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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Path in Service Innovation

항공 시장의 작은 반란, 에어부산의 역습

박용 | 55호 (2010년 4월 Issue 2)

국내선 ‘김포부산’ 노선은 저비용 항공사의 무덤으로 불린다. 국내 1위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경쟁해야 하는 데다 약 2시간 50분에 서울부산 간을 주파하는 땅 위의 KTX와도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제주항공이 ‘김포부산’ 노선에서 8개월 운항을 하다가 포기했고, 지금은 사라진 영남에어는 1주일 만에 손을 들었다. 대한항공의 자회사인 진에어도 2009년 1월 이 노선에 취항했다가 3개월 만에 철수했다. ‘김포-부산’ 노선은 버리자니 아깝고, 삼키자니 먹을 게 없는 계륵(鷄肋)과도 같은 시장이었다.
 
그런데 이 시장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2008년 10월 첫 비행을 시작한 지역 항공사인 에어부산이 야금야금 시장을 잠식하더니 시장점유율 40%대를 넘어섰다. 이 노선에서 국내 1위 항공사인 대한항공을 턱밑까지 추월한 것이다. 탑승률은 2009년 3월 대한항공을 앞질렀다. 에어부산은 2009년 10월 ‘김포-부산’ 노선에서 월별 기준으로 처음 5억 원의 흑자도 냈다. ‘김포-제주’ 노선을 빼면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국내선 시장의 오래된 오해가 무너진 것이다. 이 결과 에어부산은 2009년 4분기(912월) 적자폭을 1억 원대로 줄일 수 있었다. 2010년에는 국내선에서 첫 흑자 전환을 기대하고 있다.
 
신생 지역 항공사 에어부산은 어떻게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고 기업의 이익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사업을 키워나갈 수 있었을까. 비결은 서비스 혁신에 있었다. 서비스의 ‘탐색, 구매, 이용, 이용 후’의 소비 사슬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객의 총비용을 줄여 고객 가치를 창출하고, 저비용 항공사에 대한 고객의 일반적인 기대를 뛰어넘는 서비스 품질 혁신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하늘과 땅에서의 ‘샌드위치’ 경쟁 구도
에어부산은 2010년 1분기(13월)에도 43만4435명을 실어 날라 국내 저비용 항공사 가운데 국내선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지켰다. 대한항공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김포부산 노선에서 점유율 42.3%를 차지해 지난해 말(41.3%)보다 점유율을 1%포인트 끌어올렸다. 에어부산에 노선을 넘기고 철수했던 아시아나항공의 이 노 선 점유율이 20%대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성장세다. 에어부산의 ‘부산제주’ 노선 점유율도 같은 기간 38.5%로 3.6% 포인트 증가했다. 에어부산은 2009년 140만 명을 수송해 전체 저비용 항공사 가운데 1위에 올랐다.
 
에어부산은 부산 시, 부산 소재 14개 기업, 아시아나항공이 투자해 설립됐다. 2007년 8월 지역을 대표하는 항공사가 필요하다는 지역 주민과 상공인의 뜻이 모아져 부산국제항공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립됐다. ‘김포부산’ 노선은 부산, 울산, 경남 등 동남권 주민 860만 명의 고객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서울 등에서 부산 지역으로 출장을 오는 비즈니스 승객도 적지 않아 항공기를 이용할 수 있는 고객 기반은 충분했다.
 
저비용 지역 항공사를 표방하고, 지분 51%를 보유한 최대 주주 아시아나와 코드쉐어(공동 운항)를 통해 노선을 물려받는 것이 초기 에어부산의 전략이었다. 아시아나 마일리지 회원 고객을 에어부산 고객으로 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초기 시장 진입에는 무난히 성공할 것으로 자신했다.
 
문제는 시장의 경쟁 구도였다. 저비용 항공사가 시장 규모만 보고 덤볐다가는 하늘과 땅에 버티고 있는 강력한 적수를 만나 ‘샌드위치’ 신세가 될 가능성이 컸다. 이 노선에는 하이엔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최대 항공사인 대한항공이 버티고 있었다. 비용 절감을 통해 원가 경쟁력을 높이고 요금을 낮춘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었다. 땅 위에는 속도와 가격 경쟁력을 무장하고 신뢰성까지 갖춘 KTX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품질 차별화(differentiation)’로 하이엔드 시장을 겨냥하거나 강력한 ‘비용 절감(cost leadership)’으로 가격 우위를 확보하는 전략 중 하나를 선택해 집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정쩡하게 두 전략을 병행하다가는 ‘중간 지점 고착(stuck-in-the middle)’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컸다. 김수천 에어부산 대표는 “2008년 10월 출범 기자 회견을 했을 때만 해도 ‘아시아나의 시장점유율인 20%만 유지해도 선방’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했다”고 말했다.

