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백화점의 폐점은 업계의 지속적인 합종연횡과도 관련이 있다. 2000년 소고 백화점의 파산으로부터 시작된 백화점의 통폐합은 이세탄·미쯔코시 홀딩스, 타카시마야·H2O 리테일링, 제이 프론트 리테일링(J. Front Retailing), 소고·세이부의 4개 그룹으로 재편됐다. 지속적인 매출 감소 속에서 운영 효율화가 중요 과제로 부상하자 과감한 점포 통폐합이 일어나고 있다.(그림1)
2009년 3월 기준 일본의 백화점 시장 규모는 6조 5842억 엔으로 13년째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이는 정점을 기록한 1991년 9조 7125억 엔에 비하면 70%에도 못 미치며 1984년 시장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일본 백화점 업계가 왜 20년 이상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지,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사회 구조 변화가 백화점 쇠락의 요인?
백화점 쇠퇴의 이유를 유통 환경 변화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인구의 지속적인 감소와 세대원 수 감소가 소매 시장 위축으로 이어졌고 백화점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분석이다. 또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등장으로 고객 욕구가 세분화되면서 백화점 업계는 과거보다 더욱 큰 규모의 시설을 필요로 하게 됐다. 즉 고객 욕구에 부합하지 않거나 규모면에서 경쟁력이 없는 점포는 퇴출시켜 효율성을 높여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일본의 세대 구성의 변화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노무라종합연구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본 소매 시장에서 ‘비정형 대가족’이라는 가족 형태가 새로운 소비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그림2) 일본 사회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대가족과 핵가족이 병존하는 가운데 단독 세대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단독 세대가 단독 세대로서의 소비 활동을 보임과 동시에 타단독 세대 또는 기존 핵가족 세대와 경제적인 의존 관계를 형성하면서 비정형 대가족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만들었다. 이러한 경향은 더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로 나타나고 구매 욕구와 구매 시간의 복잡성을 증가시켰다. 결국 소비자들은 기존 백화점이 제공하던 가치와는 다른 물품 제공 기능, 정보 제공 기능, 문화 엔터테인먼트 기능의 통합을 요구했다. 이런 경향은 백화점의 전문화 및 대형화 경쟁을 심화시켰다. 현재 일본 내에 3000여 개 쇼핑 센터가 존재하고 이들 전문 쇼핑 센터들이 백화점 주변 지역은 물론 주택가에까지 침투한 것은 백화점의 쇠퇴와 무관하지 않다.
선순환 구조의 위협 요인을 차단하라
하지만 유통 환경의 변화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항상 존재해왔다. 또 앞서 설명한 사회 구조적 변화가 아주 특별해 기존 패러다임을 완전히 새롭게 바꾼 것은 아니다. 시장 환경 변화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대응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소매 기업으로서 소홀해서는 안 되는 필수 기능이다. 지배적 소매 기업이 시장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혁신자로서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시장 내 입지에 변화를 겪게 된다. 일본의 백화점은 지배적 소매 기업으로서 시장 우위 유지를 위한 변화 대응을 충분히 하지 못했고 고객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좋은 사례가 위탁 매입제의 고수다. 이는 특히 매출 감소폭이 큰 백화점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위탁 매입제는 진열한 상품 중 팔린 제품만 정산을 하고 남은 제품은 제조사나 브랜드 관리 업자에 반품을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별도의 경영 자원 투입이나 상품 단위의 머천다이징 (MD)기능이 필요치 않아 효율적이라고 여겨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