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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의 대표 코너 중에 ‘달인’이 있었다. 일본 방송에도 자주 소개될 만큼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개그맨 김병만 씨의 노력하는 모습은 재미와 함께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면 개그가 아닌 생활 속에서, 기업에서 진정한 프로가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숫자의 달인’이 되는 것이다.
숫자에 강해진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이를테면 다음의 문장을 읽어보자. “100점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75점 정도는 누구나 받을 수 있습니다. 숫자에 강해지는 비결은 ‘99%의 의식과 1%의 지식’에 달려 있습니다.”
이 문장을 이번에는 숫자를 의식하면서 다시 한번 읽어보자. ‘100점’ ‘99%’ ‘1%’, 의도적으로 숫자를 넣어 문장을 완성했다는 것을 눈치챘는가? 만약 앞의 문장에 숫자를 넣지 않는다면 이렇게 된다. “만점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어느 정도는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숫자에 강해지는 비결은 ‘끊임없는 의식과 약간의 지식’입니다.” 둘의 차이를 느끼겠는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같을지라도 풍기는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숫자가 없는 문장은 임팩트가 약하고 막연하다. 의도적으로 숫자를 활용함으로써 효과적인 표현이 가능해진다. 생활에서, 기업에서 숫자의 활용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숫자의 달인’의 4가지 원칙을 통해 살펴보자.
숫자 활용의 첫 번째 원칙은 ‘숫자에는 순서가 있다’이다. ‘당연한 말’이라는 지적을 할 법한데 누구나 당연히 아는 원칙이기에 여러 가지로 이용 가치가 높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유럽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물인 <구텐베르크 성서>에는 페이지 번호가 없었다. 책에 순서대로 페이지 번호를 써넣은 자체가 위대한 발명 가운데 하나다.
2006년도에 일본 영화 최고 히트작의 명예를 안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게드전기>의 TV 광고나 포스터에는 ‘미야자키 고로 감독의 1번째 작품’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아들이기도 한 미야자키 고로, 그의 첫 번째 작품이 바로 <게드전기>다. 처음에 만든 작품을 내놓으면서 붙이는 타이틀은 대개 ‘처녀작’ 또는 ‘데뷔작’이다. 거장의 아들을 부각시킨다 해도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 감독의 데뷔작’이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대대적으로 내건 타이틀은 ‘미야자키 고로 감독의 1번째 작품’이었다. ‘1번째’라는 말 속에는 ‘2번째’, ‘3번째’가 계속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다음 영화가 공개되기도 전에 그렇게 선언하고 나선 스튜디오 지브리야말로 대단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1번째 작품’은 두 번 다시 만들지 못한다. 앞으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이 될 미야자키 고로 감독의 1번째 작품임을 부각시키면서 프리미엄을 붙인 것이다. 깊은 속내가 바로 ‘미야자키 고로 감독의 1번째 작품’이라는 문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는 ‘웹2.0’과 마찬가지로 숫자의 ‘순서성’을 이용해 진화하는 미래까지 담고 있는 훌륭한 표현이다.
숫자의 원칙 두 번째는 ‘숫자가 단위와 결합되면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대부분 숫자는 단위와 함께 사용됨으로써 비로소 특별한 의미로 완성된다. ‘1’이라는 숫자에는 ‘최초로 시작되는 자연수’라는 의미만 담겨 있지만 그것에 ‘1%’ ‘1위’ ‘1ℓ’ ‘1㎞’ 같은 단위가 붙으면 같은 ‘1’이라도 의미가 달라진다.
기업의 경우에는 숫자를 가지고 놀 수 있어야 마케팅에 성공한다. 이를 위해서는 숫자에 단위가 붙어 있을 때는 ‘이 숫자의 단위를 바꾸면 어떻게 될까’하고 생각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숫자를 크게 보이게 하는 수단으로 단위 변환이 자주 이용된다.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의 억제 효과가 큰 타우린이 겨우 1g 들어 있는 드링크제를 ‘타우린 1000mg 함유!’ 하며 선전하는 것도 숫자를 크게 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타우린 1g 함유!’ 하면 “에게∼ 겨우 1g?”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지 않겠는가. 권투나 프로레슬링에서 선수들의 체중을 ‘69.7kg’ 하지 않고 ‘153파운드 4분의 3’이라고 소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숫자가 크면 느껴지는 중압감도 훨씬 커진다. 비즈니스 숫자에 강해지기 위한 첫걸음은 ‘표현 바꾸기’ ‘나누기’ ‘단위 변환’을 의식적으로 활용하는 일이다. 처음에는 어려워 보이지만 익숙해지면 누구라도 간단히 할 수 있다.