고객 가치 창출을 통한 서비스 혁신
1970년대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저비용 항공사는 기존 항공사보다 2050% 싼 요금을 무기로 항공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서비스를 최소화해 비용을 절감하는 전략이었다. 대형 공항보다 소형 공항을 이용하고, 인터넷과 전화로 예약을 받아 운영비를 최소화했다. 기내 서비스를 없애거나 유료화하고, 기종을 통일하고 승무원이 직접 청소까지 맡는 식으로 비용 절감을 했다.
 
저비용 항공사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하는 문제는 고객의 불신과 수익성 하락이었다. 치열한 가격 경쟁으로 수익성 훼손이라는 부작용에 시달릴 가능성이 컸다. 무리하게 비용을 절감하다가는 기내 서비스, 정시 운항, 안전 등의 역량이 떨어져 고객 불신을 초래할 수도 있다. 국내에서도 몇몇 저비용 항공사가 이 같은 이유로 운항을 중단했다.
 
에어부산이 신규 시장에서 직면한 문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KTX라는 가격 경쟁력을 갖춘 대안 교통수단과도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상황은 오히려 더 나빴다. 에어부산은 이 같은 ‘샌드위치’ 상황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고객을 세분화했다. ‘김포부산’ 노선에서는 사업이나 출장을 위해 오가는 비즈니스맨을 타깃 고객으로 삼았다. 비즈니스 노선 고객의 총비용을 낮추면서 차별화된 서비스 품질로 만족도를 높여 고객의 편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관광객이 많은 ‘부산제주’ 노선은 가족 단위 관광객을 전략적 타깃 고객으로 삼았다. 에어부산은 타깃 고객을 좁힌 뒤 저가 항공사가 아니라 ‘스마트하고 실용적인 항공사’로 브랜드를 포지셔닝(positioning)을 했다.

고객의 총비용을 줄여라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 구성 요소로는 고객 가치, 수익 모델, 핵심 프로세스와 자원을 꼽을 수 있다.1  이 가운데 고객 가치는 고객이 얻는 편익과 고객이 부담하는 비용의 차이로 볼 수 있다.2  고객이 소비를 통해 얻게 되는 편익을 증가시키거나 고객이 소비 과정에서 부담하는 총비용을 감소시킨다면 고객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
 
하이엔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존 항공사들은 서비스, 브랜드 등을 차별화해 총 편익을 증가시키고 저비용 항공사들은 항공권의 가격을 내려 고객 총비용을 절감한다.

에어부산은 항공권 가격만 내린 것이 아니라 ‘탐색-구매-이용-이용 후’ 등의 고객의 서비스 소비 사슬 전반에 걸쳐 발생하는 ‘가격외 비용’까지 절감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고객이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 철저하게 분석하고, 거래비용, 항공권 가격, 이용비용 등 고객의 총비용 관점에서 접근한 결과다. 비즈니스 고객으로 특화했기 때문에 여러 고객층의 다양한 비용을 모두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이 같은 접근법이 가능했던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인터넷과 셔틀 서비스를 통한 거래비용 절감
에어부산은 기존 항공사가 기존 고객과 영업 관행에 묶여 있는 사이 웹을 통한 파괴적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인터넷을 통해 항공권을 편리하게 예약하고 발권까지 할 수 있기 때문에 고객의 탐색 비용을 줄여줄 수 있었다. 에어부산의 국내선 인터넷 판매 비중은 60%에 이른다. 최근에는 ‘부산-후쿠오카’와 ‘부산-오사카’ 등 일본노선도 웹 기반의 예약 발권 서비스를 시작했다. 일본 여행 고객의 숙박 시설 탐색 비용을 줄여주기 위해 일본 온라인 여행사인 ‘라쿠텐 트래블’과 비즈니스호텔 체인인 토요코인과 제휴해 저렴한 가격으로 숙박 시설을 예약할 수 있는 부가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에어부산은 ‘김포부산’ 노선에서 2009년 3월부터 비즈니스맨의 항공 서비스 이용 행태에 맞춘 ‘3050’ 셔틀서비스를 시작했다. 항공기가 김포에서는 매 시간 ‘30분 출발’, 부산에서는 ‘50분 출발’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고객들이 매번 비행 시간표를 확인하고 표를 예약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기존 항공사 대비 약 10% 싼 항공권 가격
에어부산의 본원적인 경쟁력 중 하나가 가격이다. 에어부산으로 예약을 하면 공시 운임 기준으로 기존 항공사 대비 10% 정도 항공권 값이 싸다. 이 회사는 웹 기반 정보기술(IT), 아시아나와 전략적 제휴, 아웃소싱, 불필요한 서비스 축소 등을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기존 항공사보다 싼값에 항공권을 판매한다. 가격을 결정할 때는 대체 교통수단 등 시장의 경쟁 상황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김포부산’ 노선의 에어부산 항공요금은 ‘서울부산’간 KTX 요금보다 비싸지만 기업 우대 프로그램 등을 이용하면 KTX 요금과의 차이를 줄일 수 있도록 설정했다. 올해 운항을 시작한 일본 노선은 기존 경쟁 항공사는 물론 부산과 일본을 오가는 여객선 요금과 비교해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선에서 가격을 결정했다.

