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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4. 뉴노멀 시대, 디지털 전환 피버팅 전략

실시간, 글로벌, 맞춤형이 디지털 고객 가치
‘업의 본질’ 유지하되 가치 전달 방식 바꿔야

김경준 | 328호 (2021년 0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아날로그 기업들은 기존의 아날로그 프로세스에 디지털 기술을 결합하는 디지털 피버팅을 통해 ‘실시간’ ‘글로벌’ ‘맞춤형’이라는 고객 가치를 만들 수 있다. 이 같은 새로운 고객 가치는 디지털 기술에서 비롯한 ‘네트워크 효과’와 ‘가치사슬 재편’에 기인한다. 디지털 피버팅을 위해선 첫째, 업의 본질을 재해석해야 한다. 둘째, 목표로 삼을 비즈니스 모델(인프라 사업자, 플랫폼 조직자, 정보 제공자)을 정해야 한다. 셋째, 추진 방안을 세우고 실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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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아날로그 세계로 조용히 스며들던 디지털 전환의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최근 급속하게 발전한 AI(인공지능)가 접목되면서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그만큼 디지털 전환은 아날로그 기반의 기업들에 최우선 과제가 됐고, 현장에서도 디지털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프로세스의 일부를 디지털로 재편해 코로나로 마비된 비즈니스를 복구하는 데서 그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영역과 업종을 불문하고 기존의 아날로그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디지털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아날로그 방식은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아왔고 오프라인 시장은 위축되기에 현재 상태의 아날로그 기업은 생존 자체가 어렵다. 따라서 기존 사업을 디지털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재정립하는 비즈니스 모델 전환이 필수 불가결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날로그 기업들은 기존 사업의 연장선이 아니라 방향 전환, 즉 ‘디지털 피버팅(Digital Pivoting)’ 1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디지털이 고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비즈니스 모델을 취할 수 있을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합에서 생기는 기회

아날로그 시대의 기업 활동은 기본적으로 원재료에서 최종 제품이 산출되는 물리적 과정이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는 데이터 자산을 투입하고 알고리즘을 거쳐 가치를 창출하는 디지털 프로세스로 중심이 이동한다. 비즈니스 모델을 규정하고 가치사슬을 구성함에 있어 전 과정이 디지털로만 이뤄지는 비즈니스도 나타나고 있다. OTT(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온라인 게임, 포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투입과 산출에 이르는 프로세스 전체가 디지털 구조다. 소비자들이 서버에 접속하면 탑재한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라서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영역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날로그 기업이 프로세스를 디지털로 전면 전환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 디지털 프로세스는 아날로그 프로세스와 결합될 수 있다. 예컨대, 소매유통산업은 물리적 상품의 이동을 전제로 한다. 온라인 사업자라도 주문 이후에 상품 조달과 배송은 물리적 경로를 타야 한다. 하지만 조달, 판매, 배송 등에 이르는 전 과정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프로세스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전체 가치사슬을 구성하면 그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이처럼 디지털 피버팅은 기존의 아날로그 프로세스를 디지털 기술과 결합시켜 새로운 고객가치를 제안하는 비즈니스 모델 전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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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의 새로운 가치는 연결과 재구성에서 창출

디지털 기술이 제공할 수 있는 핵심적 고객 가치는 ‘실시간’ ‘글로벌’ ‘맞춤형’이다. 전 세계 소비자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돼 스마트 디바이스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환경이 형성됐다. 공급자들은 실시간으로 글로벌 차원에서 개별 소비자의 수요를 파악해 이들 개개인에게 딱 맞는 가치를 제안한다. 이 같은 새로운 가치의 원천은 디지털 기술에서 비롯한 ‘네트워크 효과의 이용’ 및 ‘기존 방식의 해체와 재구성’에 있다.


