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대응 사례와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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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EAD 경영대학원 명예교수인 스피로스 마크리다키스(Spyros Makridakis)는 공동 집필한 저서 <지하철과 코코넛: 부와 성공을 좌우하는 ‘운’의 비밀>에서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을 두 가지로 나눠 ‘지하철 불확실성’과 ‘코코넛 불확실성’이라 불렀다. ‘지하철 불확실성’은 우선 과거에 관찰된 것과 동일한 분포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가정에 근거한다. 마치 출근길 지하철 정시 도착 확률을 예측하는 것처럼 과거와 미래 사이에 연속성이 존재하는 한 이 모형은 신뢰할 만하다. 이와 반대로 ‘코코넛 불확실성은’ 가능성이 매우 낮은 사건을 뜻한다. 코코넛 불확실성의 경우 정규 분포를 이용해 통계 모형을 만들 수 없다. 코코넛에 머리를 맞을 확률을 예측하는 게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대책 마련이 어려운 기이한 일을 마크리다키스 교수 등 저자들은 ‘코코넛 불확실성(위기)’이라 불렀다.
기업 위기의 개수 = 모든 경영적 변수의 개수 X 각 변수별 이해관계자들의 수
기업의 불확실성, 즉 기업 위기의 개수는 기업을 경영하는 과정에서의 수많은 변수들에 그 기업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이해관계자(stakeholder)들의 수를 곱한 것만큼 많고 다양하다. 따라서 위기를 100% 예측 관리하는 것은 현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관리 컨설턴트들은 기업의 위기관리 시스템 구축을 위한 가장 첫 단계로 위기요소진단 또는 위기취약성진단(crisis vulnerability audit)이라는 것을 진행한다. 해당 기업에 발생 가능한 모든 위기 요소들과 취약성들을 찾아내 기업이 그 각각을 대비하고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 CEO와 임원들은 종종 ‘하나도 빠짐 없이 모든 위기요소들과 취약성들을 도출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요청은 그들의 위기관이 ‘지하철 불확실성’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들이 경험할 수 있는 위기는 모두 예측가능하며 발생시기나 유형, 방식에 있어 일정 분포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실제 임상적으로도 대부분의 기업위기들은 기업 구성원들이 사전에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기업 위기에 있어 전례가 없거나 구체적으로 예측 가능하지 않았거나, 해법을 알지 못하는 ‘낯선 위기. 즉, 코코넛위기’는 발생 가능성과 빈도가 낮다. 따라서 이에 대응한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예측가능한 위기요소와 취약성 도출만으로는 모든 위기에 대한 대응과 관리가 가능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컨설턴트들과 기업 내부 CEO 및 임원들은 이 검은 장막 속에 가려져 있는 미지의 ‘코코넛 위기’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큰 두려움을 가진다.
코코넛위기가 기업의 존폐를 좌우하게 되는 큰 사건이 될 수도 있고 해프닝에 그칠 수도 있다. 오늘 밤에 다가 올 수도 있고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코코넛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운 좋게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해결책을 모르고 해당 위기를 재앙으로 번지게 하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그래서 관리가 어려운 게 바로 ‘코코넛위기’다.
그러면 이 코코넛위기는 계속적 불확실성 속에서 두려워만 해야 하는 대상일까? 아니면 어차피 예상할 수 없고 대비할 수도 없으니 포기해야 하는 대상일까? 위기관리 시스템적 측면에서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코코넛위기도 관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일단 전례들을 살펴 유형화하라
가능한 모든 위기 전례들을 먼저 살피고 주변을 둘러봐야 한다. 자사가 경험했던 과거 위기 유형들을 모두 살펴보고 그 각각의 위기관리 프로세스와 결과들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자사뿐 아니다. 경쟁사나 이종 기업들에도 발생했던 위기유형들 또한 모두 들춰 보고 그 프로세스와 결과들도 벤치마킹해 봐야 한다. 과거 기억 속의 위기가, 그리고 다른 기업들에서 기존에 발생한 위기들이 자사에 필히 다시 발생한다는 약속은 없다. 하지만 실제 환경에서 대부분의 위기는 이미 발생했던 위기와 유사하거나 동일한 형태로 반복된다. 전례들이 있었다면 해당 위기들의 유형화와 관리가 가능하다. 위기관리는 이러한 유형화를 통해 거시적 대응 체계를 만들어 놓아야 가능한 작업이다. 곧 위기관리 시스템의 골격이다. ‘코코넛위기’도 사후에 판별해 보면 거시적 유형 가운데 하나에 포함되는 사례도 많다.
모 외국계 화장품 회사의 예를 보자. 우선 이 회사가 위기의 전례들을 유형화해 표로 정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 마케팅 및 광고, 프로모션에 대한 논란
● 제품 내 인체유해 성분 관련 논란
● 제품 내 이물질 관련 논란/블랙메일/블랙컨슈머 포함
● 제품 가격 폭리 논란
● 제품 생산 및 R&D 과정에서의 환경 및 윤리 논란
● 세일즈 및 CS 네트워크상 소비자 관련 위기
● 내부고발자 관련 위기
● 세일즈, 생산 인력들의 노조파업 및 사내 인사 관련 논란
● 거래처와의 갈등
● 브랜드 관련 위기
● 정부기관으로부터의 부정적 규제
● 언론/NGO 등으로부터의 부정적 공격
● 소비자들로부터의 부정적 공격
● 온라인(SNS포함)에서의 논란, 루머, 공격, 갈등과 같은 위기
화장품 회사에 대부분의 위기들은 일단 이상의 유형에 속할 수밖에 없다. 구체성이 아직 결여되기는 하지만 가능한 많은 전례들을 수집하고 이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을 통한 유형화가 가능하다면 ‘코코넛위기’가 이 틀을 빠져 나갈 가능성은 대폭 줄어들게 된다.
