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GM, K-마트, 폴라로이드 등 한때 세상을 지배했던 많은 거대기업들이 무너지고 애플 등 전혀 예상치 않았던 경쟁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전통적인 산업 간의 경계도 희미해지고 있다. 거의 파산 지경에 이르렀던 코닥과 같은 회사들이 기적처럼 회생하거나 과거 혁신적이라고 인정되던 3M, 존슨앤드존슨 같은 회사들이 여전히 시장을 선도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이는 시장에서 생존을 위한 경쟁의 규칙이 끊임없이 바뀌고 있으며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한 환경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즉 전통적인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경쟁자가 누구인지를 정의하거나 예측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뜻한다. 이 같은 시장 환경에서 최근 제품, 서비스 융합 모델이 생존의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과거처럼 상품이나 서비스를 엄밀하게 나누는 이분법적인 접근으로는 시장의 불확실성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품의 서비스화’나 ‘서비스의 제품화’와 같은 유형 분류나 제품 중심의 서비스 통합, 서비스 중심의 제품 통합, 제품-서비스의 완전 통합과 같은 접근방법이 대표적이다. 이 글에서는 서비스와 제품-서비스 통합에 대한 기존 접근방법과 한계를 검토하고, 제품-서비스 통합을 통한 새로운 성장전략 프레임워크를 제시하고자 한다.
전통적 서비스 개념의 한계
서비스는 전통적으로 ‘결과물이 유형적 제품이나 구조가 아닌 모든 경제적 활동’ ‘어떤 한 경제 주체의 상태 및 환경이 다른 주체에 의해서 바뀌는 것’ ‘어떤 사람이 상대방에게 제공할 수 있는 활동이나 혜택으로 무형적이며 소유될 수 없는 것이며 물리적 생산물과 결부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 ‘공동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가지고 고객을 위하여 수행되는 소멸성의, 그리고 무형성의 경험’ 등으로 다양하게 정의돼 왔다. 즉, 제품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서비스가 정의됐다. 이러한 전통적인 서비스에 대한 정의는 제품을 기준으로 서비스가 가진 특징을 상대적으로 정의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대표적인 서비스의 특징이 ‘생산과 소비의 동시성(simultaneity)’ ‘서비스 결과의 무형성(intangibility)’ ‘서비스 간의 이질성(heterogeneity)’ 등이다. 예를 들어 제품과 비교했을 때 서비스는 생산되는 즉시 소비돼야 하므로 저장할 수 없고, 제품과는 달리 만질 수도 없다. 서비스를 받는 사람마다, 제공되는 서비스마다 이질적인 특징도 있다.
이런 전통적인 서비스 정의는 서비스 자체의 특수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지식기반 경제에서의 서비스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몇 가지 측면들을 간과하고 있다. 첫째는 실질적으로는 모든 상품과 서비스가 유형 및 무형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유형과 무형의 특징의 상대적인 비중이 다를 뿐이라는 점이다. 즉, 서비스는 무형적인 요소를 많이 내포하고 있는 반면 제품은 유형성이 많다. 따라서 서비스와 제품을 별개로 볼 것이 아니라 고객의 가치 창출을 위한 하나의 묶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둘째는 서비스가 ‘고객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일련의 활동’이나 ‘고객의 이익을 위해 모든 역량을 사용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솔루션이나 역량이라는 용어에는 제품과 서비스가 제품과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자원이나 제품, 그리고 지식 등의 형태로 묶여져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된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이 제품(product)의 서비스화(servicization)나 서비스의 제품화(productization)다.
제품-서비스 통합 모델의 허점
제품의 서비스화(servicization)는 제조업, 농업, 혹은 자원 기반 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서비스와 연관시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판매할 때, 재무적 지원, 컨설팅, 유지 · 보수 등과 같은 각종의 서비스를 포함함으로써 제품의 사용을 촉진하고 고객 만족을 높이는 접근방법을 ‘제품의 서비스화’로 정의할 수 있다. 제품의 서비스화는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유지 운영 계약이나 컨설팅처럼 ‘제품 지향적 서비스’, 제품의 리스나 공유와 같은 ‘사용자 지향적인 서비스’, 이동성과 같은 최종 목표에 초점을 두는 ‘결과 지향적 서비스’가 있다.
반면에 서비스의 제품화(productiza-tion)는 과거에 무형적 서비스의 형태로 제공되던 것을 소프트웨어나 방법론 등과 같은 제품의 형태로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튜이트의 터보택스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터보택스는 전통적으로 회계사에 의해 제공되던 무형의 서비스를 제품화했다. 과거 회계사에 의존해서 세금정산을 해결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함으로써 사업을 확장했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회계사에게 항목별로 세분화해서 세금 신고를 맡길 경우 229달러, 그렇지 않으면 129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터보택스 소프트웨어는 30∼50달러만 주면 구입할 수 있다. 온라인을 통해 은행 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인터넷을 통한 세금 신고에 익숙해진 시민들이 늘어난 점과 세금신고 업무를 대행해주는 업체들의 과실이 늘어난 데 따른 불신감도 독자적으로 세금신고를 하도록 하는 요인이 됐다. 서비스의 제품화에서는 제품은 단지 제공되는 서비스의 물리적 표현으로 서비스 자체에 종속되는 특징이 있다.
이 두 가지 형태의 ‘제품-서비스 통합 접근법’에도 허점이 있다. 제품이나 서비스 어느 한쪽이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제품이나 서비스 가운데 한 쪽의 역할과 기능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변화하는 고객 욕구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렵고 새로운 가치 창출 활동에 제약을 받을 수도 있다. 이를 해결함으로써 보다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고객 관점에서 접근하는 ‘고객화된 제품-서비스의 통합’이다. 예를 들어 한 도시가 무료 자전거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가정해 보자. 제품과 서비스를 단순히 결합하는 제품-서비스 통합모델은 공유지의 비극(공유지는 시민이면 아무나 이용하는 것이므로 내 소유물과 달리 마음대로 사용하고 책임을 지지 않게 돼 나중에는 아무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을 겪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고객의 관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시민들의 사용 패턴에 따라 자전거 서비스 시스템을 새로 디자인하고, 키오스크, 자물쇠 시스템, ID카드 등을 도입해야 한다. 이어 시민들에게 사용법을 알린다면 전체 서비스 시스템이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서비스의 제품화’나 ‘제품의 서비스화’ ‘고객화된 서비스-제품 통합’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제품과 서비스가 통합되고, 새로운 사업 기회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 준다. 하지만 제품과 서비스의 통합을 통한 성장 전략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추상적이라는 한계를 갖는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통합의 방법과 영역의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한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