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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TRENA Report

Low-tech, High-concept, 쉽고 친근한 기술이 좋다

유인오 | 85호 (2011년 7월 Issue 2)

편집자주 메가트렌드에 비해 마이크로트렌드는 미세한 변화를 통해 파악되기 때문에 쉽게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마이크로트렌드는 기업에 블루오션을 열어줄 수 있습니다. 상품을 통해 마이크로트렌드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메타트렌드연구소의 최신 연구 결과를 신사업 아이디어 개발에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기술 발전이 사람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기술과 콘셉트가 어우러질 때 사람의 삶이 풍요로워진다. 고도로 진화된 하이테크는 사람들에게 마법 같은 경험을 제공하지만 로테크 하이콘셉트(Low-tech, High-concept)는 마법 같은 경험 대신 보다 친근하고 간편하며 생활 속에 파고드는 경험을 제공한다. 콘셉트에 충실한 기술은 하이테크가 제공하지 못하는 다양한 가치를 창출한다.
 
기술에 종속된 삶
기술의 발달이 사람의 이해를 넘어서는 순간을 특이점(Singularity)이라고 한다. 레이 커즈웨일은 이 같은 특이점이 2056년 즈음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특이점을 넘어서는 순간 기술의 발달에서 인간의 역할은 사라지고 기술이 기술을 발달시키는 상태가 된다. 이 상태에 도달한 인류는 첨단 문물의 원리를 이해하기보다는 그 효과만을 누리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이런 현상은 우리 주위에 가깝게 다가와 있다.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는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스마트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우리는 이미 기술을 지배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기술에 종속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물론 하이테크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이전에 불가능했던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하이테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질수록 사용자들은 하이테크가 적용된 제품의 사용법을 익히는 데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된다. 새로운 기술에 적응할 때 즈음이면 이보다 발전된 기술이 등장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콘셉트 중심의 제품
최신 디지털 제품들은 항상 최신 기술과 기능을 반영함으로써 구매자들을 유혹한다. 디지털 제품의 선택에서 고성능과 다양한 기능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과연 이러한 제품의 기능을 100% 활용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소비자는 몇 명이나 될까.
 
소비자들은 ‘얼마나 고성능의 제품인가’보다는 ‘얼마나 내게 유용한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제품 개발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다양한 최신 기술과 기능을 탑재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콘셉트에 충실하고 사용자에게 경험과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춘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기존 시장을 바꿔놓은 혁신적인 제품을 연이어 선보인 애플은 제품의 명확한 스펙을 공개하지 않는다. 제품을 공개할 때도 기술보다는 사용자에게 어떤 경험과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강조한다. 애플의 대표적인 제품들에 도입된 기술 중 혁신적이라고 할 만한 기술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콘셉트다. 기술은 콘셉트를 구현하기 위한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을 제품에 추가하는 것이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엔지니어 중심적인 시각이다. 제품의 중심에 기술을 놓음으로써 사용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진다. 사용자 중심의, 콘셉트 중심의 제품 개발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로테크 하이콘셉트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기술보다 콘셉트를 중심으로 제품을 개발함으로써 사용자에게 더욱 사랑받는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
 
시중에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거치하기 위한 독(dock)이 많이 나와 있다. 스피커가 달려 있거나, 리모콘으로 동작하는 등 각종 기능이 추가되면서 가격이 올라간다. 데시네 모아 운 오브제(Dessine moi un objet)가 발표한 종이로 만든 아이폰 독은 아이폰을 거치하고 충전할 수 있는 다른 독들과 기능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종이로 만들어져 있다.
 
제품 자체를 파는 것이 아니라 PDF로 제작된 설계 도면과 이를 제작하고 사용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동영상으로 구성돼 있다. 소비자들은 PDF를 다운받아 종이에 출력한 후 이를 조립하면 아이폰 독을 완성할 수 있다. 대단한 기술이 필요 없고 프린터와 가위, 칼 등만 있으면 만들 수 있다. 주위의 물건만으로 기능적으로 완벽한 아이폰 독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로테크 하이콘셉트를 충실히 따르는 제품이다.
 