1. 네트워크 효과의 이용

1) 시장 도달 범위 확장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다층적으로 연결돼 있다. 스마트 디바이스로 다양한 SNS와 플랫폼에 연결된 게 일상이다. 소비자행동의 프로세스인 ‘탐색-비교-의사결정-구매’도 디지털과 결부됐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물리적으로 분리됐던 소비자와 공급자들이 디지털 시대에는 네트워크를 경유해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도달 가능한 시장의 범위가 확장됐다. 아마존, 이베이 등 글로벌 온라인 유통 서비스에 네트워크로 연결된 전 세계 고객들이 장소와 시간의 제한 없이 접속해 상품을 검색하고 구매한다. 최근에는 쇼피파이(Shopify)와 같은 이커머스 인프라 솔루션도 확산되며 그 연결망은 더욱 넓어지고 있다.

2) 분리된 자산의 연결

디지털 시대에는 플랫폼을 매개체로 전 세계에 분산된 공급자의 자산과 수요자의 요구를 연결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제는 일상생활에 자리 잡은 에어비앤비와 우버가 대표적 사례다. 에어비앤비는 사용되지 않고 있는 부동산 자산과 공간이 필요한 유저를 연결했다. 검색과 예약, 지불과 후기를 결합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유저는 저렴한 가격과 조건에 맞는 공간을, 소유자는 부대 수입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누리게 됐다. 우버 역시 자신의 차가 있는 운전자가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버X’를 운영하고 있다. 에어비앤비와 마찬가지로 수요자의 편리성과 공급자의 부대 수입이라는 기회를 창출한 것이다.

2. 가치사슬 재편

1) 사용량에 따른 가격 책정

디지털 시대에는 사용량에 따른 가격 책정이 가능하다. 사물인터넷이 발달하며 특정 자산의 위치와 사용 관련 데이터가 집계돼 가격에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단품으로 구입하던 사무용 소프트웨어가 일정 기간 사용료를 납부하는 개념(SaaS, Software as a Service)으로 변화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 같은 가격 정책은 자동차, 패션, 보험 등으로 확산됐다. 자동차 렌트는 과거 기간 단위로 구매하는 상품이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사용한 시간에 해당하는 금액만 지불하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스마트 디바이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자동차의 위치와 사용 시간, 종료 시점 등을 확인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자동차에 센서를 장착해 주행 거리에 따라 보험료를 납부하는 방식도 도입됐다. 의류 등 패션 제품도 소비자가 일정 기간 사용하고 대금을 납부하는 방식으로 확산되고 있다. 즉, 구독경제가 일상화되고 있다.

2) 해체와 재구성

아날로그 시대에 번들로 판매된 품목이 디지털 시대에는 분리돼 독립된 사업 영역으로 확장된다. 이는 소비자 선호도의 분화와 공급자의 대응이 맞물려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전통적으로 신문은 지면 광고의 번들링 비즈니스 모델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신문에는 기업 광고와 함께 소소한 생활 광고도 함께 게재됐다. 지역 신문의 경우 아르바이트 구인, 중고품 판매, 월세 임대 등 정보를 제공하는 생활 광고가 주요한 수입원이었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신문의 번들링 광고에서 생활 광고를 분리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했다. 199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크레이그스리스트(Craigslist)는 ‘생활 광고 포털’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했다. 기존의 신문 광고와 다르게 365일 24시간 게시와 검색이 가능하고, 계속 정보가 업데이트되며, 광범위한 잠재적 판매자와 구매자 집단에 대한 가시성과 접근성을 제공했다. 이에 더해 저렴한 광고비라는 강점으로 기존의 신문 광고 시장을 잠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생활 광고는 과거 별도의 전문 매체의 영역으로 분리됐다가 이제는 중고 거래, 가사도우미 중개 등의 플랫폼으로 발전했다.

문자메시지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 통신 서비스는 음성 통화와 문자 교신이 결합된 번들링 개념이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문자 교신 기능만 별도로 분리한 카카오톡과 같은 채팅 서비스가 등장했다. 초기에는 무료에다가 다수와 동시에 교신이 가능하다는 장점으로 사용자가 늘어났고, 이후 SNS 플랫폼으로 발전해 지금은 통신사의 문자서비스를 압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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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피버팅 3단계와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 4가지

아날로그 시대의 비즈니스 모델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유형자산을 물리적으로 통합하는 규모의 경제에 기반한다. 반면 디지털 시대의 비즈니스 모델은 네트워크로 자산들을 실시간, 글로벌, 맞춤형으로 연결하는 범위의 경제가 기본이다. 아날로그 기업들이 디지털 시대에 부합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하기 위한 디지털 피버팅은 3단계로 구분된다. 1단계는 업의 본질의 재해석이다. 2단계는 목표 비즈니스 모델의 설정이다. 3단계는 실질적인 추진 방안의 수립과 실행이다.

