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최첨단 전자제품 광고를 할 때에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철칙이 존재했다. 혁신적 속성, 즉 제품의 성능과 ‘스펙’을 제대로 보여주거나 해당 제품이 가져올 라이프 스타일 변화를 감성적으로 이미지화해서 보여준 뒤 나중에 소비자들이 그 기능과 성능을 각자 알아서 찾아보게 하는 것이다. 둘을 잘못 조합하면 ‘어색하고 촌스러운 광고’가 만들어진다는 게 그간의 통념이었다. 하지만 최근 LG 시그니처 OLED TV 광고는 이 둘을 조합해냈다. 그 힘은 디테일과 꼼꼼한 설계에 있었다. 이 광고를 기획하고 만든 두 명의 광고인들은 “이렇게 ‘세련되게 감성과 속성을 모두 담는 광고’가 새로운 사조가 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광고를 통해 ‘what’과 ‘how’를 전달하려 하지 말고 왜 이 제품이 탄생했는지 ‘why’를 중심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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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우경(서강대 경영학과 졸업·미국 조지아대 석사과정 진학 예정) 씨와 조규원(홍익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벽난로 옆에 앉아 한 젊은 남성이 휴식을 즐기는가 싶더니 부인으로 추정되는 젊은 여성이 나와 ‘벽난로 화면’이 나오던 TV를 떼는 장면으로 광고는 시작된다. 넓은 집에 얇은 TV를 들고 춤추듯 돌아다니며 미술과 사진 작품 옆에 TV를 전시하기도 한다. 좁은 벽 틈으로 TV를 이동시키기도 하고, 평화롭게 멋진 석양과 불꽃놀이를 감상하는 듯 보이나 사실은 TV를 보고 있다. 1분간 지속되는 이 광고는 묘하고 특이하다. TV의 성능이나 외관 등 이른바 ‘스펙’에 대한 단 한 줄의 설명도 없지만 ‘얇고, 휘어지며, 가벼운데 화질은 깜짝 놀랄 정도로 좋은’ LG 시그니처 OLED TV의 모든 속성이 죄다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TV로 인해 변화할 수 있는 라이프 스타일이 그대로 제시된다.
보통 최첨단의 전자제품은 새로운 기능과 뛰어난 성능을 직간접적으로 ‘자랑’하거나 해당 제품으로 인해 변화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하며 그 제품을 소유하고 사용하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감성적으로 호소하는 방식 중 하나를 취하게 마련이다. 물론 두 요소를 적절히 배합하는 광고도 존재하기는 했다. 그러나 ‘기능’이 ‘라이프 스타일 변화’로 곧장 이어지는 스마트폰 광고 정도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조합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게 다수의 마케터와 광고인들의 중론이었다. 어느 하나를 버리고 확실하게 가지 않으면 ‘촌스러운’ 혹은 ‘어색한’ 광고가 연출된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이 광고는 달랐다. ‘TV CF’ 등의 광고 전문 사이트 등에서 광고를 본 이들 중에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꼈다’는 사람들이 많았고, ‘고급스럽다’ ‘여운이 남는다’는 댓글도 많이 달렸다. 물론 최근에 ‘히트’ 친 일반적인 광고처럼 인구에 회자되며 ‘대박’을 친 광고라고 보기는 어렵다. 제품 콘셉트 자체가 ‘초프리미엄’을 지향하는 브랜드(‘초프리미엄 콘셉트의 LG 시그니처 브랜드’ 참고.)에 속한 것이기에 마구잡이로 여러 채널에 광고를 뿌리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이 광고를 본 사람들은 ‘인상깊다’ ‘기억이 난다’고 말하는 상황이다.
이 광고를 만든 대행사 HS애드에 따르면, LG 시그니처 브랜드 론칭 이후 LG 브랜드 및 개별 브랜드의 ‘최선호도’와 ‘최초 상기도’는 올라가고 있다. LG 시그니처 브랜드를 아는 사람들(시그니처 브랜드 인지 그룹)이 LG전자 가전에 대한 선호도, 구매 의향, 프리미엄 인식 측면에서 모두 해당 브랜드를 모르는 그룹(시그니처 비인지 그룹)에 비해 LG전자 개별 브랜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은 시그니처 OLED TV 광고가 나간 이후 더 빠르게 강화되고 있다.
