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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setter Interview:김성철 idea company prog 대표

광고 PT 6할대 승률의 비결… “우선순위 확실히 정하고 나만의 법칙 제시하라”

하정민 | 84호 (2011년 7월 Issue 1)

 

광고주가 여러 광고 기획안을 심사하는 경쟁 프레젠테이션(PT) 자리는 말 그대로 총성 없는 전쟁터다. 광고를 따내기 위해 수많은 광고회사가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대기업 계열 광고대행사(in-house agency)가 아닌 독립 광고대행사들은 경쟁 PT에서 3할 승률만 기록해도 뛰어난 승률이라는 평가를 얻는다. 제일기획, 이노션, HS애드, SK M&C 4대 대기업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계열 광고회사를 두고 있어 독립 광고대행사의 광고 수주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려 60%의 승률을 기록한광고쟁이가 있다. 바로 김성철 idea company prog 대표( TBWA 코리아 상무). 1992년 광고계와 인연을 맺은 그는 2002년부터 지난 5월까지 총 72회의 경쟁 PT를 진행했다. 그중 42번의 광고를 수주했다. 6할 승률도 승률이지만 72회의 경쟁 PT를 진행한 사례는 국내 광고업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김 대표가 제작한 대표적인 광고는 SK텔레콤의현대생활백서’, 현대카드 시리즈(현대카드M 론칭, 아버지는 말하셨지, 아빠는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해요, 생각해봐 등), 대림산업 e편한세상의진심이 짓는다등이다. 그는 최근 새로운 도전을 위해 9년간 일했던 TWBA코리아를 떠나 idea company prog를 설립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광고기획자(AE)의 수명이 짧기로 유명한 국내 광고업계에서 20년 동안 일하며 다양한 브랜드의 흥망성쇠를 관찰한 그를 만나 브랜딩 및 마케팅 전략 전반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6 할 승률의 비결은.

어떤 기업이 광고를 의뢰할 때 해당 브랜드의 상황을 조사해보면 항상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해 있을 때가 많다. 때문에 많은 광고기획자들은 경쟁 PT의 과제를 받으면 그 여러 문제를 다 해결하는 광고를 내놓으려 할 때가 많다. 물론 어떤 브랜드가 쇠퇴했거나, 갑자기 실적이 급격히 나빠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하지만 이때 모든 당면 과제를 다 해결하려 하는 태도는 양념이 너무 많이 들어간 음식이나 잡탕밥을 만드는 일과 같다.

 

어떤 광고기획자도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는 없다. 최우선 순위의 과제를 찾아낼 줄 알고, 여러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태도가 진정한 능력이다. 좋은 브랜드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요인은 어떤 회사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하나로 단순화시킬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설사 광고업자가 찾아낸 우선순위 문제가 광고주의 원래 의도와 달랐다 해도 마찬가지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다른 광고기획자들이 PT에서 흔히 쓰는 방식, A안과 B안을 준비해간 후 광고주에게 둘 중 하나를 고르게 하는 방식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2개의 안을 만들었다는 건 우선순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그만큼 자기가 만든 광고에 자신이 없다는 뜻이다.

 

지금껏 가장 기억에 남는 PT.

2007 12월 현대카드 경쟁 PT가 열렸다. TBWA 2003 3월부터 4년간 현대카드의 광고를 맡아왔다. 지난 4년간 같이 일한 광고주였지만 수주 경쟁이 워낙 치열하니 이번에도 수주할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당시 현대카드의 점유율은 업계 4위였다. 처음 현대카드 광고를 맡았을 때 7위였으니 초기에 비하면 순위가 많이 올랐지만, 막상 4위가 된 다음에는 추가 상승 모멘텀을 찾기 어려웠다. 카드업계에서마의 점유율로 불리는 13%의 벽을 어떻게든 돌파하는 게 과제였다.

 

초기 준비 단계 때 팀원들을 불렀다. “수주 여부에 관계없이 이번을 마지막으로 현대카드 프로젝트는 맡지 않겠다. 그러니 이번 PT에 모든 힘을 쏟아라.” 일개 팀장이 CEO와의 협의도 없이 마지막 광고라고 운운하는 자체가 정신 나간 짓이었다. 하지만 팀원들도 다 동의했고 정말 미친 듯 준비 작업에 매달렸다.

 

경쟁 PT가 열리는 날 현대카드 임원진 앞에서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6가지 전략을 담은 광고안을 내놓았다. 메인 카피는 ‘Thinking and Dream’이었다. 6가지 전략을 자세히 설명하고 난 뒤 광고주의 표정을 보니 만족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때 내가 폭탄을 던졌다. “ 6개 전략은 다 잘못된 겁니다. 이렇게 안전하고 보수적인 전략을 쓰시면 안 됩니다. 이제부터 진짜 알맹이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회의장이 술렁였다. ‘이게 무슨 소리냐며 황당해하는 임원진 앞에서 이 6개의 전략이 왜 적합한 대안이 될 수 없는지를 설명했다.