1단계 업의 본질의 재해석

디지털 피버팅은 ‘업의 본질’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한다. 현재 시장경제에 존재하는 모든 비즈니스는 호모사피엔스의 목표 함수인 ‘생존과 번식’에서 파생되는 건강, 가족, 풍요, 편리, 행복 등의 가치를 제공한다. 업이란 이러한 가치를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비용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과정이다. 이는 시대 변화, 기술 발전과 무관한 불변의 명제이다. 현재의 아날로그 기업은 역시 이러한 가치를 만들어서 전달하기 때문에 존재했다. 하지만 미래에는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해야 생존이 가능하다. 디지털 피버팅은 기존의 업의 본질은 유지하되 가치를 만들고 전달하는 방식으로 전개돼야 하는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산업을 전기/전자, 철강, 화학 등 생산의 기술적 기반으로 분류하고, 가치사슬 단계에 따라 R&D, 생산, 유통, 서비스 등으로 구분했다. 과거 전자회사가 화학 부문으로 진출하고 제조기업이 유통업으로 확장하는 사례를 사업 다각화 관점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플랫폼 개념이 출현하면서 이 같은 개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플랫폼 사업자들은 무엇이든 고객들이 필요로 한다면 기술과 가치사슬을 넘나들며 서비스를 확장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고객들 역시 더 이상 쿠팡이 배달과 OTT 서비스를 만드는 게 어색하지 않다. 아날로그 시대의 제품과 서비스 개념을 탈피해 디지털 시대의 고객 가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시장과 고객의 본질을 통찰한 테오도르 레빗(Theodore Levitt, 1925∼2005)은 1975년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발표한 아티클 ‘마케팅 근시안(Marketing Myopia)’ 2 에서 마차와 자동차가 상징하는 격변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자사의 특정 제품에만 관심이 제한되면 막상 제품이 진부해지는 현상을 보지 못한다. 마차용 채찍 산업이 전형적 사례다.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마차용 채찍은 제품 개량에 아무리 노력해도 사양 산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사업을 채찍 제조업이 아닌 운송 관련업으로 규정했다면 어땠을까. 그들이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이동에너지에 자극이나 촉매를 제공하는 산업으로 정의했다면 자동차의 팬벨트나 공기 필터 제조업으로 변모했을지도 모른다.” ‘소비자는 4분의 1인치 드릴이 아니라 4분의 1인치 구멍을 원한다’는 통찰은 현시점에도 유효하다.

2단계 목표 비즈니스 모델 설정

디지털 시대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 경쟁력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이라는 사이버 자산에 기반한다. 물리적 자산과 사이버 자산을 연결하고 통합하면 아날로그 방식을 앞서는 효율성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에 기반해 전개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의 비즈니스 모델은 인프라 공급자(Infrastructure Provider), 플랫폼 조직자(Platform Organizer), 정보 제공자(Trusted Organizer), 제품 제조자(Product Maker)의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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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프라 공급자

대규모 사업 자산을 집적하고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 고정비를 분산시키고 프로세스를 효율화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물류의 페덱스(Fedex)와 디에이치엘(DHL), 생산설비의 플렉트로닉스(Flextronics), 결제의 페이팔(Paypal), 크라우드펀딩의 킥스타터(Kickstarter) 등이다.

온라인 유통에서 아마존 등 대규모 사업자는 독자적인 네트워크로 주문과 배송을 처리한다. 반면 소상공인들은 2006년 캐나다에서 창업한 쇼피파이 등의 유통 인프라 사업자를 사용하는 게 비용과 편리성 측면에서 훨씬 낫다. 쇼피파이는 이 같은 솔루션을 사용량 기준 요금제로 책정했다. 입점한 소상인들의 연합체 개념으로 운영되는 쇼피파이는 일본의 클래식 음악 애호가가 영국의 중고 음반 판매점에서 LP를 구입하고, 아프리카 수공예품을 유럽에서 택배로 수령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를 제공한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스마트폰 클릭으로 진행되는 간단한 과정의 이면에 필요한 클라우드 서비스, 대금 결제, 택배 물류 등을 저렴한 값에 해결할 수 있다. 쇼피파이를 포함한 다수 유통 인프라 사업자의 주요 시장은 디지털 시대에 소규모로 글로벌 사업을 전개하는 마이크로글로벌 기업들이다.

