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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지속가능 경영 실태와 과제

지속가능 우위 확보 기업은 2% 불과

이수열 | 48호 (2010년 1월 Issue 1)
기업의 경쟁 환경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기업 전략의 핵심은 변화에 어떻게 잘 적응하느냐다. 즉 ‘지속가능하다’라는 말의 동의어는 ‘누가 변화에 잘 적응하느냐’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시장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평준화되어 품질, 가격, 서비스 등 기존 경쟁 요소로는 더 이상 소비자를 매혹시킬 수 없다. 기업들이 세계의 거대 시장에서 예상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지속가능성 이슈를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비록 소비자가 아직 이 분야에 관한 지갑을 활짝 연 건 아니지만, 이들은 사회, 환경 문제를 염려하는 자신들의 손을 누군가가 먼저 이끌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지속가능 경영을 차별화, 경쟁력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고 단순히 환경 문제나 거추장스러운 부담으로만 인식하면 지속가능 경영으로 돈을 벌기가 어렵다. 전략이 없는 지속가능성은 비용과 의무에 불과하며, 이때 기업은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기 때문이다. 사회, 환경과 경쟁력을 연결하는 것은 새로운 사고를 필요로 한다. 이는 결국 혁신의 문제다. 많은 기업들이 지속가능성을 기존 경쟁력 중 일부를 포기해야 하는 제로섬(zero-sum)으로 여긴다. 하지만 지속가능 경영은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경쟁 궤도 자체를 완전히 바꾸는 일이다. A에서 A'로 가는 게 아니라 A에서 완전히 다른 경쟁 체제인 B로 도약하는 일이다.
 



3M은 3P(PPP·Pollution Prevention Pays) 프로그램으로 22억 파운드의 화학 물질 사용량을 줄여 생산비용도 줄이고 친환경 기업이라는 이미지도 동시에 얻었다. 친환경 제품으로 200억 달러의 시장을 키운 GE의 에코매지내이션(eco-magination) 전략도 마찬가지다. 지속가능 경영의 당위성, 즉 ‘Why’를 고민하지 말고, 전략의 문제, 즉 ‘How’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지속가능 우위(sustain-advantage)를 찾는 5단계 과정
지속가능 경영의 핵심은 자사의 지속가능 우위를 발견하는 일이다. 지속가능 우위는 경쟁 우위(competitive advantage)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결합한 용어다. 이를 지속가능 경영의 5단계 발전 모형을 통해 분석해보자.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0단계: 지속가능 무지자(sustain-the ignorant)
지속가능 이슈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이거나 무관심한 단계에 있는 기업들이다. 정부의 환경 규제에 대응하는 정도가 해당 기업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지속가능 활동이다.
 
1단계: 지속가능 초보자(sustain-beginners)
경영 환경을 둘러싼 사회, 환경 이슈에 대해 감지하기 시작하며, 이중 일부를 경영에 반영하는 기업들이다. 지속가능 경영의 분야는 크게 지배 구조, 기업 윤리, 고객 및 제품 보호, 지구 온난화, 환경 보호, 공정 거래 및 협력, 사회 공헌 활동, 종업원 및 인권 보호 등 8개로 나눌 수 있다. 이중 몇 가지 부분에서 대응을 하는 기업들을 일컫는다.
 
2단계: 지속가능 검토자(sustain-analyzers)
8가지 영역 중 대부분의 영역에서 대응하는 기업들이다. 이 단계에서 비로소 지속가능 이슈가 조직 내부로 전파되기 시작한다. 조직 내에 지속가능 경영을 확산하고 정착시키기 위해 하드웨어에 해당하는 지속가능위원회나 전담 조직을 두고 보고 체계, 교육 및 훈련, 성과 평가 등의 소프트웨어도 갖춘다. 대부분은 이 단계에서 지속가능성 보고서(SR)도 발간한다.
 