마이너스 디자인
과도한 기술, 디자인, 재료, 기능을 제거하는 디자인을 통해 로테크 하이콘셉트를 추구할 수 있다. 잉여 부분을 제거하고 남는 부분이 바로 본질이다.
 
데이브&데이브의 커피 줄리는 차나 커피를 보다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한 제품이다. 티워머 역할을 하는 이 제품이 타 제품들과 다른 점은 전기나 별도의 전원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떤 화학 약품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금속으로 된 커피콩 모양의 제품을 찻잔에 넣어 비열을 이용해 차를 더욱 오래 따뜻하게 유지시킨다. 이 제품은 최소한의 기술을 사용해 목적을 달성하는 로테크 하이콘셉트의 가치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더구나 이 제품은 조형적인 아름다움까지 제공한다.
 
로테크 하이콘셉트가 제공하는 또 하나의 가치는 단순성이다. 단지 따뜻한 물에 넣는 것만으로 온기를 유지시켜주는 것은 목적을 위한 과정을 단순화함에 따라 별도의 교육이나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 없다. 엔지니어는 기본적으로 더하는 데 능하고, 디자이너는 빼는 데 능하다. 기술과 기능을 뺄수록 사용자의 경험은 더해진다.
 


기술과 휴머니즘의 경계
기술은 모두에게 구세주가 될 수 없다. 지금 주위의 기술이 과연 내 생활에 모두 필요한 기술인가. 과잉 기술이 넘쳐나고 있지는 않은가에 대한 의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로테크 하이콘셉트는 중간 기술, 혹은 적정 기술로의 활용이 가능함에 따라 지금까지 기술의 발전에서 소외돼왔던 저개발 국가나 아무런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은 오지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제품의 제조가 쉬워야 한다는 것은 주위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어야 하며, 저렴한 가격으로 제조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제조 과정이 단순하고 쉬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용하기 쉬워야 한다는 것은 제품 사용에 특별한 기술이나 교육이 요구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MIT 모빌리티랩과 여러 파트너들이 함께 진행한 레버리지 프리덤 체어 프로젝트는 비포장 도로가 많은 저개발 국가의 환경을 고려한 휠체어 디자인이다. 이 제품은 손으로 바퀴를 직접 굴리기 힘든 환경을 고려해 손으로 레버를 밀고 당겨 앞으로 갈 수 있다. 바퀴와 구동부 등 대부분의 부품을 자전거 부품으로 활용함으로써 쉽게 제작하고, 유지 보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그동안 휠체어가 있어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레버리지 프리덤 체어는 새로운 자유를 주는 발이 된다. 이 역시 로테크 하이콘셉트의 좋은 예다.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기술
적정기술은 사용 환경, 즉 라이프스타일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누이트족은 카누를 타고 해안 부근에서 사냥을 하는 수렵 민족이다. 먼 거리를 이동하며 사냥하는 이누이트족들에게 지도는 필수품이지만 물에 젖어서 찢어지거나 번지는 종이나 가죽으로 된 지도는 사용하기 힘들다. 그래서 이누이트족은 촉각으로 지형을 파악할 수 있도록 나무나 동물의 뼈를 조각해 지도를 만들었다. 주어진 환경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라이프스타일과 밀접한 제품을 효과적으로 구현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아프리카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려워 각종 수인성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마실 물을 구하기 위해 수십 ㎞를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에게 Q드럼은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중요한 기술이다. 가운데가 빈 드럼통 형태의 Q드럼은 가운데 구멍에 줄을 연결해 굴릴 수 있기 때문에 물통을 들고 오가는 수고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케냐와 나미비아, 에티오피아, 르완다,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의 저개발 국가에 보급되고 있는 Q드럼은 어린아이들도 50L짜리 물통을 혼자서 움직일 수 있는 효과적인 물 운송 수단이 됨으로써 로테크 하이콘셉트가 인류에게 어떤 혜택을 주는지를 보여준다. 별다른 운송수단이 없는 이런 오지에서 쉽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저밀도 폴리에틸렌 수지로 만들어진 Q드럼은 고액 투자가 필요 없고, 에너지 사용이 적으며, 누구나 쉽게 배워 쓸 수 있고, 현지 원재료를 씀으로써 로테크 하이콘셉트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이렇게 로테크 하이콘셉트는 기술과 휴머니즘의 중간에서 서로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심리적 피난처를 제공
미래의 위협에 대비하려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다. 지진이나 화산폭발, 쓰나미, 태풍, 홍수 화재 등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재해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기술과 장비는 사람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줌으로써 삶의 안정감을 준다.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재해 상황에 대비한 제품들도 로테크 하이콘셉트를 충실히 지키도록 디자인돼 있다. 손으로 돌려 전기를 발전시켜 사용하는 라디오, 램프 겸용 장비들이 바로 이런 콘셉트의 제품이다. 이런 종류의 로테크 하이콘셉트 제품들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피난처(Psychological Citadel)를 제공함으로써 안심시키기 위한 용도로 더욱 많이 활용된다.
 
