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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성의 협상 마스터

최악을 피하는 ‘1미터 규칙’

김의성 | 378호 (2023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협상이 결렬될 가능성이 높을 때는 결렬 시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인 ‘배트나(BATNA)’가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배트나마저 없다면 ‘1미터 규칙(1 Meter Rule)’이 유용하다. 협상 상대방을 개인과 팀, 회사로 세분화해 거리를 두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협상 상대방이 그가 속한 회사와 동일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상대방의 회사 내에서도 여러 사람이 부서마다 직급마다 서로 조금씩 다른 우선순위와 기회를 보고 있다. 팀과 조직보다는 한 명의 사람으로 대하고 이해할 때 교착 상태의 협상에서 빠져나올 터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협상 결렬 직전, 어떤 전략을 활용해야 할까

“저희는 현재 입장에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습니다.”

“안타깝네요. 저희 측도 이미 많이 양보해서 추가 조정은 어렵습니다.”

모 글로벌 반도체 부품 기업과 국내 고객사 간의 실제 협상 상황에서 오간 대화다. 협상은 결렬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협상의 여지, 즉 ‘바게닝 어레나(Bargaining Arena)’를 찾을 수 없고 양측 모두 이미 조정을 거듭해 더 이상의 양보가 어렵고 팽팽하게 맞선 상태였다. ‘추가로 양보를 해줘야 하나? 이미 양보를 많이 해서 더 이상 여유가 없는데…’ ‘상사에겐 뭐라고 보고해야 하지? 지금이라도 대안을 찾아야 할까?’ 협상이 결렬되기 직전 머릿속은 복잡하다. 이럴 땐 어떤 전략을 활용해야 할까?

협상이 결렬될 가능성이 높을 때는 결렬 시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인 ‘배트나(BATNA,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가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협상 외에 대안이 없다면 즉각적으로 배트나를 개발해야 한다. 배트나의 역할은 크게 2가지다. 먼저 배트나를 갖고 있기만 해도 심리적 안정감이 생겨 여유로운 태도로 협상에 임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배트나가 있다는 사실을 협상 중 넌지시 언급하면 상대방이 심리적 압박감을 느껴 한 발 더 양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저희가 부득이하게 대안을 마련해 놓긴 했으나 저희는 귀사와 최대한 합의점을 찾아 거래를 지속하고 싶습니다.”

협상 결렬이 눈앞에 닥친 상황에서 배트나마저 없다면 ‘1미터 규칙(1 Meter Rule)’이 유용하다. 1미터 규칙은 크게 두 가지다. 협상 대상을 세분화해 거리를 두거나, 나 또한 내가 속한 조직과 거리를 두고 합의점을 모색해 협상 결렬을 막을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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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미터 규칙: 협상 대상을 세분화해 거리 두기

먼저 협상 상대방을 개인과 팀, 회사로 나눠 거리를 두고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대규모 생산 시설을 보유한 고객사의 구매팀 실무자와 협상하고 있다고 해보자. 협상의 주요 상대방인 구매팀 실무자를 개인으로, 구매팀을 팀으로, 마지막으로 글로벌 반도체 부품 기업을 구매하는 회사로 세분화해 각각을 별개의 대상으로 여기고 분석할 수 있다. 각각의 목표, 우선순위, 기회, 제한, 피하고 싶은 상황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동일하지 않은 경우가 자주 발견된다.

개인과 또 다른 개인은 한 팀에 있더라도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다. 구매팀 실무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구매 대상 제품을 최저가로 구매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구매팀장이 원하는 것은 협상의 빠른 타결일 수 있다. 구매팀에 할당된 분기별 비용 절감 금액을 달성하기 위해 해당 협상이 분기 마감 전에 마무리되길 원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팀 단위에서도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다. 구매팀과 공급처 제품을 직접 사용하는 엔지니어링팀의 KPI(Key Performance Indicator)는 명백히 다르다. 구매팀은 내부 고객이 의뢰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가장 낮은 가격에 구매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실제 제품의 사용 부서인 엔지니어링팀에는 해당 제품을 적시에 사용해 원활한 생산이 이뤄지는 것이 핵심이다.