즉, LG 시그니처 브랜드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낙수효과’에 이번 광고가 크게 힘을 실어줬다는 얘기다. 조용하고 ‘고급스럽게’ 화제가 되고 있는 이 광고를 기획하고 만든 두 사람을 DBR이 만났다. HS애드의 이상권 기획2팀 국장과 김대원 CR센터 CD(Creative Director)가 그 주인공들이다. 다음은 두 사람과의 일문일답.
‘잔잔하지만 울림이 큰’ 광고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권 국장(이하 이): 아무래도 ‘LG 시그니처’라는 가전 브랜드가 워낙 ‘초프리미엄’을 표방하는 고가 브랜드다 보니 통합마케팅 형태로 바이럴을 일으키기 위해 온갖 채널을 동원할 수는 없었다. 그게 실제 매출에 효과를 일으키기도 어렵고, 잘못하면 ‘고급’이라는 이미지에 타격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빵 터졌다’ ‘대박 쳤다’는 느낌을 갖기는 어려울 거다. 애초에 우리 브랜드(LG 시그니처) 철학을 고려하면 ‘무조건 넓게 뿌리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고 진지하게 소비자들의 브랜드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기에 TV에서 중요한 시간대에 자주는 아니지만 긴 시간, 즉 1분짜리 제대로 된 광고를 내보내는 전략을 짤 수밖에 없었다. 통합마케팅 차원에서는 온갖 채널을 이용한 바이럴이 아니라 ‘브랜드 경험’을 중심으로 백화점 브랜드 존에서 실제로 제품을 보고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캠페인으로 갔다. 그런데 많은 소비자/시청자분들이 ‘여운이 남는다’ ‘한 번을 봤는데도 기억에 남는다’는 반응을 보여주니 확실히 성공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LG 시그니처 브랜드가 지난해 봄에 론칭되고 나서 전반적으로 LG전자 가전제품의 이미지를 끌어올리고 있는 게 여러 지표에서 잡히고 있는데 OLED TV 광고가 나가면서부터는 확실히 더 힘을 얻고 있다.
시그니처 OLED TV 이전 광고는 아주 우아하게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장면이 콘셉트로 잡혀 있었고 시그니처 브랜드 광고 전반이 고급스럽다. 브랜드 콘셉트와 광고를 일치시키고 있는 느낌이다.
김대원 CD(이하 김): 우선 시그니처 브랜드의 가장 큰 광고 콘셉트는 ‘가전, 작품이 되다’라는 카피로 요약될 수 있다. 그게 일종의 백그라운드이자 기본 철학이다. 이전의 ‘바이올린 연주 광고’는 바이올린 연주자 배경이 모두 ‘미친 화질’을 자랑하는 OLED TV라는 걸 간접적으로 소비자들이 인식하게 만들었고, 이번 광고는 제품의 혁신성을 고급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2.5㎜ 정도의 두께와 한 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의 가벼움을 자랑하는 TV라는 속성을 반드시 부각시켜야 하는 미션이 있었다. 그런데 그걸 이리저리 숫자를 보여줘 가면서 노골적으로 광고하는 순간 ‘초프리미엄’이라는 브랜드 철학에 피해를 주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굉장히 어려웠고 고민이 많았다.
이: 기획자 입장에서도 사실 어려운 문제가 많았다. 보통 광고인 입장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를 광고할 때에는 두 가지 방법을 떠올리게 된다. 타깃 고객층의 ‘변화될 라이프’를 보여주는 방법이다. 이 경우 순수하게 이미지 위주로 만들게 된다. ‘이 제품을 쓰면, 이 서비스를 받으면 당신은 이런 라이프 스타일을 갖게 된다’는 메시지를 주는 방식이다. 아예 제품이나 서비스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방법도 있다. 아주 혁신적이고 디자인조차 그 혁신의 일부인 제품은 이렇게 한다. 즉 제품 자체의 ‘압도성’을 보여주며 광고 내에서 ‘주인공’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번 시그니처 OLED TV 광고는 아마 거의 최초로 두 가지 방법을 배합한 광고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