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기업은 물론이고 공공 조직까지 ‘연봉제 열풍’이 거세게 몰아쳤다.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명목으로 연봉제와 팀제, 그리고 과감하고 인정사정없는 다운사이징과 구조조정 등 일련의 개혁 조치가 선진 경영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전통적인 연공서열제나 평생직장 개념, 고용 안정 등은 시급히 타파해야 할 구습이 됐다.
거꾸로 가는 글로벌 초우량 기업들
하지만 탁월한 경쟁력을 자랑하는 몇몇 미국 기업들은 오히려 정반대 길을 걷고 있었다. 3M은 엄청난 수익을 창출한 포스트잇(Post-it) 개발자에게 단 한 푼의 성과급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3M의 연구자들은 전혀 불만이 없다. 구글, 애플, IDEO 등 다른 창조적 기업도 연봉제적 성과 인센티브 제도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
아예 노골적으로 연봉제 등 단기 성과주의 인사 제도에 반대한다고 선언한 초우량 기업도 있다. 미국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능력주의와 성과주의 인사 제도에 반대한다고 공공연히 선언한다. 이 회사는 가장 미국적이라는 텍사스 기업이지만, 능력보다는 태도와 가치관, 팀워크를 중심으로 사원들을 선발한다. 그래서인지 이 회사에는 MBA 출신들이 거의 없다. 특히 과거 한국 기업보다 훨씬 더 심한 연공서열제를 운영하고 있다.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이는 저가 항공사임에도 상시 구조조정을 통한 노동 유연성 확보에는 관심이 없다. 반대로 모든 직원들에게 ‘철밥통’ 수준의 종신 고용을 보장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소수의 핵심 사업에 선택과 집중하여 기존 경쟁우위와 시장을 방어하는 데 주력했던 20세기 산업사회와 달리, 21세기 글로벌 초경쟁 환경에서 기업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경쟁우위를 먼저 창출해야 한다. 따라서 창조 기업의 구성원이라면 과거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경쟁우위를 발견하고, 또 이를 새로운 방식으로 신속하게 실행해야 한다. 20세기 산업사회에서처럼 주어진 목표를 정해진 방식대로 수행해서는 안 된다.
조직 구성원들이 창조와 혁신에 몰입하도록 동기부여하는 효과적 방법은 무엇일까? 20세기 초 프레더릭 테일러와 헨리 포드 등은 대량생산 조직을 고안하면서 동기부여 방식도 설계했다. 이들은 조직 구성원 각자가 자신이 맡은 과업 목표를 미리 정해진 방법대로 정확히 수행해서 달성하는 정도에 비례해 임금을 결정하는 차별 성과급 제도를 구축했다. 이것이 후에 단기 성과주의적 연봉제의 원형이 되었다. 테일러와 포드의 방식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어떤 과업을 어떤 방식으로 수행할지 치밀하게 설계했다면 단기 성과주의가 목표 달성에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나 조직원들이 전혀 새로운 사업이나 상품, 비즈니스 모델, 경쟁우위를 끊임없이 만들어야 한다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특정 과업을 어떤 방법으로 수행해야 할지 확실하게 결정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조직원들은 누구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사업과 목표, 그리고 실행 방안을 창조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여기에 단기 성과주의적 연봉제를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창조와 혁신의 동기부여에는 어떤 방법이 효과적일까?
창조성과 내재적 동기부여
창조성 연구의 대가인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의 테레사 아마빌 교수는 연봉제 같은 경제적 인센티브로는 창조성에 대한 동기부여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반드시 일 자체에 대해 흥미와 관심을 중심으로 한 ‘내재적 동기부여(intrinsic motivation)’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내재적 동기부여는 조직행동론의 거장들인 하버드대 경영대학의 에드워드 디시 교수와 리차드 해크먼 교수 등이 1970년대에 주장한 이론이다. 인간 행동의 원천은 행동 그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 나오는 내재적 동기와 행동 자체보다는 그 결과로 받을 수 있는 보상에 대한 관심에서 나오는 외재적 동기로 구분된다. 인간행동은 이 두 가지 원천 모두로부터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중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지는 행동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테일러와 포드의 차별 성과급제나 연봉제는 모두 외재적 동기부여의 대표적 방법이다.