1미터 규칙을 활용해 협상 상대방을 세분화한다면 엔지니어링팀 담당자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제품 재고는 준비돼 있지만 구매 단계에서 합의점을 찾기 어려워 시간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현재 재고 여유가 없어 이번 달까지 계약이 완료되지 않으면 잠정적으로 확보해 놓은 재고가 다른 고객에게 할당될 수 있어 걱정입니다.” 구매팀은 일반적으로 내부 고객의 요구를 이행하는 지원 부서의 성격을 가지므로 엔지니어링팀이 압박한다면 더 낮은 가격의 공급 조건보다는 적시에 재고를 확보하는 방안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지막으로 조직 관점, 즉 경영자 입장에서는 경쟁자보다 신제품을 먼저 도입해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는 것과 같은 상위 레벨의 목표가 있을 것이다. 만약 해당 제품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제품 하자로 인한 리스크가 경쟁사에 비해 월등히 낮다면 조직 전체의 관점에서는 제품을 사야 할 이유가 충분한 것이다. 이때는 조직의 니즈, 즉 경영자의 우선순위에 해당되는 내용을 임원진에게 전달할 수 있다. “이번에 저희 신제품이 귀사 생산 라인에 설치될 경우 국내 최초 도입으로 시장을 선점하실 수 있겠지만 재고 확보를 위해서는 2주 안에 주문 계약이 완료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6개월 내에 공급하는 리드타임1 을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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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미터 규칙: 소속 조직과 거리 두기

1미터 규칙의 두 번째 방법은 나 또한 내가 속한 조직과 거리를 두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협상팀이 회사로부터 위임을 받아 협상 테이블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협상팀이 본사의 메시지를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상대 팀의 응답을 본사에 전달하는 메신저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협상이 결렬되기 직전의 상황에서는 나와 조직 사이에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것이 유용하다.

“현재 재고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글로벌 본사도 무조건 가격 합의가 된 고객에게만 재고를 할당하라고 해서 여태 확보했던 재고를 다른 곳으로 넘기라는 지시를 받아 난감합니다. 만약 이번주까지 합의가 가능하다면 다른 고객에게 넘어가는 재고를 제가 책임지고 귀사에 배정하도록 해보겠습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이처럼 내가 회사와 거리를 둔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그만큼 나아가는 것이고 상대 또한 나에게 가까이 다가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회사 대 회사의 대화에서 개인 대 개인의 대화로 바꾸면 라포르(Rapport)가 형성되며 정보의 흐름 또한 원활해진다. 다음은 노사 간의 협상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1미터 규칙을 적용하면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해보자.

“우리가 제시한 최소한의 요구 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내일부터 장외 투쟁에 들어갈 것입니다.” (노측)

“우리가 제시한 최소한의 요구 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내일부터 장외 투쟁에 돌입하자는 목소리를 더 이상 막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많이 양보한 최소한의 요구 사항인 만큼 꼭 동의해 주셔서 양측 모두 불필요한 소모를 피할 수 있길 바랍니다.” (노측, 1미터 규칙 적용)

“저희 회사는 지난번 제시한 조건에서 더 이상 양보가 불가능합니다.” (사측)

“저희 회사는 전례 없는 조건을 어렵게 만들어 제안해 드렸습니다. 추가적인 조건 수정은 더 이상 제가 승인받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오늘 합의가 되지 않으면 지난번 제안마저 효력을 잃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라 매우 난감합니다.” (사측, 1미터 규칙 적용)

이처럼 나와 회사의 거리를 두는 1미터 규칙을 활용하면 협상 조건은 같지만 합의하고자 하는 의지를 더욱 드러냄으로써 나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까지 챙기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결국, 사람

협상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1미터 규칙 역시 그 본질은 협상 상대방을 한 개인으로서 이해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필자가 직접 겪은 경험은 이를 잘 보여준다. 글로벌 제약 기업의 컨슈머 헬스케어 사업부 대표로 근무할 당시 아시아 지역 대표와 대화하던 중 마케팅 팀원이 그만둬 새로 대체할 직원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안 된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정원 내에서 주니어 직원의 대체 인력을 뽑는 일은 그에게 승인받아야 하는 사안이 아니었기에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를 들어 보니 각 시장의 마케팅팀을 축소하고 아시아 지역의 마케팅팀을 확장해 통합 관리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개편하겠다는 것이었다.

