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장동력 창출은 한동안 정부와 민간 모두에서 화두가 됐던 핵심 키워드다. 이는 쉽게 말해 ‘향후 5년 또는 10년 뒤에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현 정부가 내세우는 ‘저탄소 녹색성장’도 사실 경쟁력 있는 미래의 수종사업을 찾는다는 점에서 과거 논의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은 생존과 성장을 위해 정태적 효율성(static efficiency·현 사업 영역에서의 경쟁력)과 동태적 효율성(dynamic efficiency·새로운 역량과 가능성으로 새로운 사업을 개척해나가는 능력)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문제는 시장성이 불투명한 미래 신사업에 대한 투자 및 그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신기술 사업화의 딜레마
신기술의 전략적 가치 및 잠재적 영향력을 처음부터 정확히 이해하고 대응하기는 매우 어렵다. 흔히 기술에 대한 전문성 부족이 원인이지만, 기술에 대해 잘 안다고 해도 신기술의 가치를 정확히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하버드대의 크리스텐슨 교수는 시장 지배력과 기술력 모두에서 1위인 기업이 특별히 잘못한 것 없이 열심히 기술적 개선을 이뤄냈음에도 신기술의 출현으로 시장에서 사라지는 사례를 연구했다. 그는 성숙한 고급 기술의 경쟁 우위를 일순간에 파괴해버리는 저급한 신기술을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라고 명명했다. 1 1 Clayton M. Christensen, <The Innovator’s Dilemma>, 1997
닫기그런데 아무리 훌륭한 역량을 갖춘 선도 기업이라 해도 어떤 저급한 최신 기술이 장래에 파괴적 기술로 진화해나갈지 여부를 쉽게 예단하기는 어렵다.
선진 기술의 모방을 통해 산업화를 이룩한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기술 잠재력 파악이 매우 중요한 이슈다. 한국의 많은 중견 기업들은 새로운 먹을거리와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진정한 의미에서 기술사업화 역량을 보유한 기업이 드물다. 게다가 많은 경영자들이 미래가 불확실한 신사업 분야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과거 선진 기술을 도입하거나 국산화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해온 경영자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를 해본 경험이나 노하우가 거의 없다.
한국 경영자들의 이런 태도는 일견 충분히 이해가 간다. 대규모 기술 개발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때 회사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방 개발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으며, 선진 기술 도입을 통한 사업화도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는 게 문제다. 사업화에 성공한다 해도 막대한 기술료를 지불해야 한다면 수익성 측면에서 매력도가 크게 떨어진다.
이에 반해 기술 벤처기업들은 비교적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한국 벤처기업의 생존 확률은 3%대로 추산된다는 데 있다. 2 2 <벤처기업 CEO 33인의 창업성공 다이어리>, 인천정보산업진흥원 엮음, 지성사, 2005
닫기벤처기업이 초기 사업 아이템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 이외에도 장애물이 많다. 신기술 상업화보다 그 이후에 지속적으로 차세대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공 신화’를 만든 1세대 벤처기업 중 상당수가 지속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졌다.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수익성이 떨어지는 기존 사업을 대체할 새로운 사업을 계속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기술적 가능성을 성공적 비즈니스로 만들어가는 핵심 역량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기술’ 그 자체보다는 기술을 이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그릴 수 있는 역량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이 우수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다면, 기술력 부족은 외부로부터의 인력 및 기술 도입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다. 반면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이 없는 회사는 아무리 우수한 기술을 갖고 있어도 성공하기 어렵다. 애플(Apple)의 ‘아이팟(iPod)’ MP3 플레이어의 개발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외부 기술을 엮어 성공적인 비즈니스로 만든 대표적인 혁신 사례로 꼽힌다(DBR TIP ‘아이팟의 성공 요인’ 참조).
기술의 가치는 그것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하지 않은 채 기술의 가치만을 보여준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결국 기업이나 정부가 추구하는 신성장동력이란 ‘가능성 있는 기술을 포함한 비즈니스 모델의 형태’를 취해야 한다.
5년 또는 10년 후 비즈니스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사업 부서와 기술개발 부서가 공동으로 성장 잠재력이 높은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야 한다. 문제는 한국 기업들이 그동안 모방개발 환경에 익숙해져 있었고, 기존 시장에 없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시도를 해본 경험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DBR TIP 아이팟의 성공 요인
애플(Apple)의 아이팟은 개방형 비즈니스 시스템 혁신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알려져 있다. 아이팟의 사업 아이디어는 혁신적 개인 창업가라 할 수 있는 토니 파델(Tony Fadell)에 의해 만들어졌다. 파델은 애플을 찾아가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사업을 제안했다. 그의 계획이 마음에 들었던 애플은 보다 구체적인 제안을 요청했다. 파델은 8주 후에 아이팟과 아이튠스 개발 계획을 정식으로 제안해 애플로부터 사업추진 승인을 받았다.
애플은 즉시 아이팟 개발을 위해 총 35명의 다기업 팀을 구성하고 사업 제안자인 파델을 책임자로 임명했다. 35명의 아이팟 개발 팀에는 애플사 직원뿐만 아니라 도시바, TI(Texas Instrument), 뱅앤올룹슨, IDEO, 필립스, 제너럴 매직(General Magic), 웹TV, 포털플레이어(Potalplayer) 등 다른 기업의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했다.
당시 MP3 플레이어 기술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기에 개발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아이팟은 아이디어 제안 6개월 만에 만들어졌다.
아이팟은 초기 시장 개척에 다소 어려움이 있었지만, 음원 서비스를 윈도 운영체제(OS) 사용자 전원에게 확대하면서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애플은 아이팟의 성공으로 MP3 플레이어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고, 향후 아이폰을 통해 휴대전화 단말기 사업의 선도 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자료: (July 21, 2004)에 실린 헨리 체스브로 교수의 세미나 자료를 토대로 재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