아마빌 교수는 왜 창조와 혁신이 내재적 동기에 의해서만 작동될 수 있다고 주장할까? 그것은 외재적 동기부여가 가지는 도구주의의 한계 때문이다. 즉 외재적 동기에 의해 어떤 행동을 하면 그 행동은 보상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과 도구로 전락한다. 따라서 그 행동 자체를 무한정 열심히 할 이유가 없다. 보상을 획득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노력만 하면 된다. 또 그 과업을 달성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파악한 다음 그 방법만 계속 반복하면 된다. 그러나 창조와 혁신은 정반대의 행동 논리를 요구한다. 어떤 일을 창조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이 아니라 완전히 몰입해 열정적으로 해야 한다. 또 가장 효율적 방법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운 방법을 실험하고 탐구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창조성에 관한 다음 실험은 중요한 통찰을 준다. 굶주린 쥐를 미로 입구에 두고 그 반대편 출구 앞에 음식을 두는 실험을 반복하면 어느 순간 그 쥐는 음식까지 가는 최단 경로를 파악한다. 하지만 최단 경로를 파악한 다음부터는 계속해서 그 길로만 다닌다. 다른 대안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미로가 음식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쥐에게 어느 정도 음식을 먹인 다음 미로에 넣으면 다른 길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보이며 대안적 경로를 찾아낸다. 더 이상 배가 고프지 않기 때문에 미로 자체에 흥미를 가지게 되고 창조적 시도에 나선 것이다.
일과 놀이, 그리고 창조성
내재적 동기부여는 어떻게 가능할까? 디시 교수와 해크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내재적 동기부여는 일 자체가 재미있고 흥미로울 때 발생한다. 반대로 일에 대해 보상을 강조함으로써 그 일이 수단으로 격하되거나 그 일에 실패할 때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으면 내재적 동기는 억압된다. 이런 점에서 단기 성과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전면에 내세우고, 또 성과 창출에 실패할 때 연봉 삭감의 위협이 상존하는 단기 성과주의는 내재적 동기를 억압하는 모든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창조 기업인 구글, IDEO, 애플, 3M 등은 일을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업무 환경을 놀이터나 게임장처럼 만든다. 회사 내에 암벽 등반 설비를 갖추기도 한다. 직원들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회사 복도를 질주한다. 마치 영화에 나오는 우주선처럼 건물을 만든 회사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회사를 캠퍼스라고 부르며 공간 배치도 대학처럼 만들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놀이 문화에서 나오는 기발한 창조성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조직이론의 거장인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의 제임스 마치 교수는 창조적 혁신이 심각함이나 무거움, 치열한 경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장난스러움(play-fulness)에 기반한 자유로운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일과 놀이(work and play)가 하나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즉 자신의 일 그 자체가 재미있어서 푹 빠져들 때 창조성이 샘솟는다. 창조적 예술가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가난한 예술가’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술가들은 작품 판매를 통해 창출될 수 있는 이익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예술 활동 그 자체에만 완전히 몰입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다. 즉 예술가들은 완전히 내재적 동기에 의해서 창조적 혁신을 창출하는 사람들이다.
단기 성과주의적 연봉제는 창조와 혁신의 동기부여와는 상극에 있다. 물론 연봉제 그 자체가 항상 나쁘거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무분별한 적용이 문제다. 연봉제는 단기성과나 효율성만 높이면 되는 직무에는 매우 효과적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그런 직무들이 많다. 그러나 창조와 항구 혁신의 동기부여에는 최악의 인사 제도다.
모든 시대나 상황에서 항상 우월한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나 ‘베스트 프랙티스’ 경영 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 조직이 처한 상황이나 환경에 얼마나 적합한지 여부가 성과를 결정한다. 이런 면에서 21세기 창조경영의 시대로 접어드는 역사적 전환기인 지난 10여 년간 한국 기업이 연봉제 열풍에 휩쓸렸던 것은 심히 우려되는 일이다.
고용 안정이 마치 도덕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철밥통’이란 표현으로 공개적으로 비난받고, 또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유연성’이란 잣대로 비웃음을 사는 사회 풍토는 비정상적이다. 같은 기간 동안 앞에서 예를 든 수많은 글로벌 초우량 기업들은 우리와 정반대 길을 걷고 있었다. 이제 우리 기업들도 지난 10여 년간의 ‘글로벌 스탠더드’ 광풍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