한국 조직에서 마케팅 인력을 최소한으로 두고 지역 본사 인원을 확장한다면 이는 한국 시장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싱가포르에 있는 브랜드 담당 매니저가 한국 시장의 소비자를 연구하고,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전략과 캠페인 기획을 수립하고, 홍보물을 제작해 영업팀과 소통하는 일련의 활동은 언어 외에도 많은 장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 시장에서의 경쟁은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수준이고 소비자의 눈높이 또한 까다롭기에 이런 방식은 실패할 확률이 100%에 가까웠다.

대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시아 지역 본부의 방향성에 전면으로 반발하긴 부담스러웠고 그렇다고 한국팀이 실패하는 것을 지켜볼 수도 없었다. 아시아 지역 대표와 여러 차례 대화하며 그의 니즈를 파악하려 노력했다. 그 결과, 남미에서 각 국가별 마케팅 인력을 지역 본부로 통합해 크게 비용을 절감한 사례가 있었고, 아시아 지역 대표 또한 상위 조직으로부터 유사한 방법으로 비용을 추가적으로 절감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시아 지역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마케팅 통합의 핵심 목적은 비용 절감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매출이 저조해 아시아 지역 본사 차원의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자 급히 찾아낸 방법입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같은 언어인 바하사를 쓰고, 여타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소비자 제품군의 유사성이 커서 통합 조직의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지만 솔직히 한국은 다른 아시아 국가와 언어, 문화가 달라 시너지가 많이 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은 마케팅 통합의 주요 목표 국가가 아니며 결국 핵심은 비용 절감이라는 중요한 인사이트를 얻고 나니 합의점이 보였다. 아시아 지역 대표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한국은 언어와 문화, 소비자층이 다른 동남아 국가와는 매우 달라 마케팅팀의 통합이 아닌 별도 운영이 불가피합니다. 만약 마케팅팀이 통합된다면 언어 장벽으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과 제반 비용이 더 발생할 것이고, 한국의 성과는 비용 절감을 반영하더라도 목표 성과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 마케팅팀이 별도 운영되도록 승인해주신다면 다른 영역에서 비용을 절감해 통합 마케팅팀 운영 시보다 더 많은 추가 이익을 한국에서 달성하겠습니다.”

마침 필자는 영업 활동비에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비용 절감은 아시아 지역 본사의 목표였기에 한국 마케팅팀 별도 운영이라는 필자의 요구 조건과 교환(Trading)할 수 있어 보였다. 마케팅 통합에서 한국을 제외해도 비용 절감을 달성할 수 있다면 아시아 지역 대표가 그의 상사를 설득할 충분한 명분이 됐다. 결국 필자의 제안대로 한국은 별도 마케팅 조직을 운영하도록 승인받을 수 있었고, 한국 법인도 약속대로 다른 영역에서 비용을 절감해 초과 이익을 달성했다. 본래 조직의 요구는 마케팅 통합이었으나 지역 본사 대표를 한 개인으로서 들여다보니 ‘비용 절감’이라는 숨겨진 니즈를 발견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는 저서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서 협상에서 가장 큰 성공 요인은 조건이나 절차가 아닌 ‘사람’이라고 말한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협상 상대방이 그가 속한 회사와 동일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상대방의 회사 내에서도 여러 사람이 부서마다 직급마다 서로 조금씩 다른 우선순위와 기회를 보고 있다. 팀과 조직보다는 한 명의 사람으로 대하고 이해할 때 교착 상태의 협상에서 빠져나올 터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협상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나와 상대방 모두를 회사로부터 거리를 두고, 조직이 아닌 사람으로 이해해보자. 내가 다가간 만큼 상대방도 다가올 것이고, 보이지 않던 돌파구가 보일 것이다.
  • 김의성 | 스캇워크 코리아 대표

    필자는 BAT코리아 대표이사와 베링거 인겔하임, 사노피에서 사업부대표를 역임했다. 이전에는 네슬레와 펩시 등의 글로벌 기업에서 영업총괄(Head of Sales), 지역 영업팀장(Area Manager), 신유통 영업팀장(Key Account Manager), 중국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총괄 등을 맡아 다양한 커머셜 직무에서 수많은 협상을 경험했다. 현재 영국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의 협상 전문 교육 기업인 스캇워크 코리아를 운영하고 있다.
    info.kr@scotwo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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