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더, 3B 사이언티픽, 인터내셔널SOS, 테트라…. 이 기업들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처음 들어본 경우가 태반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기업들은 생선 가공장비, 해부학 수업 용품, 응급처치 서비스, 관상용 물고기 사료 분야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는 회사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작은 기업 규모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틈새 시장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세계 최강자 자리에 올랐으며, 현재도 눈에 띄는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 ‘피터 드러커’로 불리는 독일의 경영 석학 헤르만 지몬 교수는 세계화 시대의 진정한 승자가 이처럼 눈에 띄지 않고 이름 없이 숨어 있는 1등 강소(强小) 기업, 이른바 ‘히든 챔피언’이라고 주장한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모두 초우량 기업이지만 소비자는 물론 학계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기업이기에 히든 챔피언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
지몬 교수는 20년 동안 전 세계의 히든 챔피언 기업 2000여 개를 조사, 그들의 성공 비결을 분석했다. 그는 세계 시장에서 1∼3위를 차지하거나 해당 대륙에서 1위인 기업이면서 매출액이 40억 달러 이하이고,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을 히든 챔피언의 요건으로 정의했다.
2005년 기준으로 히든 챔피언 기업들의 평균 매출액은 4억3000만 달러. 경제 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 중 가장 규모가 작은 기업의 3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지난 10년 간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8.8%, 세전 투자수익률(ROI)은 13.6%에 이른다. 2006년 포천 500대 기업의 세전 투자수익률 5∼6%와 비교해도 엄청난 차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15개 언어로 번역된 베스트셀러 ‘히든 챔피언’의 저자로 최근 방한한 지몬 교수와 이 책의 번역을 감수한 성균관대 GSB(SKK Graduate School of Business) 유필화 부학장의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지몬 교수는 세계 최대 수출대국인 독일 경제의 최대 버팀목이 히든 챔피언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독일의 국내총생산(GDP) 규모에 비해 대기업이 적은 이유가 수출의 대부분을 강소기업,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초일류 중소기업들이 거의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한국에서도 이 같은 히든 챔피언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유필화 교수)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로 많은 기업이 큰 어려움에 부닥쳤다. 히든 챔피언 기업들은 이 같은 위기를 어떤 식으로 극복하는가.
(헤르만 지몬 교수)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형적인 경제 위기이지만 히든 챔피언 기업에게 경제위기보다 더 위험한 것은 본질적 위기(funder -mental crisis)다. 히든 챔피언이 됐다가 도태한 기업은 경영권 상속 문제와 기술 변화에 대한 대처 능력이라는 두 가지 본질적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히든 챔피언의 대다수는 가족 기업이다. 창업주들은 이익보다 비전을 우선시하고 기업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가족 기업을 일군 창업주의 90%가 자신의 자녀나 가족이 회사를 이어가기를 바라지만 세계화로 경영 환경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능력 있는 경영인을 가족 안에서 찾기는 매우 힘들어지고 있다. 가족이 회사를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는 매우 위험할 수 있다.
금속절삭기 분야의 최고봉이던 독일 트룸프는 1980년대 말 레이저 기술 도입으로 시장지배력을 완전히 잃었지만 새로운 기술을 민첩하게 받아들여 곧 회생했다. 확대경 생산업체인 이탈리아의 두르스트는 자사의 기술을 잉크젯 프린터에 적용해 기술 변화에 대처했다. 반면에 환등기 생산업체 레플렉타는 디지털기술 개발에 소홀해 살아남지 못했다.
시장 상황이 좋을 때는 어떤 기업이든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지만 상황이 나쁠 때 우수한 성과를 내는 기업은 드물다. 히든 챔피언 기업 중 40%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기업들이다. 100년이라는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위기를 겪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토록 오래 살아남은 것은 히든 챔피언의 존재 자체가 위기 극복의 증거라는 의미도 된다.
히든 챔피언은 위기를 이겨냈을 뿐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이익을 냈다. 재무자원이 풍부하고 자기자본비율과 이익마진비율이 높다. 재무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금융위기 때 약해진 기업들을 인수할 수 있는 능력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