3단계: 지속가능 활용자(sustain-differentiators)
사회, 환경 이슈를 자사의 경쟁 우위 확보 방법으로 삼는 기업들이다. 지속가능 검토자와의 가장 큰 차이는 전자는 시스템은 갖췄지만 아직 이를 회사 전략과 일치시키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반면 지속가능 활용자는 회사 핵심 전략과 일치하는 지속가능 경영 중장기 추진 전략(로드 맵)을 가지고 있다. 지속가능성에 관한 개인별, 조직별 핵심성과지표(KPI)까지 갖추고 이를 모니터링한다. 개인, 팀, 사업 부서, 임원 성과 평가에도 지속가능 이슈를 포함시켜 지속가능 우위에 대한 전 직원의 인식을 높인다는 뜻이다.
 
4단계: 지속가능 탐험가(sustain-pathfinders)
지속가능 활용자 중 특별한 리더십을 보이는 기업들이다. 지속가능 문제와 관련한 산업 커뮤니티를 구성하거나, 새로운 표준 및 제도 제정을 선도하는 기업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이야말로 앞서 언급한 경쟁의 판도를 바꾸는 기업들이다. 대표적 예가 듀폰이다. 듀폰은 ‘지속가능 발전 세계 기업 협의회(WBCSD)’라는 조직 설립을 주도하는 등 세계 비즈니스계의 지속가능성 확산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쳐왔다.
 
 
한국 기업의 지속가능 경영 실태와 과제
필자는 우리나라 기업의 지속가능 경영 현황을 이해하기 위해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 웹사이트(www.bisd.or.kr)에서 최근 게시된 62개 지속가능성 보고서(환경 보고서, 사회책임 보고서 등도 포함)를 분석했다. 보고서 발간 연도는 2009년(11개), 2008년(28개), 2007년(18개), 2006년(5개) 순이었다. 매출액을 확인할 수 있는 59개 기업 중 매출 1조 원이 넘는 기업은 37개(80%), 1000억 원 이상은 10개(17%)였다. 매출 10조 원이 넘는 초대형 기업 수도 18개(31%)에 달해 한국의 지속가능 경영이 주로 대기업 위주로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조사 대상 기업 분야는 다양했다. 기계, 금속, 화학 분야가 16개(26%)로 가장 많았다. 전기, 전자, 정보기술(IT) 분야는 12개(19%), 수송, 물류, 서비스 분야는 10개(16%), 전력 분야는 9개(15%)였다. 단일 산업으로는 전력 산업에 속한 기업 수가 가장 많았다. 62개 기업 중 공기업이나 정부 영향력이 높은 기업이 19개로 31%를 차지했다. 이는 지속가능 경영을 확산시키는 데 기업 역할 못지않게 정부 역할도 중요함을 보여준다.
 
62개 보고서 발간 기업 중 93.6%에 달하는 60개 기업이 지배 구조, 기업 윤리, 고객 및 제품 보호, 지구 온난화, 환경 보호, 공정 거래 및 협력, 사회 공헌 활동, 종업원 및 인권 보호라는 8개 분야 중 최소 6개 분야 이상에서 지속가능 경영 활동을 수행하고 있었다.(표1) 지속가능 경영의 주요 이슈에 관해 대부분의 기업들이 잘 숙지하고 있으며, 활동 수준도 일정 단계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문제는 전략이었다. 이들 기업 중 자사 핵심 전략과 연계된 지속가능 경영 로드 맵을 가진 기업은 16개 기업(25.8%)에 불과했다.(표2) 향후 이에 관한 아무런 계획이 없는 기업도 무려 24%에 달했다. 자사 핵심 전략과 연계된 핵심 성과 지표를 보유한 기업은 더욱 적어 단 6.5%에 불과했다. 즉, 기업들이 지속가능 경영을 개별 이슈마다 산발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를 조직 핵심 전략과 연계시키고, 조직원의 성과 평가 체계에 반영시키며, 지속가능성 이슈를 자사의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방안으로 생각하는 기업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지속가능 이슈를 기업 내부로 확산, 정착시키려는 노력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지속가능 경영위원회 및 전담 조직 운영 여부, 지속가능성 관련 내부 보고 체제 마련, 교육 및 훈련, 보상 체계 포함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제대로 된 내부 확산 메커니즘을 구축한 기업은 단 6개 기업(9.6%)에 지나지 않았다. 심지어 조사 기업의 75.8%는 시스템 측면에서 지속가능 경영을 조직 내부에 정착시키기 위한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표3)
 

