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이어지는 불황, 일본식 경영의 상징인 도요타의 위기, 국적 항공사 일본항공(JAL)의 침몰….
합리주의와 성과주의에 기초한 서구식 경영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화려한 조명을 받았던 일본식 경영 방식이 최근 일련의 사태를 거치며 도마 위에 올랐다. 논란의 핵심은 일본식 경영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인지, 기업 경쟁력 확보에 걸림돌이 되는지 여부다.
비판론자들은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장기 불황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일본식 경영이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2004년 이후 이어진 잠깐의 호황도 규제 완화 등 일본 정부 차원의 대책이 효과를 본 것이지,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반면 고유의 동양적 정서와 문화에 영향을 받은 일본 기업들이 미국식 제도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오히려 더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일본식 경영의 문제점과 바람직한 적응·변화 방안을 모색해본다.
일본식 경영의 내재적 문제점
경영 전문가들은 1980년대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 일본식 경영 모델의 특징이자 경쟁력으로 중간 관리자층의 ‘조밀한 네트워크(the dense network of middle managers)’와 ‘측면 경로를 통한 의사소통 방식(the channels of lateral communication)’을 꼽는다. 일본 기업의 중간 관리자들은 최고경영자(CEO)가 제시한 비전을 실행하며 새로운 전략적 이니셔티브를 주도하는 조직 내 허리 역할을 맡는다. 이 과정에서 중간 관리자들은 동료와 상사, 부하 직원들 사이에 촘촘하게 형성된 개인적 인맥과 비공식적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십분 활용해 이해관계의 충돌을 사전에 조정, 원만한 합의를 이뤄나간다. 소위 ‘미들업다운(middle-up-down)’ 방식으로 요약되는 일본 기업의 이 같은 특성은 종신 고용과 연공서열에 기초한 집단주의적 사고 방식 및 공동체 의식과 맞물리며 조직의 에너지를 한군데 집결, 고도성장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중간 관리자의 교량 역할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일본식 경영 모델은 기업 규모가 커지고 업무 성격이 복잡해지면서 점차 실효성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 히토쓰바시대의 카루베 마사루, 누마가미 쯔요시, 카토 토시히코 교수가 18개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 기업의 중간 관리자들은 내부 의견 조율(internal coordination)을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 것으로 나타났다.11 Masaru Karube, Tsuyoshi Numagami, and Toshihiko Kato 2009, Exploring Organisational Deterioration: ‘Organisational Deadweight’ as a Cause of Malfunction of Strategic Initiatives in Japanese Firms, Long Range Planning, 42 (518-544)
닫기중간 관리자들이 내부 이해관계 조정에 지나치게 집중하면 조직적 부담(organizational deadweight)이 커진다는 게 연구자들의 지적이다. 고객의 욕구가 무엇이고 경쟁사들의 동향이 어떠한지를 파악하기 위해 쏟아져야 할 에너지가 조직 내부의 합의 도출을 위한 조정 작업에 과도하게 집중되면 기업 본연의 목표 달성과 장기 비전 실현이 어려워진다.
엄격한 위계질서 위에 형성된 일본 기업의 계층별 조직 구조 역시 과거 대량 생산 체제하에서는 최적의 모델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지식·창조 경영 시대에는 문제가 많다. 외부 환경 변화에 따라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을 추진해야 하는 21세기 초경쟁 환경하에서는 유연한 조직과 활기 있는 기업 풍토가 필요하다. 조직원 간 신속하고 활발한 정보 교류도 이뤄져야 한다. 과거처럼 중간 관리자층의 의견 조율 기능에만 의존하면 시대 흐름에 뒤떨어질 수 있다.
조직 간 의견 조율을 중시하는 일본 기업의 의사결정 방식은 의사결정의 신속성도 떨어뜨린다. 의견 조율을 과도하게 중시하다 보면 자칫 조직의 비전이나 목적 달성보다는 각 부서장들의 체면 유지가 궁극적 목적이 되기 쉽다. 정치적이고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다. 특히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유목민적 유전자(nomadic DNA)가 필요한 21세기에서 의견 조율만 강조하는 문화는 기업 성장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외부 환경 변화에 능동적, 효율적으로 적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도를 마다하지 않는 모험 정신이 필요하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동질성을 강조하고 조화에 집착하면 창조적인 아이디어의 생산보다 주어진 결정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고 조직에 순응하는 태도만 낳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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