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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관점에서 본 지속가능 경영

‘공유지의 비극’ 막는 공존의 지혜

노한균 | 48호 (2010년 1월 Issue 1)
지속가능 경영이라는 단어가 범람하는 시대다. 남들에게 자신의 높은 사회의식과 시대의식을 보여주려면 반드시 이 단어를 써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사람도 많다. 연말 모임이 많은 최근에는 ‘지속가능성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 모임부터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이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중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요즘 회자되고 있는 지속가능 경영의 개념과 진정한 의미를 정리하고, 이 문제가 기업 경영이나 일반 생활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살펴보자.
 

 
지속가능 경영의 개념
지속가능 경영이란 ‘지속가능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또는 지속가능성 (sustainability)을 고려한 경영’으로 정의할 수 있다. 지속가능 발전의 정의는 이를 ‘미래 세대의 욕구 충족 능력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현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발전’으로 규정한 환경개발 세계위원회(WCED·World Commission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의 1987년 정의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개념이 등장한 후 지속가능 경영에서 차지하는 기업의 역할이 강조되기 시작했으므로 지속가능 경영은 지속가능 발전과 함께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부터 지속가능 발전, 2000년대부터 지속가능 경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국의 초기 지속가능 경영 논의도 지속가능 발전과의 연계 속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역사적 맥락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특히 일각에서는 지속가능성의 주체를 기존 논의의 관심사였던 경제, 사회, 생태계가 아닌 기업 혹은 경영진으로 바꿔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지속가능 경영의 개념을 둘러싼 혼란이 증폭된 이유다. 즉 흔히 말하는 지속가능 경영이 경제, 사회,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활동인지, 기업과 경영진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활동인지 모호해졌다는 뜻이다.
 
필자는 이 둘을 동시에 추구하는 게 진정한 지속가능 경영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 둘을 동시에 달성하려면 우리가 가지고 있던 기존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미국 생태학자 개럿 하딘은 1968년 <사이언스>에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하딘은 제한된 넓이의 목초 공유지에서 농부들이 경쟁적으로 소를 방목하는 상황을 가정했다. 그는 적절한 규약 없이 소를 방목하면 농부들은 저마다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이기적으로 공유지를 이용할 것이며, 결국 땅은 폐허가 될 거라고 추론했다. 농부 개개인은 합리적 판단을 추구했지만 그 결과로 아무도 양을 키울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지속가능성이라는 용어를 빌려 설명하자면 개인의 지속가능성 욕구가 목초지의 지속가능성을 무너뜨리고, 궁극적으로 개인의 지속가능성 또한 무너진다는 뜻이다.
 
‘공유지의 비극’은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빠질 수 있는 상호모순의 함정을 잘 보여준다. 내가 현재 누리고 있는 소비 수준과 생산 방식을 ‘지속가능하게’ 누리다 보면 나 자신이나 나의 후손이 누릴 것도 모두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방식의 지속가능성 욕구를 변화시켜야만 이를 지탱하는 경제, 사회,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유지시킬 수 있다는 뜻도 된다. 현재 수준의 소비, 생산 능력보다는 만족스럽지 않을 순 있지만 장기적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유지해야 할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지속가능성과 기업 경영의 조화
기업보다 상위 체제인 경제, 사회,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만 기업의 지속가능성도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은 2가지 우려를 낳는다. 첫째, 우리 회사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다른 기업들이 과거 방식대로 활동한다면 결국 우리 기업만 손해를 본다는 우려다. 둘째, 설령 모든 기업과 경제 주체가 합심해 올바른 지속가능성을 추구해도 경제 전체가 위축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다.
 
첫 번째 우려는 게임 이론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상황이다. 둘이서 협력할 수만 있으면 둘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욕심만 생각해 둘 다 손해를 보는 상황이다. 죄수의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대화와 상호 신뢰뿐이다. 죄수의 딜레마라는 상황 또한 두 죄수가 각각 독방에 갇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행동을 상의할 수 없었기에 발생했다. 또 설령 상의한다 해도 상대방이 약속대로 실천할지 확신할 수 없었으므로 발생했다. 대화와 상호신뢰가 식상하게 느껴질지 모르나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근본적인 방안임은 자명하다.
 