 
이를 감안하면 현재 우리나라 기업, 특히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하는 수준의 기업은 대다수가 지속가능 검토자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조사 대상의 76%에 해당하는 기업은 지속가능성에 관한 문제를 개별적, 산발적으로 대응하고 있었고 지속가능성에 관한 인식이 기업 내부에서도 막 형성되는 수준이었다. 22% 기업만이 지속가능 우위를 고려하는 단계로 옮겨가고 있었다. 지속가능 우위가 정착된 기업은 단 2%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기업이 진정한 지속가능 경영을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2가지 핵심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지속가능 우위를 위한 전략 로드 맵부터 설정하라
우선 지속가능 우위를 가져올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중장기 단계별 추진 전략부터 수립해야 한다. 지속가능 경영과 경쟁 우위를 연계하려면 다양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환경, 사회 문제를 해석해야 한다. 지속가능 우위를 획득할 수 있는 몇 가지 사례들을 보자.
 
1) 효율성 향상 총량 기준으로 따졌을 때 평균적으로 기업 생산 공정에 투입되는 재료 중 단 7%만이 제품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93% 투입물은 가치 창출에 기여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셈이다. 듀폰은 온실가스 저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생산 공정을 개선했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무려 20억 달러의 비용을 줄였다. 또 ‘배출 제로(zero emission)’ 목표에 따라 오염 물질 저감 활동을 추진한 결과 1억6000만 달러를 줄였다. 배출 제로 활동에 쓰인 돈도 당초 20억 달러의 5분의 1에 불과한 4달러에 그쳤다. IBM도 온실가스 저감을 추진해 지난 5년간 1억1500만 달러를 절검했다.
 
2) 제품 차별화 클로록스는 자체 조사 결과, 친환경을 중시하는 녹색 소비자 집단이 전체 소비자의 약 13%에 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클로록스는 세정력이 우수한 친환경 세제 개발에 3년간 2000만 달러를 투자한 결과 친환경 세제인 그린웍스를 개발했다. 환경 단체인 시에라 클럽(Sierra Club)의 친환경 보증 및 판촉 지원에 힘입어 그린웍스는 2억 달러 규모의 세계 친환경 세제 시장에서 무려 40% 점유율을 달성했다.
 
3) 기업 차별화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은 2000년 이후 무려 2억 달러 이상을 들여 회사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BP는 영국 석유회사가 아닌 ‘석유를 넘어선 회사(beyond petroleum)’로 기억해달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하고 있다. 세계 정유업계가 여전히 환경 단체의 비난을 받고 있지만 최근 몇 년간 BP의 브랜드 파워는 꾸준히 상승해왔다. BP는 사회 공헌 지출액을 늘리고 기부, 임직원 봉사, 장학 재단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공헌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유한킴벌리의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처럼 사회 공헌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야 한다.
 
4) 선점 효과 기업이 지속가능 경영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는 초기 진입자의 혜택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새로운 규제가 등장할 때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이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듀폰과 몬트리올 의정서를 보자. 프레온가스의 주 생산자였던 듀폰은 오존층 파괴 물질인 프레온가스 생산을 금지하는 몬트리올 의정서 발효로 연 5억 달러의 시장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듀폰은 이에 대처하기 위해 대체 물질인 HFC를 개발했고 몬트리올 의정서를 강하게 지지했다.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는 동시에 환경 보호에 앞서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까지 얻은 셈이다. 휴렛팩커드(HP) 역시 2002년 유럽연합(UN)의 전기전자 제품의 폐기물 처리 지침(WEEE)에 대비해 소니, 브라운, 일렉트로룩스 등과 함께 전자 제품의 회수 및 재활용 체계를 구축했다. HP는 선행 대응을 통하여 재활용 물량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고 회수 시설을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도 경쟁사에 비해 55% 적게 지출했다. 결과적으로 2003년 이후 5년간 1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 절감을 이뤄냈다.
 
5) 혁신 및 학습 능력 시스코는 재활용을 담당하는 부서를 사업 조직으로 정비하여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혁신을 계속해왔다. 재활용은 가치 회수(value-recovery) 팀으로 재탄생하여 자사 모든 사업부와 고객 지원 센터를 파악하고 회수 가능 가치를 분석했다. 그 결과 시스코 내 장비 재사용율은 2004년 5%에서 2008년에는 45%로 급증했다. 재활용 비용도 같은 기간 40% 감소했다. 시스코의 재활용 관련 활동이 기업 수익에 공헌한 액수는 2008년 기준 1억 달러에 달했다.
 
