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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튼에서 만난 두 CEO ‘같은 신념 다른 결정’

송원준 | 51호 (2010년 2월 Issue 2)
최근 와튼스쿨은 매우 흥미로운 리더십 강연을 연속 개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거센 폭풍을 헤쳐나가는 동안 정반대 결정을 내렸던 두 명의 금융 거물들을 연사로 세운 것이다. 첫 번째 인물은 메릴린치의 전직 최고경영자(CEO)인 존 테인이다. 그는 2008년 메릴린치를 생존시키기 위해 미국 최대 은행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Bank of America)와의 합병을 결정했다.
 
바로 다음 주에 와튼스쿨을 찾은 거물은 거대 상업 은행과의 합병 대신, 투자은행 본연의 위치를 고수하기로 결정한 모건스탠리의 CEO 존 맥이었다. 같은 시기에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완전히 상반되는 의사결정을 내린 두 CEO가 온다는 소식에 학교가 술렁였다. 필자 역시 ‘위기 속에서 최선의 의사결정이란 과연 무엇일까’를 알고 싶어 강연장을 찾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렸던 2008년 9월 중순, 존 테인과 존 맥은 회사의 운명을 결정해야만 하는, 각자의 커리어에서도 가장 극적인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던 헨리 폴슨,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벤 버냉키 의장, 당시 뉴욕 FRB 의장이자 현재 미국 재무장관인 티모시 가이스너 등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다른 은행과 합병하는 게 좋겠다’고 직간접적으로 압력을 행사했다. 깊은 고민에 빠졌던 두 CEO는 다른 결정을 내렸다. 그 결과, 메릴린치는 BoA에 흡수 합병되어 현재는 BoA-메릴린치라는 이름으로만 남아 있고, 모건스탠리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투자은행이라는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결정을 내렸지만 의사결정 배경은 모두 ‘직원과 주주 가치 보호’
존 테인은 왜 BoA와의 합병을 단행했는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번 금융위기는 역사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던 아주 전형적인(pretty classic) 버블이었습니다. 리먼 브라더스 파산 후 저는 메릴린치의 운명을 결정지어야만 하는 급박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당시에는 정부가 금융 기관에 어떠한 형태의 자본을 수혈하는 일도 불가능했습니다. 부실 자산 구제 프로그램(TARP·Troubled Asset Relief Program) 펀드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메릴린치에는 무려 6만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투자은행은 ‘사람’이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 즉 사람이 핵심인 사업입니다. 저는 회사와 주주 가치를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사람’을 회사에 머무르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BoA는 제가 메릴린치의 직원들을 계속 붙잡아둘 수 있도록 충분한 보너스 지급을 승인했습니다. 이게 바로 제가 BoA와의 합병을 결정한 이유입니다.”
 
반면 존 맥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당면한 과제는 직원 수만 명의 직장을 보전하고, 월가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 중 하나인 모건스탠리의 가치를 보호하는 일이었습니다. 폴슨 재무장관과 가이스너 뉴욕 FRB 의장이 계속 ‘JP 모건의 CEO와 통화하라’는 내용의 전화를 해왔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여기에 약 4만 5000명의 직원들이 있습니다. 당신들은 AIG, 리먼 브라더스, 베어스턴스, 메릴린치 등에서 해고될 사람들을 걱정하고 있을 겁니다. 이 상황에서 모건스탠리가 JP모건과 합병하면 추가로 수많은 해고자가 발생할 겁니다. 과연 그게 타당합니까?’ 저는 안팎으로 많은 압력을 받았지만 회사 가치를 보전하는 최고 방법은 직원들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원들에게 회사 상황이 정확히 어떤지 알리고, 그들에게 ‘당신이 회사의 최고 우선순위’라는 점을 주지시켜야 합니다. 저는 직원들과 여러 번 회의를 가졌고, 냉철한 분석을 통해 독자 생존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결국 제 결정은 옳았습니다. 모건스탠리는 최소한의 직원만 해고했지만 독자 생존에 성공했고, 현재 굳건하게 이익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두 거물 CEO의 결정에 대해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당시 두 CEO는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치밀하게 분석했을 테고, 본인의 가치 판단 순위에 따라 의사결정을 한 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리더십을 발휘했을 것이다. 2008년의 결정을 현재 시점에서 판단하는 일 또한 결과론에 근거한 분석이 될 수 있으므로 섣부른 판단은 자제하고 싶다. 실제 그간 ‘금융위기’를 주제로 한 다양한 수업과 강연에서 와튼스쿨의 교수나 학생 중 누구도 두 CEO의 결정에 대해 잘잘못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와튼스쿨 교수 중 재무 분야의 권위자인 제레미 시겔 교수는 “나는 BoA와의 합병을 결정한 존 테인의 선택이 매우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메릴린치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결정이었을 것이다”라고 말한 적 있다. 모건스탠리는 실적으로 독자 생존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줬으니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조직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상이
다만 과거 두 투자은행에서 근무했다가 현재 와튼스쿨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들의 반응과 향후 이 두 투자은행으로 취직하길 바라는 학생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메릴린치에서 일하다 와튼스쿨에 입학한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나 역시 두 결정 모두 당시에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해당 회사에서 직접 근무했던 사람으로서 이를 받아들이는 관점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메릴린치를 그만두고 와튼스쿨로 왔지만 아직 뉴욕 메릴린치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와 통화하면 그들은 습관처럼 이렇게 말한다. ‘회사에서 보너스를 얼마나 주느냐에 따라 향후 내 거취를 결정할 거야’ 즉, 회사 이름이 사라짐으로써 이제 애사심, 향후 커리어, 동료들과의 관계보다는 돈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등장했다.”
 
