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 Biz

숙성시킨 쌀에 빈티지 도입한 역발상에
전 세계 셰프 열광하다

259호 (2018년 10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쌀은 혁신이 어려운 분야로 여겨졌다. 새로운 쌀 품종을 개발하는 데 십수 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토리노 인근 지역에서 쌀농사를 짓는 론도리노(Rondolino) 가문은 쌀 품종이 아닌 제조공정 혁신을 통해 아퀘렐로(Acquerello)라고 하는, 전 세계 셰프들이 사랑하는 쌀 브랜드를 만들어 냈다.


유전자 분석에 따르면 쌀의 기원은 히말라야 인근으로 알려져 있다. 히말라야 고지에서 자생하던 야생 벼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특히 동쪽으로 쌀이 지나간 곳은 어김없이 쌀의 매력에 빠지면서 쌀을 주식으로 삼았다. 쌀은 물이 많고 여름에 고온 다습한 지역에서 잘 자란다. 반면 상대적으로 건조한 지역에 유리한 곡물인 밀은 유럽에서 많이 재배됐다. 대체로 포도가 잘되는 곳은 밀도 잘 자라는 기후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유럽에도 아랍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곳은 여전히 쌀을 재배하고 주식으로 먹고 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대표적인 예다.

슬로 푸드 운동의 출발지이기도 한 토리노(Torino)가 위치한 이탈리아의 서북부는 전통적인 쌀 주산지다. 이 지역의 쌀 생산량은 유럽 전체 쌀 생산량의 50%가 넘는다. 잘 알려진 대로 유럽 국가 중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쌀 소비량은 유럽의 타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고 그중 스페인에서는 최근 쌀 소비량이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에서 쌀 소비량 감소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데 반해 스페인에서는 동부 해안가에 위치한 발렌시아(Valencia)의 토속 음식인 파에야(Paella)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스페인 내에서도 주말 점심에는 가족이 함께 모여 파에야를 먹는 것이 유행으로 떠오르고 있다. 쌀을 먹는 것이 트렌디한 행동이 된 것이다. 급기야 최근에는 이탈리아 쌀이 스페인으로 수출되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쌀 문화는 트렌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쌀 산업 내 혁신은 전 세계적으로 드문 편이다. 새로운 쌀 품종을 개발하는 것 역시 십수 년이 더 걸리는 일이다 보니 자주 관찰하기 어렵다. 세계적으로 봤을 때 최근 쌀과 관련해서 가장 큰 혁신은 아프리카의 기아와 영양 결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GMO 기술이 적용된 골든 라이스(논란이 있기는 하지만)가 아닐까 싶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아프리카의 기아 문제 해결을 위해 아프리카 기후에 맞는 쌀 품종 개발 및 보급과 관련된 연구에 투자를 하기도 했다.

국내로 시선을 돌리면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새롭게 민간 육종 개발돼 시장 진입에 성공한 고급 품종 ‘골든퀸 3호’를 제외하면 최근 국내 쌀 생산 및 연관 산업의 혁신을 찾는 것은 매우 힘들다. 그전 사례로 1996년 CJ의 ‘햇반’ 출시를 꼽아야 할 정도다.

이탈리아의 최근 쌀 산업이 역동적이라고 말하긴 어려울 듯하다. 하지만 이탈리아 서북부 토리노 인근 지역만큼은 이야기가 다르다. 이 지역에서는 작지만 세계적인 혁신이 20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혁신이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불과 5∼6여 년 전이다. 이 혁신의 중심에는 토리노 인근에서 쌀농사를 짓고 있는 론도리노(Rondolino) 가문이 있다. 이들이 내놓은 아퀘렐로(Acquerello)라고 하는 제품 브랜드는 그 혁신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 혁신은 이탈리아 식문화의 전통을 살리면서도 제품 설계와 공정 분야에서의 혁신을 통해 유의미한 결과물을 만들어내 주목을 받고 있다.



아퀘렐로는 캔에 들어가 있는 쌀이다. 외견상 차별화를 시도한 것. 도정 후 산패를 방지하기 위해 질소를 충전해 캔에 넣어서 판매하고 있다. 아퀘렐로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어로 ‘수채화’라는 뜻이다. 이 아퀘렐로를 개발한 론도리노 가문의 선조들은 대대로 물을 다스리는 관개 관련 기술을 갖고 있었다. 쌀농사에 가장 중요한 기술은 역시 물이며 이 지역의 풍경이 마치 수채화 같다는 점에서 이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



아퀘렐로 캔에 들어가 있는 쌀의 품종이 특별하지는 않다. 이탈리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르나롤리(Carnaroli) 품종이다. 카르나롤리는 찰진 특성을 갖고 있는 자포니카 계열 쌀 중에서 알이 상당히 굵은 품종이다. 아퀘렐로는 카르나롤리 품종으로 농사를 짓고, 추수 후 도정을 하지 않은 낱알 상태로 최소 1년 반을 숙성고에서 숙성시킨 후 제품화해 내보낸다. 지금은 최대
7년 숙성한 쌀을 숙성 연수를 포장에 표기해 판매하고 있다. 쌀에 일종의 빈티지 개념을 도입한 셈이다. 햅쌀을 선호하는 우리나라 정서상 쌀을 7년을 숙성해 판다니 놀라운 일이다.