DBR TIP 지속가능 경영에 관한 흔한 질문들
 
지속가능 경영은 선진국에서나 통하는 호사스런 얘기가 아닌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속가능 경영 사례는 대부분 해외 선진 기업에서 행한 일들이다. 때문에 우리나라 경영자들은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생각하면서 한국 실정에서 지속가능 경영이 과연 필요한지 의구심을 갖는다. 여기에는 ‘한국 소비자들은 지속가능성 이슈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데 우리가 괜히 돈을 들여가며 먼저 이를 단행할 필요가 있을까’란 속내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성에 국경은 없다. 첫째, 기업 경쟁 범위는 아주 빠른 속도로 글로벌화되고 있다. 수출 의존도 37%, 무역 의존도 70%를 넘어서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무시하기는 어렵다. 특히 지속가능 이슈에 대한 사회 각계와 소비자들의 요구는 경제성장 속도에 따라 더욱 빨라진다.
 
기업에 대한 호감도 조사를 해보면 선진국보다는 개발도상국이, 개발도상국보다는 저개발국가에서 기업에 대한 호감도가 훨씬 높게 나타난다. 맥킨지 컨설팅 조사를 보면 기업에 대한 호감도가 중국과 인도에서는 각각 71%, 69%에 달했다. 반면 미국(40%), 프랑스(24%), 영국(37%) 등 선진국에서는 호감도가 월등히 낮았다. ‘기업이 탐욕스럽다고 느끼느냐’에 관한 설문 결과도 정반대였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기업이 탐욕스럽다고 답한 사람들이 각각 80%, 85%에 달했지만 중국에서는 이 비율이 24%에 그쳤다.
 
한국은 선진국과 중국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 경제의 상황이 아니다. 중국이나 인도 등 한국 기업의 미래 주력 시장 소비자들이 한국 소비자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기업에게 더욱 많은 요구 사항을 내놓을 거라는 점이 중요하다. 선진국 기업들은 기업에 관한 소비자들의 냉정한 시선에 익숙해져 있고, 이에 관한 대비도 오랫동안 갖춰왔다. 하지만 호의적인 시선하에서 안주해왔던 한국 기업이 이에 대비하지 않으면 국내에서도, 국외에서도 큰 화를 입을 수 있다.
 
지속가능 제품 및 서비스 시장이 진짜 커지고 있는가?
친환경 제품 시장에 대한 장밋빛 전망은 1980년대 이후부터 줄곧 있었다. 20년 전 시장 조사에서도 미국 소비자 89%가 ‘친환경 제품에 관심이 있다’고 답했으나 관련 시장 규모는 별로 커지지 않았다. 지속가능 제품에 관한 확신과 불신은 여전히 팽팽하다. 최근 글로벌 소비자 대상 조사에서 ‘향후 5년 안에 가장 중요하게 부각될 이슈가 기후 변화, 윤리적 과정을 통해 생산된 제품 구매, 인권 등이었다’는 결과가 있는 반면, 미국 소비자 중 64%가 친환경 브랜드 자체를 모른다는 보고도 있다.
 
환경 문제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그 속내를 대놓고 얘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시장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열리느냐를 감지하는 일은 전적으로 경영자의 능력이다. 그 시장이 우리 기업이 원하는 때에 열리도록 하는 일 역시 경영자의 몫이다. 시장이 마냥 열리기를 기다리는 기업과 없던 시장을 개척하는 기업 중 누가 유리할지는 자명하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데 지속가능 경영을 잘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지 않나?
리바이스는 몇 년 전부터 청바지 원단 재료로 유기농 목화를 사용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친환경 활동을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약간의 칭찬 후 몰아 닥칠 더 많은 비판의 화살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코카콜라, 월마트 등도 재료 수급 시 공정 무역 재료를 채택하고,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등 여러 지속가능성 활동을 벌였으나 칭찬만큼 많은 비판도 들었다. 하지만 이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가는 자의 숙명이다. 미국 환경운동가이자 <넥스트 그린 컴퍼니> 저자로 유명한 조엘 매코워는 “처음에는 등쌀에 못 이겨 지속가능 경영을 시작했던 기업들이 결국에는 각자 분야에서 리더가 되어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코카콜라 역시 “비판받는 일이 1등의 숙명이라면 이를 감내하겠다”라며 리더의 숙명을 받아들였다.
 