정시 운항으로 고객 이용비용 하락
에어부산은 고객이 항공권을 끊고 이용하는 과정과 이용 후 발생하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공항 내의 무인발권기를 이용하면 카운터에서 줄을 서지 않고도 발권부터 좌석 배정까지 업무를 볼 수 있고, 인터넷으로 원하는 좌석도 사전에 직접 선택할 수도 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줄을 설 필요가 없다. 이는 저비용 항공사를 이용할 때 항공권을 예약하고 줄을 서서 타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비즈니스 고객은 사업이나 출장 목적으로 항공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일정이 틀어지면 유·무형의 손실을 입을 수 있다. 고객의 손실은 브랜드에 대한 불신과 외면으로 이어지고, 재구매 의사도 꺾는다. ‘김포부산’ 노선의 타깃 고객을 비즈니스 승객으로 설정한 에어부산은 이 같은 점을 고려해 정시 운항에 역점을 뒀다. ‘오락가락 운항하는 싸구려 항공사’라는 인식이 퍼진다면 비즈니스 노선에서 생존할 길은 없다. 게다가 신뢰성이 높은 교통수단인 KTX와 경쟁해야 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에어부산은 최대 주주인 아시아나의 정비 운항 시스템과 인력을 활용해 신생 항공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덜 수 있었다. 에어부산의 운항률은 98.7%, 정시률은 90.4%로 국내 항공사 최고 수준이다. 연착이나 결항 등의 돌발 사고를 대비한 고객 서비스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출발이 늦어지면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콜 센터 상담원이 전화로 다른 시간대의 항공편을 안내하는 상담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기업 우대 프로그램 도입으로 사후 관리
에어부산은 ‘김포부산’ 노선 점유율이 40%를 넘어선 2009년 하반기부터 주요 경쟁자로 KTX를 설정하고, 철도 수요를 흡수하기 위한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이용 등급에 따라 차별적인 할인 혜택을 주는 기업 고객 대상 마케팅을 강화했다. 기존 항공사는 강력한 마케팅 툴인 ‘마일리지 프로그램’이 있지만, 신생 항공사는 마일리지 프로그램 운영에 따른 비용 부담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에어부산은 목표 고객인 비즈니스맨과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한 고객 관계 관리 프로그램인 기업 고객 우대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기업의 출장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기업 고객 관계 관리를 강화하고 고객 등급별로 요금 할인 혜택을 차별적으로 부여하는 고객 관계 관리 프로그램을 시도한 것이다. 프로그램 관리 대상을 타깃 고객으로 한정했기 때문에 일반 고객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마일리지 프로그램을 운용할 때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운용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마일리지를 적립하는 방식이 아니어서 대형 항공사처럼 마일리지를 회계상의 부채로 인식할 필요도 없었다.
 
