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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중심 경영을 위한 전략적 시장 조사

‘애플은 안 하지만...’ 시장 조사는 경영 나침반

안상훈 | 55호 (2010년 4월 Issue 2)

시장 조사를 불신하는 애플이 잘 나가는 이유
배터리가 내장형인데다 배터리 소모 속도도 빠른 휴대폰이 있다. 때문에 외부에서 한 번 방전이라도 되면 속수무책이다. 제품이 고장 나 애프터서비스를 맡기면 내 단말기를 수리해주는 게 아니라 고장 수리가 이미 끝난 다른 사람의 중고 단말기를 대신 내준다. 요즘 세상에 이런 휴대전화를 살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이 제품이 바로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애플의 아이폰이다.
 
애플은 시장 조사나 소비자 조사를 하지 않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브랜드 전문가 로라 리스는 “다른 회사들과 달리 애플은 광범위한 소비자 조사를 하지 않는다. 1인 포커스 그룹, 즉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좋다고 하면 사업을 그냥 추진한다”고까지 말했다. 스티브 잡스 본인은 시장 조사에 떨떠름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레이엄 벨이 전화를 발명할 때 시장 조사를 했는가? 나는 단지 혁신을 바랄 뿐이다.”
 
과거 코카콜라는 달콤한 맛을 내세운 펩시콜라와 전면전에 돌입한 적이 있다. 코카콜라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뉴 코크’라는 새로운 맛의 신제품을 출시하기로 결정했다. 코카콜라는 뉴 코크에 대한 고객 수용도를 검증해보기 위해 400만 달러에 이르는 지출을 감수하며 대대적인 소비자 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소비자 조사의 골자는 고객의 눈을 가리고 맛을 보게 하는 블라인드 테스트였다. 조사 결과, 소비자들이 뉴 코크의 맛을 선호한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코카콜라는 자신만만하게 신제품을 출시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전국 각지 고객들로부터 신제품에 대한 엄청난 반발과 함께 진짜배기(the real thing)를 보존하라는 항의성 요구가 쇄도했다. 코카콜라는 채 석 달도 지나지 않아 뉴 코크를 시장에서 철수시키고, 기존 제품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었다.
 
애플과 코카콜라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전자는 소비자 조사를 전혀 실시하지 않으며 고객의 갖가지 불만과 요구 사항을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는데도 큰 성과를 냈다. 반면 후자는 막대한 비용과 고도의 조사 기법을 동원해 신제품에 대한 고객의 수용성을 면밀히 조사했음에도 불구하고, 크나큰 실패를 맛보았다. 이쯤 되면 시장 조사의 필요성에 대해 근본적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실제로 일부 마케팅 전문가나 실무자들 중에서는 시장 조사 무용론을 외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면밀한 사전적 시장 조사 덕에 엄청난 실패를 회피할 수 있었던 사례나 새로운 기회 요인을 포착해 성공을 거둔 일들을 살펴보면 이런 무용론 또한 지나치게 성급한 판단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과연 올바른 시장 조사란 무엇이며, 기업은 시장 조사의 실효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해야 할까?

시장 조사, 왜 해야만 하는가
시장 조사의 실효성을 논박하기 이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기업이 왜 시장 조사를 필요로 하느냐는 문제다. 수단은 목적에 의해 정당화되고 평가될 뿐 그 자체로 해롭거나 이롭지는 않다. 기업이 고객으로부터 뭔가를 알아내기 위해 모종의 조사를 실시하는 이유는 고객 이해를 바탕으로 한 고객 중심 경영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고객 중심 경영의 정의는 <그림1>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기업이 자신에게 적합한 목표 고객을 찾아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그들이 원하는 수준과 방식으로 전달하려는 전략적 활동의 총체다. 고객 중심 경영은 고객이 자신의 필요에 맞는 최적의 제품과 서비스를 가장 적은 비용으로 향유할 수 있게 해준다. 마찬가지로 기업 또한 이를 통해 가장 효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하고, 차별적 경쟁 우위를 창출할 수 있다.
 
따라서 시장 조사의 필요성과 실효성은 현재 실시하는 시장 조사가 고객 중심 경영이라는 기업의 궁극적 목표에 기여할 수 있는지, 자사의 핵심 고객을 입체적이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지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 이때 유의할 점은 고객에 대한 이해가 ‘입체적이고 정확’해야 한다는 점이다. 과연 입체적이고 정확해야 한다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
 
우선 ‘입체’는 고객을 특정 제품의 기능적 소비자로서 보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살아 숨쉬고, 느끼고, 활동하고, 욕구하는 존재 그 자체로 봐야 한다는 걸 뜻한다. 코카콜라가 대규모 시장 조사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실패를 본 이유는 코카콜라의 전통과 브랜드에 대한 목표 고객의 정서적 애착을 간과한 채 그들을 단지 단편적인 콜라 맛의 음미자로만 바라보는 조사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정확’은 고객의 요구 수준을 계량적으로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고객은 항상 어떤 제품을 원한다. 하지만 어떤 기능을, 얼마에, 어떠한 방식으로 원하느냐는 개별 고객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통상 이에 대한 조사는 잘 이뤄지지 않는다. 특히 첨단 기술이나 정보기술(IT) 산업의 기업들은 소비자가 항상 최신, 최고의 기술을 탑재한 제품을 원할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고객이 신기술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에만 지나치게 주목한 나머지, 이를 얼마나 원하고, 얼마에, 어떠한 방식으로 원하는지를 간과하다 큰 낭패를 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고객을 단 한 번에 입체적이고 정확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연인을 이해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을 생각해보자. 그는 매우 오랫동안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상대방을 탐색한다. 때로는 객관적 사실에 대한 자료 확인을 통해, 때로는 주위의 평판을 통해, 때로는 집요하고 긴밀한 대화를 통해, 때로는 느긋한 관찰을 통해 상대를 파악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한 개인을 이해하는 데도 이처럼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할진대, 기업이 추상적 개념의 무작위 다수인 대규모 고객 집단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하겠는가. 한두 번의 간헐적 시장 조사 결과와 그 성패를 놓고 조사의 신뢰성과 실효성을 논하는 일은 그 자체로 부질없다. 즉, 시장 조사의 유용성은 ‘개별 시장 조사가 고객의 의중을 제대로 드러내주는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기업이 고객을 입체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효과적인 탐색 체계를 지니고 있는가, 각각의 개별 시장 조사는 그 체계하에서 올바로 작동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판단해야 한다.

<그림2>는 전략적 고객 이해 체계하에서 각 시장 조사가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고객의 어떠한 면모를 어떠한 방법으로 밝혀내야 하는지, 이 과정이 고객 중심 경영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기업은 고객의 어떤 점을 알아내 어떤 변화를 이루어냄으로써 자사의 성과를 극대화할 것인지 명확하게 정의해야 한다. 그 다음 이에 부합하는 최적의 조사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이를 시장 조사의 3단계 방법을 통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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