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에디슨은 영화 제작에 반드시 필요한 기술의 일부를 발명했다. 그러나 그는 영화 자체의 잠재력을 깨닫지는 못했다. ‘멘로 파크의 마법사’(역자주: 에디슨의 별명)는 영화란 큰 화면에 비춰서 대중이 보는 것이라기보다 ‘키네토스코프’(활동 사진 영사기)라고 부르는 박스를 이용해 조그만 구멍으로 혼자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에디슨은 키네토스코프를 제작해 판매하는 수익성 높은 제조업체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스콧 커스너는 저서 ‘영화 발명(Inventing The Movies)’에서 에디슨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가 제작한 핍쇼머신(peep show machine ·작은 구멍으로 훔쳐보는 기계라는 의미)은 많은 수익을 올리면서 대량으로 판매되고 있다. 대형 화면에 영사하는 기계를 내놓는다면 미국을 통틀어 10대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화면 영사기로 사람들에게 영화를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지 말자.”
에디슨만 이런 사고를 한 것은 아니다. 많은 기업이 현재의 기술을 혁신하고 경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반면에 커스너의 책에 서술된 바와 같이 유독 한 산업은 혁신과 기술 진보를 피하며 한 세기를 지나왔다. ‘할리우드에서 일어난 혁신과 현상유지 간의 서사적 전투, 토머스 에디슨부터 스티브 잡스까지’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잘 자리 잡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세심하게 보호해 주는 산업에서 기술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한 사례 연구를 담고 있다.
커스너는 그의 블로그‘시네마테크(Cinema -Tech)’와 할리우드의 오래된 정보지 ‘버라이어티’ 등에 기술이 영화 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한 글을 자주 기고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영화감독 조지 루커스가 소집한 작은 모임에 커스너가 초대됐고, 이 모임은 커스너가 ‘영화 발명’을 집필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커스너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작년 4월 한 화창한 토요일, 저는 차를 몰고 루커스의 4700에이커짜리 집의 정문을 지나갔습니다. 저는 누가 초대됐는지 알지 못했지만 2년 전에 루커스 감독이 비슷한 모임을 가졌을 때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틴 스코시즈,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등이 참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무척 긴장했습니다. 어떤 드레스 코드에 맞춰야 할지도 몰랐어요.”
‘고집쟁이 혁신가’인 루커스는 이 모임에서 영화를 만드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진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았다.
선구적 컴퓨터 애니메이션 기업인 픽사의 설립자인 에드 캐멀과 존 래스터, 영화 ‘백 투 더 퓨처’ 3부작의 감독이며 ‘포레스트 검프’로 오스카상을 받은 로버트 저메키스, 텍사스 출신으로 감독·카메라맨·작가·편집가이며 ‘신 시티’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를 찍을 때 필름 카메라가 아닌 디지털 카메라로 모든 촬영을 마친 로버트 로드리게즈, 흥행 마법사인 영화 ‘타이타닉’의 감독 제임스 캐머런 등이 이 모임 참석자였다.
루커스는 이 모임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입하려고 할 때 어느 산업에서나 혁신가들은 좌절감을 느낀다. 혁신가들은 색종이가 뿌려지는 퍼레이드가 아니라 적대감이나 무관심에 자주 직면한다. 때로는 현상 유지를 하려는 태도가 혁신적인 발상을 무마시키거나 적어도 그 도입을 지연시킨다”고 말했다.
커스너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영화를 만들고, 배급하고, 상영하는 기술이 발전하는 모든 단계에서 할리우드는 이런 패턴을 반복했다.
‘영화 발명’은 노하우를 가르쳐 주는 방법서가 아니다. 이 책은 영화사의 상당 부분에서 발견되는 ‘변화에 대한 저항’과 관련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잘 운영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기술 변화에 어떤 악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에게 매우 유익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