에어부산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탑승실적에 따라 기업 회원을 AE 등급의 5단계로 나누고 차별적인 요금 할인 혜택을 부여했다. 고객들이 이 프로그램에 가입해 실적을 쌓고, 할인 혜택을 최대로 받으면 KTX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요금으로도 항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6500개 기업이 이 프로그램에 가입했다. 김 대표는 “출장 여비 규정을 바꿔 강제로 에어부산을 이용하게 하거나, 에어부산을 이용하지 않으면 결제를 해주지 않는 회사까지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때마침 개통된 서울 지하철 9호선도 에어부산의 성장에 기폭제가 됐다. 2009년 7월 항공 수요가 큰 서울 강남과 김포공항을 급행으로 연결하는 9호선이 뚫리면서 서울 도심에서 공항까지 접근성이 크게 개선됐기 때문이다.
 
이 결과 ‘김포-부산’ 노선에서 항공사를 위협했던 KTX의 기세는 크게 꺾였고, 이제는 항공 이용객 증가 속도가 KTX를 앞지르고 있다. 2009년 8월 한 달간 KTX 경부선 수송 실적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3% 감소했지만, 김포-부산 노선 전체 항공사의 운항 실적은 5.6% 증가했다. 이 기간 에어부산은 108.5% 성장했다.

서비스 품질 차별화로 고객 편익 증가
에어부산은 창립 초기 지역 기반의 저가 항공사를 표방했다. 불필요한 서비스 거품을 최대한 없애고 원가를 절감해 가격으로 승부를 하겠다는 전략을 펼쳤다. 하지만 당시 ‘김포-부산’ 노선에서 가격을 내세우는 신생 항공사가 한둘이 아니었다.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상용 노선에서 차별화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고객 총비용을 낮춰 고객 가치를 창출하는 전략과 함께 서비스 품질을 높여 고객 편익을 증가시키는 전략을 추진했다.
 
가격, 편리성, 신뢰성으로 승부
에어부산은 저비용 항공사의 취약점인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차별화 전략으로 맞섰다. 고객을 배려해 공감을 이끌어내고 ‘믿을 수 있는 항공사’라는 신뢰성의 가치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목표 고객인 비즈니스맨 중심의 상용 노선 시장이 가격 외에도 편리하고 믿을 수 있는 항공 서비스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고객을 배려하는 서비스와 신뢰를 주는 운항 능력을 강조하고, 모회사인 아시아나에 항공기 정비를 위탁해 저비용 항공사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도 해소하려고 노력했다.
 
차별화된 고객 서비스는 고객 만족으로 이어졌다. 에어부산을 이용하는 승객의 상당수는 아시아나항공 회원 고객이다. 에어부산이 아시아나항공과 이 노선을 코드쉐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으로 예약하면 마일리지를 적립할 수 있지만, 에어부산보다 5% 정도 더 비싼 돈을 내야 한다. 그런데도 아시아나항공 회원이 에어부산 승객의 3040%에 이른다.
 
아시아나항공 회원인 에어부산 승객 한주영(43·서울 강남구 일원동) 씨는 “1년에 20여 차례 에어부산을 이용해 김포와 부산을 오간다”며 “신문, 커피 서비스 등 기내 서비스와 좌석 예약도 가능하기 때문에 기존 항공사와 비교해도 서비스의 차이가 크게 없다”고 말했다.
 
고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체감 만족 중시
에어부산의 고객 서비스가 초창기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에어부산만의 차별화된 서비스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한 씨는 “초창기에는 뜨거운 음료 서비스가 없었고, 주스도 잔에 따라 접시에 담아 고객들이 집어가게 했다”며 “지금은 56분만 출발이 지연되더라도 안내 방송이 나올 정도로 고객 서비스에 신경을 쓰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저가 항공사인데도 콜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주주들은 “비용 절감을 한다면서 콜 센터를 왜 운영하느냐”고 볼멘소리를 냈다. 김 대표는 “항공기 운항에는 돌발 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비즈니스 노선 고객에게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콜 센터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에어부산은 ‘김포-부산’은 비즈니스맨에 특화된 상용 시장, 관광과 가족 단위 수요가 많은 ‘부산-제주’ 노선은 관광 노선으로 나누고 각각 맞춤형 서비스를 도입했다. 관광 노선의 경쟁력은 가격과 재미가 고객 만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08년 12월 첫 취항을 한 ‘부산-제주’ 노선에서는 ‘김포-부산’ 노선의 신문 서비스 등이 제공되지 않는다. 대신 감귤주스 서비스와 연인이나 가족 단위 여행객을 위한 경품 추첨 이벤트 등이 기내에서 열린다. 2009년 6월부터는 운항 편수를 매일 20회로 갑절로 늘렸다. 에어부산은 이 노선에서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필수 서비스는 강화하고, 불필요한 거품은 제거
원가 경쟁력을 중시하는 에어부산이 어떻게 대형 항공사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고객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이 회사는 기존 항공사의 서비스를 철저히 분석하고 백화점식 서비스의 거품을 제거했다. 비즈니스맨이 필수적으로 여기는 서비스를 가려내고, 기존 대형 항공사와 비슷한 서비스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대신 상용 노선 고객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나머지 서비스는 최대한 줄이거나 없앴다. 고객이 인식하는 필수 서비스의 영역을 중심으로 대형 항공사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해 고객의 체감 서비스 만족도를 높인 것이다.
 