2) 플랫폼 조직자

시장의 광범위하고 다양한 참여자를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이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가치를 증폭하는 비즈니스 모델로서 최근에는 가장 보편적 유형이다. 아마존, 이베이, 에시 등 온라인 유통에서 출발해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의 SNS로 확장됐다.

2001년 설립된 이노센티브(InnoCentive)는 크라우드소싱 방식의 글로벌 R&D 플랫폼이다. 기업이 당면한 과제를 사이트에 공개하면 전 세계 과학자, 연구자들이 문제 해결에 나서고 성공하면 최대 100만 달러까지 상금을 지급한다. 1989년 미국의 석유회사 엑슨모빌(Exxon Mobil)의 유조선이 알래스카에 좌초하면서 유출된 기름이 얼음과 섞여 젤리처럼 되면서 심각한 환경 문제가 발생했다. 이는 17년간 풀지 못한 난제로 남아 있었는데 이를 보다 못한 국제기름유출연구소(ORSI)는 2007년, 현상금 2만 달러를 걸고 알래스카 오염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구했다. 과제가 공개된 후 불과 3개월 만에 미국의 한 시멘트 회사 엔지니어인 존 데이비스의 아이디어로 문제가 해결되며 이노센티브 역시 인지도를 얻었다.

3) 정보 제공자

정보 제공자는 네트워크 효과를 활용한 공급자의 시장 도달 범위가 글로벌 차원으로 넓어지면서 수요자들의 선택도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에게 신뢰성 높은 대안을 조언한다. 식료품, 식당과 같은 일상적인 품목에서 해외여행 등 특별한 이벤트에 이르기까지 고객이 원하는 대안을 추천한다. 또한 총체적인 구매 경험을 결합해 새로운 선택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고객의 식료품 구매와 사용하는 운동기구를 모니터링해 사전적인 건강검진을 추천하거나 생활 습관 변화를 권고하는 방식이다. 과거에도 쇼핑 대행, 건강 관리, 금융 상품 등에서 오프라인 추천 서비스는 존재했지만 1인당 서비스 비용이 높았고, 고객 정보의 한계로 매력도가 낮았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는 네트워크 효과로 축적된 고객 정보를 활용해 저렴하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전 세계 여행자가 사용하는 여행 플랫폼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는 아날로그 시대의 종이 여행안내서를 대체했다. 사용자들은 트립어드바이저로 여행지 주변의 명소와 맛집들을 검색하고 실시간으로 방문자 후기를 참고하면서 여행을 즐긴다. 특히 기존 여행 안내서처럼 정보를 수집해 배포하는 방식이 아니라 참가자들이 스스로 사진과 경험담을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단기간에 방대한 분량의 정확한 정보를 축적했다. 미국의 스티치픽스(Stitch Fix)는 유저들의 신장, 몸무게, 스타일, 가격대 등을 분석해 의류, 신발, 액세서리 등 스타일링을 조언한다.

4) 제품 제조자

현존하는 주요 기업 대다수가 위치한다. R&D, 제품 혁신, 마케팅 등 가치사슬의 일관된 운영 역량이 주요 경쟁력인 이들이 아날로그 시대의 주역이다. 그러나 소비자와의 접점 자체가 디지털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제품 구입보다는 사용량에 따라 지불하는 구독경제가 확산되는 지금, 제조에만 집중하면 부가가치의 대부분은 플랫폼 조직자나 정보 제공자와 같은 디지털 사업자의 차지가 된다. 애플 제품을 생산하는 대만의 폭스콘(Foxconn)처럼 외형은 크지만 수익성이 낮고 독자성이 결여되는 아웃소싱 기업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제품 제조자는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융합하는 피버팅이 요구된다.