지속가능 경영을 통해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나?
가장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사항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질문은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 비즈니스에서 그 어떤 것도 저절로 돈을 벌어다주는 것은 없다. 지속가능 경영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는 게 아니라 지속가능 이슈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기업 성과를 높이는 게 지속가능 경영이다. “우리 회사는 지속가능 경영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성과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답해야 한다. “그 회사는 제대로 된 지속가능 경영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개별 회사가 처한 현실과 회사가 추구하는 목표에 맞는 지속가능 경영을 추진한다면 돈을 벌지 못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조직을 지속가능 우위에 맞게 변화시켜라
지속가능 이슈를 조직 내에 정착시키는 일은 한두 사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지속가능 우선이라는 마인드가 모든 부서와 종업원에게 깊숙이 전파되고, 조직 문화로 정착될 때만 가능하다. 조직 구조를 지속가능 우위에 맞게 변화시키려면 다음 노력이 필요하다. 조직적으로 내재화할 때 고려할 수 있는 몇 가지 방안들이다.
 
1) 최고경영자(CEO) 리더십 식상하지만 CEO의 리더십은 지속가능 우위를 만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GE의 에코매지네이션 전략, 듀폰의 지속가능 성장 전략, 월마트의 그린 월마트 전략, 3M의 3P 프로그램 등은 모두 CEO의 강력한 의지로 시작했기에 힘을 받을 수 있었다. 클로록스 역시 2000년대 중반까지는 친환경과 별 관련이 없는 기업이었다. 하지만 이를 중시한 딘 크나우스가 CEO로 취임하면서 친환경 세제 그린웍스 성공을 이뤄냈다.
2) 지속가능 우위 추진 조직 만들기 지속가능성을 전략 수준에서 고려하려면 이를 조직 의사결정 과정에서 제도적으로 반영시켜야 한다. 이때 형식적인 위원회를 만들면 안 된다. 듀폰은 과거 매월 열렸던 ‘환경리더십위원회’를 폐지하고 이를 CEO인 채드 할러데이가 직접 지휘하는 ‘지속가능성장협의회’로 바꿨다. 횟수 자체는 연 12회에서 연 3회로 줄었지만 CEO가 직접 운영하는 위원회로 격상해 더욱 효과적인 전략을 추진할 수 있었다. 경영진들은 지속가능 이슈에 관해 이사회와도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월마트의 스코트 리 회장이 그린 월마트 전략을 추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주주인 월튼 가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 내부적으로는 강력한 추진 조직이 필요하다. 사회공헌 팀, 환경 팀 등 개별 조직이 아니라 회사 전략과 기획에 밀접히 연계된 조직이 필요하다. 유럽 반도체업체 ST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는 1987년 이후 전사적품질환경체제(TQEM) 조직을 운영하면서 환경 이슈가 일상적인 품질 경영과 같은 업무가 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추진 조직에도 발전 단계가 있다. 처음에는 사회, 환경 부문을 개별적으로 다루는 부서가 산재하지만 이를 지속가능 경영 사무국 형태로 통합해야 한다. 이후 궁극적으로 통합 사무국이 전략 결정 및 내부 통제 과정에 관여해야 한다. 현대자동차처럼 경영전략실 내에 환경전략 팀을 둬도 좋다.
 
지속가능 전담 조직의 수장은 재무나 기획 등 회사 핵심 부서 출신 임원이 맡아야 한다. 현재 GE의 에코매지네이션 전략은 해외사업 개발 본부장이 총괄하고 있다. 가구회사 이케아는 아예 최고 지속가능 책임자(CSE·Cheif Sustainability Executive)라는 직책도 신설했다. 이케아의 CSE인 토머스 버그마크는 이케아의 핵심 부서인 홈오피스 가구 사업부의 책임자였다.
 