출범 초기에는 없었던 신문 서비스, 커피 등 따뜻한 음료 서비스를 상용 고객에 주력하기 위해 ‘김포-부산’ 노선에 도입했다. 쟁반에 음료를 따라 나눠주던 서비스도 승무원 2명이 카트를 끌고 서비스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대신 고객이 필수 서비스로 인식하지 않는 서비스는 철저하게 줄이거나 없앴다. 기내 잡지부터 없앴다. 단거리 비즈니스맨 고객에게 기내 잡지는 필수 서비스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항공기의 전 좌석에 600g 정도의 기내 잡지를 비치하면 무게가 100kg이 더 나가 연료 소비가 늘어난다. 기내 잡지만 없애도 보유한 항공기 5대를 기준으로 1년간 제작비를 제외하고 4000만 원의 연료비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두툼한 기내 잡지 대신 좌석마다 도착 지역의 숙박, 음식점, 교통편을 안내하고 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얇은 지역 정보책자 <플라이 앤 펀>을 비치했다. 고객들이 짧은 탑승 시간 동안 잡지를 읽기보다는 도착 후 필요한 숙박, 음식 등 여행 정보와 할인 쿠폰을 더 원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제공하는 신문에도 에어부산의 원가 절감 노력이 숨어 있다. 에어부산은 지방지 정도만 비치하거나 아예 신문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저가 항공사들과 달리 고객에게 다양한 기내 신문을 제공한다. 대신 그날 신문의 25% 정도를 재활용해 비용을 최소화하고 있다. 비행기가 내리면 기내 청소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고객들이 본 깨끗한 신문만을 골라내 다음 손님에게 서비스한다. 신문 재활용 내용을 게이트 입구의 안내문을 통해 고객에게도 알려 친환경 기업의 이미지와 신뢰를 주고 있다. 에어부산의 탑승권은 다른 항공사 탑승권보다 작다. 탑승권 발행에 들어가는 종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탑승권 크기를 줄여 연간 1500만 원을 절감했다.
 
내부 고객인 직원 만족에도 신경을 썼다.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가 떨어지면 고객 서비스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에어부산은 사업 초기 원가 절감을 위해 승무원들이 직접 기내 청소를 맡도록 했다. 승무원들이 기내 서비스와 객실 청소까지 담당하면서 상대적으로 고객 서비스가 소홀해졌다. 옷매무새는 흐트러졌고, 고객들이 남긴 쓰레기를 자신이 청소해야 하기 때문에 고객을 ‘서비스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쓰레기를 만드는 존재’로 인식하게 됐다. 직업적 자부심과 만족도도 떨어졌다. 이 회사는 결국 두 달 만에 승무원의 객실 청소를 중단하고, 이들이 본연의 업무인 고객 서비스와 안전 업무에 집중하도록 했다.
 
아웃소싱과 정보기술을 이용해 원가 경쟁력 강화
에어부산은 대형 항공사 대비 20%의 원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체 평가하고 있다. 아웃소싱과 정보기술(IT)을 과감히 활용한 결과다. 에어부산의 투자액 가운데 항공기를 빼고 가장 큰 투자 분야가 IT다. 에어부산은 연간 30억40억 원을 웹 등 IT에 투자하고 있다. 기존 항공사들은 대리점을 거치는 중간유통 단계가 복잡했다. 수수료나 관리비용 등이 많았고, 단체 관광객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항공권 할인 혜택을 줘야 했다.
 
