든 한장 한장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이스트먼은 이런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여러 장의 필름을 자동적으로 ‘움직여’ 전체 필름에 이미지를 찍은 후 필름 롤만 교환하자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필름을 한장 한장 교환하는 대신, 옆으로 움직이게 한다는 발상이 롤 필름을 탄생시킨 것이다.
필름을 좀 더 일반적인 말로 표현하자면 감광(photosensitization·빛을 쬐어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현상)부라고 표현할 수 있다. 롤 필름이 탄생하기 전 감광부의 변천사는 주로 재질 측면에서의 변화였다. 은판에서 유리판, 종이·젤라틴 건판 등 시간이 지날수록 감광부 재질은 더욱 유연해지고 가벼워지며 투명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감광부의 재료는 계속 발전했지만 한 장씩 처리하는 방식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당시 사진가들은 이점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이스트먼만이 여러 장의 감광판을 도입하는 사진술의 가치를 알아봤다. 당시 사진사들이 여러 장씩 처리하는 방법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이유는 당시의 사진 산업이란 사진관에서 전문가들이 한장 한장씩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것이라는 상식이 지배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스트먼은 아마추어 사진가로서 밖으로 다니며 사진을 찍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당시 기자들도 현장의 화면을 생생하게 담아올 경우 책이나 신문 등에서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취급하기 쉬운 사진술에 대한 니즈가 있었다.
필름은 기존 유리판보다 유연하고 역동적인 특성을 갖고 있었다. 필름도 한층 가벼워져 이동성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있었다. 필름 이동 기구를 도입해 간단하고 쉬운 조작만으로 상이 찍히지 않은 새로운 필름을 움직여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당대엔 그야말로 혁신 중의 혁신이었다. 역동화는 진화의 올바른 방향이었고, 역동화를 위해 당시 최선의 선택은 가볍고 여러 장을 붙여서 만들기 용이했던 ‘셀로판’이었다.
롤 필름의 주 재료는 셀로판이었다. 하지만 셀로판의 성질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셀로판을 필름으로 쓸 때 어떤 문제가 생길지 금세 간파할 수 있었다. 당대 소재 산업의 성숙도는 높지 않아서 셀로판이 최신 기술이었지만, 셀로판은 열이나 습도에 극히 민감하고 기계적 강도가 그다지 높지 못했다. 심지어 습도계로도 사용될 정도여서, 조금 과장하자면 비 오는 날이나 흐린 날에는 필름이 우글거려 이미지가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셀로판을 사용할 때에만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었다. 필름을 생산하는 공정에서도, 필름을 생산하고 보관하는 공정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일어났다. 이러한 당시의 상황을 트리즈(TRIZ)의 기술적 모순으로 형식화해 보면 ‘롤 필름 재료로 셀로판을 사용하면(approach), 여러 장을 바꿔가며 편리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으나(good), 열이나 습도가 롤 필름을 우글거리게 해 상이 필름에 제대로 맺히지 않으므로 이미지의 품질이 나빠진다(bad)’로 요약할 수 있다. 이 같은 기술적 모순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이스트먼은 아무리 좋은 본인의 발명도 세상에 내놓지 못했을 것이다. 롤 필름 카메라라고 하는 것도 아예 실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당시 사진 기사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셀로판은 이미지의 질을 떨어뜨리는 몹쓸 물건이었다. 그들은 무거운 유리로 만든 사진판을 갈아 끼우는 아주 약간의 번거로움 정도는 충분히 감수해야 할 당연한 작업이라고 여겼다. 이스트먼의 아이디어는 사진기사들의 성역을 감히 침범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롤 필름이 우글거린다는 게 매우 좋은 공격 포인트였다.
그러나 이스트먼과 그의 조력자들은 셀로판 필름이 우글거리지 않도록 ‘반작용’을 가하는 기구물을 셀로판 필름에 부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이는 DBR 79호 ‘밥솥 & 면도날, 통찰의 노하우는 비슷하다’에 소개된 밥솥과 면도기의 해결안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바로 셀로판 필름을 통째로 종이에 붙여서 쓰는 방법이었다. 종이라는 저렴하고도 강한 보강재가 셀로판을 보관할 때, 혹은 셀로판으로 사진을 찍을 때 우글거리는 것을 막아준다. 이 보강재는 필름을 현상할 때는 필요가 없으므로 이 때 제거했다. 이 아이디어는 표층분리 필름(stripping film)이라고 불렸다.
이것만으로는 롤 필름이 쭈글쭈글해지는 것을 막기 부족했기 때문에 롤 필름을 잘 펴주고 이동시켜주는 필름 롤 홀더도 개량을 거듭했다. 바로 두 개의 필름 릴과 두 개의 가이드 롤러로 구성된 홀더다. 필름이 늘어나 초점면을 벗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필름이 항상 팽팽하게 당겨지는 반작용을 가할 수 있도록 한쪽 필름 릴에 정지장치를 달고 다른 쪽 릴에는 스프링을 달아 필름이 계속 팽팽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했다.
기술은 시대와 장소, 목적에 따라 천차만별로 변화한다.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해 밥솥에 ‘압력’을 가한다거나, 털을 깔끔하게 깎기 위해 ‘가로대’를 설치한다거나(DBR 79호 참조), 셀로판의 우글거림을 막기 위해 ‘보강재’를 설치하는 등 구체적 아이디어들은 산업마다 모두 다른 모습을 갖는다. 그러나 그 본질은 모두 유해한 작용에 대한 ‘반작용’의 도입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본질은 산업계와 시대와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통용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다음 세대를 위한 기술 진화의 첫 걸음에서 난관에 부딪히는 상황도 기술적 모순으로 이해할 수 있고, 다른 분야의 해결안들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다. 즉, 개별 문제 차원에서 현재 발생한 기술적 모순뿐 아니라 기술 진보 역사의 큰 흐름에서 발목을 잡는 기술적 모순도 같은 방식으로 동일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질문, 답변, 연관 아티클 확인까지 한번에! 경제·경영 관련 질문은 AskBiz에게 물어보세요.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Click!
회원 가입만 해도, DBR 월정액 서비스 첫 달 무료!
15,000여 건의 DBR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