둘째, 최대한 세부적으로 위기를 분석해 예측하라
일단 전례들을 통한 위기의 유형화 작업이 끝났다면 그 다음은 세부적으로 들어가 각각의 유형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위기 상황들이 발생할 수 있을지를 분석해 보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단순 제품 내 인체유해 성분 관련 논란이라도 그 성분 특성에 따라, 또 그 성분의 유해성 수준에 따라, 그 성분의 포함 수준에 따라, 해당 유해성분 관리 기준에 따라, 해당 유해물질의 유입 경로에 따라 여러 위기 상황이 다르게 연출될 수 있다. 전례들에서 흔히 논란이 됐던 수은, 카드뮴 등의 중금속류가 위기의 핵심이 될 수도 있고 그와는 다른 특정 방부 물질이 위기의 핵심이 될 수도 있다. 최신 기술인 나노(nano) 성분이 새로운 위기의 핵심이 될 수도 있으며 단순히 비타민 C 성분도 위기의 핵심이 될 수도 있다. 앞에서 규정한 위기의 유형 하단에 실제 발생 가능한 위기의 상황과 형태들을 더욱 더 잘게 쪼게 분석해 보는 작업은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해당 세부 상황과 형태들에 대한 자세한 그림들이 존재한다면 그 각각에 따라 위기 발생 예상 시점과 발생 프로세스 등을 미리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최근 새로운 기술 분야인 나노 테크놀로지에 대해 점차 부정적 방향으로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논의가 떠오르고 있다는 모니터링 결과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미 세부 위기상황 및 형태들에 대한 그림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은 이런 현상을 하나의 경보로 받아들이게 된다. 당연히 더욱 더 이해관계자들과 여론 환경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본격적인 위기 발생 시기와 계기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위기에 대한 기존의 분석이 기반이 돼 새로운 위기의 발생을 전제로 한 대응책들을 꼼꼼하게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되는 셈이다. 코코넛위기의 경우 사전에 어떤 형태로 발생할 것인지를 전혀 알 수 없다는 부분이 공포의 핵심인데 그러한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해소시킬 수 있는 작업이 위기 세분화 작업이다.
셋째, 부서별 역할과 책임을 규정하라
세부 위기상황과 형태들 각각에 대해 해결책을 모두 마련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해결책이 없는 경우도 있다.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은 해당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완화나 소멸 활동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위기들은 여러 이유들로 인해 직접 발생가능성을 없애거나 완화시키기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그 다음으로 가능한 것은 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전제하고 사후 해결책들을 고안해 내는 것이다. 유형과 형태별로 위기관리 주체들을 지정하고 주체들 각각의 역할과 책임(role & responsibility)을 규정해 놓는 작업이 필요하다. 각각의 사내 기능조직들과 기능리더들이 제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인지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위기 대응 프로세스를 숙지하고 있다면 그 자체가 해결책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화장품 회사에서 자사 모 제품 내 인체유해 성분 관련 논란이 발생할 때 마케팅 부서에서는 전사 또는 브랜드별 위기관리위원회의 상황파악과 의사결정내용에 따라 홍보팀과 함께 각각의 마케팅 채널별로 대고객 커뮤니케이션을 준비하게 된다. 채널별로 관련 에이전시들을 활용해 도움을 받는 체계를 가동하고 위기관리 활동을 위한 예산을 준비해 심의를 받는다. 위기 시 각 부서별 이런 모든 일련의 활동들과 프로세스가 유기적으로 모이면 전사적 대응 시스템이 된다.
코코넛위기가 두렵고 골치 아픈 이유 중 또 하나가 뚜렷한 사전 방지책이나 사후 해결책이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는 부분인데 이상과 같은 위기관리위원회와 그 산하에 각 역할과 책임을 나눈 팀 어프로치를 통해 불확실성을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위기관리에 있어 일종의 집단지성이며 협업과 통합을 통한 경쟁력의 의미를 가진다.
넷째, 이해관계자와 함께 불확실성을 줄여라
위와 같이 잘 갖춰진 기업 내부의 위기관리 시스템은 ‘코코넛위기’의 발생 가능성과 빈도도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사후 관리에 있어서도 통제 가능한 결과들을 만들어 낼 가능성을 높여준다. 즉, ‘예측할 수 있는 위기는 모두 관리할 수 있다’는 역량은 곧 ‘일부 예측하지 못한 위기라고 하더라도 가능한 관리할 수 있는’ 역량으로 진화하게 된다. 위기 발생 이전과 이후, 그리고 그 과정 전반에서 통제 가능한 변수들을 극대화함을 통해 ‘코코넛 위기’가 차지할 수 있는 불확실성의 영역을 대폭 최소화한다는 전략인 셈이다.
회사 내부뿐 아니라 이해관계자들과의 연계성 또한 고려돼야 한다. 경영상 발생되는 변수 각각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다양한 니즈와 입장을 이해하고 적극 관리하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야 한다. 이 또한 위기발생과 관련한 제2와 제3의 ‘코코넛위기’ 발생을 통제하기 위한 체계가 된다. 해당 위기를 둘러싼 주요 이해관계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역할을 배분해 모두가 한목소리를 냄으로써 효과를 극대화하는(multi-window, one-voice) 전략을 구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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