자동차 산업이 대표적이다. 20세기 초반에 시작된 독자적 일관 생산 구조는 100여 년을 지속했다. 그러나 자동차가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자율주행 개념이 도입되고, 구독경제로 전환되는 추세에서 제조기업의 주도권이 약화되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이것이 완성차 회사들이 운전자 경험을 고도화하는 플랫폼에 투자하거나 이와 연계해 렌트 시장 진출을 시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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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실질적인 추진 방안의 수립과 실행

제품 제조자가 인프라 공급자, 플랫폼 조직자, 정보 제공자라는 목표 비즈니스 모델 유형을 막상 자신의 비즈니스에 적용해보고자 하면 막막할 수 있다. 실제 전략적으로 이니셔티브를 세우고 실천해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로의 전환에 성공한 기업의 사례를 살펴보자.3

1) hy, 유산균 음료 판매에서 디지털 유통 인프라로

한국야쿠르트는 1969년 설립된 유산균 음료 제조기업으로 이른바 ‘야쿠르트 아줌마’를 앞세운 방문 판매 조직을 근간으로 성장했다. 과거 주택가에는 화장품, 식품, 음료, 도서 등 다양한 생활용품이 방문 형태로 판매됐지만 할인점, 편의점 등의 새로운 유통 업태가 등장하고 온라인 판매가 확산되면서 기존의 판매 방식은 한계에 봉착했다.

한국야쿠르트의 대응 전략은 업의 본질은 유지하되 가치를 만들고 전달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었다. 출발은 아날로그 방문 판매 방식과 디지털 기술의 접목이었다. 사람이 끌던 운반용 손수레를 냉장 전동 카트로 교체해 이동성을 높였다. 1대당 2000만 원이 넘는 카트를 보급하며 2000억 원을 상회하는 비용이 들었다. 연 매출 1조 원 정도 규모의 기업으로서는 대규모 투자를 실행한 셈이다. 그에 더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매개로 판매원과 소비자를 연결해 주문과 배달의 편의성을 높였다. 앱 출시 초기에는 MZ세대 사이에서 주변의 ‘야쿠르트 아줌마’를 찾는 과정이 인근의 가상 캐릭터를 찾는 ‘포켓몬GO’ 게임을 연상시킨다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판매 품목도 발효유 일변도에서 커피를 추가하고 최근에는 밀키트까지 확장했다. 급기야 올해 3월에는 기업명도 ‘에이치와이(hy)’로 변경하면서 식음료 기업에서 유통 전문 기업으로 정체성 자체를 바꾸겠다고 선포했다. 또한 핵심 역량인 냉장 배송 네트워크에 물류 기능을 더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집중할 것이라 밝혔다.

디지털 피버팅 관점에서 hy는 아날로그 방문 판매 사업에서 신선한 식음료를 배송하는 인프라 사업자로 전환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판매 사원을 부르는 명칭 역시 ‘야쿠르트 아줌마’에서 ‘프레시 매니저’로 바꿨다. 개인사업자인 이들의 가정 맞춤형 판매와 배송을 지원하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지원하는 개념이다.

2) 도미노, 피자 배달에서 주문 플랫폼으로
펜더, 기타 제조에서 악기학습 플랫폼으로

1960년 창업한 도미노피자(이하 도미노)는 전화 주문 후 30분 배달 서비스를 주 무기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서비스의 진입 장벽이 낮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생존 여부가 불투명해지는 위기를 맞았다. 도미노는 디지털 기술의 접목에서 활로를 찾았다. 2007년 온라인 주문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단순 주문 수단의 변화 수준을 넘어 고객접점(UI)과 고객경험(UX) 전체의 혁신을 추구했다. 온라인 화면에 최적화된 메뉴 사진 고안, 맞춤형 메뉴 제안, 주문 후 제조 및 배송 상황 공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서비스를 시험하고 확대했다. 도미노의 디지털 주문 시스템인 ‘애니웨어(Anyware)’는 스마트폰 앱, SNS, AI 스피커, 차량용 기기, 스마트워치 등 20여 가지의 방법으로 편리하게 주문하는 플랫폼이다.