두 번째 우려는 사람들의 인식 변화로 극복해야 한다. 국내총생산(GDP) 등이 대변하는 경제 성장, 행복 지수, 지속가능성 등의 척도는 이미 그 한계를 드러냈다. 1933년 GDP 개념을 구체화한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조차 성장의 양과 질은 분명히 구분된다며 GDP 지수 남용을 경고한 바 있다. 쿠즈네츠는 무려 70여 년 전부터 성장의 양에 집착하지 말라는 경고를 남겼지만, 아직도 우리는 양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돈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돈만 가지고 인간다움을 모두 측정할 수는 없다. 기업 이윤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영속하기 위해서는 이윤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기업 존재 이유를 무조건 이윤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1조 원의 이익을 낸 두 기업이 있다고 치자. 하지만 이를 어떻게 벌었고, 어떻게 사용했느냐에 따라 그 1조 원의 의미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많은 경영, 경제학자들이 ‘기업은 생산 주체인 동시에 자원 배분의 주체’라는 점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대 경영학의 대부 피터 드러커는 사회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개발(R&D)에 매진하고 혁신에 노력하는 기업을 꿈꿨다. 이때 사회 욕구는 가치가 포함되지 않은 빈 상자와 같다. 대량살상무기를 원하는 사회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R&D와 혁신을 도모하는 기업도 있다. 반면 다른 사람이나 자연과 공존이라는 사회 욕구를 위해 R&D와 혁신을 꾀할 수도 있다. 기업이 지속가능성을 사회적 욕구 충족의 필수 과정으로 여긴다면, 기업 및 경제 체제의 지속가능성은 더 이상 둘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기업에게 불필요한 부담만 지우는 요소가 아닌 기업 경영의 본질로 자리 잡을 것이다.
 
지속가능성의 구체적 내용
그렇다면 과연 지속가능성은 어떻게 측정해야 할까. 크게 계정 활용 방식(ac-counting approach)과 지표 활용 방식(indicator approach)이 존재한다. 계정 활용 방식은 국민 소득 계정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는 환경부가 2001년 녹색 GDP (Green GDP) 시범 편제 및 환경경제통합계정(SEEA) 작성법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환경부는 2010년까지 10년간 3단계로 SEEA 계정 개발, 녹색 GDP 작성 중장기 추진 사업을 추진해왔다. 다만 이 노력은 환경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어, 사회적 측면을 포괄하는 지속가능 발전보다는 다소 좁은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거시경제 차원에서 접근했기에 기업 경영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기가 어렵다.
 
때문에 기업에게 더 많은 의미를 주는 방식이 지표 활용법이다. 지속가능성 측정을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지속가능 발전 지표는 국제연합(UN)이 1996년 제정한 ‘지속가능 발전 지표 (Indicators of Sustainable Development)’다. 현재 쓰이는 UN의 지속가능 발전 지표는 2007년에 개정·발표된 <지속가능 발전 지표: 지침과 방법론(Indicators of Sustainable Development: Guidel-ines and Methodologies)> 제3판이다. 이 지표는 총 14개 주제와 44개 하위 주제로 이뤄져 있다.(표1)
 
 

 
한국 정부도 2006년 국가 지속가능 발전 전략 및 이행 계획을 수립하면서 한국 실정에 맞는 지속가능 발전 지표 77개를 선정했다. 우리나라의 지속가능성 지표는 사회, 환경, 경제 3대 축을 기초로 14개 영역, 33개 항목, 77개 지표로 이뤄져 있다.(표2)
 

 
 
지속가능성과 기업의 역할
기업이 자사 경영 활동을 지속가능 발전과 가장 잘 일치시키는 방법은 지속가능 발전의 일부 요소를 자사 핵심 사업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사회 공헌을 포함한 자사의 사업 수행 방식에서도 지속가능 발전을 고려하는 일이다. 이게 바로 가장 바람직한 형태의 지속가능 경영, 즉 ‘근본적인 지속가능 경영’이다.
 
하지만 현재 핵심 사업과 지속가능 발전 요소를 연결시키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때문에 현재 사업 영역에서 지속가능 발전을 고려한 사업 수행 방식을 채택한 후 향후 신규 사업 영역을 지속가능 발전과 연계시키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이런 형태의 지속가능 경영이 ‘부가적인 지속가능 경영’이다. 자사 사업이 지속가능 발전 영역에서 속해 있지만, 사업 수행 방식이 지속가능 발전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 이는 ‘표면적인 지속가능 경영’이라 하겠다. 기업들은 자사가 현재 어떤 단계에 위치해 있는지 파악한 후, 단계별 이동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근본적인 지속가능 경영’의 영역에 진입하는 일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지속가능 경영은 전 지구적 이슈이긴 하지만 아직 완전하지 않은 부분이다. 때문에 지나친 기대나 과도한 부담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사회 전체나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 우리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이를 추진한다고 생각하면 지속가능 경영에 관해 가지는 거부감이나 선입견을 한결 줄일 수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지속가능 경영에 필수적으로 뒤따르는 죄수의 딜레마 문제를 극복하려면 대화와 상호 신뢰가 필요하다. 이는 기업뿐 아니라 국제기구, 정부, 소비자 등 다른 경제 주체와도 이뤄져야 하는 일임도 명심해야 한다. 국제기구나 각국 정부 노력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마찬가지로 기업만의 노력으로는 지속가능 발전이라는 전인류적 과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여러 주체가 참여하고 공유해야만 이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노한균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캠브리지대에서 사회발전학 석사,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 연구 분야는 윤리 경영, 사회 책임, 지속가능 경영 등 사회 가치와 경제 가치를 통합한 교육 및 경영 시스템 실현 방안이다. 저서로는 (Palgrave Macmillan, 2007) 등이 있다.
 
  • 노한균 노한균 | - (현) 국민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 (현) 지속가능경영연구센터장
    - (전) 영국 브루넬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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