이탈리아의 쌀 관련 식문화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반적으로 그해 추수한 쌀을 올해 소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쌀을 먹을 때 물에 잘 씻은 후 끓여 먹는 데 반해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쌀을 씻지 않고 먹는다는 문화적 차이가 있다. 또 우리는 쌀을 푹 익혀 먹는 데 반해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는 속을 덜 익혀서 속에 심이 씹히는 ‘알 덴테(Al dente)’로 먹는다는 점도 큰 차이다.

쌀은 숙성하면 수분이 빠지면서 향미가 달라진다. 잘못하면 산패하면서 곰팡이가 생길 수도 있다. 또한 쌀 숙성 과정에서 쌀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생긴다. 우리나라에서는 쌀이 이렇게 변하면 품질 관리에 실패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아퀘렐로는 이를 차별화의 포인트로 가져간다. 마치 쌀을 드라이 에이징(Dry aging)하는 것과 같다. 아퀘렐로의 미세한 크랙은 비교적 짧은 시간(15분 내외) 조리하는 리소토(Risotto)를 만들 때, 리소토 소스가 쌀 속으로 잘 배어들게 하는 비결이 된다.

7년 숙성된 쌀은 어떤 관능적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7년 ‘묵은’ 쌀은 우리나라에서는 못 먹는 쌀이지만 아퀘렐로의 7년 숙성 쌀은 전 세계 셰프들이 열광한다. 아퀘렐로를 생산하는 론도리노 가문의 옛 농장 건물들은 작은 박물관으로 개조돼 있는데 내부엔 전 세계 유명 셰프들과 함께 진행했던 다양한 협업과 관련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퀘렐로의 성공은 셰프들과의 협업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아퀘렐로의 CTO 움베르토 론도리노(Umberto Rondolino)는 이야기한다.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이 아퀘렐로의 가치를 발굴하고 그 가치를 전 세계에 전달한 것이다.



아퀴렐로의 또 다른 차별화 포인트는 쌀 도정 과정에서 떨어져 나가는 미강 부분을 다시 수거해서 이를 곱게 간 후 쌀과 함께 섞는다는 점이다. 전 세계 그 어떤 쌀에도 없는 공정이다. 이 공정을 통해 풍미의 차별화가 한층 강화되고 영양도 풍부해진다. 미강에는 다양한 미네랄과 단백질이 포함돼 있다. 그래서 육안으로 아퀘렐로 쌀의 겉면을 관찰하면 노릇한 미강이 얇게 코팅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아퀘렐로 쌀은 절대 씻어서는 안 된다. 이 상태로 바로 조리해야 한다. 아퀘렐로의 차별화는 흔히 5 단계(재배, 추수, 탈곡, 도정, 포장)로 구분되던 단순한 쌀 제조 공정을 24단계로 세분화함으로써 달성 가능했다.

1935년부터 이 지역에서 전통적인 쌀농사를 짓기 시작한 론도리노 가문의 거대한 저택에는 120여 명의 인부가 살고 있었다. 지금은 20여 명의 사람이 모든 것을 다 담당한다. 가문 소유의 145ha 논의 쌀 생산을 오로지 1.5명이 담당한다. 가족경영체지만 기계화와 자동화에 대한 투자를 꾸준히 해왔다. 그리고 자체 RPC(Rice Producing Center, 쌀 가공시설)를 보유하고 차별화된 아퀘렐로 쌀 생산 및 가공 분야에 최적화된 시설로 개조해 이에 전념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모든 쌀은 지역 RPC를 통해서만 가공돼 판매 가능한데 대형화·자동화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각 지역 농가에서 수집된 쌀들이 RPC에서 다 섞여 버린다. 이런 시스템은 효율성 확보에 유리할 수 있으나 차별화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아퀘렐로 농장 인근 식당에서 아퀘렐로로 만든 이 지역 전통 리소토를 먹으면서 새로움과 전통은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결합될 때 차별화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물론 아퀘렐로로 만든 리소토의 맛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필자소개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부교수∙Food Biz Lab 연구소장 moonj@snu.ac.kr
문정훈 교수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KAIST 경영과학과를 거쳐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에서 식품 비즈니스를 연구하고 있다. 국내외 주요 식품 기업과 연구소를 대상으로 컨설팅하고 있으며 주 연구 분야는 식품산업 기업전략, 식품 마케팅 및 소비자 행동, 물류 전략 등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6호 Leadership for the New Era 2019년 12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