축적되는 고객의 주문 데이터를 분석해 배달 속도를 높이고 매출 확대를 위해 점포망을 최적화하는 요새(fortress) 전략을 펼치며 점포망도 재편했다. 이에 따라 미국 내 매장 수가 2010년 4929개에서 2020년 6156개로 늘어났고, 매장당 매출과 이익도 모두 증가했다. 주가는 2008년 11월 3달러 수준에서 2021년 7월 말 520달러로 170배 이상 상승했다. 도미노는 디지털 AI 기술을 기업 경영 전반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매장별로 근무 중인 작업자와 주문 수, 현재 교통 상황 등의 변수들을 반영해 배달 소요 시간을 예측하는 AI 모델을 만들었는데, 그 정확성은 95%에 달한다. AI 기술을 적용한 수요 예측으로 매장 개설 위치와 시점을 결정하고, 매장별로 피자 주문 건수를 예측해 작업자 숫자를 늘리거나 줄이는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2019년에는 막강한 시청률을 자랑하는 미국 미식축구 경기 슈퍼볼에서 시청자들이 현재 먹고 있는 피자의 사진을 찍어 보내면 무료 피자를 준다고 광고해 수십만 장의 피자 이미지를 확보했다. 이를 AI로 선별하고 분류해 소비자들의 개인 선호도를 파악하는 데이터로 전환시켜 신제품 개발 및 품질 개선에 활용했다. 도미노는 아날로그 기업들이 기존 사업에서 축적한 기반을 디지털 기술과 접목해 차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디지털 피버팅의 잠재력을 보여준다.

또 다른 플랫폼으로의 전환 사례로는 전자 기타 제조업체 펜더(Fender)를 꼽을 수 있다. 펜더는 1946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전자 기타 제조업체로 출발해 깁슨(Gibson)과 쌍벽을 이루는 명문 브랜드로 성장했다. 1960년대부터 미국의 대중음악에서 전자 기타는 핵심적 위치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힙합 음악이 부상하고 컴퓨터 게임이 보급되면서 기타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었다. 미국의 전자 기타 판매량도 연간 150만 대에서 2010년대에는 100만 대 수준으로 감소했다.

펜더는 고객 분석을 통해 기타 초보자들의 학습 수요를 파악하고 구독 모델의 온라인 동영상 학습 플랫폼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 펜더는 고객들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고객 데이터를 수집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거쳐 2가지 사실을 명확히 파악했다. 매출의 70%가 기타를 처음 접하는 초보들로부터 발생하며, 이들의 90%가 1년 이내에 기타 학습을 포기한다는 사실이다. 펜더는 이들이 적절한 학습 방법이 없어 초보 단계에서 탈락한다는 점에서 사업 기회를 감지했다. 오프라인 기타 교습소 위주의 기존 학습 방식을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방식으로 전환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추진했다.

2017년 7월 출시한 ‘펜더 플레이(Fender Play)’는 PC, 스마트폰, 태블릿 등을 통해 유명 기타 연주자들의 레슨을 제공한다. 회원 가입 후 2주간 무료이며 이후 1달에 9.99달러(약 1만1000원)를 지불하는 구독형 레슨 서비스다. 출시 후 3년 동안 10만 명의 유료 가입자를 확보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온라인 비대면 학습이 더욱 호조를 보이며 가입자는 100만 명 수준으로 늘어났고, 연간 1억2000만 달러의 사업으로 성장했다. 온라인 사업의 성공은 본업인 기타 매출의 상승으로 연결됐고, 기타 판매의 70% 이상이 온라인 판매로 이뤄진다. 펜더의 2020년 매출은 7억 달러 수준으로 전년 대비 17% 증가하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의 전자 기타 명가 펜더는 디지털 시대에 고객 정보 분석을 통해 거래 중심 사업에서 소비자 기반 온라인 학습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사업 기회로 확장에 성공했다. 전형적인 제조 업체가 고객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디지털 학습 사업자로 전환하고, 기존의 사업인 기타 제조 분야에서도 재도약을 이루는 선순환까지 구축한 것이다.