숫자의 원칙 세 번째는 ‘숫자는 가치를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순위, 크고 작다, 높고 낮다 등은 모두 숫자를 써서 그 가치 정도를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는 업무활동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원칙이다.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예를 들어 보자.
물론 숫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가치를 표현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강렬함이나 설득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영화를 선전할 때 ‘모두가 울었다’보다는 ‘10명 중 9명은 울었다’라고 표현하는 쪽이 강하게 인상이 남지 않는가? ‘가치’라는 것은 매우 애매하고 유동적이므로 억지로라도 숫자를 써서 의미를 고정시키면 그만큼 힘이 실린다. 그러므로 단순히 ‘좋아한다’보다 ‘세 끼 밥보다 더 좋아한다’ 혹은 ‘너무 맛있다’보다 ‘전에 먹은 것보다 5배는 맛있다’는 식으로 평상시에 숫자를 의식해 사용하면 커뮤니케이션도 훨씬 풍요로워진다. 이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약속 시간을 분 단위까지 말해 보는 습관을 가져보자. 예를 들어 ‘6시53분’에 보자라고 말을 했다면 이는 ‘분 단위로 집합 시간을 정했으니 늦으면 절대 안 된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7시49분’에는 ‘1분 단위로 일을 하고 있으니 잘 준비하고 있으라’는 뜻이 담겨 있다. ‘7시쯤’ ‘8시 전에’라고 막연하게 시간을 정해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일부러 분 단위까지 지정하는 데는 또 다른 의도가 있다. 시간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다.
숫자의 원칙 네 번째는 ‘숫자는 변하지 않는다’이다. 숫자는 문자와 달리 그 의미가 변하지 않는다. 1은 쭉 1이며 623은 쭉 623이다. ‘어여쁘다’는 말은 옛날에는 ‘불쌍하다’는 뜻으로 주로 쓰였지만 지금은 ‘예쁘다’는 말로 그 의미가 점점 바뀌고 있다. 이처럼 문자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의미가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숫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1은 그냥 1이다. 유의어도 존재하지 않는다. 1을 ‘一’ 혹은 ‘one’으로 바꿔 쓰는 게 전부다. 숫자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1은 1이라는 뜻이다.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1은 그저 1이다.
정말 굉장한 일이 아닌가? 의미를 변함없이 정확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숫자는 가장 뛰어난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금액이나 무게와 같이 서로 다른 것을 비교할 수 있는 것도 숫자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패션모델들의 몸무게 10㎏과 자신의 몸무게 10㎏의 의미가 다르다면 어찌 그녀들의 다이어트를 참고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숫자는 비교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숫자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우리가 문자보다 숫자를 신용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롯데 자이언츠가 이길 거야”라고 감각으로 말하는 사람과 “선발투수의 방어율과 최근 다섯 경기에서의 팀 타율을 봤을 때 오늘 경기는 자이언츠가 이길 거야”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무래도 데이터를 근거로 말하는 사람의 말을 더 신뢰하게 된다. “비타민C가 많이 함유돼 있다”와 “레몬 1000개분의 비타민C가 함유돼 있다” 둘 중에 어느 쪽 말에 귀가 솔깃해지겠는가?
숫자의 4가지 원칙인 ‘순서가 있다, 단위와 결합되면 의미가 달라진다, 가치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활용하는 달인이 되고 싶지 않은가? 혹시 간호사로 유명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미국통계학협회 명예회원으로 추대될 만큼 훌륭한 통계학자였다는 사실을 아는가? 모든 직업에서 숫자의 달인이 되는 것은 중요하다. 생활 속에서 숫자 감각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주변의 친숙한 사례를 통해 배우고 싶을 때 꼭 한번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략과 인사 전문 컨설팅 회사인 자의누리경영연구원(Centerworld Corp.) 대표이면서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경영 서평 사이트(www.CWPC.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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