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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보다 무서운 성공의 덫

김남국 | 24호 (2009년 1월 Issue 1)
1990년대 최고 인기를 모은 가수 김원준. 그는 5집 앨범까지 놀랄만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몰락의 길을 걸었다. 성공에 자신감을 얻어 6집부터 혼자 앨범을 제작했는데 7집부터 9집까지 처절한 실패를 경험했다. 단돈 200원이 없어 자판기 커피도 먹지 못했다는 그는 결국 행사장을 전전하며 어렵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야 했다.
 
운도 나빴지만 그의 실패를 가져온 가장 큰 요인은 바로 과거의 ‘성공’이다. 누구나 성공을 바라지만 그 이면에 도사린 위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조직이론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성공의 함정(success trap)’에 대해 경고했다. 성공의 함정은 성공 그 자체가 실패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최근 세계적인 경영학 학술지 ‘Management Science’(Vol. 54, No. 7, July 2008, 1237-1251)에 성공의 함정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논문이 실려 주목받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의 윌리엄 배닛 교수 연구팀은 19511994년의 미국 컴퓨터 산업 데이터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워크스테이션 같은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 중형 컴퓨터 시장에서 살아남은 기업이 소형 컴퓨터 시장에 뛰어든 확률은 다른 기업보다 7배나 높았다. 경쟁에서 이겼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중형 컴퓨터 시장에서 성공한 업체가 소형 컴퓨터 시장에서 실패한 확률은 비교 대상 기업보다 65%나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소형 컴퓨터 시장에 진입하기 직전에 성공한 기업일수록 실패 확률이 높았다.
 
왜 과거의 성공, 그것도 최근에 성공을 경험할수록 실패 확률이 높아지는 것일까. 연구팀은 ‘과도한 확신(overconfidence)’을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했다. 정보나 판단 근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성공으로 과도한 자신감을 얻은 사람들은 부정적인 증거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만 앞세우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의사결정이 옳다는 과장된 믿음은 새로운 사업을 벌일 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물론 새 사업의 성공 방식이 과거와 같다면 전혀 상관없다. 그러나 새 사업의 성공 요소가 과거 성공 요소와 다를 경우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다. 자신의 과거 방식이 옳다는 믿음 때문에 변화한 환경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의 성공 경험은 너무나 생생하고 감동적이다. 감히 여기에 반론을 제기하기 힘들다. 성공을 직접 경험한 당사자에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고 용기 있게 말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설령 그 사람과의 관계가 나빠질 위험을 감수하고 반론을 제기했다 하더라도 “해봤어요? 안 해 봤으면 말을 하지 말아요”라는 논리를 극복하기가 정말 어렵다. 게다가 과거 성공의 법칙이 조직 문화 또는 구성원들의 자부심과 연결돼 있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한 성공한 최고경영자(CEO)는 과거 성공담을 말하지 않는다. 자칫 과거에 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과거보다 미래를 고민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과거지향적 합리화(re -trospective rationalization)’의 늪에서 벗어나려는 치열한 노력의 일환이다.
 
지금처럼 외부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시점에는 과거의 성공 경험이 미래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성공 방정식이 매 순간 변하기 때문이다. 계속 성공하고 싶으면 지금의 성공이 실패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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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국

    김남국march@donga.com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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