3) 매코믹, 후추 유통에서 미각 관련 정보 제공자로

1889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창립한 매코믹(McCormick)은 후추 등 향신료 관련 사업으로 성장했다. 매코믹은 디지털 트렌드의 접점을 데이터와 AI에서 찾았다. 넷플릭스와 아마존이 개인 취향에 맞는 영화와 상품을 추천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급성장하는 방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먼저 130년간 향신료 사업으로 축적한 식품의 맛과 향에 대한 기존의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이를 개인별 식습관과 식품 선호도에 접목해 레서피와 식품을 추천하는 구조의 비즈니스를 고안했다. 작업의 결과물은 온라인 플랫폼 형태로 구현했다. 플랫폼에 접속한 소비자가 자신의 입맛에 관한 20여 개 퀴즈를 풀면 해당 소비자에게 적합한 메뉴와 레서피를 추천하는 방식의 서비스를 선보였다. 또한 소비자들은 자신이 즐기는 요리 레서피를 플랫폼을 통해 데이터화하고 주변인들과 공유했다. 플랫폼 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요리 레서피도 개발할 수 있었다.

당초 B2C 개념으로 시작했던 플랫폼은 의외로 B2B에서 높은 관심을 끌었다. 기존 레서피가 표준화되며 새로운 메뉴 개발로 골머리를 앓던 레스토랑의 셰프들이 매코믹의 플랫폼에서 다양하고 체계화된 데이터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시장과 제품 판매 데이터를 통해 간접적으로 획득한 정보를 분석했다. 디지털 시대에는 플랫폼에 접속한 고객의 입맛과 레서피 정보를 직접 확보할 수 있었다. 아이디어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한 매코믹은 이 플랫폼을 2014년 ‘비밴다(Vivanda)’라는 회사로 분사시키고, 서비스 브랜드를 ‘플레이버프린트(FlavorPrint)’로 명명했다. 20세기 말까지 전형적인 아날로그 식품회사였던 매코믹은 21세기 들어 맛과 음식 분야에서 맞춤형 고객 가치를 추구하는 디지털 기업으로 전환했다.

디지털 피버팅은 돌덩이도 금덩이로 만든다

디지털 피버팅을 거치면 저가치의 무거운 돌덩이 아날로그 비즈니스도 고가치의 가벼운 금덩이 ‘아날로그-디지털 융합’ 비즈니스로 변신한다. 이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현실에서 전개되고 있는 실제 상황이다. 소위 전형적인 생활 밀착형 서비스로 치부됐던 세탁소, 주차장, 정육점, 피자 체인을 비롯해 전통적인 운송, 숙박, 유통 부문 등 다양한 아날로그 산업에서 속출하는 성공 사례들이 이를 나타낸다.

우리나라 기업의 대부분은 아날로그 방식이 사업의 기본이다. 디지털 전환이 중요한 과제로 부상했다는 총론에는 공감하면서도 구체적 각론에서는 혼돈을 겪는 경우가 대다수다. 급변하는 상황에서 디지털 네이티브 기업들도 나름대로의 고민은 크겠지만 아날로그 기업들의 디지털 피버팅은 그야말로 촌각을 다투는 과제다. 재밌는 사실은 아날로그 기업들이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는 디지털 피버팅에 성공하는 경우, 그 성과와 반향은 더욱 크다는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디지털 피버팅에 성공하기 위한 7가지 전략적 접근은 아래와 같다.

① 빅데이터로 ‘빅 싱크(big think)’하라.
② 선택이 아닌 필수다.
③ 전통적인 아날로그 영역일수록 기회는 크다.
④ 세부 전술로 시작해서 포괄 전략으로 확장하라.
⑤ 기술은 필요조건이고 수용성은 충분조건이다.
⑥ 외부 기술과 내부 경험을 연계하라.
⑦ 조직문화와 리더십의 피버팅을 병행하라.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kyekim@deloitte.com
필자는 쌍용경제연구원, 쌍용정보통신 등을 거쳐 딜로이트컨설팅 대표이사와 딜로이트 경영연구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AI 피보팅』 『디지털 인문학』 『모바일 빅뱅』 『세상을 읽는 통찰의 순간들』 『로마인에게 배우는 경영의 지혜』 『마흔이라면 군주론』 등이 있다. 서울대 농경제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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