에어부산은 웹 기술에서 대안을 찾았다. 기존 대형 항공사들이 웹 중심의 서비스 비중을 늘리려면 기존 영업망과 고객을 포기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쉽게 따라오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 현재 에어부산의 국내선 인터넷 판매 비중은 60%에 이른다. 반면 아시아나 등 대형 항공사는 25%에 불과하다.
 
에어부산은 인터넷과 IT를 통해 예약, 발권, 운영 시스템을 개발했다. 회사 업무 프로세스도 웹 기반으로 바꿔 조직 구조를 최대한 슬림화하는 전략도 추진하고 있다. 여행사 전용 서비스도 웹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6500개 기업이 가입한 기업 우대 프로그램의 담당자는 1명이다. 웹을 통해 적은 인원으로도 고객들을 관리할 수 있다. 대형 항공사들이 B2B(기업간거래) 전담 부서를 두고 있는 것과는 다른 점이다.
김 대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분야에서의 혁신을 통해 상대가 유리한 전장이 아닌 우리가 유리한 지역에서 전투를 하도록 판을 바꾸려고 했다”며 “웹은 운명이자 미래”라고 강조했다.
 
핵심 업무는 웹 기반으로 바꾸고, 기내와 운항 관련 업무를 제외한 나머지 업무는 아웃소싱을 주는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했다. 실제 김포공항 내에서 에어부산 직원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발권과 탑승 수속 업무를 아시아나에 위탁했기 때문이다. 콜 센터도 부산 지역 기업에 외주를 줬다. 항공사의 생산성 지표인 대당 가동 인원은 에어부산이 보유한 B737 400 기종을 기준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절반 정도인 40명 정도다. 최대 주주인 아시아나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노선 경쟁력을 확보하고, 마케팅 역량을 공유할 수 있는 점도 강점이다.
 
국제선으로 시장 확대
에어부산은 올해 3월 29일 ‘부산-후쿠오카’에 첫 취항하며 시장을 국제선으로 확대하고 있다. 후쿠오카는 부산과 가장 교류가 활발한 일본 도시다. 연간 100만 명이 두 도시를 오가고 있다. 부산 시가 자매 결연 도시인 후쿠오카를 잇는 초광역 경제권 구축 사업에 힘을 쏟고 있어 시장 확대도 기대하고 있다. 4월 26일에는 ‘부산-오사카’ 노선도 취항한다. 에어부산의 모델이 국제선 시장으로 확대될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에어부산은 국제선에서도 차별화된 가격 경쟁력과 아시아나와 코드쉐어를 통한 스케줄 경쟁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 부산-후쿠오카의 교통편은 항공이 15%, 선박이 85%를 차지하고 있다. 에어부산의 전략은 아시아나항공과 노선 제휴를 통해 대한항공을 견제하고, 20만 원대의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선박과도 경쟁하겠다는 것이다. 작은 여객선을 타고 3시간 이상 거친 대한해협을 건너야 하는 선박이 고객에게 감성적인 만족감도 주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와 국제선 노선에서도 전략적 제휴를 통해 ‘스케줄 경쟁력’도 강화할 계획이다. 아시아나와 코드쉐어를 하면 오전과 오후 매일 왕복 2편을 운행할 수 있기 때문에 하루에 한편 왕복하는 경쟁사를 압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에어부산은 항공기, KTX, 여객선 등 다양한 시장 경쟁 구도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서비스 혁신 전략을 마련했다. 서비스 품질 차별화와 고객의 서비스 소비 사슬 전반에 걸친 총비용 절감을 통해 고객 편익을 극대화하고 국내 항공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노선별로 타깃 고객을 설정하고 고객 가치를 창출하는 데 역점을 뒀다.


