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기업은 소비자가 어떤 물건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과 실제 그 물건을 구입하는 순간 사이에 존재하는 의사결정 방해 요소를 신속히 제거합니다.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지면 소비자들은 당연히 더 많은 물품을 소비하기 때문입니다.”
마케팅 및 소비자 의사결정 분야의 권위자인 커트 칼슨 미국 듀크대 교수가 한국 기업들에 던진 메시지다. 칼슨 교수는 “업계 내 경쟁자나 품질 개선 홍보에 신경 쓰는 마케팅보다 전체 시장의 파이를 키우거나 기존에 없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데 도움을 주는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비자 의사결정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해 왔는데 소비자 의사결정이 기업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며, 소비자 의사결정을 도와 주기 위해 기업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많은 기업이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이 우리 제품을 사도록 만들까(how to buy)’만을 고민해 왔습니다. 그러나 초점을 ‘구매(buy)’에서 ‘더 많은(more)’으로 이동시켜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에게 우리 제품을 더 많이 사도록 만들까”를 고민하십시오.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지면 소비자들은 당연히 더 많은 물품을 소비합니다.
소비자가 어떤 물건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과 실제 그 물건을 구입하는 순간 사이에는 수많은 의사결정 요소가 존재합니다. 기업의 임무는 이 수많은 요소를 단순화해 소비자가 쉽고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 의사결정 과정을 가장 쉽게 만드는 기업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마케팅 담당자들이 이 과정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많은 회사가 야심차게 출시한 신제품 중 누가 봐도 어이없는 제품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기업이 소비자의 의사결정을 방해하고 있는 사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차를 구입할 때 소비자들은 시험운전을 절실히 원합니다. 단지 차 한 대가 아니라 여러 차를 타 본 뒤 그 중 자신에게 맞는 차를 사고 싶어하는 것이 소비자 마음입니다. 그러나 미국 어디에서도 혼다·도요타·현대 자동차를 그 자리에서 곧바로 시운전하고 성능을 비교할 수 있는 매장이 없습니다. 게다가 각각의 딜러숍에서 시험운전하는 것도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닙니다. 면허증 제시나 보험 등 시운전 과정도 상당히 복잡합니다. 중고차 전문 판매업체 카맥스의 경우 여러 차를 비교 운전해 볼 수 있지만 모두 중고차여서 소비자들이 진짜 궁금해 하는 신차 성능은 100% 확인하기 힘듭니다.
소비자의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업체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기업들이 소비자들의 사고 및 의사결정 과정을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합니다. 어떤 회사가 경쟁 차종과 자사 제품을 동시에 타 볼 수 있게 만든다면 상당한 호응을 얻을 겁니다.
미국의 골프협회 역시 소비자들의 의사결정 과정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골프는 과거보다 못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골프를 즐기는 주부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골프가 인기를 누리려면 골프를 남성 위주 스포츠에서 가족 활동으로 각인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부대시설을 갖춘 곳이 별로 없습니다.
가족을 타깃으로 삼을 때는 반드시 주부를 공략해야 합니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골프를 가르칠 때 많은 주부가 위기감을 느낍니다. 아동용 골프복과 신발을 골라 주고 골프장에 데려다 주는 사람은 엄마지만 정작 아이들은 아버지와 골프를 친 것만 기억하기 때문이죠. 이는 가족 갈등을 초래할 수도 있는 요인입니다. 남편이 부인에게 골프를 세일즈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다면 골프산업이 크게 번창할 것입니다. 주부를 공략하면 아이들을 공략할 수 있고, 이는 미래의 소비자를 미리 선점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애플과 같은 회사도 많은 착오를 겪었습니다. 애플이 만든 초기의 스마트폰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PDA와 같은 IT 기기가 성공하려면 소비자들이 이 제품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하고, 그 기술을 편안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애플은 고객들에게 “나는 이 제품을 이용하는 방법을 이해하고 있고, 이 제품을 이용하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데 실패한 겁니다. 당시 일반인이 쓰는 휴대전화와 PDA의 갭을 줄일 수 있도록 정보를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이 정의하는 효과적인 마케팅은 무엇입니까.
생산원가가 낮은 제품으로 가장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 마케팅의 역할입니다. 비록 정치적으로 올바른 의견은 아니지만 가장 뛰어난 마케터는 소비자들의 혜택(surplus)을 제로(0)로 만드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코카콜라를 보죠. 내용물이라고는 원가가 5센트도 안 되는 설탕물뿐이지만 소비자 가격은 75센트가 넘습니다. 코카콜라가 이 엄청난 마진을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수십년간 세계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료로 남아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바로 마케팅의 힘입니다. 소비자들에게 콜라는 제품의 아무런 변화가 없이 영구적 이미지로만 남아 있습니다.
월마트에 가면 삶은 국수의 물을 빼주는 여과기(strainer)를 99센트(약 1000원)에 살 수 있습니다. 싸고, 평생 쓸 수 있고, 소비자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습니다. 고객이 최대한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제품이죠. 어떤 업체가 이 시장을 독점해서 30달러(약 3만 원)에 판다고 가정해 볼까요. 훌륭한 마케팅을 통해 여과기가 소비자들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라는 인식을 각인시키면 설사 30달러라 해도 이 물건을 사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겁니다. 고객의 혜택을 기업의 혜택으로 전환시키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자사 상품을 판매하기보다 오히려 고객의 구매를 의도적으로 줄여 적절한 수요를 창출하는 디마케팅(demarketing) 또한 소비자들의 혜택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회사인 드비어스가 보유한 다이아몬드량은 아무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납니다. 그러나 드비어스는 이 가운데 극소수만을 시장에 유통시켜 다이아몬드의 비싼 가격을 유지합니다. 소비자 수요를 줄여 수익을 확대한 거죠.
기업들이 품질 개선보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기업간 경쟁이 치열해 품질 자체로만 승부하는 것은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습니다. 단일 제품이 아니라 전체 시장의 파이를 키우십시오. 특히 업계 내 경쟁자에 대해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코카콜라와 펩시의 사례를 보죠. 두 회사의 피 튀기는 경쟁은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포함해 서로에게 상당한 출혈을 입혔습니다. 그러나 이 덕분에 전 세계 콜라 시장에서는 두 회사 외에 어떤 회사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전체 시장의 파이를 키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아직 많은 기업이 회계·판매·재무처럼 마케팅을 하나의 기능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케팅은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는 행위입니다. 많은 미국 사람들은 회사 내에서 양치질하는 것을 금기시합니다만 어떤 소비재 회사도 이 생각을 전환시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지 못했습니다. 양치질은 창피한 일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 사이에 시금치를 끼운 채 돌아다니는 일이야 말로 창피한 게 아닐까요. 회사건 어느 장소에서건 양치질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는 인식을 소비자에게 각인시키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커트 칼슨(Kurt Carlson) 교수는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에서 경제학 석사, 코넬대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부터 듀크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 연구 분야는 소비자 의사결정, 소비자 인지, 마케팅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