심리적 피난처의 기능이 극대화된 것들이 바로 EDC 혹은 에브리데이 캐리(Everyday Carry)라고 불리는 종류의 제품들이다. 칼이나 드라이버, 펜치, 가위 등이 포함된 멀티 툴과 밝은 램프, 불을 피우기 위한 라이터나 성냥, 위치 파악을 위한 나침반, 위치를 알리고 신호하기 위한 휘슬 등으로 구성된 EDC는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최소한의 대처를 할 수 있는 제품들을 포함하고 있다.
 
디스커버리채널의 인기 TV 프로인 인간과 자연의 대결(Man vs. Wild)로 유명해진 서바이벌 전문가 베어 그릴스(Bear Grylls)의 이름을 빌려 만든 거버의 베어 그릴스 서바이벌 키트는 이런 EDC의 구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체온 유지를 위한 알루미늄박 모포에서부터 불을 피우기 위한 성냥과 성냥조차 사용할 수 없는 경우를 위한 파이어스타터, 멀티툴, 조난 신호용 거울과 휘슬, 올가미용 와이어, 톱, 비상용 끈 등 그가 TV 프로에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용하던 다양한 제품들로 구성돼 있다.
 
친환경과 지속가능성
하이테크가 시크한 기술로 불리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과거의 기술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자연과 잘 어우러지는지가 시크한 기술의 잣대가 된다. 로테크 하이콘셉트는 여러모로 친환경과 맥을 같이한다. 자급자족, 저에너지 소비, 재활용 등은 물론이고 모자람의 기술이라는 측면에서도 친환경적인 기술이다. 새로운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투자하는 비용과 노력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매력이다. 이전 세대의 기술을 활용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바로 로테크 하이콘셉트의 가치다.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복잡한 과정이나 프로세스 없이 구현할 수 있는 로테크 하이콘셉트는 기술 개발보다는 기존 기술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더구나 최소한의 재료, 자연에서 얻은 친환경 재료를 활용하고, 사람의 신체적인 힘이나 최소한의 에너지로 구현됨에 따라 인간도 자연을 이루는 생태계의 구성원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
 
환경 보호가 메가트렌드를 형성한 지는 이미 오래다. 로테크 하이콘셉트는 친환경이라는 기치를 내세우면서 기술보다는 콘셉트, 그리고 인간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시크함을 부각시킨다. 자전거는 인간이 페달을 굴려 앞으로 나간다는 로테크 기술이 적용된 대표적인 제품이다. 교통 수단으로, 레저 수단으로 사용되던 자전거가 이제 패션 아이템으로 고전적인 시크함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아이템이 되고 있다
유인오 메타트렌드미디어그룹 대표이사 willbe@metatrendmedia.com
신동윤 메타트렌드미디어그룹 수석연구원 dyshin@metatrendmedia.com
 
메타트렌드연구소(METATREND Institute·www.themetatrend.com)는 상품 중심의 최신 마이크로 트렌드를 분석해 전세계 주요 미디어, 글로벌 기업,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기업과 소비자가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목표로 운영되는 글로벌 트렌드 연구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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