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식 배달 음식의 도전

40호 (2009년 9월 Issue 1)

한국은 배달 음식의 천국입니다. 외국인들은 집 앞에까지 배달해주는 음식에 놀라고, 20분도 안 돼 빈 그릇이 회수되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입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365일 24시간 배달이 가능한 데다 주문할 수 있는 음식도 자장면, 피자, 치킨, 한식부터 과일과 죽까지 다양합니다. 여름철 해변은 물론 산골의 예비군 동원 훈련장에도 음식이 배달될 정도입니다. 한국 자영업자의 글로벌 경쟁력으로 신속하고 정교한 배달 서비스를 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너도나도 속도 경쟁에 매달려야 할까요. 모두 빠르다면, 속도가 더는 경쟁력이 될 수 없습니다. 속도에 투자할수록 수익은 나지 않고, 오히려 손실을 키우는 출혈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최근 미국에 등장한 새로운 음식 배달 서비스 회사가 눈길을 끕니다. 미국의 대표적 친환경 도시인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2008년 7월 문을 연 ‘수프사이클(SoupCycle)’이라는 수프 배달 회사입니다.
 
창업자인 제드 라자와 샤나 램버트가 아르바이트 한 명과 함께 운영하는 이 회사의 배달 서비스는 한국인에게 친숙한 ‘속도’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대신 소비자의 사회적 의식에 호소합니다. 지역에서 생산된 신선한 유기농 채소로 만든 수프, 빵, 샐러드를 일주일에 한 번씩 자전거로 배달한다는 겁니다.
 
성질 급한 분들은 자전거 배달 음식이 도착하기도 전에 취소 주문을 넣을지 모릅니다. 이 회사는 속도의 한계를 사전 주문제로 극복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 배달할 수프 메뉴를 홈페이지에 미리 올려놓으면, 고객들이 메뉴를 확인하고 금요일 밤까지 메인 수프, 빵, 샐러드 등을 주문하는 식입니다. 주문을 미리 받기 때문에 채소를 잔뜩 사둘 필요가 없습니다. 다음 주 배달할 음식에 맞춰 미리 계약해둔 유기농 채소 재배 농가와 지역 빵집에 신선한 채소와 빵을 주문합니다. 직접 만든 음식은 아이스박스에 넣어 일주일에 한 번씩 자전거 트레일러로 배달합니다.
 
왜 수프일까요. 수프는 제철 재료로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는 건강식입니다. 하지만 집에서 만들려면 손품과 시간이 적지 않게 들어갑니다. 요즘과 같은 불황기엔 외식하기도 겁납니다. 이 회사는 이 틈새를 노렸습니다.
 
수프, 빵, 샐러드가 곁들여진 2인분 배달 음식의 값은 18달러 정도입니다. 18달러 이상 주문하면 배달료(3달러)를 받지 않습니다. 지역의 신선한 유기농 채소로 만든 음식을 일주일에 한 번쯤 먹는다면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지역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사 먹는 것보다는 싸고 신선하며, 직접 해 먹는 것보다는 편리하다는 겁니다.
 
이 회사는 창업 이후 약 1년간 지역 농산물을 구매해 지역 농가에 6000달러의 수익도 올려줬다고 합니다. 환경을 고려해 용기도 세척이 가능한 회수용 도자기 그릇을 쓴다고 합니다.
 
회사와 서비스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트위터와 같은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고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생소한 서비스로 시장을 개척하려면 남들보다 더 크게 떠들고, 주목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고객의 사회적 의식을 자극하는 친환경, 신선함, 지역 사회 기여 등의 가치로 승부해야 하기 때문에 고객들이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차별화하는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수프 주문은 신문 구독을 연상시키는 ‘수프스크립션(Soupscription)’, 배달 지역은 ‘수프랜디스탄(Souplandistan)’, 주문 고객은 ‘수프태리안(Soupetarian)’으로 부르는 식입니다.
 
수프사이클은 지속 가능한 경영이 대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소규모 자영업자도 생각만 바꾼다면 환경을 보호하고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하면서 차별화된 시장을 개척할 수 있습니다.
 
도시 인프라와 문화도 중요합니다. 자전거 도로가 잘 닦여 있고, 자전거가 도시의 문화로 자리잡은 세계 최고의 친환경 도시 포틀랜드가 아니었다면 이 사업이 실패했을 가능성도 큽니다. 도시가 기업가에게 영감을 주고, 기업가는 이 사업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겁니다.
 
사업이 지지부진하거나 새로운 전략이 떠오르지 않을 때, 살고 있는 도시와 시민들을 한 번쯤 돌아보는 건 어떨까요.
동아비즈니스리뷰 334호 세계관의 세계 2021년 12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