3) 내부 보고 체계 확립 GE에는 에코매지네이션에 관한 분기별 사업부 성과 보고 제도가 확립되어 있다. 세션E라 불리는 보고 체계는 각 사업부, 사업장에서 진행된 환경 성과, 에코매지네이션 성과에 대해 보고하는 자리다. 세션E가 영향력이 높은 이유는 해당 보고를 환경 관련 담당자가 아니라 각 공장장이나 사업 본부장이 직접 하기 때문이다. ‘누가’ 보고를 하느냐에 따라 조직 내부가 지속가능 이슈를 받아들이는 정도도 달라진다는 점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4) 성과 평가와 지속가능성의 확실한 연계 체제 확립 지속가능 경영을 지속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개인별, 팀별, 부서별 평가에 지속가능 우위 요소를 포함시키는 일이다. 석유기업 셸은 임원 보너스의 25%를 지속가능 지표의 달성 여부로 결정한다. 평가 항목에는 온실가스 배출, 기름 유출 사고, 사업부별 사건 사고 등이 포함돼 있다. 화학소비재 회사인 SC존슨도 경영진의 보너스 산정 원료 분류 체계인 그린리스트(greenlist)를 얼마나 개선했는지를 반영한다.
 
듀폰의 제품 중량 대비 주주 부가가치 비율(SVA /lb·Shareholder Value Added / pound of product)도 좋은 사례다. 이 지표에 따르면 듀폰은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제품에 투입되는 자원 및 판매되는 제품양을 줄여야 한다. 이와 동시에 주주 가치도 높여야 한다. 듀폰의 모든 사업부는 향후 5∼10년 이내에 달성해야 하는 SVA/lb 목표를 설정한 후 이에 따라 개인별, 사업부별 성과를 측정한다. 듀폰의 첨단 화이버 시스템 사업부는 2001년 기점으로 5년간 SVA/lb를 2배 높이기로 했다.
 
5) 지속가능 우위 교육 및 훈련 조직 변화를 이끄는 힘은 교육과 훈련에 있다. 세계적인 알루미늄 회사인 리오틴트 알칸은 체계적인 환경 관련 교육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CEO, 중견 관리자, 일선 작업 노동자까지 이 회사의 모든 직원들은 1년에 최소 4일 이상 지속가능 우위에 관한 교육을 받는다. 교육을 통해 최신 지속가능 이슈를 이해하고 자신의 업무에 이를 어떻게 반영할지를 고민한다.
 
 
지속가능 경영이라는 문턱을 넘으려면 구슬을 꿰라
지속가능 경영은 때로 한 기업의 핵심 사업을 바꾸기도 한다. 카펫 제조회사 인터페이스는 지속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카펫을 판매하던 본업을 바닥 서비스업으로 전환했다. 고객이 느끼는 가치는 높이되 투입되는 자원 소모량은 최소화한 형태로 최근 각광받고 있는 서비사이징(servicizing) 혁신의 대표 사례다. 
 

 
지속가능 경영을 해야 하는 이유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에 비유할 수 있다. 많은 기업이 환경, 사회, 경제 부문에서 이슈가 되는 다수 활동을 이미 개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구슬을 모아놓는 수준에 그치지 말고 구슬을 꿰어 하나의 목걸이를 만들어야 비로소 보배가 탄생한다. 다양한 구슬을 하나로 관통시켜 일관된 형태를 가진 보배로 만드는 행위. 이게 바로 전략이다. 한국 기업은 이미 이 구슬들을 많이 모아놓았다. 이제 꿰기만 하면 지속가능 활용자 반열에 올라설 수 있다.
 
참고 자료
이수열, 황호송 (2008), “제1장 기업전략이 바뀌고 있다, 기후변화가 비즈니스를 바꾼다”, 삼성지구환경연구소.
조엘 맥코워 (2009), “넥스트 그린 컴퍼니”, 이경남 옮김, 흐름출판.
Bonini, S., Koller, T.M., and Mirvis, P.H. (2009), “Valuing social responsibility programs,” The McKinsey Quarterly, No.4, pp.6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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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열 교수는 KAIST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환경 경영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 연구 분야는 지속가능 경영, 탄소경영, 녹색경영이며 <Production and Operations Management> <Supply Chain Management> 등 해외 학술 잡지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했다. <서스테이너빌리티>(공저), <기후변화가 비즈니스를 바꾼다>(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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