지속가능한 성장 모델 구축이 관건
서비스 품질 차별화를 위해 기존 항공사의 서비스 모델을 답습하지 않고 고객의 저비용 항공사 구매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신뢰성과 공감성을 강화했다. 고객이 느끼는 필수 서비스는 강화하고 체감 만족도가 낮은 보조 서비스를 없애거나 최소화했다. 이를 위해 과감한 웹 기술 채용과 아웃소싱으로 원가를 절감해 경쟁사를 따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지속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흑자를 꾸준히 내지 못한다면 외형만 크고 내실은 없는 저비용 항공사의 실패 모델을 답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올해 국내선 흑자 전환과 국제선 시장의 조기 안착이 과제다. 12월 경부 KTX 완전 개통에 따른 경쟁도 대비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김포-부산 간 KTX 운행 시간이 현행 2시간 50분에서 2시간 20분으로 빨라질 수 있다. 이는 에어부산이 5년 후 부산 기점 가장 강력한 국제선 항공사, 10년 후 아시아의 가장 경쟁력이 있는 단거리 항공사로 도약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속적인 혁신을 위해 자유롭고 창의적인 조직 문화를 안착시킬 필요도 있다. 직원 240명의 신생 항공사이기 때문에 직원 서로가 서로를 잘 이해하고 협력할 수 있는 조직 문화가 혁신 에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 회사는 금요일 아침 직원들이 돌아가며 자신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자유 주제를 발표한다. 또 오후 1시부터 1시반은 ‘창의 시간’으로 설정하고 업무 지시나 간섭을 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 결과 ‘3050 셔틀 서비스’, ‘사랑합니다 고객님’으로 시작하는 기내 안내 방송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한 직원은 “대형 항공사의 콜센터 상담원의 목소리 톤이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음계 중 미 정도에 해당하는 ‘미톤’인데, 밝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 이보다 톤을 조금 높인 ‘파톤’으로 응대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또 다른 직원은 “제주 노선 이벤트 형식을 조금 바꿔 안전에 대한 간단한 퀴즈를 내고 정답을 맞힌 고객에게 상품을 주는 ‘안전 퀴즈 이벤트’를 하자”고 제안했다. 퀴즈 이벤트로 승객에게 재미를 주고, 동시에 안전에 대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 승무원이 안전 때문에 승객을 귀찮게 할 필요도 없다는 게 이유다.
 
김 대표는 “자유와 질서가 공존하는 조직 문화를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개인들이 창조적으로 일하는 분위기 속에서 창조적 차별화의 경쟁력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DBR TIP 저비용 항공사의 서비스 품질과 고객 만족도


저비용 항공사가 신뢰성과 공감성을 강화하면 고객의 이용 의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학계의 연구결과도 나왔다. 김병재 상명대 국제통상학과 전임강사와 양석준 상명대 경영학부 조교수는 2009년 3월 한국항공경영학회지(제7권 제1호)에 ‘저비용 항공사의 기대된 서비스 품질이 고객 만족과 이용의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은 저비용 항공사를 이용해본 적이 없는 소비자 184명을 대상으로 유형성(tangibility), 신뢰성(reliability), 응답성(responsiveness), 확신성(assurance), 공감성(empathy) 등 5개 항공 서비스 품질 요인과 저비용 항공사 이용 의도와의 관계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5가지 서비스 품질 요인이 고객의 예상된 만족을 매개 변수로 이용 의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5가지 서비스 품질 요인 중 신뢰성과 공감성이 저비용 항공사 이용 의도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서비스 품질 요인으로 분석됐다. 저비용 항공사가 일반 항공사와 효과적으로 경쟁하기 위해서는 신뢰성과 공감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같은 특징은 대한항공과 ‘김포∼부산’ 노선에서 성공적으로 경쟁하고 있는 에어부산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회사가 정시 운항률을 높이고 셔틀 서비스를 도입하는 한편 아시아나 항공에 정비를 맡겨 저비용 항공사에 대한 불신을 줄이려고 노력한 것도 신뢰성 강화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고객의 관점에서 총비용을 줄이고 체감 서비스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은 공감성을 강화할 수 있는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저자들은 “저비용 항공사를 운영하는 회사는 정시출발과 고객에게 약속한 일을 꼭 수행하는 등의 신뢰를 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라며 “공감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홍보 전략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비스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고객 개인에 대해 관심을 표현하는 서비스를 줄이지 않았다는 점을 홍보해야 이용 의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편집자주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급 경영 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한국 기업의 사례를 집중 분석하는 코너를 연재합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제 기적을 이뤄냈고 그 주역은 기업과 기업인들입니다. 하지만 한국 기업에 대한 연구가 부족해 아직도 대학 강단에서는 외국 기업의 사례로 학생들이 토론을 하고 있습니다. DBR은 비즈니스 리더 여러분들에게 통찰을 주는 우수한 한국형 케이스 스터디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개인과 기업, 국가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겠습니다.
 
 
  • 박용 박용 | - 동아일보 기자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부설 국가보안기술연구소(NSRI) 연구원
    -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정책연구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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