 

그 후 야심 차게 준비한 진짜 기획안을 발표했다. 진짜 기획안에는 11가지의 새로운 전략이 있었고, 그 광고의 메인 카피가 바로생각해봐였다. 이 광고의 특징은 15∼30초라는 짧은 광고 시간을 쪼개 중간에 현대카드나 금융과 전혀 관련이 없는 영상을 삽입했다는 데 있다. 초원에서 뛰노는 치타, 빨랫줄에 걸린 여자 속옷, 원자폭탄이 터지는 과거의 흑백 영상, 타조와 고래의 모습 등이다. 광고 중간에 뜬금없는 영상을 집어넣는 아이디어는무릎팍도사라는 유명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얻었다. 출연자가 그날 주제와 별 관련이 없는 이야기를 하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산이 자막과 함께 등장한다. 신기하게도 그 장면을 보고 난 후에 출연자의 얘기에 더욱 집중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광고에도 이를 반드시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이 아이디어를 팀원들에게 설명하니 반대가 극심했다. 해당 예능 프로그램이야 1시간짜리이니 완급조절도 필요하지만 30초 광고에서 중간까지 잘라먹고 어떻게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할 수 있느냐는 이유였다. 내 생각은 달랐다. 1시간이건, 10초건 시청자는 그리 인내심이 큰 존재가 아니다. 불과 30초라 해도 카드회사 얘기만 주구장창 늘어놓으면 누가 우리의 메시지에 집중하겠나. 주변을 봐라. 너무 많은 광고들이 있어 어지간해서는 소비자의 관심을 받기 힘들다. 광고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끊어놓고 시청자의 관심을 집중시킨 후, 그때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해야 광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진짜 기획안에 대한 발표가 끝났는데 임원진의 반응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결과가 좋으면 박수가 나오거나, 격려의 말이 돌아오는데 다들 무엇에 홀린 듯 멍하니 앉아 있더라. 그때 내 생각이 맞았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수주에 성공했고, 실제 결과도 좋았다. 유명 모델 등을 쓰지 않았기에 일반 광고보다 제작 비용도 훨씬 적게 들었다.

 

PT를 통해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안이 있으면 절대 광고주와 타협하거나 구걸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준비 단계 때부터광고 중간에 관련이 없는 영상을 삽입하고, 11개나 되는 전략을 늘어놓아도 될까? 광고주가 지루해하거나 어처구니없어 하면 어떡하지?’ 등을 생각했다면 결코 그 광고를 따내지 못했을 거다. 기존 광고 문법만 따라가면 결코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전달해주기 어렵다는 점, 어설프게 A B안을 다 제시하기보다는 본인이 확신을 가지는 한 가지 안만 밀어붙이는 게 낫다는 점을 거듭 확인했다.

 

패배한 PT 중 기억에 남는 사례는.

이기든 지든 PT를 한 번 하면 그 결과물을 모두 상세하게 적어놓는다. 특히 스스로 평가하는 이긴 이유와 진 이유를 집중 탐구한다. 승부욕이 강한 편이라 PT에서 지면 1주일간 팀원들과 밥도 같이 안 먹고 얘기도 안 한다. 그 시간에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무엇이 실패의 원인인가? 이 방향이 아니고 다른 방향으로 접근했다면?’ 동시에 업계 관계자들과 만나 다른 사람은 어떤 방향으로 접근했는지를 조사한다. 이런 자료를 축적해서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지 않고, 어떤 상황도 대비하려고 애쓴다.

 

리더에게 통찰(insight)만큼 중요한 건 예측 능력(foresight)이다. 예측 능력은 미래 상황을 미리 알아내는 능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어떤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거나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쳤을 때 당황하지 않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내가 항상 모든 경쟁 PT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비슷한 과거의 실수 때문에 다른 PT에서 또 떨어지는 일을 방지할 수는 있다.

 

실패한 30편의 PT 중 절반은 솔직히 납득하기 어렵고, 나머지 절반은 납득할 수 있었다. 후자 중 몇 개는 진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대표적인 게 한 주류업체의 기획안이다. 내가 만든 기획안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당선작은 브랜드 인지도 증가가 실제 매출 증가로 이어지도록 잘 연계된 전략을 담고 있었다. 기획서의 구성 양식도 매우 새로웠다. ‘정말 세상의 경쟁은 끝이 없구나. 내가 배워야 할 고수들이 너무 많구나하는 것을 절감했다.

 

대기업 계열사가 대부분인 한국 광고업계의 현실을 감안할 때 독립 광고대행사는 정말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 안이 51%의 지지를 받고, 계열사 안이 49%의 지지를 받으면 계열사 안이 채택될 때가 많다. 내가 광고주라도 그럴 거다. 6:4 7:3도 아닌 8:2의 비율로 우리 안이 지지를 받아야 그 광고를 따낼 수 있다. 그 치열한 경쟁을 뚫으려면 철저한 준비밖에 없다.

 

모 전자업체의 PT에서 실패한 것도 좋은 교훈이 됐다. 그 전자업체는 당시 몸담고 있던 광고회사의 사장이 현직 AE 시절 광고를 수주했던 기업이었다. 당연히 사장의 개입이 심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광고 전략에 관해서만 의견이 달랐지만, 몇 번씩 되풀이되다 보니 결국 상사와의 감정 싸움으로 번졌다. PT 준비가 제대로 될 리 만무했고, 수주에도 실패했다. 의견이 다른 조직원, 특히 상사와 대립할 때 어떻게 대화하고 행동하는 게 좋을까라는 질문에 관해 내 나름의 의견을 정립한 계기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AE, 제작팀장, 본부장 같은 광고업계 특유의 서열화가 싫다. 일단 어떤 광고안이 확정되면 리더가 독재에 가까울 정도로 그 안을 밀고나가는 추진력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아이디어 도출 단계에서 위계질서가 개입되면 신선한 광고가 나오기 힘들다. 새로 만든 회사에서는 직책 없이 나를 포함한 모든 AE가 아이디어 플래너(Idea Planner)라는 명칭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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