과거 모건스탠리에 근무했다 현재 와튼스쿨 1학년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존 맥에게 “비록 회사를 떠났지만 술렁이는 직원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당신이 회사의 모든 층을 돌면서 모든 직원과 일일이 악수하며 격려하던 모습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때 당신이 발휘해준 리더십에 감사를 표한다”는 말까지 했다.
 
두 회사의 구직 정책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다. 필자는 금융위기의 정점으로부터 1년이 지난 2009년 10월부터 MBA 학생들을 고용하기 위해 직접 와튼스쿨로 찾아온 세계적인 투자은행의 기업 설명회와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때 모건스탠리와 BoA-메릴린치의 기업 설명회는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모건스탠리의 설명회에는 수많은 학생들이 몰려 문전성시를 이뤘다. 반면 BoA-메릴린치의 설명회에는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회사 측이 와튼의 45% 정도를 차지하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외국인 학생은 올해 BoA-메릴린치에 지원할 수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두 사람 강연 후 학생들과 가진 질의응답 시간의 분위기도 무척 달랐다. 존 테인의 강연이 끝난 후에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금융위기와 규제 환경 등 거시적이고 정책적인 문제를 주로 질문했다. 반면 존 맥의 강연이 끝난 후에는 많은 학생들이 독자 생존 결정에 대한 CEO의 개인적 소감이나 느낌 등을 질문했다.
 
결정은 달랐지만 두 CEO는 모두 주주 가치와 직원 보호를 위해 의사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둘 다 주주 가치를 보호하는 일에는 성공했다. 다만 두 사람 모두 회사의 최고 자산이라고 거듭 강조한 ‘직원’을 제대로 보호했는지는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다. 다만 두 CEO의 의사결정은 장기적으로 회사의 조직 문화와 성과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필자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에게 ‘CEO가 발휘할 수 있는 최선의 리더십과 최고의 의사결정이란 과연 무엇인가? 내가 CEO였다면 과연 어떤 근거로,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를 거듭 고민하게 만드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편집자주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세계 톱 경영대학원의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MBA 통신’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스쿨,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LBS), 중국 유럽국제공상학원(CEIBS) 등에서 공부하고 있는 젊고 유능한 DBR 통신원들이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통신원들은 세계적 석학이나 유명 기업인들의 명강연, 현지 산업계와 학교 소식을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와튼스쿨은 1881년 필라델피아의 사업가였던 조셉 와튼이 설립한 세계 최초의 비즈니스 스쿨이다. <파이낸셜 타임스(FT)> 등 세계 유수 언론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비즈니스 스쿨로 여러 차례 선정된 바 있다. 매년 850명 정도의 신입생들이 입학하며, 재학생의 45%가 외국 학생일 정도로 다양성에 바탕을 둔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국인 학생도 상당수여서 탄탄한 동문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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