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마킹 항복’ 선언한 일본 기업

18호 (2008년 10월 Issue 1)

벤치마킹, 毒 또는 藥
벤치마킹’은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니다. 기업은 최고의 성공 비결을 배워 좋은 성과를 얻으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으며, 그것이 좋은 성과로 연결되는 사례도 많다. 그러나 벤치마킹이 항상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벤치마킹을 통해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좋은 결과를 얻은 기업도 있지만 오히려 독이 된 경우도 많다. 가까운 일본에서 벤치마킹의 실패 사례와 그 원인을 찾아보고, 벤치마킹을 경영의 묘약으로 활용할 처방전은 과연 무엇일지 생각해 보자.
 
제2의 이세탄, 단 한 건도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일본에서는 ‘벤치마킹 붐’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기업들 사이에서 벤치마킹이 유행했다. 기업들이 주로 벤치마킹한 대상은 이세탄백화점과 도요타 자동차였다. 소매 유통업의 모범 답안이라 불리는 이세탄백화점의 성공 비결은 철저하게 고객 중심으로 상품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세탄의 종업원들은 ‘머천다이징 노트’를 항상 소지하고 고객이 원하는 상품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또 실제 판매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통해 직원 개개인의 머천다이징 노트를 항상 최신의 정보로 업데이트하도록 하고 있다. 교육과 시스템을 통해 ‘완벽한 상품 구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결과 이세탄 신주쿠점은 연간 3000만 명의 방문 고객 대부분을 실제 구매 고객으로 유치할 수 있었다. 판매 제품도 마진율 50%에 이르는 의류가 주를 이루고 있어 양과 질 모두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이세탄의 성공에 자극받은 유통업체들은 앞 다투어 벤치마킹을 시도했다. 오다큐, 마쓰자카야, 밀레니엄 리테일링, 이와타야, 메이테쓰 백화점 등 일본의 내로라하는 유통기업들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유감스럽게도 이세탄 방식을 도입하여 큰 성공을 거둔 사례는 단 한 건도 등장하지 않았다.
 
특히 추진 당시 대단한 의욕을 보인 오다큐백화점은 최근 ‘벤치마킹 항복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오다큐는 2004년 이세탄 사장 출신인 가케이를 비롯한 주요 직원들을 영입하여 이세탄 방식을 추진했지만 4년 만에 사장을 비롯한 이세탄 출신 직원 전원이 사표를 내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어이없게 끝난 도요타식 우정 개혁
간판(看板) 방식이나 개선(改善) 등의 혁신 운동으로 유명한 도요타 역시 많은 기업이 모방하고자 하는 기업으로 꼽힌다. 일본우정공사는 2003년 민영화와 함께 도요타 방식을 시범 도입했다. 처음부터 벤치마킹이 실패 조짐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고시가야 우체국을 대상으로 한 시범 개혁에서 생산성은 20%나 확대되었고, 자원 낭비와 실행 오류를 대폭 줄였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이 방식은 이내 JPS(Japan Post System)라는 이름으로 일본 전역 2400여 개 우체국 중 1000여 곳에 수평적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고시가야의 성공에 고무된 우정공사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JPS는 실패한 개혁이 됐다. 늘어난 업무량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이 속출했고, 비정규직 사원이 급증하면서 업무 효율성이 오히려 이전보다 떨어진 것이다.
 
벤치마킹, 제대로 하려면
지금도 많은 기업이 업계 최고 기업들의 방식을 모방함으로써 실적과 실력을 향상하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앞의 사례들은 모방만으로 성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생각만큼 쉽지 않은 벤치마킹, 낭패를 보지 않고 성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벤치마킹 대상 기업과 우리 기업이 처한 상황 차이를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일본 기업들은 이세탄 방식이나 도요타 방식의 도입을 검토하기에 앞서 그들의 역사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었다. 자기들만의 방식이 만들어지기까지 그들이 겪은 위기상황,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종업원들의 노력과 마음가짐, 문화 등을 이해해야 했다.
 
오다큐백화점의 벤치마킹 실패는 두 기업 간의 문화와 직원 의식 수준이 큰 차이를 보인 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오다큐백화점은 모기업이 오다큐전철로, 탄탄한 모기업이 제공하는 안정성 덕에 사내에 무사안일주의가 만연해 있었다. 시쳇말로 철밥통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은 조직이었다.
 
과거의 수많은 적자를 모기업에서 해결해 준 사례가 있어 성과에 대한 위기감이 없었을 뿐 아니라 모기업이 주요 임원진의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어 경영보다 오다큐전철의 눈치를 보기에 바쁜 상황이었다. 이런 기업 문화와 직원들의 의식 속에서 이세탄 출신 경영진이 내놓은 혁신 방안은 공허한 외침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잘못 이식된 이세탄 방식은 직원들의 문화 속에 녹아들지 못했고, 결국 개혁은 실패로 끝났다.
 
벤치마킹의 핵심 가치를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지 파악해야 한다 일본우정공사가 주목한 간판 방식이나 개선 운동과 같은 방법론적인 것들은 도요타 방식의 외형에 불과하다. 도요타 방식의 본질은 이러한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직원 개개인이 조직의 환경과 요구사항에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인 개선을 추구하는 조직문화에 있다.
 
일본우정공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우체국과 같이 기존 전통이 강한 조직이라면 위로부터 전격적으로 도입된 새로운 방식이 기존 조직과의 마찰을 빚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들이 벤치마킹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도요타가 추구하는 본질을 파악하고 이를 자신에게 맞게 변형해서 적용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거대 기업 GE의 벤치마킹 방법을 살펴보면 이러한 창조적 모방의 모범 답안을 찾을 수 있다.
 
GE는 유통업체 월마트로부터 즉시 대응방식(Quick Response)을 배워 이를 제조업체에 맞는 방식으로 변화시켰다. 생산 현장의 혁신 활동이던 식스시그마는 GE에 도입되어 생산부터 금융기관에 이르기까지 자신에게 꼭 맞는 혁신 방안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조직에 적합한 방안을 만들기 위한 약 4년의 준비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벤치마킹은 어느 기업이나 혁신을 위한 방안으로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방법론이다. 그러나 생각만큼 쉬운 활동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벤치마킹 대상을 정했다면 우선 그 기업의 환경을 잘 살피고 우리 조직의 체질을 비교해 보자. 그리고 우리 조직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충분히 고려한 뒤 추진해도 결코 늦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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