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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Money in the Brain

마음속엔 여러 개의 회계장부가 있다

정재승 | 15호 (2008년 8월 Issue 2)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MBA)의 크리스토퍼 시 교수는 강의를 잘하기로 유명하다. 그는 수업 중에 MBA 학생들에게 자주 “1000원 한 장과 500원 동전 두 개는 같은가”라는 퀴즈를 낸다. 그가 쓴 책 ‘정상적인 바보가 되지 마라’(북돋움, 2007)에는 이 내용이 자세히 설명돼 있다.
 
친구의 조언으로 A사의 주식 1만 주를 1000원에 매입했다고 가정하자.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아침에 주가를 확인해 보니 반 토막이 난 것이 아닌가! A사의 주식이 주당 500원으로 떨어져 500만 원이나 손해를 본 것이다. 이를 확인한 순간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500만 원을 손해 본 상황에서 팔 것인가, 다시 오르기를 기다리며 버틸 것인가. 반 토막 난 주식은 사실상 희망이 없어 보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팔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기 쉽다.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주가가 반등되길 기다린다는 것이다. 주가가 떨어져도 사람들이 쉽게 발을 빼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 즉 당신이 A사 주식을 팔지 말지 망설이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전화벨이 울려 전화를 받으러 갔다고 가정하자. 그 사이에 아내(또는 남편)가 컴퓨터 앞에 앉아 이것저것 만지다가 실수로 마우스를 클릭해 주식을 팔아치웠다고 하자. 그 순간 원금 1000만 원은 500만 원이 되어 당신의 자유저축통장에 입금됐다. 이 사실을 알게 됐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A사 주식을 되사들여 계속 주식을 보유하겠는가, 이 500만원을 다른 곳에 쓰겠는가. 이 질문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왕에 벌어진 일, 다시 사지 않겠다”고 대답한다.
 
냉정하게 판단하면 이 두 상황은 경제적으로 정확히 같다. 두 경우 모두 A사 주식 가격이 주당 500원이라는 상황에서 이것을 계속 보유할 것인가, 즉시 매도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등가의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전혀 상반된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이다. 1000원 한 장과 500원 동전 두 개는 같은 가치임에도 사람들의 반응 양상은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모순적인 행동을 하는 걸까.
 
같은 돈 다르게 규정하는 ‘심리회계’
시카고대에서 행동경제학을 가르치는 리처드 탈러 교수는 이런 현상을 ‘심리회계’(mental accounting)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탈러 교수에 따르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돈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고 지출하기 위한 회계장부가 존재한다. 그런데 똑같은 금액의 돈이라 하더라도 마음속에서 그 돈이 어느 회계장부에 있느냐, 어떤 방식으로 구분돼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사용될 수 있다. 이미 매도한 주식 500만 원과 아직 매도하지 않은 주식 500만 원은 서로 다른 심리회계장부에 들어 있는 것이다. 비록 본질적으로는 같은 금액의 돈이지만, 사람들에게 이 돈은 매우 다른 방식으로 인지되고 있다.
 
심리회계장부를 설명하는 가장 유명한 행동 시험으로 탈러 교수가 개발한 ‘콘서트 티켓에 대한 설문’이 있다. 당신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오페라 ‘아이다’가 개막되어 이것을 보기 위해 일찌감치 20만 원짜리 티켓을 사 놓았다. 저녁을 먹고 콧노래를 부르며 집을 나서려는데 티켓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된다. 오페라를 보려면 티켓을 다시 구입해야 한다. 당신이라면 고대하던 오페라를 보기 위해 다시 20만 원 티켓을 사겠는가, 말겠는가.
 
상황을 좀 바꿔 보자. 이번에는 당신이 고대하던 오페라를 보기 위해 예술의 전당으로 나서는데(이 경우 아직 티켓을 구입하지 않았다), 집을 나서는 순간 선물용으로 사서 지갑에 넣어둔 20만 원짜리 상품권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경우 당신은 상품권을 분실했다는 사실을 뒤로 한 채 오페라를 보기 위해 예술의 전당에 가서 20만 원짜리 티켓을 구입하겠는가, 단념하겠는가.
 
객관적으로 두 상황 모두 20만 원 상당의 물품을 분실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고 이것이 오페라 감상에 미치는 영향을 본 것인데, 사람들의 선택은 매우 달랐다. 첫 번째 질문에서는 많은 사람이 티켓을 다시 구입하지 않겠다고 대답한 반면에 두 번째 질문에서는 상품권을 잃은 것에 개의치 않고 오페라를 보기 위해 20만 원짜리 티켓을 사겠다고 대답했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이런 모순적 행동을 ‘심리회계장부의 오류’라고 부른다. 첫 번째 상황에서 20만 원은 우리 머릿속의 ‘여가생활비용’이라는 장부에 들어 있지만, 두 번째 상황에서 20만 원짜리 상품권은 ‘선물비용’이라는 장부에 들어 있다. 우리가 티켓을 잃어 새로 구입해야 한다면 20만 원이 여가생활 비용에서 추가로 나가는 것이어서 “‘아이다’를 40만 원이나 들여 볼 가치가 있나”라고 생각하며 부담을 느끼지만, 상품권을 잃은 것은 여가생활 비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황이므로 기꺼이 티켓을 구입한다는 것이다.
 
땀흘려 번 돈 vs 길에서 주운 돈
이처럼 우리가 경제활동이나 소비행동, 투자행동 등을 결정할 때 심리적 회계장부는 매우 강력히 작용한다. 경제적으로 20만 원은 우리에게 똑같은 교환가치를 지니지만, 길에서 주운 20만 원과 열심히 땀 흘려 번 20만 원의 가치는 매우 다르다. 이것을 지출하는 방식도 매우 다르다. 최근 신경과학자들은 뇌영상 기법을 이용해 실제로 사람들이 같은 금액의 돈에 대해 경제적 가치를 평가할 때 그 돈을 얻게 된 경로에 따라 다르게 평가한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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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승

    정재승jsjeong@kaist.ac.kr

    - (현)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
    - 미국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교수
    -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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