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항공(JAL) 도산의 교훈

JAL은 일본 경제의 축소판인가

52호 (2010년 3월 Issue 1)

일본에서 우량 기업의 대명사였던 일본항공(JAL)이 2조 3222억 엔의 부채를 남기고 도산한 사건은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됐다. JAL이 무너지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일차적으로 보면 항공 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JAL의 높은 비용 구조가 문제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JAL이 운영하는 일본 국내선의 경우 52개 노선에서 좌석 이용률이 50% 미만이고 88개 노선은 70% 미만이며 나머지 11개 노선만 70%를 상회하고 있는 상황이다. 고정비용 부담이 큰 항공 산업에서 고객 이용률이 저조한 적자 노선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실패를 피하기 위한 4가지 교훈
JAL의 실패는 항공 산업 특유의 재편 흐름 속에서 파악할 수 있으나 모든 기업에게 해당되는 다음 교훈도 남긴다.
 
1.경영의 축이 흔들리는 기업은 목표 달성이 어렵다 우선 JAL은 지방 적자 노선을 많이 운영했고 쓸데없이 대형 비행기를 늘렸기 때문에 고비용 구조가 정착됐다. 이는 경영의 축이 흔들렸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JAL은 원래 1951년에 민간 자본으로 설립됐다. 그러나 1953년 정부 출자를 받고 공기업으로 재편된 뒤 1987년 다시 완전 민영화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AL은 구 자민당의 정·관·재계의 3각 유착 구조 속에서 경영을 해왔다. 자민당 정치인은 자기 고향에 지방 공항을 잇따라 건설하고 행정 부처는 JAL에 대한 각종 지원을 하면서 반강제적으로 지방 공항으로 JAL을 유치했다. 게다가 1990년대에 격화된 미일 통상 마찰을 무마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미국 비행기 도입을 JAL에 강요했다. JAL은 한꺼번에 구입한 비행기를 일시 방치해야 할 정도였다고도 한다. 이러한 유착 구조 속에서 JAL의 경영 목적은 수익성을 확보하거나 생산성을 올리는 게 아니라 정부 눈치만 보고 정부 정책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변질됐다. 이런 압력과 회사 방침에 대해서 현장 부서에서 일시적인 반발도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압력이 계속 작용하다 보면 경영진도, 종업원도 목표 의식이나 혁신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2.끊임없는 의식 개혁 없는 조직은 썩는다 정경유착과 경영 목표의 상실은 경영진이나 종업원의 위기 의식을 희석시켰다. 일본 정부는 JAL이 경영 위기에 빠질 때마다 금융 지원 등을 실시해 JAL을 구제했다. 이에 따라 경영진이나 종업원은 회사가 다소 어려워도 설마 파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안이한 사고에 빠졌다. JAL의 노조는 상대적으로 강경해 높은 수준의 임금과 복리 후생을 요구했다. 경영이 악화됐는데도 임금은 올랐다. 올해 들어 법정관리가 결정된 이후에도 JAL의 일부 해외 법인은 접대용 골프 대회나 종업원들을 위한 크루즈 파티를 그대로 추진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JAL의 경영진은 그동안 강경한 노조를 억제하기 위해 복수 노조를 유도했고, 그 결과 JAL에는 8개 노조가 생겼다. 하지만 이들은 경영진의 의도와 달리 경쟁적으로 강경 노선을 추구하여 조합원들의 지지 확보에 나서는 등 폐해만 키웠다. 근로자와 경영진이 한몸이 되어 시대 변화에 맞는 혁신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3.비즈니스 모델의 혁신 없이 사업 환경에 적응할 수 없다 JAL이 속한 항공 산업의 경영 환경을 마이클 E 포터의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산업구조 분석모형(5 Forces model)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그림) JAL은 △고객(여행자) △기존 경쟁사(ANA 등 다른 항공사) △조달선(공항, 비행기 제조업자, 연료 공급자) △신규 진입자(초저가 항공사) △경쟁 업종(철도, 선박, 자동차) 등 5가지 전형적인 경쟁 요인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다.
 
또한 JAL은 연료효율이 떨어지는 보잉 747 대형 비행기를 많이 보유하고 9·11테러,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글로벌 금융위기, 신형 인플루엔자 등 수시로 발생한 여행 수요 감소 충격에 시달려 수익을 창출하기 어려운 기업으로 전락했다.
 
여기에 항공 산업 구조의 변화도 JAL의 파산에 한몫했다. 규제 완화로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면서 국적 대표 항공사(national flag carrier)를 모든 국가가 유지하겠다는 발상 자체도 어려워졌다.
이와 함께 저출산에 따라 여행자 증가세가 둔화되고 기업 고객도 원가 절감에 주력하면서 초저가 항공사를 선호하는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공급이 부족한 국제 항공 노선 확보를 위해 항공사들은 원천적으로 공항 관리 업체 측에 약한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쟁 압력 속에서 수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 모델을 끊임없이 혁신해 차별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일본 국내 노선에만 집중했던 ANA는 규제 완화를 기회로 삼아 국제 노선에 진출했다. ANA는 동시에 국내 노선의 강점을 십분 활용해서 여행사에게 압력을 가하는 방법으로 국제 노선의 고객을 유치했다. 반면 JAL은 시대의 변화에 맞게 비즈니스 모델을 조정하는 노력이 미약했다. 패키지 단체 여행객을 염두에 둔 대형 항공기 위주의 전략은 개인별 맞춤형 여행을 선호하는 개인 고객의 수요 확대 추세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 JAL의 경영 방식은 기내 서비스가 없어도 가격이 싼 저가 항공사를 추구하는 소비자의 욕구와 점점 괴리됐다.
 
4.근본을 개선하지 못한 부실 기업의 회생은 불가능하다 JAL의 문제는 오래전부터 수면 위로 떠올랐다. 주가나 회사채 급락 등 JAL의 위기에 대한 경고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일본 정부도 금융 지원 강화에 주력했다. 거대 기업을 도산시킬 수 없다는 정책적인 고려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JAL에 대한 지원책은 그때마다 경영 위기를 무마하기에 급급했다. 근본 문제를 개선하지 않은 대증요법만 이어지면서 JAL은 잠재 부실만 키웠고 결국 회복 불능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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