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8전 1009기, KFC 1호점은 그렇게 생겼다

91호 (2011년 10월 Issue 2)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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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은 1941년 모교였던 해로스쿨 졸업식에서절대 포기하지 마라.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는 명연설을 남겼다. 이 글에서 소개할 사람 역시 절대 포기하지 않는 집념의 소유자다. 바로 KFC 매장 앞에서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할아버지, KFC의 창립자 커넬 샌더스다. 전 세계 100여 개 나라, 6200여 개의 KFC 매장에서 한 해 동안 파는 치킨을 한 줄로 세우면 지구를 11바퀴나 돌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은 엄청난 성공을 거둔 KFC이지만 그 과정이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여섯 살 때 아버지를 잃은 뒤로 샌더스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농장일꾼부터 보험판매원, 타이어 영업사원과 주유소 직원까지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일하며 젊은 시절을 보낸 샌더스는 서른 살이 되던 1920년에 조그만 주유소를 하나 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계 경제를 위기에 빠뜨린 대공황에 그의 주유소 역시 살아남지 못했다.

 

1929년 샌더스는 주유소 폐업 1년 후 켄터키주 코빈에 다시 작은 주유소를 열었다. 샌더스는 주유소 모퉁이에 식당을 열어 닭튀김을 판매했는데 그만의 비법으로 튀겨낸 치킨이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식당에 불이 났다. 1939, 그의 나이 45살 때의 일이다. 지난 10년의 노력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샌더스는 다시 한번 자신을 추스르고 2년 만에 샌더스 카페라는 음식점을 시작했지만 시련은 또다시 그를 찾아왔다. 갖은 노력으로 치킨의 맛을 완성해냈지만 식당 바로 옆으로 고속도로가 뚫리며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기고 만 것이다. 결국 헐값에 가게를 넘긴 샌더스의 손에는 105달러만 남았고 그의 나이는 65세였다.

 

이쯤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불운을 탓하며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샌더스는 한 번 더 도전한다. 105달러와 함께 그에게 남은 것, 바로 치킨을 맛있게 튀기는 기술을 발휘해보기로 한 것이다. 샌더스는 그만이 만들 수 있는 닭튀김조리법을 알려주고 대신 로열티를 받는 사업을 구상해낸다. 치킨 한 조각당 4센트! 프랜차이즈라는 개념조차 없던 당시로선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그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길을 가다 눈에 띄는 식당에 모두 들어가 사업을 제안했다.

 

하지만 식당주인들은 그의 설득에 넘어가지 않았다. 잡상인으로 오해받고, 때로는 미친 사람 취급도 받았다. 그는 역시나 포기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거절당한 식당이 무려 1008곳이나 됐다. 그리고 마침내 1009번째 식당에서 샌더스는 첫 번째 계약을 따낸다. KFC 1호점이 탄생한 역사적 순간이다. 켄터키프라이드치킨이라는 상호명 역시 이때 만들어졌다.




샌더스의 집념은 조금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다. 이렇게 무작정 1000개가 넘는 식당을 찾아다니며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바로 치킨 맛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치킨 맛에 대한 자신감은 맛에 대한 집념, 지치지 않는 그의 도전에서 비롯됐다. 샌더스 카페의 치킨요리가 인기를 끌면서 차례를 기다리다 그냥 가버리는 손님들이 생겨났다. 샌더스는 요리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기름을 가득 부은 냄비에 치킨을 튀기는 기존방식은 간단하고 빠르긴 했지만 양념 맛이 훼손돼 샌더스는 이 방법을 기피했다. 그때 생각난 것이 바로 박람회에서 구경한 압력솥이었다. 압력솥으로 닭을 튀기는 건 전혀 새로운 또 다른 도전이었다. 적당한 압력이나 시간, 기름의 양과 타이밍 등 모든 레서피를 새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당시의 압력솥은 이제 막 출시돼 안전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 압력이 너무 클 경우 폭발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리스크들은 샌더스의 도전 정신을 가로막지 못했다. 그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압력솥을 이용한 조리법을 완성했고, 이런 시행착오를 거쳤기 때문에 샌더스는 1008번이나 거절을 당하고 난 뒤에도 1009번째 가게에서 치킨 한 조각당 4센트를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까지도 이 조리법은 KFC 본사의 금고에서 철통 보안을 받고 있다고 한다.

 

KFC 1호점이 탄생한 뒤에도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샌더스는 아내와 함께 프랜차이즈에 관심을 보이는 식당을 찾아가 망설이는 주인들을 위해 며칠간 직접 닭튀김을 서비스해 보였다. 손님들에게 평가를 받고 나서 결정하라는 뜻이었다. 역시나 자신의 요리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주방에서 치킨을 만드는 동안 홀에서 서빙하는 아내에게 샌더스는 우아한 롱드레스를 선물하고 자신은 하얀색 양복과 나비넥타이를 맸다. 이 복장은 오늘날 KFC의 트레이드마크 로고가 됐다. 샌더스가 하얀색 양복을 선택한 건 청결함을 강조하고 싶어서였다. 실제로 청결에 대한 그의 집착은 병적인 수준이었다. 샌더스는 더러운 곳과는 절대로 계약을 맺지 않았고 잘 모르고 맺었더라도 상태를 확인하는 순간 계약을 취소했다. 맛과 청결에 대해서라면 절대 타협하지 않는 그의 고집 덕분에 KFC 4년 후 미국에만 200여 개의 매장이 생겼고 캐나다에도 6개의 매장이 생겼다. 마침내 평생 흔들림 없이 계속돼온 그의 도전이 보답을 받게 된 것이다.

 

물은 섭씨 100도가 돼야 끓는다. 하지만 0도부터 99도까지는 겉만 봐서는 큰 변화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100도가 되기 전에 포기하곤 한다. 미국의 백만장자 로스 페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공하기 직전에 포기한다고 말했다. 샌더스가 1009번째 이전에 아무래도 안되겠다며 집으로 돌아갔다면 우리는 아마 KFC의 치킨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66세의 나이, 1009번째 시도 만에 성공한 KFC 1호점, 바로 오늘날 우리가 가져야 할 도전정신과 기업가정신이 아닐까 한다.

 

 

 

한일영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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