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는 매우 귀중한 교훈을 다시 일깨워줬다. 이는 경제의 한 부문에서 발생한 부실이 전혀 무관해 보이는 다른 영역까지 연쇄적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리스크 매니저들과 다른 기업 임원들은 비즈니스 사이클의 전 기간 동안 주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사건들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이 영향은 매우 클 수 있으며,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막대한 파급효과를 낳기도 한다.
예를 들어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발생한 폭풍우는 경각심을 일으킬 정도로 위험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2000년 미국 뉴멕시코 주에서 반도체 공장에 벼락이 떨어져 화재가 발생했다. 멀리 떨어진 지역에 상륙한 폭풍우가 번개를 동반하면서 공장에 불을 낸 것이다. 이 화재로 수백만 개의 반도체 칩이 손상됐으며, 이 회사의 고객인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은 부품 조달에 애를 먹었다. 일부 휴대전화 회사들은 재빨리 대응책을 마련하고 미국이나 일본의 공급업체로부터 부품을 확보했으나, 나머지 회사들은 수억 달러의 매출 손실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말았다.
최근 사례를 보자.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사스)이 발생했을 때, 많은 기업들은 이를 중대한 위협요인으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의 2003년 2분기(4∼6월) 국내총생산(GDP)은 사스의 영향으로 2%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2009년 초 유럽의 공공 물류시스템이 일시적으로 마비된 사례도 있었다. 주요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경영난을 겪고 있는 북미 지역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회사의 신용위험에 노출되면서 연쇄적인 경영난에 직면했기 때문이었다.
기업들은 이러한 위기에 어떻게 대비를 해야 할까. 한 기업이나 경제 전반에 대한 리스크의 연쇄적 파급 효과를 예측할 수 있는 간단한 공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업의 가치사슬 전반(경쟁업체, 공급업체, 유통 채널, 고객 모두를 포함)에 리스크가 어떻게 확산되는지를 체계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경영진은 2차 파급효과를 보다 성공적으로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다.
가치사슬을 따라 확산되는 리스크
대부분 기업들은 전사적 리스크 관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서 리스크를 파악하고 등급을 매기는 프로세스들을 실행하고 있다. 물론 이는 매우 유용하다. 하지만 이를 통해 발굴할 수 있는 위험의 대부분은 가장 직접적인 리스크에 국한된다. 이 결과, 이와 동등하거나 더 큰 여파를 가져올 수 있는 간접적 리스크를 간과한다.
예를 들어, 2007∼2008년 캐나다 달러 가치가 미국 달러화 대비 30% 정도 상승한 현상이 캐나다 제조업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자. 캐나다의 제조업체들은 환율 변동이 미국 시장에서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으로 예상하고 대비했다. 하지만 이 환율 변동이 미국 국경 100마일 이내의 접경지역에 인구의 75%가 거주하는 캐나다 소비자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미처 대비하지 못했다. 캐나다 소비자들은 캐나다 달러의 강세를 이용해 미국에서 자동차, 오토바이, 스노모빌 등 고가 상품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캐나다 OEM 업체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속수무책으로 국내 판매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이 회사들이 미국과 캐나다 양국에서 직면한 이중의 수익성 압박은 예상보다 막대한 피해를 불렀다. 환율 변동에 따른 미국 시장에서의 가격경쟁력 하락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해 고안된 헤징 프로그램도 자국 시장의 소비자들이 주도하는 가격 압박 리스크를 완화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따라서, 기업들은 이제 직접적이고 명백한 리스크 중심의 위험 분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해관계자들과의 직접적 및 간접적 비즈니스 관계를 포함한 가치사슬 전반에 미칠 수 있는 파급효과까지도 예측하고 분석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직접적 위협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필수적이긴 하나 이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림1)
①경쟁업체
리스크가 경쟁업체나 대체품 대비 원가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은 가장 중요한 분석 영역이다. 특히 경쟁업체와 매우 다른 형태의 환차손 리스크, 공급 기반, 원가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유형의 리스크에 더욱 취약한 양상을 보인다. 어떠한 요인이든 일단 비즈니스 모델상에 차이가 존재한다면 모든 차별화 요인들은 긍정적이든 혹은 부정적이든 ‘경쟁 리스크(competitive risk)’를 수반하게 된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물론 경쟁업체와의 차별화를 시도하지 말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경쟁업체들과 확연히 다른 전략을 채택할 때는 이에 따른 모든 리스크를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극심한 경쟁이 벌어지는 항공 산업에서 유가 변동에 대한 헤징이 항공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자. 특정 항로를 취항하는 항공사들이 헤징을 하지 않는다면 유가 변동의 영향은 항공료 인상이라는 직접적 형태 혹은 유류 할증료 인상이라는 간접적 형태로 고객에게 즉시 전가된다. 하지만 해당 항로를 취항하는 주요 항공사들이 모두 유가 변동에 따른 헤징을 하고 있다면 고객의 항공료 부담은 커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일부 회사만 헤징을 했다면 헤징을 하지 않은 항공사는 심각한 수익성 압박과 시장점유율 하락에 직면하게 된다. 반면, 헤징을 한 회사들은 막대한 초과 수익을 거둘 수 있다.
따라서 이제는 경쟁 환경을 분석할 때 대체재와 대체 서비스로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시장 환경의 작은 변동이 자사 제품 및 서비스의 매력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항공 산업 분석 사례에서 고유가는 간접적으로 화상 회의 기술의 매력도를 높인다. 유가가 급등하고 항공료가 인상되자 비즈니스 출장을 지양하고 화상 회의로 선회하는 회사들이 늘기 때문이다.
②공급망
공급망과 관련된 고전적인 파급효과들(casca-ding effects)로는 부품이나 원자재 확보 문제, 공급업체의 원가 구조 변화, 물류비 변동 등을 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2008년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했을 때, 미국 시장에서 많은 해외의 공급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에 큰 타격을 입었다. 철강 시장의 사례를 보자. 미국 시장에서 중국 수입품이 마진 가격을 결정했다. 중국으로부터의 운송비가 t당 100달러 가까이 오르자, 철강 가격이 20% 상승했다. 물류비의 유가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데도 대규모 철강 구매회사 가운데 공급망 전반에 대한 고유가 리스크에 대비한 곳은 거의 없었다. 다른 사례들처럼 리스크를 분석할 때 직접적 위협(이 경우에는 철강 가격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유가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 심지어 원가 변동을 가장 큰 리스크로 보고 있는 기업들조차도 예외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