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선 ‘김포∼부산’ 노선은 저비용 항공사의 무덤으로 불린다. 국내 1위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경쟁해야 하는 데다 약 2시간 50분에 서울∼부산 간을 주파하는 땅 위의 KTX와도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제주항공이 ‘김포∼부산’ 노선에서 8개월 운항을 하다가 포기했고, 지금은 사라진 영남에어는 1주일 만에 손을 들었다. 대한항공의 자회사인 진에어도 2009년 1월 이 노선에 취항했다가 3개월 만에 철수했다. ‘김포-부산’ 노선은 버리자니 아깝고, 삼키자니 먹을 게 없는 계륵(鷄肋)과도 같은 시장이었다.
그런데 이 시장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2008년 10월 첫 비행을 시작한 지역 항공사인 에어부산이 야금야금 시장을 잠식하더니 시장점유율 40%대를 넘어섰다. 이 노선에서 국내 1위 항공사인 대한항공을 턱밑까지 추월한 것이다. 탑승률은 2009년 3월 대한항공을 앞질렀다. 에어부산은 2009년 10월 ‘김포-부산’ 노선에서 월별 기준으로 처음 5억 원의 흑자도 냈다. ‘김포-제주’ 노선을 빼면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국내선 시장의 오래된 오해가 무너진 것이다. 이 결과 에어부산은 2009년 4분기(9∼12월) 적자폭을 1억 원대로 줄일 수 있었다. 2010년에는 국내선에서 첫 흑자 전환을 기대하고 있다.
신생 지역 항공사 에어부산은 어떻게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고 기업의 이익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사업을 키워나갈 수 있었을까. 비결은 서비스 혁신에 있었다. 서비스의 ‘탐색, 구매, 이용, 이용 후’의 소비 사슬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객의 총비용을 줄여 고객 가치를 창출하고, 저비용 항공사에 대한 고객의 일반적인 기대를 뛰어넘는 서비스 품질 혁신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하늘과 땅에서의 ‘샌드위치’ 경쟁 구도
에어부산은 2010년 1분기(1∼3월)에도 43만4435명을 실어 날라 국내 저비용 항공사 가운데 국내선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지켰다. 대한항공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김포∼부산 노선에서 점유율 42.3%를 차지해 지난해 말(41.3%)보다 점유율을 1%포인트 끌어올렸다. 에어부산에 노선을 넘기고 철수했던 아시아나항공의 이 노 선 점유율이 20%대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성장세다. 에어부산의 ‘부산∼제주’ 노선 점유율도 같은 기간 38.5%로 3.6% 포인트 증가했다. 에어부산은 2009년 140만 명을 수송해 전체 저비용 항공사 가운데 1위에 올랐다.
에어부산은 부산 시, 부산 소재 14개 기업, 아시아나항공이 투자해 설립됐다. 2007년 8월 지역을 대표하는 항공사가 필요하다는 지역 주민과 상공인의 뜻이 모아져 부산국제항공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립됐다. ‘김포∼부산’ 노선은 부산, 울산, 경남 등 동남권 주민 860만 명의 고객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서울 등에서 부산 지역으로 출장을 오는 비즈니스 승객도 적지 않아 항공기를 이용할 수 있는 고객 기반은 충분했다.
저비용 지역 항공사를 표방하고, 지분 51%를 보유한 최대 주주 아시아나와 코드쉐어(공동 운항)를 통해 노선을 물려받는 것이 초기 에어부산의 전략이었다. 아시아나 마일리지 회원 고객을 에어부산 고객으로 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초기 시장 진입에는 무난히 성공할 것으로 자신했다.
문제는 시장의 경쟁 구도였다. 저비용 항공사가 시장 규모만 보고 덤볐다가는 하늘과 땅에 버티고 있는 강력한 적수를 만나 ‘샌드위치’ 신세가 될 가능성이 컸다. 이 노선에는 하이엔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최대 항공사인 대한항공이 버티고 있었다. 비용 절감을 통해 원가 경쟁력을 높이고 요금을 낮춘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었다. 땅 위에는 속도와 가격 경쟁력을 무장하고 신뢰성까지 갖춘 KTX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품질 차별화(differentiation)’로 하이엔드 시장을 겨냥하거나 강력한 ‘비용 절감(cost leadership)’으로 가격 우위를 확보하는 전략 중 하나를 선택해 집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정쩡하게 두 전략을 병행하다가는 ‘중간 지점 고착(stuck-in-the middle)’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컸다. 김수천 에어부산 대표는 “2008년 10월 출범 기자 회견을 했을 때만 해도 ‘아시아나의 시장점유율인 20%만 유지해도 선방’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했다”고 말했다.
고객 가치 창출을 통한 서비스 혁신
1970년대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저비용 항공사는 기존 항공사보다 20∼50% 싼 요금을 무기로 항공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서비스를 최소화해 비용을 절감하는 전략이었다. 대형 공항보다 소형 공항을 이용하고, 인터넷과 전화로 예약을 받아 운영비를 최소화했다. 기내 서비스를 없애거나 유료화하고, 기종을 통일하고 승무원이 직접 청소까지 맡는 식으로 비용 절감을 했다.
저비용 항공사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하는 문제는 고객의 불신과 수익성 하락이었다. 치열한 가격 경쟁으로 수익성 훼손이라는 부작용에 시달릴 가능성이 컸다. 무리하게 비용을 절감하다가는 기내 서비스, 정시 운항, 안전 등의 역량이 떨어져 고객 불신을 초래할 수도 있다. 국내에서도 몇몇 저비용 항공사가 이 같은 이유로 운항을 중단했다.
에어부산이 신규 시장에서 직면한 문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KTX라는 가격 경쟁력을 갖춘 대안 교통수단과도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상황은 오히려 더 나빴다. 에어부산은 이 같은 ‘샌드위치’ 상황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고객을 세분화했다. ‘김포∼부산’ 노선에서는 사업이나 출장을 위해 오가는 비즈니스맨을 타깃 고객으로 삼았다. 비즈니스 노선 고객의 총비용을 낮추면서 차별화된 서비스 품질로 만족도를 높여 고객의 편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관광객이 많은 ‘부산∼제주’ 노선은 가족 단위 관광객을 전략적 타깃 고객으로 삼았다. 에어부산은 타깃 고객을 좁힌 뒤 저가 항공사가 아니라 ‘스마트하고 실용적인 항공사’로 브랜드를 포지셔닝(positioning)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